전시명 : 박지나 / 잃어버린 낙원 | Paradise Lost
전시기간 : 2025년 5월 1일 ~ 2025년 6월 26일
전시 장소 : 26SQM 박서보재단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희로 24길 9-2
박지나, Eternal Cycles I, 2024, Egg tempera on canvas, 200x120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ThisWeekendRoom, Seoul
박지나, Eternal Cycles III, 2024, Egg tempera on canvas, 200x120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ThisWeekendRoom, Seoul
<Fragmented Eden>은 이러한 세계를 상징한다.
에덴은 종교적 맥락 안에서 완전한 기원을 의미하지만, 나에게 에덴은 기존 질서를 구축해 온 지배 이데올로기의 무의식적 구조를 은유한다. 우리는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오해와 편견, 혐오와 배척, 더 나아가 분쟁과 전쟁 속에 살아가고 있다. 어떤 강력한 믿음들이 서로를 오해하게 만드는지 추적하다 보면, 내가 살고 있는 세계와 그 안의 구성원들, 그리고 그들이 믿는 종교와 정치적 신념이 충돌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이 충돌의 발생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나’라는 개인은 어떻게 구성되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나에게 흥미롭게 다가온 개념은 바로 '취향'이다. 취향을 알아간다는 것은 인간이 세계와 관계를 맺는 방식이며, 동시에 스스로를 구별하고 타인과 구분 짓는 기준을 발견하는 일이다. 취향은 내면 깊숙이 작용하여 애호와 혐오, 공감과 반감, 환상과 공포에 직접적으로 관여한다. 또한, 계급적 무의식의 통일성을 형성한다.
믿음과 신념은 끊임없이 충돌하며 서로를 오해시킨다. 세계는 그 틈 사이로 균열을 드러내고, 그 균열 속에서 불안정하게 진동한다. 이 진동을 추적하는 것은, '나'를 하나의 고정된 주체로 상정하는 통념을 해체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끝에서 드러나는 것은 고정된 정체성이 아니라, 순간순간 주어지고 흩어지는 감각적 차이들의 총합, 다시 말해 '취향'이라 불리는 미세한 편향들의 군집이다.
- 2024년 베를린 FeldbuschWiesnerRudolph Gallery 개인전 《Fragmented Eden》 박지나 인터뷰 중
박지나, Fragmented Eden, 2024, Egg tempera on canvas, 180x240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ThisWeekendRoom, Seoul
본래의 생태에서 뿌리 뽑혀 수집되고 포획된 것들이 우리 앞에 있다. 새벽인지 낙조인지, 과거인지 미래인지, 지구인지 먼 우주인지, 안인지 밖인지, 현실인지 상상 속 공간인지 모를 시공간에서는 사막과 초원, 열대우림을 아우르는 이질적 환경의 식물이 동시에 우거진다. 눈 덮인 산을 배경으로 뜀박질하는 흑마의 옆으로 마다가스카르의 호랑꼬리여우원숭이가 관람자를 응시한다. 물가에 사는 분홍깃의 저어새가 사막의 선인장에 앉아 날개를 퍼덕일 때 초원의 뱀은 우거진 열대의 드라세나 사이로 고개를 내민다.
식물은 초록의 색을 펼쳐 습기와 산소를 뿜어 내고 동물들은 살아 숨쉬며 혼돈 속에 약동하지만 이들은 작가의 화면 속에 이미 박제된 존재들이다. 사람들이 이 사물들을 욕망하고 이것들을 통해 공유하던 의미와 상징, 그 풍성한 해석의 기반이 사라졌다는 의미에서 이들은 문화적 생명을 잃어버렸다. 오히려 그 반대인가? 그들을 욕망하고, 수집하고, 전시한 인간은 작가의 화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시간과 공간을 부유하는 화면 속에 유일하게 멈춰 있는 것은 고대의 유적, 인류가 존재했다는 흔적 뿐인 듯하다. 욕망의 잔재들만 남은 공간에서는 지배를 벗어난 야생이 펼쳐진다.
박지나의 작업은 현대 미술관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분더카머(Wunderkammer) 혹은 호기심의 방(cabinets of curiosities)에서 수집되던 이국적이고 매력적인 사물들에서 시작된다.1) 작가가 독일에서 수학하며 만나게 된 서구 문명 속의 이미지들은 책가도의 다중시점과 산수화의 이동 시점을 연상하게 하는 겹쳐지고 흐트러진 시공간 속에 재배치된다. 동양화의 채색 안료는 에그 템페라로 대체되어 박지나의 화면에 의미의 레이어를 더한다. 반투명한 얇은 필름과 같은 에그 템페라가 수십번의 붓질로 켜켜이 쌓여 사물은 견고한 색과 형체를 갖추고, 이로써 영구히 작가의 화면 속에 포획된다.2) 박지나의 작품들은 이렇듯 권력과 소유의 관계를 탐색하고 제국주의적 오리엔탈리즘을 벗어나 보다 유동적인 문화적 정체성의 상호 교유를 다룬다.
박지나 개인전 《잃어버린 낙원》은 관람자를 작가의 영감이 된 분더카머의 시공간으로 초대한다. 특히, 박지나의 작품을 통해 소유와 전시(display)의 욕망이라는 분더카머의 중요한 형성 동기에 더하여 전시의 인식론적 기능(epistemology of exhibition)에 대해 생각해보기를 권한다.
17세기 분더카머의 진귀한 사물과 예술작품들은 진공의 공간인 화이트 큐브가 아닌 다채로운 층위의 의미와 상징의 맥락이 채워진 공간, 그리고 그보다 더욱 다층적인 소유자의 취향 속에서 선보여졌다. 사물들은 공간의 소유자가 이해하는 세상의 질서 하에 배열되었다. 전시는 이미 알려진 내용을 선보이는 지식의 과시이기도 했지만 어떤 것을 무엇과, 어떻게 보여줄 지 적극적으로 선택하는 과정을 거친다는 점에서 또한 그 공간을 소유한 개인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이야기이기도 했다. 전시를 보는 이에게도 이는 마찬가지의 행위였다. 분더카머의 소유자와 관람자는 전시의 경험이 주어진 내용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해석과 비판을 동반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보고 아는 행위는 소유와 멀리 있지 않았고, 어떠한 것에 대한 지식을 소유하는 것은 그것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행위와 같았다. 사유(私有)와 사유(思惟)는 밀접하게 맞닿아 있었다.
지식의 생산과 수용이 익명의 다수 사이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상호작용이라는 생각이 공공연한 논의가 된 현대의 전시문화에서 분더카머는 적극적 경험과 사유로 향하는 새로운 열쇠를 제공한다. 박지나는 세계와 사물을 이해하는 지배적인 질서가 존재하던 세계를 에덴에 은유했다. 하지만 작가의 화면에 담긴 것은 주어진 율법에 순종하기만 하면 되는 낙원이 아니라, 호기심의 사과를 한 입 베어문 후 인류가 마주한 세상이다. 스스로 판단을 내리고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의지에 눈을 뜬 인간에게 그 곳은 더 이상 낙원이 아니었다.
전시 《잃어버린 낙원》에서 박지나의 작품들은 머나먼 시간대의 분더카머를 염두에 두고 배치된다. 화면 속 사물들은 이미지 내에서뿐만 아니라 자신을 가둔 프레임을 벗어나 공간 속에서 상호 유기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질서의 권위를 벗어난 욕망의 대상들은 관람자의 차원마저도 자유롭게 넘나든다. 낙원에서 스스로를 추방한 당신은 현대의 분더카머에서 무엇을 보고 사유하는가?
박지나, Space Oddities, 2024, Egg tempera on canvas, 150x150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ThisWeekendRoom, Seoul
(1) 분더카머(Wunderkammer)는 독일어 경이(Wunder)와 방(Kammer)라는 단어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용어로, 영어식 표현인 호기심의 방(cabinets of curiosities)으로도 불린다. 르네상스 시대 이후 유럽에서 왕실과 종교 기관을 벗어나 부유한 중간 계층이 재력과 견식을 갖추고 본격적으로 개인적인 소장품을 수집하여 전시하기 시작한 사적인 공간들을 지칭한다. 진귀한 예술 작품과 공예품에 더불어 호기심을 일으키는 이국적이고 희귀한 동식물과 자연물까지도 포함하는 백과사전적인 구성이 큰 특징이며, 근대 박물관의 시작이 되었다고 평가된다.
(2) 에그 템페라(egg tempera)는 서구에서 유화 물감 이전에 고대로부터 사용되던 회화 안료로 계란 노른자에 물, 색안료 등을 혼합해 만들어지며 마른 후에는 환경 변화에 강하여 오랜 시간 유지된다.
박지나, Horse Head, 2023, Egg tempera on canvas,70x45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ThisWeekendRoom, Seoul
박지나, Doryphoros, 2023, Egg tempera on canvas,70x45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ThisWeekendRoom, Seoul
26SQM 의 전시는 예약 없이 자유롭게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월요일~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