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2025-07-14 ~ 2025-07-28
한희선
우도창작스튜디오
무료
010-9699-8470
'물처럼, 차고 기울고'는 섬 우도라는 장소성과, 그 안에 깃든 물의 존재 방식, 그리고 그 결핍과 흔적에 주목한 설치미술 전시이다.
우도는 섬이라는 특수한 지리 속에서 물을 언제나 ‘모으고 아끼는 대상’으로 대하며 살아왔다. 땅속에서 솟지 않는 물은 오롯이 하늘에서 주어져야 했고, 사람들은 빗물을 담는 항아리와 고인 물의 냄새, 수분의 부재가 만들어내는 갈증의 감각 속에서 생존과 공존을 배워왔다. 이 전시는 바로 그 물의 흔적과 부재, 채움과 갈증의 리듬, 그리고 인간의 욕망과 생태 간의 불안한 공존을 설치미술의 언어로 풀어낸다.
철학적으로 이 전시는 불교의 금강경에 등장하는 핵심 사상, ‘무유정법(無有定法)’—즉 “정해진 법은 없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한다”는 원리에 근거한다. 물은 어떠한 고정된 형상도 가지지 않지만, 그 자체로 생명과 존재의 바탕이 된다. ‘물처럼 살아야 한다’는 직관은 단지 융통성이나 유연함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흐르되 머무르지 않고, 존재하되 고집하지 않는 삶의 태도를 뜻한다.
이는 장자(莊子)의 사유, 곧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되, 그 낮음 속에서 생명을 품는다’는 자연 철학과도 통한다. 인간 중심적인 사고가 파괴한 자연의 질서에 반하여, 이 전시는 겸허히 물처럼 살아가는 태도, 다시 말해 비우고 순환하고 공존하는 삶을 묻는다.
심리학적으로는 이 전시가 다루는 ‘물에 대한 갈애(渴愛)’는 단순한 생리적 갈증을 넘어서, 결핍에서 비롯된 기억의 정서와 관련된다.
정신분석학자 멜라니 클라인(Melanie Klein)은 초기 욕망과 결핍의 경험이 인간의 감정 구조를 형성한다고 보았고, 라캉(Jacques Lacan)은 상징계로 진입하기 이전, 인간은 무의식적 갈망의 주체로서 ‘결핍의 존재’임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갈증은 단순한 생존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타자와 관계 맺고, 세계와 접속하는 감각적 방식의 핵심이다.
섬의 갈증, 물을 기다리는 몸의 기억은 결국 우리가 누구이며, 무엇을 잃고 살아왔는지를 되묻는 감각의 역사이다. 또한 물은 심리학적으로도 정서적 정화와 잠재의식의 상징이다. 융(C.G. Jung)은 꿈에서 나타나는 물을 무의식의 메타포로 보며, 내면의 감정과 무의식적 진실이 드러나는 경계로 이해했다. 이 전시의 설치물들은 바로 그 경계를 시각화하며, 관객들이 자신의 내면과 자연, 그리고 과거의 공동체 기억에 접속하도록 만든다.
무엇보다 이 전시는 달이 차고 기울 듯 순환을 핵심 구조로 한다. 물은 마시고, 사용하고, 배출되며, 다시 증발하고 응축되어 돌아온다.
플라스틱, 폐어망, 마이크로비즈와 같은 해양 쓰레기의 순환은 자연과 인간을 공격하는 덩어리이고, 물을 더 이상 흐르게 하지 않는 ‘응어리진 기억’이며, 작가는 이 ‘응어리’를 수행적으로 시각화한다.
따라서 이 전시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지금도 물처럼 순환하고 있는가?
우리는 그 안에서 어떤 흔적을 남기고, 무엇을 잊고 있는가?
물이 사라진 자리, 그 갈증은 어떤 영향을 우리 안에 남기고 있는가?
우도에서 모은 해양 쓰레기와 담수장을 통한 물의 잔상들은, 부자연스러운 순환을 회복하기 위한 감각적 제의이며, 자연의 흐름을 따라 살아가고자 하는 겸허한 선언이다.
물처럼, 우리는 흔적을 남기되 머무르지 않아야 하고, 차고 기울며 서로의 기억 속으로 스며들어야 한다.
*. 작가소개
시각예술가 한희선은 서울에서 태어나 강화와 우도를 오가며 지역성과 물성, 생태적 감수성을 기반으로 하여, 존재의 흔적을 통해 자연의 순환과 공존 가능성을 수행적 태도로 탐색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일상에서 쓰임이 다한 사물과 낡고 비루하고 사라져가는 존재들의 존재 자체 의미에 집중하며, 그들이 존재로서 살다간 흔적들을 좇아 이를 작품화 한다. 사라지는 처연함 속에서도 그것들이 죽어 없어지거나 끝이 아닌 원자 상태로 돌아가 다른 존재로 환원되는 과정을 담담하게 목도하고, 존재가 남긴 흔적을 통해 관계와 순환으로서의 경이로움 등 비가시적인 감정들을 형상화하는데 집중한다.
2024년부터 제주 우도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하여 생활하며, 섬이라는 고립된 지리적 공간과 물의 결핍, 생태 순환의 단절 문제를 직접 체험하고 기록해 왔다. 특히 우도에서 수집한 해양 쓰레기, 담수장 유물, 성게가시 등 지역의 삶과 직결된 실질적 재료를 바탕으로 작업을 전개하며, 예술가로서의 수행성과 지역성의 접점을 탐색하고 있다. 한 작가의 작품은 불교 철학의 무유정법(無有定法), 장자의 자연 사유, 심리학적 갈애(渴愛) 등의 사유를 바탕으로, 비움과 순환, 공존의 윤리를 시각적으로 풀어낸다.
이는 단순한 환경미술이나 생태적 메시지를 넘어, 인간 내면의 결핍과 정서, 타자와의 관계 맺음을 깊이 있게 다룬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작가는 “버려진 사물 속에서 나를 보고, 쓰임이 다한 존재에서 조차 생명의 순환을 느낀다.
무심히 버려진 것들로부터 세계와 다시 연결되는 희망적 순환 감각을 되찾고 싶다”고 말한다.
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에서 현대회화를 전공(석사)했으며, 호랑가시나무아트폴리곤, 스페이스빔, 인천아트플랫폼,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등에서 다수의 작품을 발표했다. 인천문화재단, 아시아프(ASYAAF) 등에서 창작지원 및 수상했으며, 우도창작스튜디오(2024~25) 레지던시 작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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