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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visible Mind

  • 전시기간

    2011-08-09 ~ 2011-08-26

  • 참여작가

    영비,이정희,최윤영

  • 전시 장소

    갤러리AG

  • 문의처

    02-3289-4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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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참여한 세 명의 작가는 각자가 사적이거나 공적으로 경험했던 (심리적, 역사적, 사회적) 사건들(events)을 회화 공간 안에 재구성한 작업을 선보인다.


 
전에 참여한 세 명의 작가는 각자가 사적이거나 공적으로 경험했던 (심리적, 역사적, 사회적) 사건들(events)을 회화 공간 안에 재구성한 작업을 선보인다. 여기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이질적인 이미지들의 조합으로 발생하는 충돌과 모순적 관계는 자신과 사회를 연결하는 심리적인 지형도를 그리는 과정의 결과로 볼 수 있다. 사회와 고립된 개인의 모습(이정희), 역사에 획을 그은 화제의 인물들을 재해석한 얼굴(영비), 안락한 가정에 대한 꿈을 반어법적으로 그려낸 판타지(최윤영)와 같이 세 작가는 궁극적으로 삶을 지배하는 조건들을 나름의 방식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이정희 작가




십여 년 전 혼자 생활하던 나는 우연히 길 잃은 강아지 한 마리를 주워 기르게 되고 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정서적 교감을 하게 된다. 타인과의 정신적 교류를 꿈꾸던 나에게 이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었고 이를 작업의 소재로 다루기 시작하였다. 

나와 강아지 둘 다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와 사회적 ․ 개인적 관계의 끈이 끊어진 고립된 상태라는 생각을 하였고, 이와 같이 불완전한 삶을 사는 두 개체를 표현하기 위해 절단된 신체의 모습과 도형을 결합한 이미지를 사용하였다. 

나의 그림에는 유독 가느다랗고 긴 선이 자주 등장하는데 여러 겹의 선으로 이어진 인체와 개의 머리는 누군가와 하나가 되고 싶은 강렬한 결합의 욕구를 표현한 것이다. 그 선은 생각이 지나는 통로여서 둘을 정신적으로 결합시켜주기도 하고, 혈액이 흘러가는 혈관이어서 신체적으로 이어주기도 한다. 불완전한 신체들의 조합으로 비로소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지만 그것마저 가느다란 선으로 이어져있는 모습은 결합의 불완전함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나 또는 익명의 누군가를 상징하는 얼굴 이미지는 주로 눈이 텅 비어있거나 어딘가에 눈을 묻은 모습을 그리게 되는데 이는 시선 ․ 감정 ․ 생각이 사라진 공허한 인물을 표현한다.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때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주체적인 생명체라기보다는 소문이 증식하고 잠시 스쳐가는 숙주와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드는데, 개체의 특성이 사라진 인간을 표현함으로써 진정한 관계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고, 부피는 있으나 질량은 없어 보이는 검은색 덩어리가 인체의 눈과 입으로 빨려 들어가기도 하고 쏟아져 나오는듯한 모습을 짧은 볼펜 선으로 표현해 보았다. 


영비 작가




사진은 발명되고 한 세기 반에 걸쳐서 세계와 시대의 이미지를 찍어 왔다. 그 방대하게 증식하는 이미지의 축적활동을 받쳐온 것은 다름 아닌 '보고 싶다', 혹은 '알고 싶다'고 하는 인간의 욕망의 집합(集合) 바로 그것일 것이다. 

나의 작업의 계기는 우연히 본 사진으로부터 오는 물음이었다. 체 게바라의 눈을 뜨고 죽은 주검의 모습에서 나는 그의 공허하지만 한편으로는 생을 마감한 평화로운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이 나에게는 참으로 당황스럽게 다가왔다. 그가 살아있을 당시의 사진을 찾아보았을 때 그의 눈에는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희망과 다른 한편으로는 두렵고 외로운 기운이 역력했기 때문이다. 그때 그의 눈이 곧 그의 삶에 대한 결연한 의지, 또는 신념, 또는 그의 마음의 생각을 소리 없이, 그러나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역사적인 인물들의 사진을 조사하며 수집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여러 인물들의 사진을 보며 발견한 재밌는 사실은 그들의 눈이 말하는 바가 곧 진실이 아닐 것이라는 의문이었다. 나의 작업 속 인물들의 눈에 꽃이 얹어진 이유는 바로 이러한 의문에서부터 출발하였다.

작업에서 인물의 얼굴에, 특히 역사적인 인물의 눈에 꽃이 얹어진 이유는 무언가에 가리어져 보지 못하고 삶에 있어 정확한 예측이 어려운, 특히 시간이 흐르고 수많은 관계성에서 기인 된 신화적인 스토리를 직접적으로 화면 안에 제시하고픈 생각에서부터다. 그리고 역사 속 인물들이 좇았던 그들 각자의 달콤함, 혹은 영원할 것 같지만 영원하지 않은, 그러나 눈으로 인식할 수 없는 내면의 것들을 화면 안에서 시각적으로 더욱 극대화 시키고 싶었다.

굳이 꽃을 선택한 이유는 꽃이 가지고 있는 많은 꽃말과 그에 관련된 이야기가 꼭 전설, 혹은 허구화된 역사와 유사하단 생각에서다. 꽃은 꼭 인간의 삶의 욕망과 꿈을 단적으로 혹은 은유적으로 드러내며 우리가 알고 있듯이 꽃의 역할과 의미가 실로 다양하다. 화면에서 그들의 근엄함, 혹은 권력과 힘으로 정형화 되었을 그들의 눈에 꽃을 얹고 보니 한편으로는 육체는 썩어지고 신화와 같이 이름만 남았을 그들의 삶이 꼭 꽃이 가지고 있는 성격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꽃말과 꽃이 주는 여러 의미가 꼭 우리들의 삶의 모습을 때로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그러므로 꽃의 의미를 하나로 고착시키기보다 그 의미가 유동적으로 인물에 따라 보는 이들로 하여금 여러 의미로 읽히기를 원한다. 

예를 들어 작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는 파시즘을 좇았던 이들도 있고 영원한 삶을 꿈꾸었던 진시황도 등장한다. 나는 이들의 이념과 이상을 추구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들의 삶 속에서 각자 다른 개념과 시대, 혹은 이상에 따른 다른 삶을 살았지만 그들의 공통점은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끊임없이 추구하며 좇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들의 눈에 꽃을 얹으므로 그들이 진정으로 추구하였던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들이 삶에 있어 진실로 추구하려 애쓰는 것은 무엇일까 되묻고 싶었다. 


최윤영 작가




우리에게는 익숙하지만 간혹 낯설게 느껴지는 공간이 있다.
그 중 나는 ‘가정’이라는 공간을 말하고자 한다.
우리에게 가정이란 단지 한 가족이 생활하는 집이라는 휴식의 공간이며 안락함의 상징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의 작업에서 집의 표상은 가까운 혈연관계에 있는 부부, 부모, 자식등 가족이 공동생활을 하는 하나의 조직체, 인간관계를 뜻하는 가정과 구체적인 건축물인 집의 의미를 모두 내포하고 있다.오늘날 사회에서의 집은 소유의 대상으로 계층을 형성하기도 하여 가정 안의 구성원에서 부터 광범위하게는 정치적 의미까지 담겨진다.
오늘날의 사회는 구성원의 최소 단위가 개인이 되어 각자의 삶이 아닌 다른 것에는 무관심한 감정의 무중력 상태를 보이고 있다.
더 이상 가정은 구성원들간의 화목을 위한, 혹은 최소한의 치유 공간이 아니라 개인의식이 팽배한 개인과 개인이 만나게 되는 가장 두려운 공간이 아닐까...라는 생각에서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의 작업 안에 가정은 자연 속에서 표류하는 듯 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눈인지 구름인지, 하늘일지 바다일지 모를 모호한 공간 안에서 방향을 잃은 우리들의 모습을 빗대어 표현하고 싶었다.
고속도로를 달리던 버스 안에서 마른가지위에 지어진 새집 주위를 맴도는 새를 보았다.
콘크리트 건물들을 비집고 시스템에 의해 놓여진 가로수 위에도 새집은 지어지기 마련이다. 그렇게 위태하게 그들의 보금자리는 지어진다.
성장위주의 사회 속에서 콘크리트 섬(도시) 안에서 자연을 찾게 되는 나의 모습이 그림에서 자연의 힘을 빌려 혹은 시멘트 건물에 떠밀려 모호한 공간 위에 자신들의 안전지대를 형성하고 있는 듯이 나타냈다.
성장에 따른 가정의 긍정적인 측면도 고려해 나아가고자 하는 희망을 열고 표리의 공간을 바라보며 극복의지의 의미를 부여하고 나의 작업을 통해 이 시대 우리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성찰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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