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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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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자료의 중요성을 일깨운 「한국근대미술자료전」

[12월의 대표문화 소사]

한국 근대미술은 근대적 사고로 전환하는 1900년대부터 도입된 서양미술에 근거하는데 소용돌이 치는 국내외 정세로 인해 우리의 근대미술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형편이 숙성되지 못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우리 근대미술의 제반 양상을 조명하고 미술사의 증인이 될 귀중한 자료들을 뒤늦게나마 수습하고 정리함으로써 자료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계기를 마련하여 1984년 〈한국근대미술자료전〉을 개최하였다. 


이 전시는 ‘개화기부터 1970년까지’라는 부제를 걸고 사료적 비중이 큰 작품, 인쇄물, 유품 등 1071점을 전시했다. 전시는 4부로 나누어 1부에는 각종 전시회 목록·포스터·신문보도 자료, 작고작가들의 유품을, 2부에는 〈서화협회전〉등 역사적 전시회 사진 및 도쿄미술학교 유학생들의 사진 패널 63점, 초기 조각·공예 작품 9점을, 3부에는 고희동의 〈자화상〉(1915)을 포함하여 자화상 26점 외에 김관호의 〈해질녘〉(1916), 이한복의 〈엉겅퀴〉(1923) 등 도쿄예술대학 소장 한국인 졸업생들의 자화상과 졸업작품을, 4부에는 사료적 가치가 있는 특정 작품, 근대미술의 각종 도서·화집·잡지 등을 망라해 전시했다. 


이 전시에는 과거 도쿄미술학교에 유학했던 한국인 작가들의 졸업작품들을 대여해 와서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특별 전시되었다. 그러나 미흡한 점을 채워서 한층 진전된 자료전이 될 수 있도록 계속 추진할 방침을 밝혔던 이 전시는 그 후 다시 없었다. 그리고 당시 전시도록이나 출품자료 목록집을 만들지 못한 아쉬움을 크게 남겼다.


12월의 미술계 인물로 현대 추상미술의 창시자인 칸딘스키가 태어나고 작고하였다. 그는 모스크바 출신이었으나 나치스의 탄압을 피해 1939년 프랑스에 귀화하였다. 1911년 표현파인 프란츠 마르크와 함께 뮌헨에서 예술가집단인 ‘청기사(靑騎士)’ 를 조직하였다. 그 후 1921년 베를린으로 가서 이듬해부터 1933년까지 바우하우스의 교수로서 후진지도와 신예술 개척에 힘썼다. 만년인 1933년부터는 프랑스에 정주하였다. 그는 대상의 구체적인 재현에서 이탈하여 선명한 색채로써 교향악적이고도 다이내믹한 추상표현을 관철한 후 점차 기하학적 형태에 의한 구성적 양식의 작품세계를 남겼다. 그는 추상미술 이론가로서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1921) 《점 ·선 ·면》(1926) 등의 저술도 남겼다.


한편 서양화가 이종우·주경, 조각가 최종태, 프랑스 화가 쇠라·마티스, 노르웨이 화가 뭉크, 이탈리아 조각가 베르니니, 스페인 화가 타피에스, 스위스 화가 클레, 멕시코 화가 리베라 등이 태어났다. 작고한 미술가로 서양화가 류경채·오지호·장욱진·진양욱, 조각가 김종영, 도예가 김재석, 서예가 안규동·현중화, 중국화가 이가염, 프랑스 화가 쿠르베·모네·르누아르, 프랑스 조각가 세자르, 스페인 화가 미로, 스위스 조각가 빌 등이 있다. 미술사가 최순우도 세상을 떠났다. 


김달진│김달진미술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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