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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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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대관이 중단된 '현실과 발언' 창립전

[10월의 대표문화 소사]

1980년대 한국사회의 격변기에 태동하여 민중미술을 이끌며 당국의 모진 탄압에 저항하면서도 성장해 온 ‘현실과 발언’이 창립전에서 전시 중단이라는 아픔을 남겼다. 1980년 문예진흥원 미술회관에서 열릴 예정이던 현실과 발언 창립전(10.17∼23)은 개막과 함께 ‘시국에 맞지 않는 그림’이란 이유로 전원을 끊겼는데 촛불을 밝혀 감상하고 30분 만에 막을 내렸다. 이 전시는 취소되고 26일 뒤인 11월 13일부터 일주일간 동산방화랑에서 개최되었다. 이 창립전은 미술가 김건희·신경호·심정수·김정헌·오윤·민정기·백수남·임옥상·김용태·주재환·노원희·손장섭, 미술평론가 성완경·원동석·윤범모·최민 모두 16명이 동참했다. 이들은 기존 미술을 근본적으로 반성하고 비판하면서 본래의 기능을 회복하며 정립하는 일에 노력하였다. 1988년 7월에 문학작품이 해금된 데 이어 10월에 음악인·미술인 100여 명의 납·월북 예술인의 작품 중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 이전에 발표된 순수 예술작품이 해금되어 김용준·김주경·길진섭·정종여·이쾌대·임군홍 등이 미술사적 연구 대상으로 새로이 부각되었다.


1957년 5월에 창립전을 가진 ‘현대미술가협회’와 1960년 10월에 창립전을 가진 ‘60년미술가협회’가 1961년 경복궁미술관에서 연립전을 가졌는데 김봉태·김창열·조용익·윤명로·하인두 등 20여 명이 출품했다. 그 후 이 단체는 ‘악뛰엘’로 합쳐져 1962년과 1964년 두 차례 전시를 열었다. 


1984년 11회 FIAC전에 진화랑이 국내화랑으로는 처음 참가해 외국 화랑제의 문을 열었다. 1969년 8월 국립현대미술관이 대통령령 제4030호로 직제가 제정되어 정원 8명으로 경복궁 안에서 10월에 개관했다. 그 후 1973년 덕수궁 석조전으로 이전했고 1986년 과천에 미술관을 신축 개관하였으며 1998년 덕수궁미술관 분관이 개관했다. 1981년 서울 종로구 구기동에 재불화가 임세택 씨 부부가 미술평론가 김윤수 씨를 관장으로 서울미술관을 개관하여 프랑스의 신구상회화 등 유럽 현대미술의 새로운 경향을 소개했다. 그러나 1999년 국내 최초의 사설미술관인 서울미술관이 경매에 붙여지자 2000년 우리 나라와 프랑스 화가·예술인들이 미술관 살리기 운동을 펼치기도 했지만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비운을 남겼다. 1973년 10월에는 우리 나라의 문화예술 진흥을 위한 사업과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개원했다.


10월의 미술계 인물로 서양화가 류경채·손응성·양달석, 조각가 최만린, 프랑스의 밀레·마리 로랑생, 네덜란드의 베르메르, 스페인의 피카소, 스위스의 자코메티, 미국의 라우센버그·리히텐슈타인 등이 태어났다. 작고한 미술가로 한국화가 고희동·이석우, 서양화가 고화흠·도상봉·변영원·이마동·전화황, 조각가 윤효중, 공예가 강수화, 서예가 신경희, 프랑스의 세잔·앙드레 마송 등이 있다.


김달진│김달진미술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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