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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회 한국보도사진전-삶의 기억, 시대의 기록:사진으로 읽는 격동의 반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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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시 명 :  삶의 기억, 시대의 기록Documenting Lives, Recording Times
                 - 사진으로 읽는 격동의 반세기
전시기간  :  2014.2.28(금) – 3.17(월) 전시기간 중 휴관 없음
전시장소  :  세종문화회관전시관 (1F) 
관람시간  :   오전10시 30분 – 오후8시30분 
전시문의  :   02)733-9576~7  / www.kppa.or.kr 
주    최  :  한국사진기자협회
기획총괄  :  김소희 
주    관  :  사진전문기획사 디투씨


1.전시소개


「한국사진기자협회」는 1964년 4월 24일, 전국 일간지와 통신사에 소속된 사진기자들의 권익을 옹호하고 취재환경을 개선하여 언론문화의 발전과 보도사진의 지속적인 연구를 위하여 창립되었습니다. 「한국사진기자단」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하여 1996년 「한국사진기자협회」로 개칭하였으며, 현재 500여 명의 사진기자들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한국사진기자단으로 창립되기 2년 전인 1962년 3월 27일, 제1회 보도사진전이 개최한 이래로 한국사진기자협회는 사진기자들의 눈으로 바라본 동시대 삶의 모습, 역사적인 상황을 기록한 사진으로 매년 ‘한국보도사진전’을 개최해 왔습니다. (유신시절 정권에 의해 이루어지지 못한 1980년도의 제16회 전시는 예외)
또한 1년간 취재, 보도한 사진 중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관련 뉴스, 스포츠, 인물, 예능, 시사와 생활 등 각 분야별 사진으로 편집한 ‘보도사진연감’을 꾸준히 발행해 왔습니다. 이 연감은 지난 해 한국의 상황을 재확인할 수 있게 하며, 후대에도 전해질 중요한 시각자료로서의 가치를 지닐 것입니다. 사진기자협회의 행보는 곧 한국 현대사의 기록,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삶의 기억, 시대의 기록 Documenting Lives, Recording Times>이라는 제목으로 진행되는 제50회 한국보도사진전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한국 포토저널리즘 50년사를 조명하는 역사전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1960년대 초반에서 현재까지, 사진으로 한국현대사를 회고하는 것뿐만 아니라 한국포토저널리즘의 발전사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도록 입체적인 전시로 구성하였습니다. 60년대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한 신문사진의 위력과 7, 80년대 격동의 현장과 시대를 증언하는 사진들, 그 역사의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기록하고자 했던 사진기자들의 취재중의 모습, 그 외에도 그들이 사용했던 카메라와 전송기의 변천과정도 살펴볼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또한 지난 한해(2013년) 동안 사진기자들이 시대의 진실을 기록한다는 사명감으로, 역사의 현장을 묵묵히 지키며 촬영한 수백만 컷 중에서 선정한 150여 점의 사진을 포함하여 총 300여 점의 사진과 자료들이 전시됩니다. 

그간 신문이나 책자의 지면, 온라인을 통하여 보여졌던 사진을 주제별로 재구성하여 미술관 공간에서 전시함으로써 보도사진의 폭넓은 소통의 장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이번 제50회 보도사진전에서 역사의 증거로 남은 그 결정적 순간들과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2. 전시구성

주제전Ⅰ. 사진으로 읽는 한국 현대사
  : 시대별 주요 사건과 사고, 역사의 현장을 포착한 사진과 캡션으로 한국 현대사의 흐름 개괄
주제전Ⅱ. 특종의 순간, 한 장의 사진
        : 한 장의 특종 사진과 그 배경 스토리, 기자의 취재기로 구성 
특별전Ⅰ. 전설의 사진기자, 정범태 
         사진기자의 눈, 전민조
         카메라와 함께 한 40년, 김녕만
: 원로사진기자의 활동연혁과 특종 사진, 대표 사진을 통하여 조명
특별전Ⅱ. 역대대상 수상작
        : 1962년 한국사진기자협회 창립 이후부터 한국보도사진대상 수상작 50점으로 구성
본전시 .  2013 한국보도사진전 수상작 ,  현장의 사진기자
부대전시물. 사진기자의 가방&사진기자의 카메라, 사진 기자증 & 취재증, 취재 완장의 변천, 
            역대 한국보도사진연감

3. 주요 전시작
주제전Ⅰ. 사진으로 읽는 한국 현대사, 그때 그 모습
 
1959년도 미스코리아 진眞의 거리 퍼레이드 _1959_ 정범태 기자 / 조선일보
 
최초의 독도 항공 촬영_1964.12.30 _최경덕 기자 / 동아일보
우리 국민들은 이때까지 독도가 어떻게 생긴 섬인지 잘 몰랐다. 일본이 독도를 자기 땅으로 우기는 것을 개탄했던 최경덕 기자는 3년간 공군본부에 공문을 내고 회사를 설득해 마침내 1964년 12월 30일 전투기를 타고 독도 상공을 촬영했다. 이 사진은 다음날인 1965년 신년호 1면에 게재되었다.  
 
어디 좀 재 봅시다_1973.3.10_최덕천 기자 / 조선일보
경범죄 조항이 개정되면서 미니스커트와 장발을 단속하기 시작했다. 단속 첫날 명동 파출소 경찰이 한 여성의 치마 길이를 재고 있다.
 
성녀 서울 도착_ 1981.5.3_전민조 기자 / 동아일보 
살아있는 성녀로 추앙 받고 있는 마더 테레사 수녀가 김포공항에 도착, 김수환 추기경과 악수하고 가볍게 포옹을 했다. 공항에는 1천여 명의 가톨릭 신자들과 노벨상을 받은 수녀의 모습을 취재하기 위해 신문, 통신, 잡지, 텔레비전 기자들이 몰려와 있었다. 순식간에 몰려든 인파에 겁먹은 듯한 테레사 수녀는 겨우 공항을 빠져나갔다. 그녀는 '그 분처럼 돕고, 그 분처럼 구원하고, 그 분과 함께 있고, 그 분처럼 봉사하고,  24 시간 동안 그 분께로 가까이 가려고 노력하는 것'이 자신의 봉사정신이라고 했다. 
 
마라톤 금메달_1992. 8.9_김주만 기자 / 중앙일보 (제29회 한국보도사진전 스포츠부문 금상 수상)
제25회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한국의 황영조 선수가 ‘올림픽의 꽃’ 마라톤 경기에서 수많은 관중들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1위로 골인하면서 두 주먹을 힘차게 올리고 있다.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 올림픽에서 마라톤에서 우승한 후 56년 만에 또다시 한국 마라톤 제패의 꿈을 이루는 순간이다. 

<34년 만의 약속 – 80년 5월, 그 날의 사진>
5.18광주민주화운동을 기록한 사진은 당시 언론에 게재되지 못하였다. 광주에서 이 사태를 직접 눈으로 목격하고 촬영했던 사진기자들은 언론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광주시민들에게 지금까지 마음의 빚을 안고 있었다고 한다. 이번 전시의 주제전 사진으로 읽는 한국 현대사의80년대 편은 특별히 황종건, 김녕만, 이창성, 나경택 4명의 기자들이 촬영한 사진으로 <34년 만의 약속 – 80년 5월, 그 날의 사진> 섹션을 마련하였다.
       
1)1980.5.19 동아일보/황종건기자      2)1980.5.20 동아일보/황종건기자
1)19일 오후 3시 반경, 금남로 가톨릭 센터 앞에서 계엄군이 달아나는 시민들을 뒤쫒고 있다. 이 날 계엄군의 과격진압으로 광주사태는 겉잡을 수 없는 상황을 향해 치닫게 된다.
2)20일 하루 종일 시민군과 군경간에 격렬한 충돌이 금남로를 비롯하여 시내 곳곳에서 계속됐다. 시민들은 이날 밤 7시경 광전교통소속 시외버스와 택시들을 앞세우고 도청 앞 군저지선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이 차량 시위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절정을 이루는 기폭제가 되었다.
       
1)1980.5.27 동아일보/김녕만 기자     2) 1980.5.28 동아일보/김녕만 기자
1)12시20분경 수협건물 옥상에서 무기를 소지하고 있던 한 고등학생이 계엄군에게 붙잡혀 도청 쪽으로 끌려왔다. 앳된 모습이 역력한 고등학생에게 계엄군의 총부리가 향하고 있다.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학생 뿐만 아니라 고등학생들도 참여했다.
2)10일간의 나리를 겪고 난 광주 시민들은 작은 일에도 경계심을 드러냈다. 가족의 소식을 알기 위해 상무관에 온 한 여인이 신문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1)1980.5.22  중앙일보/이창성 기자(1943~ )     2) 1980.5.27 중앙일보/이창성 기자(1943~ )
1)적십자 병원 헌혈차는 부상자들을 위해 헌혈해 달라고 호소하며, 시민군 지프차는 의료진을 싣고 시내를 돌면서 사상자를 수습하고 있다. 
2)상무관 앞으로 몰려든 시민들이 광주민주화운동시 계엄군에 대항하다 숨진 시민군들의 시신수습과 운구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이창성 기자는 광주에 특파되어 시민군의 활동상을 생생하게 취재, 기록하였으며 민간인이 계엄군의 총에 맞아 쓰러지는 장면을 1995년 지면에 공개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1980. 5. 19 연합뉴스/나경택 기자              2)1980. 5. 29 연합뉴스/나경택 기자
1)상복을 입은 한 어린이가 망월동 묘역에 안치된 형의 사진을 보고 슬픔에 잠겨있다. 
2)+자 완장을 찬 위생병마저 페퍼포그 차량 옆에서 저항 의지도 없는 학생을 곤봉으로 힘껏 내려치고 있다. 

주제전Ⅱ. 특종의 순간, 한 장의 사진
 
필사의 탈출_1971.7.25_김동준 기자 / 서울신문
25일 오전 9시 50분 대연각 호텔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 화재는 호텔 1층 주방의 프로판 가스통이 의 폭발하면서 인근 가스레인지에 번져서 발생한 것이다. 서울 시내 전 소방차들이 출동하였으나 강한 바람으로 불길이 쉽게 잡히지 않았고 32m의 국내최고 높이의 사다리차도 총21층 건물의7층밖에 미치지 못했다. 다급해진 한 투숙객들이 매트리스를 안고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대연각호텔 화재 사건
당국은 대통령 전용기와 육군 항공대, 공군, 미8군의 헬기를 투입하였지만, 화재 발생 10여 시간 후에야 겨우 불길이 잡혔다. 165명의 사망,  68명의 부상은 관광호텔 사고 중 가장 큰 인명 피해로 기록되고 있다. 이 화재를 소재로 미국 영화 ‘타워링’이 제작되었고, 김지하는 담시 ‘비어’를 집필하였다. 이 사진으로 김동준 기자는 1971년 UPI사진상을 비롯하여 미국 시그마 델타카이 사진 보도부문 본상과 네덜란드 국제보도사진전 사건사진상 등 많은 특종상을 받았다.

김동준 기자의 회고
오전 9시반 경, 서울신문 사옥 근처의 중앙소방서에서 긴급출동 소리를 듣고 소방서에 전화했다. 대연각 호텔에서 대형화재가 발생했다는 말을 듣자마자 현장으로 달려갔다. 10시경, 현장에 도착해보니 이미 검은 연기가 사방을 자욱하게 덮고 있었고 소방관들이 진화작업을 하고 있었다. 호텔 정문에서 위를 올려다보니 건물 안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보이는가 했는데 갑자기 여자의 시체가 눈앞에 툭 떨어졌다. 곳곳에서 절규의 목소리가 들렸고 21층 호텔 건물은 죽음의 공포로 휩싸였다. 9층 높이에서 두 남자가 매트리스를 들어 창 밖으로 늘어뜨리고 뛰어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초점을 맞추는 순간 한 명이 먼저 뛰어내렸다. 다음 컷을 준비하기도 전에 뛰어내린 남자의 매트리스가 뒤집어지면서 4층 건물 옥상 위로 떨어졌다. 같이 있던 두 명의 남자도 매트리스를 들고 뛰어내렸지만 모두 즉사했다.
당시 석간이었던 서울신문의 마감 시간 12시 10분을 지키고자 수송부원인 운전기사에게 필름을 먼저 전해주었다. 흐린 날씨와 자욱한 연기로 노출이 맞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수송부원에게 필름을 한 단계 높여 현상할 것을 전했다. 다행히 사진 상태는 괜찮은 편이었다. UPI와 AP통신사에서 이 사진 사용 문의가 쇄도하였다.
 
버마 아웅산 묘소 폭파_ 1983.10.9_최금영 기자 / 서울신문
1983년 10월 9일, 전두환 대통령의 서남아 • 대양주 순방의 첫 방문지로 미얀마 수도 양곤의 아웅산 묘소에서 참배행사가 예정되어 있었다. 미리 대기 중이었던 부총리 서석준 이하 여러 정부요인, 취재 기자 등 17명이 북한 테러분자가 장치한 폭발물의 폭파로 사망하고, 합참의장 이기백 등 13명이 중경상을 입는, 세계 외교사상 유례없는 일대 참변이 일어났다. 

아웅산 묘소 폭파 사건
이 사고로 취재 중이었던 동아일보 이중현 차장이 순직했다. 최금영 기자가 이 사진을 찍고 나서 수초 후에 폭탄이 터졌는데, 그는 사고 당시 카메라를 감싸 쥐고 있었다고 한다. 사진의 아래와 윗부분이 희게 바랜 것은 그의 몸에서 흐른 피가 필름에 스며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두환 대통령 내외는 모든 방문예정을 취소하고 서둘러 귀국하였다. 국내외의 비분과 비탄 가운데 미얀마 정부는 한국에 조문사절을 보내는 한편, 주범 2명을 체포하여 사형을 선고하고 북한과는 국교를 단절하였다. 1984년 10월 미얀마 정부는 아웅산 묘소 폭파 사건은 북한의 소행이라고 국제연합에 보고하였다. 

특별전Ⅱ. 역대 수상작
 
추락하는 진압경찰_1998.12.23_김재영 기자 / 연합뉴스 (제35회 한국보도사진전 대상)
40일째 조계사를 점거중인 정화개혁회의 승려들에 대한 법원의 강제 퇴거집행을 지원하기 위하여 경찰들이 경내로 진입하려고 하자, 승려들이 사다리를 넘어뜨려 경찰들이 추락하고 있다. 
 
무너져 내리는 국보1호_2008.2.11_김지훈 기자 / 국민일보 (제45회 한국보도사진전 대상 수상)
방화로 국보1호 숭례문 누각이 화재발생 5시간 만에 시뻘건 불길에 휩싸인 채 굉음을 내며 무너져 내렸다. 2월 10일 오후 8시 40분 경에 발생한 이 화재의 방화범은 고양시에 거주하던 채종기였다. 자신이 소유한 토지가 신축 아파트 건축부지로 수용됨에 따른 토지 보상에 불만을 품고 범행을 저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화재 발생 23시간 만에 검거되었으며, 10월 9일,  10년형을 선고 받았다.
 
호기심 가득한 북한병사_2011.04.24_허경 기자 / 뉴시스 (제48회 한국보도사진전General News부문 우수상)
한-호주 수교 50주년을 맞아 공식 방한한 줄리아 길러드 호주 총리(왼쪽에서 두 번째)가 24일, 경기도 파주 판문점 유엔정전위원회 회의실에서 일행인 팀 매디슨과 브리핑을 받는 동안 창문 밖 한 북한 병사가 궁금한 듯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특별전Ⅰ. 전설의 사진기자 
정범태(鄭範泰, 1928- )
1928년 평북 선천 출생
1944년 일본 오사카 쇼센중학교(大阪商船中學校) 졸업. 아사카 전문학교 중퇴
1956년 조선일보 편집국 사진부 기자
1961년 한국일보 편집국 사진부 차장
1965년 조선일보 편집국 사진부장
1968년 한국일보 주간사진부 사진부장대우
1980년 일간스포츠 사진부장대우 
1986년 일간스포츠 공식적으로는 정년퇴직. 11월 1일자로 다시 사진부 기자로 활동 시작.

1928년 평북 선천군 출생으로 일본 오사카 쇼센 전문학교를 다니다가 태평양 전쟁에 징집되어 중국 톈진에서 해방을 맞았다. 그의 삶의 여정은 격동의 시대, 고난의 시기로 점철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일제치하에서 유년기를 보냈으며, 해방과 한국전쟁 등 사회가 피폐한 시기에 성장기를 보냈다. 좌익과 우익의 대립이 극심한 1960년대의 4.19, 5.16 등을 거치면서도 희망을 잃어버리지 않는 서민들의 삶을 주목하였다. 
신선회(新線會) 활동으로 리얼리즘 사진을 연구하였으며, 시대의 진실한 모습을 기록하고자 1956년 조선일보사 사진기자로 입사했다. 이후 한국일보, 세계일보, 일간지의 사진기자로 40년 이상을 근무하며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들을 목격하고 기록했다. 
정범태는 한국의 사진기자 1세대로서 현역으로 활동하던 시절에는 불의와는 끝까지 타협을 하지 않는 '독침'이라는 별칭을 갖게 되었다.
신문사 재직 동안 그는 많은 특종을 남겼다. 대표적으로 1960년 재판정의 모녀를 찍은 <결정적 순간>으로 일본 ‘아사히 신문’ 국제살롱 10대 걸작상을 수상하였다. 이 사진은 1967년 『세계사진연감』 10주년 특집 <기록 이후 그 10년>에도 수록되었다. 
1960년 1월, 한국철도사상 가장 큰 사건이었던 서울역 귀성객 압사사고 현장을 특종 보도하였으며, 4월 18일 밤 귀교하던 고려대 학생 시위대 중 4명이 종로4가 천일백화점 앞에서 정치 깡패들에게 피습당한 현장을 포착하여 19일자 조선일보 조간에 발표함으로써 4.19혁명의 불씨를 당기게 했다. 1978년에는 일본 대마도에서 조선통신사의 행로를 한 달간 심층 취재했다. 1987년에는 제3회 서울언론인클럽이 제정한 언론한길상을 수상하였으며, 93, 95년 한국기자상, 96년 한국사진기자상수상, 2005년 화관문화훈장을 서훈하였다.
1946년 한국 춤을 처음 접한 후, 전국의 명인, 명창, 무속인들과 교분을 맺으면서 그들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한국 전통 춤 예인들의 행적을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저서로 『한국의 명무』(한국일보사), 『춤과 그 사람』(전10권, 열화당),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전통 예인 백 사람』(이규원 공저, 현암사), 『한국명인•명창전』(문예원), 『명인•명창』(깊은 샘) 등이 있으며, 사진집으로 『정범태 사진집 1950-2000』(눈빛)이 있다. 

 
고대생 피습사건_1960.4.18_정범태 기자 / 조선일보
1960년 4월 18일, 고려대 단과대 학생회장단 주도로 열린 3•15 부정선거 및 자유당 독재 규탄집회는 밤까지 가두행진으로 이어졌다. 밤 9시 30분 경, 시위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가던 고려대 학생 4명이 종로4가 천일 백화점 앞에서 정치깡패 이정재, 임화수 일당들에게 피습당해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는 모습이다. 이 사진이 4월 19일자 조선일보 조간에 보도되자 당일, 서울시내 각 대학에서 시위가 촉발되었고 이 사진은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서울_1961.5_정범태 기자 / 조선일보
4.19 혁명 이후 민의가 폭발했다. 청학동 사람들이 서울 도심으로 올라와 시위를 하고 있다. 

본전시Ⅰ. 2013 한국보도사진전 수상작 
 
갈 곳이 여기 밖에 없어요_2013. 12. 24_장승윤 기자 / 동아일보 (50회 한국보도사진전 대상)
불법 파업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된 박태만 철도노조 수석부위원장(가운데)이 24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로 잠입한 모습이 포착됐다. 박 수석부위원장은 이날 오후 8시경 일반 노조원 2명과 함께 배낭 2개를 들고 레저용 차량으로 조계사로 들어갔다. 사진은 박 수석부위원장이 오후 11시 50분경 극락전에서 철도 노조원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다.
 
파도가 아닙니다_2013.01.01_김성룡 기자 / 중앙일보 (feature 부문 가작)
2003년 1월 1일 첫 눈이 내렸다. 인도 쪽 눈을 도로로 밀어낸 눈 위를 한 시민이 걸어가고 있다.
 
달 위를 걷다_2013.09.27_김도훈 기자 / 연합뉴스 (feature 부문 최우수상)
27일 오전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건군 제65주년 국군의 날 기념행사 최종 리허설에서 낙하산을 타고 고공강하 시범을 보이는 특전사의 모습이 마치 달 위를 걷고 있는 듯하다.

본전시Ⅱ. <현장의 사진기자> 
  “사진기자는 역사의 현장에서 숨쉬고 있다”
   
최고의 금관_1972.12.11_전민조 기자 / 한국일보


4. 전시부대행사
사진기자의 도슨트 “역사의 현장에서 숨쉬는 사진기자”
매주 토요일 오후 2시(3월1일/3월8일/3월15일), 사진기자가 직접 해주시는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와 함께 사진전을 관람하시도록 ‘사진기자의 생생 톡Talk’을 마련했습니다. 


5. 관람안내
관람시간 :  오전10시30분 – 오후8시30분
관람요금 :  12,000원  (청소년10,000원/어린이 8,000원/장애인.국가유공자.경노 할인50%)
전시문의 :  02)733-9576~7  / www.kppa.or.kr 
주    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81-3
찾아오시는 길 : 
지하철 - 5호선 (광화문역 8번 출구) / 3호선(경복궁역 6번 출구)
버   스 - 광화문 경유 버스(일반1002,111 / 간선 103,150, 401) 세종문화회관 앞 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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