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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스타쑈

  • 전시기간

    2015-07-07 ~ 2015-08-08

  • 참여작가

    주재환,박이소,최정화

  • 전시 장소

    인디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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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스타쑈


- 周 在 煥 · 朴 異 素 · 崔 正 化 -


김 동 화 (金 東 華)



우리나라의 현대미술, 특히 그 중에서도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으로서의 동시대 미술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미술의 원류와 뿌리가 어디인지를 탐색하고 밝혀내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우리 미술의 역사를 아주 간략히만 일별해 보자면, 해방 이전에는 일제가 주도했던 관전인 조선미술전람회(鮮展)를 중심으로 근대적 구상회화의 전통이 확립되었고, 해방 이후로는 다양한 서구 미술사조를 인지하고 수용하는 과정을 통해 현대적 추상회화의 토대가 마련되었다. 이후 추상회화의 연장인 모노크롬과 그 반동으로서의 민중미술이 순차적으로 등장하면서, 미술의 순수성과 현실 참여라는 상이한 두 가지의 모토(motto) 하에 서로 대립하고 갈등하는 양강(兩强)의 구도를 형성하게 된다. 그런데 1980년대 후반을 전후로 한 시기부터는 그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일련의 새로운 미술적 흐름들이 감지되기 시작하는데, 이 전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들은 바로 이 시기의 미술에 대한 문제들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전의 근대적 거대담론이 새롭게 현대적 미세담론으로 재편되고 모더니즘적 미술관(美術觀)이 포스트모더니즘적 미술관으로 전환되면서, 차츰 ‘개념성’의 문제가 미술 담론에서 중요하게 대두되어 나가기 시작한다. 바로 이 ‘개념성’의 관점에서 이 시기 언저리, 즉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전반까지에 걸쳐 활동했던 주요 작가들과 그들의 작업을 지금의 동시대 미술이 태동하게 된 근원으로 상정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의 시기에 행위예술이나 이벤트 등의 다양한 아방가르드적 작업을 했던 일부 작가들에 의해 개념미술의 맹아로 볼 수 있는 활동들이 일부 이루어지기도 했지만, 서구에 대한 정보와 그 맥락을 제대로 파악하면서 우리의 현실을 고려하고 당대의 시대상을 반영하며 서구와 다른 한국 고유의 미감과 미술적 정체성을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던 시기는 대략 1980년대 후반기부터 1990년대 전반기로 보아야 할 것이다. 



여러 줄기에서 발원한 작은 지류들이 모여 하나의 큰 강물을 이루는 것처럼, 첫 번째로는 암담했던 우리의 정치사회적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과 현실 참여적인 미술의 맥락 속에서, 두 번째로는 한국인이라는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을 고민하며 우리와 서구의 차이가 무엇이지를 사유하는 이론가나 번역가로서의 맥락 속에서, 세 번째로는 후기자본주의의 출범과 대중매체의 확장이라는 시대적 변천과 더불어 이전과 달라진 신세대 문화 및 키치적 감성의 맥락 속에서 각각 시작된 이 세 갈레의 지류들이 한국적 개념미술이라는 하나의 큰 강물로 만나게 되는 것을 이 기획전을 통해 확인해 보고자 한다. 이 한국적 개념미술의 주요 맥락을 형성하게 되는 세 가지 흐름의 남상(濫觴)에 해당하는 핵심적 작가군들이 바로 주재환, 박이소, 최정화이다. 이 전시의 목적은 이들 3인의 작업의 출발과 진행을 치밀하게 독해해 나가면서, 이들이 정립해 나간 ‘개념성’을 매개로 이들이 한국의 동시대 미술에 끼친 영향들을 파악해 나가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지금 동시대 미술의 사적(史的), 학예적(學藝的) 체계를 정립하는데 매우 긴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된다. 


모노크롬 회화를 포함하는 1970년대 모더니즘 미술의 경우, 시각적으로 고급해 보이는 세계를 성취해낼 수 있는 다양한 회화적 방법론을 구사할 수는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이 다소 기법적인 측면에서의 고급함이나 취향으로서의 고급함 쪽으로 기울어져 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만일 이 계열의 작업들이 막연한 고상함만을 향유하고 소비하려는 딜레탕트(dilettante)적 호사가들에 의해 상업적 메커니즘 속으로 흘러들어가 버리게 된다면, 그 미술 자체가 가진 내재적 정신성과 격조 그리고 본질에 대한 검증마저도 생략된 채, 자칫하면 시장 논리나 정형화된 매너리즘의 늪 속으로 깊숙이 빠져버리게 될 수도 있다. 또한 일부에서는 내용이 가지는 우리 자신의 현실적, 독창적 요소보다 외래의 - 서구, 일본 등 - 형식에 대한 관념적, 모방적 요소가 더 강조되면서 외적 조형과 내적 개념성 사이의 불일치 문제가 나타나게 될 수도 있다. 즉 그것은 경우에 따라 그들의 작업 위에 감추고 싶은 민낯을 은폐시키기 위한 가면이 덧씌워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처음부터 모노크롬 회화 등이 상업적인 성격만을 띠고 있었다거나 그에 대한 기대로만 시작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분명히 서구 모더니즘의 한국화(韓國化)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시작된 측면이 있다. 그러나 그 작가군들 중 일부가 대학의 교수직, 미술단체의 권력, 미술판의 헤게모니 등의 장악을 위한 강력한 카리스마적 욕망을 발동했고, 작가 자신의 개인기를 발휘하는 미술 본연의 속성과 상치되는 정치적 세력화를 도모하기도 했다. 속칭 ‘박서보(朴栖甫) 사단’으로 불리던 세력들에 의해, 그 패거리 안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주류 미술판에서 전적으로 배제되어버리는 마피아적 행태가 있었던 사실 역시도 부인할 수 없는 그 시대의 어두운 단편(斷片)이었다. 또한 형식미학과 연관된 동어반복 속에 매몰되어버려, 현실문제와 시대적 과제에 대해 침묵하고 있었다는 일부의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결국 이에 대한 반동으로 출현하게 된 것이 1980년대의 현실 참여적 민중미술이었다. 



그렇다면 민중미술은 어떠했을까? 이들은 부조리한 현실문제와 정치상황에 대한 발언에 자신들이 가진 역량 전부를 거의 다 소진시켜 버렸다. 그러다보니 일부 뛰어난 작가군을 제외한 대다수의 작업에서, 미술 본연의 조형적 문제에 대한 긴장감이나 집중력은 오히려 저하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들은 그 시대와 사회에 대한 육감적 반응으로서 마치 용수철처럼 즉발적인 탄성을 발휘했을 뿐인 것이다. 결국 시대가 바뀌고 정치사회적 아젠다(agenda)의 효력이 소멸되면서, 많은 작가들이 민중미술로부터 썰물처럼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민중미술 이후 출현하기 시작한 개념미술 작업들의 가장 큰 문제는 그 고유의 언어와 문법을 독해하는데 미술 수용자들이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지금의 미술 감상자들이나 수장가들의 보편적인 미감과 기호 그리고 선택이 거의 한 방향으로만 굳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이를 수용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정도의 지적 수준과 독해를 위한 훈련의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시대의 미술적 시각의 전환을 위해서는 노다지가 매장되어 있는 신대륙의 금맥을 파헤치는 열혈(熱血)한 광부와도 같은 파이오니아(pioneer)적 심정이 필요한 것이다. 실은 그것이 제시하는 미술적 기조가 퇴영적 회상조라거나 과거에 대한 영탄조의 미감이 아닌 이 시대의 첨단적, 디지털적 미의식과 어쩌면 상당히 가까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개념미술에는 작품이라는 하나의 물건으로서의 형식요소에 대한 허약함과 부실함이 없지 않다. 그러나 예술이 어디 물건이기만 한 것인가? 물론 예술에 있어 형식요소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예술품이라는 표상을 통해 예술이 드러나기 때문에 형식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예술품이라는 물건이 예술 그 자체가 될 수는 없다. 예술이 곧 형식 그 자체는 아니며, 단지 예술품이라는 구체화된 형태 속에 육화(incarnation)되어 내재하고 있을 따름이기 때문이다. 사실 물건으로서의 위력으로만 본다면 개념미술은 정말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러나 바로 이 보잘것없음이 그대로 나타나는 지점에서 개념미술은 물건으로서의 예술품을 거부하는, 상업주의에 대한 철저한 반동으로 드러나게 된다. 또한 이 지점에서, 개념미술은 예술 그 자체에 대한 순정성(純情性)과도 맞닿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임진왜란 이후 사회경제적 여건이 극도로 피폐해졌던 17세기에 만들어진 철화백자들의 상당수는 금사리 백자의 유백(乳白)이 풍기는 고급함이나 분원리 백자에서 보이는 청화발색의 화려함을 따라가지 못한다. 물론 태토나 유약의 질에 있어서도 상당히 뒤떨어진다. 그러나 마치 지방가마에서 만들어진 것 같은 도자들의 표면 위에 활달하고 소박한 필치로 익살스럽고 천진스레 그린 호랑이나 물고기 그림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다소 저급한 듯 보이는 그 백자의 탁한 회색조의 살결과 표면의 어리숭한 도상이 서로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활달한 필치와 해학적 소재들에 부적절한 고급함이 결부된다면, 오히려 그것이 예술적 균형감을 상실하도록 만드는 꼴이 되어버릴 것이다. 묘하게도 이 열악함과 불리함이 오히려 기막힌 예술성을 환기시킬 수 있는 물실호기(勿失好機)의 조건이 되고 있는 것이다. 물건 그 자체로 부족한 것이 반드시 예술성의 저열함과 상응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 어떤 상상력이 발동되느냐, 어떤 개념적 조작이 관련되느냐에 따라 오히려 물건으로서의 부족이 예술적 가치의 고양과 직결될 수도 있다. 역설적이지만, 물질적 조악함은 개념의 수월성(秀越性)과 정비례적 상관관계를 보이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 이것이 키치(kitsch)가 갖는 현대적 미감이나 예술정신과 연결될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1998년 마크 맥과이어가 때린 메이저리그 시즌 70호 홈런볼은 그 이듬해에 300만5000달러(약 35억원)라는 어마어마한 가격에 팔렸다고 한다. 야구공 하나의 물질적 가치가 기껏해야 얼마나 되겠는가? 그 가격만큼의 가치는 결코 물질적인 것에만 부여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의 제도와 시스템이 부여한 의미망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개념성의 핵심이다. 그 무형의 가치 하나 때문에 아무 것도 아닌 물건에 대해 35억원을 가볍게 질러버릴 수 있는 것, 그것이 의미와 개념이 가지는 또 다른 슈퍼파워인 것이다. 


지금 시대에서 다시 생각해 보면, 모노크롬 회화와 같은 모더니즘 미술은 형식적, 미학적으로는 은폐된 - 다 읽히지 않는 - 추상성을 본질로 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현실에서의 가치나 상업적인 발휘에서는 노출된 - 오히려 전부가 읽히는 - 구상성 쪽으로 한참 기울어지는 느낌이다. 예술적 속성으로서의 신비감이 다 사라져버린 것이다. 반면 개념적 미술의 세계에서는 보이지 않는 가치의 추상성이 기존 회화에서보다도 훨씬 더 강렬하게 육박해온다. 가치의 추상성을 극단까지 밀어붙여 버리는 야성적 지점에서 개념미술은 오히려 더 승산이 있다. 지금 이 시대는 가치의 추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컬렉터들도 가시화된 물질적 가치, 상업적 평가, 시장의 거래에만 집착하면서, 기존 가치들의 최종 결정체인 물질화된 작품들, 물질성으로 표상된 작품들 그 자체에만 목을 매는 구태의연하고 길들여진 컬렉션에 매몰되어 있다. 작가든 화상이든 컬렉터든 가치보존적 보신주의나 미술의 본질을 도외시한 극단적 보수성에만 매달린다면, 자신들이 금과옥조인양 확립해 놓은 기존의 은산철벽(銀山鐵壁)과도 같은 가치구조들 역시,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망각의 바다 속으로 영락(零落)하여 결국은 사라져버릴 수밖에 없다. 옥션과 같은 상업적 구조에 대한 지나친 미술시장의 집중은 오히려 미술 이해의 심도를 떨어뜨리고, 사유의 결정체로서의 미술의 본질에 대한 접근을 상당히 경직되게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 우리는 미술에서 무언가 구체화되지 않았음에도 어쩐지 마음을 잡아끄는 강력한 어떤 요소들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요소들을 한국의 초기 개념미술의 흐름에서 한 번 찾아내 보고자 하는 것이 이 3인 - 주재환 · 박이소 · 최정화 - 의 전시회인 ‘쓰리스타쑈’를 기획하게 된 가장 절실한 취지이기도 하다. 



김 동 화 (金 東 華)


1969년 서울 생


의학박사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대학원)

정신과 전문의 (세브란스 병원에서 인턴 및 정신과 레지던트 수료)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과 외래교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KNPA) 정회원

부산 상록병원 정신과 진료부장


저서 : 

화골(畵骨) - 한 정신과 의사의 드로잉 컬렉션 - (2007)

줄탁(啐啄) - 김동화 평론집 - (2014)

쓰리스타쑈 - 주재환 · 박이소 · 최정화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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