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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선영 : Rainbow Forest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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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OCI YOUNG CREATIVES
오선영 - Rainbow Forest
OCI미술관



작가명 오선영
전시명 Rainbow Forest
전시기간 2018.7.19 - 8.18
전시장소 OCI미술관 2층 전시실
개막식 2018.7.19 (목) 오후 5시
작가와의 대화 2018.7.25 (토) 오후 7시 


○현대인에게 동화 속 낭만을 선사할 오선영(1987~)의 개인전 

○낱말이 진동과 발산을 거듭하며 흩뿌려진 회화의 매력 엿보기

○경쾌한 터치와 화사한 색상에서 우러나는 편평 담백한 유채의 맛

○도자를 캔버스로, 또 오브제로 자유로이 회화와 접붙이는 시도


 
[전시 소개]
어디 시원한 나무 그늘 속에 당장이라도 뛰어들어가 땀을 훔치고픈 한여름에 어울리는 전시가 있다. 바로 7월 19일부터 8월 18일까지 종로구 OCI미술관(관장 이지현)에서 열리는 오선영 작가의 개인전 《Rainbow Forest》. OCI미술관 신진작가 지원 프로그램 2018 OCI YOUNG CREATIVES의 여섯 선정 작가 가운데 하나인 오선영의 이번 개인전은 동화와 신화에 거듭 등장하는 장미, 황혼, 숲, 저택 등의 키워드를 발군의 회화적 상상력으로 화사하게, 말 그대로 ‘그림 같이’ 풀어내는 무대이다.


 
Rose Vandal, oil on canvas, 162×130㎝, 2018


희고 붉은 꽃잎, 사나운 가시, 꼿꼿한 가지를 지닌 수많은 꽃을, 음성언어는 ‘장미’ 한 단어로 수렴하곤 한다. 반면, 단 두 글자에 불과했던 ‘장미’는 오선영의 손을 타고 눈이 아릴 만치 화사하게 영근 붉은 장미로, 혹은 뺨을 차갑게 스치며 날리는 비정하고 스산한 이파리로, 때론 무척 울창하여 그 너머를 쉬이 엿볼 수 없는 신비의 숲으로 다양하게 발산한다.
  


Orange Dream, oil on canvas, 162×112㎝, 2018


작품 각각은 마치 전설이나 동화의 어느 한 장면, 혹은 몇 장면의 융합처럼 보인다. 긴 이야기의 스냅샷처럼 다가오지만 결코 내용이나 배경을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점선을 그리고 실선을 상상하게 하듯, 장면 장면은 그저 최소한의 단서로만, 간신히 개울을 건널 징검다리로만 놓아둔다. 주의 깊게 한 발 한 발 걸음을 옮기든, 신발을 벗고 맘 편히 냇가를 가로지르든 이야기를 짚는 일은 감상자의 몫이자 선택권으로 남긴다. 그의 이야기는 외형을 한정하기보다 이토록 다방향으로 발산한다.

      
              
Calm will come one day 1, 2, 3, oil on canvas, 162×97㎝ each, 2018


걸음을 멈추고 전시장 전반을 둘러보면, 그 경쾌한 붓터치의 리듬과 강렬한 발색이 주는 시각적 황홀함이 온통 눈에 들어와 박힌다. 작가는 발색을 이유로 한사코 유화 물감을 고집한다. 그러면서도 유화구 특유의 두터운 마티에르는 지양한다. 덕분에 수채화에서나 느낄 법한 속도감 넘치는 붓놀림이 그대로 전해지면서도 또한 수채화와 구별되는 강렬하고 화사한 색감이 동시에 부각된다.


   
 Small Chateau, glazed ceramic, 33.2×41㎝, 2018


경계를 흐리고 형식을 부수는 또 다른 방법으로 택한 것은 도자이다. 그의 도자는 캔버스의 변형이면서 또한 만질 수 있는 붓터치이기도 하다. 늘 편평하게 지내던 캔버스는 공간을 가로지르며 앞뒤좌우를 잇닿아 끝없는 이야기의 굴레를 두른다. 두루 널브러진 울긋불긋한 도자기 덩어리들은 입체적 필획인 동시에, 다소 자유로운 생김에 조그마한, 그러나 무언가 표면에 그려진 엄연한 캔버스 부스러기이다.


 
Orange Dream, oil on canvas, 162×112㎝, 2018

아침부터 대낮을 거쳐, 저녁을 지나, 한밤과 새벽까지 시계방향으로 면면히 이어지는 전시의 흐름은 화폭 행렬 전체를 거대한 하나의 이야기인 양 묶으려 든다. 이들 모두가 한 가족은 아니지만 또 남남도 아니라는 작가. 그렇다면 ‘먼 친척들’ 즈음으로 이해하면 어떨까 싶다.
 


Bling Bling Sunshine, oil on canvas, 53×53㎝, 2018

오선영(1987~)은 성균관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 영국 첼시 컬리지 오브 아트에서 순수미술 석사학위를 받았다. 2017년 첫 개인전《Dainty Dreamer》에 이어 야심차게 준비한 두 번째 개인전 《Rainbow Forest》 를 OCI미술관에서 개최한다.
 


[작가 약력]
  
오선영(1987~)
Oh Sunyoung

sunyoungoh@yahoo.com

학력
2016   첼시 컬리지 오브 아트 순수미술 석사 졸업, 런던, 영국 
2010   성균관 대학교 순수미술 서양화 전공 학사 졸업, 서울 

개인전
2018   Rainbow Forest, OCI미술관, 서울
2017   Dainty Dreamer, 갤러리 그리다, 서울 

단체전
2018   앞UP 2017 갤러리 그리다 기획공모展, 갤러리 그리다, 서울
2017   RA Summer Show, Royal Academy of Arts, 런던, 영국
2016   The Rear, Crypt gallery, 런던, 영국
         Summer Salon, Candid Art, 런던, 영국
         Wake me up, Core gallery, 런던, 영국
2012   서성이다, 이화 아트 센터, 서울
2011   침투의 기술, 대안공간 꿀풀, 서울
         신인상전: 기지개를 펴다, 금산갤러리, 서울, 
         신인상전: 기지개를 펴다, 금산갤러리, 헤이리
2009   두번째 풍경, 갤러리 터치아트, 헤이리 

수상 
2018   2018 신당창작아케이드 단기 도자작업실, 서울문화재단, 서울
2017   2018 OCI YOUNG CREATIVES, OCI 미술관, 서울
         Red Mansion Prize Shortlist, 런던, 영국
2016   Dean Prize, 첼시 컬리지 오브 아트, 런던, 영국 



[전시 서문]

알록달록 큼직한 롤리팝 사탕 하나 쥐어 주니 서럽게 흐느끼던 하늘도 뚝 그친다. 세어 보니 더도 덜도 말고 딱 일곱 빛깔, ‘빨주노초파남보’가 틀림없다. 그래서 무지개(rainbow)라 불렀다. 음성 언어는 이야기를 장면으로, 수백 가닥을 일곱 다발로, 다시 이들 모두를 달랑 한 마디로 수렴하곤 한다. 속된 말로 ‘싸잡아 퉁치려’ 든다.
 
무지개. 그 어감이 왠지 발그레하고, 감빛이 돌고, 샛노랗고, 푸르께하며, 거무죽죽하다. 달착지근한 과일향이 솔솔 풍기니 하늘도 울다 문득 반쯤 덥석 베어 문다. 오선영의 언어는 발산한다. 단어 하나가 움터 장면들이 줄지어 꽃피고 이야기 향기가 사방으로 물씬 퍼진다. 널브러진 몇 조각 연분홍 꽃잎으로 장미 반 찔레 반 동화 속 덤불숲을 두르고, 녹 투성이 열쇠 하나로 해 질 녘 외진 저택의 휘황한 대문 너머 빛바랜 설화를 열어젖힌다.

일반적으로 ‘이미지’란 대상을 호출하는 시각적 단서에 가깝다. 복숭아 그림은 복숭아의 초상이다. 그러나 오선영의 복숭아는 복숭아면서 못다 핀 장미 꽃망울이고, 도자기로 구운 물감 덩어리이며 펑 터진 가슴의 잔해이기도 하다. 애써 코앞에 따다 놓은 달은 봐도 봐도 그냥 달일 뿐이다. 적당히 사이도 두고, 때론 흐린 날도 있고, 침침히 달무리도 져야 토끼가 방아도 찍고, 두꺼비도 뛰고, 사자도 산다. 오선영은 이야기를 잘 빚어 실루엣을 차려 잡는 대신, 이토록 넓게 펴 바르고 불규칙하게 부서뜨린다. 그물이 촘촘하다고 대어를 낚는 게 아니다. 낭만 어부 오선영은 흔적과 자취를 굵게 꼬아 성글게 얽은 회화 그물로 더욱 씨알 굵은 이야기 뭉치를 포획하려 든다.

이야기가 한바탕 들끓으며 사방으로 튄 흙탕물 자국 같은 그림들은 경쾌하고 산뜻하면서 즉흥적이고 또한 격정적으로 다가온다. 두께가 주는 마티에르를 과감히 반납한 오선영의 터치는 단지 특유의 섞임과 결을 통해 물성을 인증하곤 한다. 수정할 겨를 없는 일필휘지一筆揮之의 승부. 에스키스를 거듭하고, 순서를 가다듬고, 색상을 저울질한다. 너덜거리는 작업 진행 수첩은 ‘계획적이지 않아 보일 계획’으로 빽빽하다. 무심한 몰입의 중첩은 묘사를, 철두철미한 가늠은 즉흥과 격정을 낳는다니 사뭇 역설적이다.


김영기 (OCI미술관 큐레이터) 



[평론]


틈이 만드는 끊임없는 틈, 입 벌린 상처, 미끄러지는 기표


“문자는 야생에서 볼 수 없다”
- Sigmund Freud, Die Traumdeutung, 1899.

우리는 ‘말하는 존재’(parlétre)다. 말(언어)은 자신과 세계의 의미를 고정하는 도구다. 하지만 이 고정은 강제적이고 편의적인 고정이기에 우리는 늘 말의 실재(the Real)를 파악하는 데 실패한다. 결국 로고스(λόγος, 말, 이성)로는 온전한 실재에 다가설 수 없다. 이것이 말이 가진 불가능성이다. 작가 오선영은 바로 이 지점을 감지한 듯하다. 작가는 “잔인한 인간사를 각종 미사여구로 풀어내는” 신화, 전설, 우화, 동화 등의 고전 환상문학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특정 소재와 그것의 의미를 고정하는 단어에 주목한다. 익히 알고 있듯이, 고전 환상문학에서는 숲, 정원, 저택, 장미, 화살, 별, 시체, 고양이 등과 같은 특정 소재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리고 이 소재들은 성향이 다른 작품에서 거듭 등장함으로써 그 내적 의미의 깊이와 너비를 확장해 나간다. 이 소재들은 문학작품에서 문자(기표;記標)라는 형태로 잠시 잠깐 의미(기의;記意)에 고정된다. 하지만 이 소재들이 내포하고 있는 암시, 은유, 상징 등은 문자의 일상적 의미를 초과하여 범람하고, 결국 임시적 고정점은 의미의 물결을 따라 한없이 떠밀려간다. 언어를 뛰어넘어 대상에 도달할 수 있는 신적 직관을 갖고 있지 않은 ‘말하는 존재’는 실재에 접근할 수 없는 유한성(말; 언어)을 도구로 사용하고 있기에, 결코 대상의 실재를 완전히 파악할 수 없다. 언어와 실재 사이에 있는 메꿀 수 없는 틈, 그 ‘입 벌린 상처’에서 오선영의 작업은 시작된다.

단어의 정령(精靈) 불러내기
오선영의 작업은 한마디로 ‘단어 속에 숨죽이고 숨어 있던 정령(精靈)을 불러내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먼저 오래전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전해 내려오다 하나의 텍스트로 자리 잡은 고전 환상문학을 집어 든다. 그리고 거기서 자주 등장하는 상징성 있는 명사를 수집하는 것으로 작업을 시작한다. 그는 “지시하는 대상이 가시적으로 존재하지만 상상 속에 추상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순간 설레게 하는 명사”를 하나씩 수집해 나간다(작가노트). 이 명사들은 가시적인 대상을 지시하는 것처럼 위장하고 있지만, 사실상 어떤 대상이라기보다는 추상적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수집 행위에는 기표와 기의의 불일치성, 기표와 실재의 불일치성에 대한 인식이 달라붙어 있다. 작가는 이렇게 수집된 명사들의 이미지를 맥락 없이 화면 안으로 불러온다. 그럼으로써 무의미하게 분절된 한 편의 이야기를 완성한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어떤 의미도, 서사적 맥락도 없는 작가의 이야기가 마치 특정한 사건을 내포하고 있는 듯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감상자에게 긴장감을 심어준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왜 맥락 없는 이미지의 조합들이 사건이 되고, 긴장감을 불러올까? 소쉬르(Saussure) 이래로, 단어나 상징 그 자체에 의미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단어와 단어, 또는 상징과 상징 사이에서 의미가 존재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따라서 오선영이 맥락 없이 나열한 (수집된) 단어의 이미지들도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에서 파생되는 어떤 의미가 하나의 새로운 사건을 발현시키며 이야기 구축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러한 판단은 사실 의미 형성의 일반적인 구조적 분석일 뿐이다. 오선영의 작업은 여기에서 한 단계 더 심층으로 들어가야 한다.

흔들리는 기표, 끊임없는 생성되는 틈; 단어의 역사성과 기표의 불완전성
(감상자에게 긴장감을 일으키는) 이 새로운 사건을 심층적으로 분석해보면, 내적 작동 기저와 외적 작동 기저가 결합하면서 형성된다고 볼 수 있다. 내적 작동 기저는 작가가 수집한 ‘단어(명사)의 역사성’과 언어라는 ‘기표의 불완전성’이고, 외적 작동 기저는 작품에서 드러나는 ‘유동적 표현성’으로 보인다. 이 내외적 작동 기저가 오선영 작업을 독특한 지점으로 이끄는 동력으로 기능한다고 판단된다.

내적 작동 기저 중 하나인 ‘단어의 역사성’은 작가가 선택하는 문학작품의 특성과 맞닿아있다. 여기서 작가는 현재에서 한걸음 물러난다. 오선영은 역사성을 가진 고전 환상문학(전설, 신화, 우화, 동화 등)을 택하고 거기에서 특정 단어를 추출한다. 그래서 그 단어들에는 역사성이 스며있다. 작가는 자신이 추출한 단어가 “19세기 라파엘 전파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These were] symbolized reminiscent of nineteenth century’ Pre-Raphaelite paintings.)”라며, 자신은 “도상학적으로 작품을 정밀하게 구성했다(My paintings elaborated iconography)”고 말한다(석사학위 작업론). 그의 작업에는 역사성과 고전성이 깔려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작가가 과거를 바라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학 장르(고전 환상문학)와 그것에서 추출한 단어들, 그리고 도상학적 접근. 이러한 과거를 향하는 역사성은 서정적/고전적/장식적/표현주의적인 작가의 외적 표현성과 맞물리며 어딘가 낯설지 않은 이미지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오선영의 작품이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것은 이러한 조건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다른 내적 작동 기저, 즉 ‘기표의 불완전성’이 이 낯설지 않은 작품을 일순간 낯선 “신비한 풍경”으로 변화시킨다. 여기서 작가는 현재에 서 있다. 기표(문자, 혹은 기호로서 이미지)는 늘 불완전하다. 기표는 그 기표의 앞과 뒤에(혹은 주변에) 존재하는 기표들에 의해 의미가 확정될 뿐이며, 언어의 창고에 있는 ‘대체 가능한 기표’(동의어)에게 언제든 자신의 자리를 빼앗길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그래서 늘 흔들린다. 그리고 기의와 기표 사이에 상상적 관계(임의적 연결 가능성, 은유나 상징)로 인해 틈을 가지게 된다. 이 틈은 다른 기표들과 관계 맺으며 끊임없는 또 다른 틈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기표는 언제나 불완전하다. 작가는 추출한 명사(단어) 중 “순간 떠오르는” 명사들을 조합하거나, 뉴스, 잡지에서 우연히 보게 된 동시대 사건의 이미지들과 결합하면서 하나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이때 이 ‘기표의 불완전성’, 그 멈추지 않는 흔들림과 끊임없이 생성되는 틈은 ‘단어의 역사성’으로 인한 발생하는 진부함(cliché)을 걷어내고, 임의적이고 가변적이며 변화무쌍한 새로운 사건을 출현시킨다. 우리가 그의 작업을 클리셰로 느끼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끊임없이 틈을 만들며 흔들리는 기표들의 관계, 그 기표의 분절적 관계가 들려주는 새로운 열린 이야기를 듣기(보기) 때문이다.

녹아내린 완결과 미결 사이의 장벽; 유동적 표현성
오선영의 작업은 완결과 미결 사이의 장벽을 녹이면서 우리 앞에 놓인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사건으로 이끄는 외적 작동 기저라 할 수 있다. ‘유동적 표현성’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 외적 작동 기저는 사건의 전개를 열어놓듯이 작업의 완결을 열어놓는다. 그리다만 듯한 화면, 무심코 칠한 듯한 붓자국, 흘러내리는 물감, 비어 있는 캔버스의 공간, 간략하게 그린 듯한 스케치……. 작가의 작품은 (관례상) 미결된 상태로 우리를 마주보고 서 있다. 하지만 이 미결된 상태는 결코 미완성이 아니다. 계획된 미결이기 때문이다. 즉흥적으로 보이는 오선영의 표현 방식은 사실 치밀한 계획에 따라 진행된다. 그는 작업을 위해서 꼼꼼하게 사전 스케치를 하고, 표현 방식과 그것이 가져올 예상 효과를 적는다. (나는 공들여 스케치하고 관련 내용을 꼼꼼하게 적은 작가의 스케치 노트를 직접 보았다.) 이러한 계획된 미결은 그의 작업을 완결된 느낌으로 만든다. 작가의 표현성은 묘사와 물성연구를 가로지르고, 완결과 미결을 넘나들고, 스케치와 채색을 동일 선상에 놓는다. 이 유동적 표현성은 ‘단어의 역사성’과 ‘기표의 불완전성’과 맞물리며 화면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사건을 미결인 채로 영원히 열어놓는다.

작가의 유동적 표현성은 평면을 넘어 입체로도 향한다. 하지만 일반적 입체는 아니다. 그가 추구하는 입체는 (은유적으로) ‘평평한 입체’다. 그의 작업 중에는 도기(陶器) 기술을 사용한 입체 작품이 다수 포함되어 있는데, 다면체 형태로 ‘여러 평면들’이 결합한 구조물 형식을 취하고 있다. 다시 말해, 여전히 입체가 평면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작가는 평면 작업에서 두꺼운 임파스토(impasto) 없는 평평한 표현성(flatness)을 추구한다. 이러한 특성이 고스란히 입체로 전이(轉移)되면서 소위 ‘평평한 입체’로 이어진 듯 보인다. 작가는 말한다. “그림과 도자기가 장식적인 부분, 낭만적인 부분이 혼용되는 경우가 있고, 다른 재료이지만 서로 레퍼런스(상호 참조)가 된다.” “이질적인 면들[특성들]이 상호작용하는 듯하다.”(작가 인터뷰) 두 양식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의미다. 이러한 평면과 입체라는 이질적인 양식의 상호작용은 완결과 미결을 넘나드는 유동적 표현성에서 파생된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오선영은 이번 전시에서 하루를 시간 순서에 따라 전시하면서 “일상으로 침투하는 낭만적 풍경”을 선보인다. 그가 보여주는 하루는 틈을 끊임없이 만들며 기표를 끊임없이 미끄러트리는 유동하는 하루일 것이다. 완결과 미결의 경계 없는 열린 하루일 것이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사건이 발생하는 하루에 목격자로 초대하는 오선영의 초대장을 쥐고 있다.


안진국(미술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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