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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업: 다이얼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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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김중업 다이얼로그》개최  

  ◇ 한국 현대 건축 1세대 ‘김중업’의 최초 대규모 기획전
   - 김환기, 이중섭, 윤명로, 이승택, 백금남 등 당대 예술가·지식인과의 협업 및 교유관계 조명
   - 사후 30주기를 맞아 김중업건축박물관과 공동주최 전시   
   - 8월 30일(목)부터 12월 16일(일)까지, MMCA 과천 2 전시실, 중앙홀
 
  ◇ 30여 년 동안 설계한 건축물과 관련된 사진과 자료 3,000여점 대거 공개
   - 김중업의 주요 건축을 새롭게 촬영한 사진과 영상 신작 전시   

  ◇ 학술 심포지엄, 건축 답사 프로그램 등 연계 프로그램 진행

국립현대미술관(관장 바르토메우 마리)은 김중업건축박물관(이사장 최대호 안양시장)과 공동 주최로 한국 현대건축의 거장 김중업(1922~1988)을 조명하는《김중업 다이얼로그》전을 8월 30일(목)부터 12월 16일(일)까지 MMCA 과천에서 개최한다. 

《김중업 다이얼로그》는 김중업의 사후 30주기를 맞아 기획된 특별 전시다. 이번 전시는 그의 생애와 작품 전반을 다루는 것에만 머물지 않는다.  ‘한국에 모더니즘 건축을 선보인 1세대 건축가’라는 한국건축사적 의미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사적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한 예술가 김중업의 또 다른 면모를 조명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아카이브, 김중업건축박물관의 소장품과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된 사진과 영상 신작 등 3,000여점의 작품과 자료가 선보여 건축가 김중업의 모든 것이 소개된다. 

건축가 김중업은 1922년 평양 출생으로 요코하마 고등공업학교 졸업 후 1948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조교수로 재직했다. 한국 전쟁으로 부산에 머물며 예술가들과 활발히 교류하던 그는 1952년 베니스에서 열린 제1회 세계예술가회의를 계기로 1952년 10월부터 1955년 12월까지 파리의 르 코르뷔지에의 아틀리에에서 일했다. 그는 귀국 후 서울에 ‘김중업건축연구소’를 설립하고 부산대학교 본관, 주한프랑스대사관 등을 설계하며 모더니즘과 한국의 전통성을 결합한 독창적인 작품을 선보였다. 

1971년 광주대단지 필화사건(1971년 8월 10일 광주대단지 주민 5만여 명이 정부의 무계획적인 도시정책과 졸속행정에 반발하여 일으킨 사건으로, 이에 대해 발표한 글로 권위주의 정권의 제재를 받음)을 계기로 파리로 추방을 당하기 직전 발표했던 삼일빌딩은 후기 대표작 중 하나로 빠른 속도로 개발되는 서울의 위상을 상징하는 당시 최고층 건축물이었다. 한국 사회가 급변하는 상황과 함께 1978년 프랑스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김중업의 건축은 전과 다르게 미래주의적 면모를 띄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말년 계획안들은 대부분 실현되지 못했고, 88 올림픽을 기념하는 ‘세계평화의 문’이 유작으로 남게 되었다. 

《김중업 다이얼로그》의 첫 번째 대화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후기 작업에서 부터 전기 작업을 역순으로 진행되는 김중업의 작품 연대기로 시작된다. 그리고 ‘세계성과 지역성’, ‘예술적 사유와 실천’, ‘도시와 욕망’, ‘기억과 재생’ 등 4개의 주제로 그간 김중업과 그의 작품 주변부에 머물렀던 문맥들을 세세하게 펼쳐본다. 특히 이번 전시는 그간 논의가 부족했던 김중업의 후기 작업들과 김환기, 이중섭, 윤명로, 이승택, 백금남 등 예술가들과의 교유, 협업과정 그리고 도시에 대한 그의 생각들을 살펴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는 단순히 미학적 차원을 넘어 보다 확장된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건축과 예술의 관계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이 전시는 이제 막 촉발되기 시작한 한국 건축가 연구의 출발점으로서 건축, 예술 그리고 우리 사회의 다양한 관계망들과 대화의 장을 여는 자리가 되리라 기대한다. 

김중업건축박물관 소장품과 국립현대미술관 아카이브를 비롯하여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롭게 제작된 김태동, 김익현 사진가의 건축 사진과 57스튜디오 등 영상 등 3명(팀)의 작품도 선보인다. 이 작업들은 김중업의 건축을 ‘지금 여기’ 동시대 사회문화적 풍경 속에서 재해석하고 있다. 

한편 이번 전시의 주제를 확장하고 김중업 생전 유일한 작품집이었던 『건축가의 빛과 그림자』와 짝을 이루는 별도 단행본이 10월 중 출판사 열화당에서 출간될 계획이다. 기억과 재생의 차원에서 기획된 이번 출판 작업 또한 전시와 마찬가지로 과거와 현재의 동시적 순간을 풍부한 이미자와 글 자료를 통해 선보일 예정이다. 11월 3일(토)에는 한국건축역사학회와 공동 학술 심포지엄을 진행하며, 김중업의 주요 건축물을 직접 살펴보는 답사 프로그램과 큐레이터 토크도 전시 기간 동안 진행될 예정이다.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김중업의 작품 세계를 총망라한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 근·현대 건축 유산의 재생 문제를 환기 시키고, 획일화되어가는 도시 풍경을 다시 돌아볼 수 있게 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고 밝혔다. 

김한용,  서울 전경 파노라마, 1960년대 말, 김한용 사진연구소 제공



프롤로그: 김중업 매트릭스

전시 도입부에 해당하는 ‘김중업 매트릭스’는 김중업 작업의 연대기를 역순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창작의 기원을 쫓아간다. 시간 축에 따라 건축 이미지가 교차되는 이 공간은 비교적 우리에게 덜 알려진 김중업 후기 작업에서 시작해 전기 작업을 사진과 텍스트로 소개한다. 건축물이 완공되었을 당시 김중업건축연구소에서 남긴 흑백 사진과 현재 새롭게 촬영한 동일한 건물의 컬러 사진이 앞뒤로 붙어 건축의 시간성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또한 김중업 건축 작업의 목록을 지형도로 만들어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 김중업이 뿌린 건축의 흔적들을 살펴본다.

바다호텔, 1980, 김중업건축박물관 소장 조감도


1부. 세계성과 지역성
우리나라에 현대 건축의 조형 언어를 소개한 김중업은 ‘한국적 모더니즘’을 실현하고자 했다. 이러한 그의 작업 세계 안에는 ‘세계성과 지역성’이라는 두 가지의 가치가 공존한다. 요코하마 고공의 나카무라 준페이 교수의 지도 아래 프랑스 에콜 데 보자르(Ecole des Beaux-Arts) 식의 교육을 받은 김중업이 르 코르뷔지에를 동경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는 일본과 프랑스를 거쳐  ‘현대 건축’을 자연스레 접하게 되었고 이를 한국 및 해외에서 작업과 교육활동을 통해 실천했다. 한편 그는 문화재보존위원회 위원, 석굴암 전실 연구, 국립경주박물관 계획 등을 진행하며 한국 전통을 탐구하기도 했다. 1959년 파리에서 돌아와 김중업건축연구소를 개소한 그는 부산대학교 본관, 서강대학교 본관, 건국대학교 도서관 등을 발표했으며 주한프랑스대사관 작업으로 한국의 모던 건축을 대표하는 작업을 남겼다. 



건국대학교 도서관은 서울시 광진구에 위치한 지상4층, 연면적4,125㎡의 규모의 철근콘크리트조 건물이다. 1956년 설계를 시작으로 1958년 준공되었으며 1976년 열람실 증축공사가 진행되었다. 현재는 건국대학교 언어교육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본 건축물은 도서관의 기능적인 측면에서 여러 차이점을 보이고 있으나 기본 형태는 파리에 있는 유네스코 본부의 건물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김중업은 설계 당시 ‘Y’자형 건물에 학교 전체를 상징하는 강한 조형성을 부여하였으며, 둥근 지붕을 중앙에 얹어 이를 더욱 강조하였다. 그러나 여러 가지 상황으로 처음 건축가의 설계 의도와는 다르게 시공되었다.

김중업은 1950년대에 세 개의 대학건물을 설계하였는데, 부산대학교 본관은 그 중 첫 번째로 설계한 건물이다. 1956년 시작헤 1957년 9월 착공하였으며 1959년 10월 준공되었다. 지하 1층, 지상 5층, 연면적 2,631㎡의 철근콘크리트조 건물로, 금정산의 지형에 따른 ‘L’자 형태이며 1층 일부를 제외하고는 필로티로 처리하여 사람들이 자유롭게 지나다닐 수 있게 했다. 규칙적인 모듈에 의한 평면구성과 높은 층고, 전면 계단실의 넓은 유리를 통한 파노라마 경관, 후면부의 모자이크 창 구성 등은 르 코르뷔지에게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준공 당시 1층은 문리대, 2층은 총장실 및 대학본부와 법대, 3층은 상대 등으로 사용되었다. 2012년 ‘부산시 근대건조물’로 지정되어 현재는 부산대학교 인문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본 건물은 1958년 설계되어 1960년 준공되었다. 노고산 능선에 평행하게 세워진 서강대학교 본관은 이전까지의 작품과 달리 엄격한 비례, 면 분할, 지형과의 조화적 형태구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본관을 정면에서 바라보면 우측으로 보이는 격자 형태의 외부 차양막은 오후가 되면 건물 내부로 깊숙이 파고드는 햇빛을 막기 위해 설치됐다. 정교하게 계산된 차양막의 각도 때문에 내부에선 시시각각 빛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 다소 평범해 보일 수 있는 본관 업무동 건물의 핵심은 지붕이다. 하늘로 치켜선 형태의 얕은 지붕을 각 기둥에 걸치듯 띄워 건물을 바라볼 때 시선이 흩어지지 않도록 했다. 르 코르뷔지에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건축언어를 찾고자 애쓰던 시절의 작품이나, 모듈러 이론 등 그의 영향이 여전히 드러나 있다. 시공 당시 있었던 굴뚝은 현재 철거되고 없다. 


2부. 예술적 사유와 실천
김중업은 예술가로서의 건축가 상을 평생 추구했다. 이는 한국전쟁 이후 자본과 기술이 부족했던 한국 사회에서 건축을 자율적으로 독립시키기 위한 시대적 요청과도 관련이 있다. 그는 1956년 파리에서 귀국 후 건축가로서는 최초의 개인전이었던  《김중업 건축 작품전》을 개최했으며, 국전 심사위원을 역임하는 등 건축가의 작가적 입지를 알리는 데 힘을 썼다. 또한 김중업은 해방공간 부산 시절부터 교유했던 예술가들과의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작업을 진행하며 작가들의 전시나 작품을 후원하는 등 문화예술계의 중심인물로 활동했다. 김중업은 주한프랑스대사관, 올림픽 세계평화의문 등을 통해 예술가들과 적극적으로 협업했으며, 조각, 스테인드글라스, 타피스트리 등을 건축에 접목하며 건축을 매개로 한 총체예술을 구축하고자 했다. 이 섹션에서는 1971년 귀국 직전에 프랑스 영화감독과 함께 주한프랑스대사관과 삼일빌딩, 도큐호텔 등을 배경으로 만든 건축영화 ‘건축가 김중업’도 상영한다.


한국 현대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는 주한프랑스대사관은 1960년 설계하여 1962년 준공되었다. 경사진 대지에 관저와 대사관 및 예술관 등의 세 개 건물이 보행자의 시각 전개에 따라 서로 적절한 각을 이루며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다. 관저와 대사관 건물의 지붕은 한식 기와지붕처럼 하늘로 치켜 올려져 콘크리트임에도 불구하고 가벼운 느낌이다. 관저에는 우리의 궁 건축요소를 도입했고 대사관 건물에는 민가 건축요소를 가미했다. 관저 외벽을 장식한 모자이크는 옛 기와조각과 자기를 부숴 제작한 것이다. 이 벽화 제작에는 윤명로, 김종학 작가가 참여했다. 이 벽화는 당시 국제 건축계의 화두인 ‘예술의 종합론’의 맥락 속에서 진행되었지만, 토속적인 재료를 추상미술의 형식과 기념비적 스케일로 재구성함으로써 국제주의 건축에 한국성을 극적으로 도입했다. 

올림픽 세계평화의 문은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입구에 소재하고 있다. 1986년 설계하여 1988년 9월 12일 준공하였으나, 김중업은 준공 4개월을 앞둔 5월 11일에 작고하여 완성된 모습을 보지 못했다. 세계평화의 문은 올림픽정신을 구상적으로 표현하고 대회 개최를 기념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세 차례의 설계변경 끝에 한국의 전통적인 문(門)의 개념을 도입, 전통건축과 현대건축의 조화를 이루게 한 설계안이 준공되었다. 높이 24m, 지붕길이 62m, 폭 37m의 거대한 규모로 몸체는 철근콘크리트에 화강석판을 붙였고 지붕은 철골트러스구조에 동판덮개를 씌웠다. 지붕아래 쪽에는 고구려 고분벽화의 사신도가 판화가이자 디자이너인 백금남에 의해 단청으로 입혀져 있다. 세계평화의 문 앞쪽 마당에는 괴면 두상 조각을 얹은 열주가 길게 나열되어 있는데 이는 미술작가 이승택이 제작하였다.
올림픽 세계평화의문, 1986, 김중업건축박물관 소장



3부. 도시와 욕망
‘도시와 욕망’은 김중업 건축을 ‘도시’라는 문맥을 통해 살펴본다. 그 동안 김중업의 작품은 주로 근대 조각 같은 자체 완결적인 조형적 측면으로 읽혀졌다. 하지만  김중업의 복잡다양한 후기 작업을 읽기 위해서는 빠르게 성장하는 한국 도시의 발전 조건들과 연관시켜 볼 필요가 있다. 김중업은 삼일빌딩, 도큐호텔, 중소기업은행 본점 빌딩, 갱생보호회관 등 도심 안에 당대 기술과 자본을 응집시킨 많은 빌딩을 지었으며, 1980년대 전국으로 확산된 지방 도시의 문화시설을 맡아 설계했다. 또한 변화하는 사회 구조에 따라 산부인과, 쇼핑센터 등 전에 없던 새로운 시설들과 독특한 개인주택들을 구상하며 급변하는 도시 속에 쉽게 변하지 않을 이상적인 공동체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삼일빌딩은 1969년 설계되어 1970년 준공되었다. 서울시 종로구 소재의 지하 2층, 지상 31층, 연면적 36363.80㎡의 철골철근콘크리트 건물이다. 단순한 직립 입체 모양이며 재료는 검은색 철과 착색유리로 제한되었고 장식은 과감하게 생략되었다. 해당 건물에서는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적 언어가 읽히기 보다는 미스 반 데 로에의 시그램 빌딩과의 유사성이 거론된다. 1970-1990년 대부분의 초고층건물 설계가 외국인에게 맡겨진 것과 달리, 기본설계부터 완공까지 한국 건축가인 김중업에 의해 지어진 초고층건물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31층짜리 건물을 짓는다는 것은 당시로서 굉장히 새로운 도전이었다. 삼일빌딩은 1980년대 많은 고층건물들이 들어서기 전까지 서울에서 가장 높은 빌딩으로, 당초 계획은 140m의 높이였으나 풍압으로 인해 115m로 설계가 변경되었다. 이로 인해 층간 두께가 매우 얇게 처리되어 더욱 날렵하고 아름다운 비례가 도출되었다. 이 건물은 김중업의 오피스 빌딩 중에서 가장 수작이라 할 수 있다.

1965년 설계, 1967년 준공된 서병준산부인과의원은 현재 장충동에서 동대문디자인플라자로 향하는 대로변에 위치하고 있다. 이 건축물은 김중업 건축 모티브의 하나인 ‘증식하는 원’의 구성방식으로 지어진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다. 산부인과 병원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대지조건이 협소하고 세모진 대로변에 위치했다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조형적인 측면에서 다양한 변화가 가능한 곡선을 사용하여 독특하면서도 기능적으로 설계되었다. 특히 노출 콘크리트를 사용하여 자유로운 곡선의 가능성을 열어 놓았으며 투명한 유리창과의 대비를 통하여 생명의 탄생을 상징하는 조형성을 극대화한 작품이다. 현재는 아리움 디자인회사 사옥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용도 변경을 하면서 공간을 확장하였다. 

태양의 집은 서울시 영등포구에 위치한 지하1층, 지상3층, 연면적9,570㎡ 규모의 철근콘크리트조 쇼핑센터이다. 1979년 설계하여 1982년 준공하였다. 태양의 집은 영등포구 신길동 대로변 모퉁이에 위치하며 현재는 썬플라자라는 쇼핑 센터이다. 김중업은 이 건물을 부담 없이 들어가 구경할 생각이 드는 곳이 되길 바라며 설계했다고 했다. 그는 “파는 사람도 즐겁고 사는 사람도 즐거운 곳, 비바람을 막은 장터와 같은 곳, 서민적이면서도 귀티가 나고 나도 모르게 내가 돋보이는 곳, 누구나 친한 벗처럼 느껴지는 곳, 이런 감회가 이 작품을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낯선 모습일지 모르나 상품이 보는 이의 감정을 윽박지르는 서울 거리에 이런 집이 기다려진 지 오래다”라고 건축가로서의 소회를 밝혔다. 이 건물에는 원형 모티브, 램프, 곡면의 사용 등 다양한 김중업의 건축 언어가 종합적으로 병치되어있다.
태양의 집(現 썬프라자), 1979, 김중업건축박물관 소장진


4부. 기억과 재생 

‘기억과 재생’은 넓은 의미의 건축적 기억과 그것의 재생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기념비로 기획된 건축부터 현재 사라지고 있는 김중업의 건축물, 그리고 현 시대의 요청에 따라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아 변화를 앞두고 있는 건축물 등 넓은 의미의 건축의 시간성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지어진지 대부분 50여년이 된 김중업의 건축은 건축의 수명, 도시 재생, 현대적 문화 유산의 보존과 제도 등 건축을 둘러싼 기억의 여러 논의들을 가능하게 하는 출발점이 된다. 


제주대학교 본관은 김중업이 1965년 설계하여 1969년 준공된 건축물이다. 이곳은 김중업 스스로도 소중한 작품이라 말하며 길이 남겨 두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고 종종 언급했던 건축물이다. 5.16 직후 제주대학에 부임한 문종철 학장의 도움으로 설계의도가 손상되지 않고 그대로 반영될 수 있었다. 이 건물은 건축가 자신뿐 만 아니라 건축계에서도 ‘21세기의 건축’이라는 평가를 받는 독특한 작품이다. 건물 각 부분의 기능을 외부에서 알아볼 수 있도록 형태화시킨 특징이 있으며, 곡선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표현하였다. 유람선, 헬기 등을 연상시키는 조형물로 동시대에 설계한 주한프랑스대사관과 함께 김중업의 대표작 중 하나로 평가 받는 건축물이다. 1984년 보수공사를 통해 창틀이 아치형에서 장방형으로, 건물 외벽은 미색으로 바뀌었다. 1980년대 말 옥상콘크리트에 구멍이 뚫리고 건물기둥의 부식 정도가 심해 1992년 폐쇄되었다가 1996년 결국 철거되었다.

유유제약 안양공장은 유유제약 유특한 회장의 의뢰로 1959년 김중업이 설계하여 1960년 준공하였다. 경기도 안양에 소재하며 지상2층, 연면적2,574㎡ 규모의 철근콘크리트조 건물이다. 공장건물에 조각 작품을 접목시키는 등 독특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2006년 충북으로 공장을 이전 한 이후, 공장건물은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게 되고 2007년 안양시에 매입된 후 리모델링되어 현재는 김중업건축박물관과 안양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부지 내에는 보물 제4호로 지정된 중초사지 당간지주와 고려시대 삼층석탑(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64호)이 발굴되어 보존되어 있다. 유유산업 안양공장 건물은 김중업이 설계한 공장건물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것이다. 이곳은 산업건축물인 공장임에도 불구하고 출입문, 손잡이, 조각품 배치와 같은 세밀한 부분까지도 김중업이 디자인하여 예술적인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 또한 구조적 명확성이 두드러지는 설계로 김중업 초기 건축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된다. 

유유제약 안양공장(現 김중업건축박물관, 안양박물관), 1959, 김중업건축박물관 소장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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