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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미술상 30주년 기념-황용엽: 같은 선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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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 개요
- 전시제목 : 같은 선상에서展
- 주    최 : 아트조선
- 주    관 : ㈜CS M&E
- 기    간 : 2018년 09월 07일(금) ~ 09월 16일(일) (총 10일 간)
               / VIP opening: 07일 오후 5시
- 장    소 : 조선일보 미술관
- 후    원 : Seoul Art Guide, (주)제이앤영글로벌
- 관람시간 : 월~일, 10:00 - 17:00 (휴무일 없음)




황용엽, 어느날,130.3x162.2cm,oil on canvas,2018



 전시 소개
 
2018 Art Chosun On Stage의 4번째 기획전시는 조선일보 이중섭미술상 30주년을 기념하며 첫 번째 수상자인 황용엽 작가의 과거 작들과 신작 40 여 점을 선보인다. 화업의 길로 들어선지 6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황용엽 작가의 작품을 이야기하기 이전에 작가의 삶을 빼놓고는 작품에 등장하는 ‘인간’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1931년 평양에서 출생하여 민족의 분단과 전쟁의 상처, 남겨진 이방인으로, 가족들과의 생이별…, 디아스포라적 의식과 격한 고통을 받았던 내면을 인간의 형태로 현재까지 표현하고 있다. 

북한의 징집을 피해 위험한 월남을 감행했던 청년 황용엽은 국군에 입대하여 6.25에 참전하였으나, 총상을 입고 제대한 후 삶의 전쟁터에 내동댕이쳐진다. 연고가 없던 남한사회에서 생존을 위해 치열한 사투를 벌이던 황용엽은 우여곡절 끝에 편입한 홍익대학교를 1957년 졸업 한 후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한다. 그는 작업 초기 ‘실존미술가 협회’(1958)에 관여하고 ‘앙가주망(Engagement)’의 창립멤버로 활동(1961~1969) 하기도 했지만 이후 어떤 형태의 그룹활동에도 참여하지 않고 본인의 독자적인 작업에 몰두하였다.   
60년대부터 지금까지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간’은 왜곡된 형태로 나타나 점점 도식화되었으며 단순화되어 시대마다 다르게 표현되었다. 60년 대에는 어두운 색채로 그가 보고 느꼈던 극한의 고통을 담았으며, 70년대 작품 속의 “인간”은 기하학적인 선으로 도식화 되고 회색과 갈색 등 무채색 단색조 배경으로 변화했다.  80년대 이후부터 지난 작업들과는 달리 다양한 색감으로 한국적이며 토속적인 배경으로 새로운 시도의 작품이 지속 되었다. 2000년대 이후에는 87년작 ‘무녀의 비밀Ι’ 작품에서 시작된 무속, 샤머니즘 요소가 다시 등장하고 어린 시절 강서 고분벽화를 자주 접했던 문양과 패턴들이 표현되었다.
올해 88세(米壽)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간’을 꾸준히 연구하고 새로운 시도를 한다. 이번 전시에 중점적으로 전시될 최근 그의 신작에서는 70년대의 색감과 유사한 회색과 블루의 단색조로 주로 이루어졌으며, 70년대의 갇혀있던 인간의 형태와 흡사하지만 더욱 도형적이고 한국적이며 토속적인 문양과 패턴이 조화를 이루어 새롭게 표현되었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곧 ‘삶의 증언’이라고 말한다. 그에게는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 있으며, 그 기억을 캔버스에 기록한다. 이는 곧 우리나라 현대사이며, 그의 작품을 보는 것이 우리 역사를 보는 것과도 같다. 자기성찰을 꾸준히 하며 스스로가 치유하고 자유를 끊임없이 갈구하는 황용엽 작가의 이번 기획초대전은 1989년 조선일보 이중섭미술상 1회 수상 이후 조선일보미술관에서 3번째 열리는 개인전이다.
      



■ 작품 소개
● 1989년 생애 첫 수상: 조선일보 이중섭미술상 1회 수상
 

황용엽, 가족,162x130.3cm,oil on canvas,1965



황용엽, 인간,130.3x97cm,oil on canvas,1975


1960대에는 산경산수화가 인기를 끌던 시기였다. 국전수상작들이 수묵으로 재현한 작품들인데 반해 황용엽 작가는 그의 삶을 현대적으로 풀어냈다. 월남하여 대학시절 중에 만난 박수근 화백, 이중섭 화백과의 추억, 수화 김환기 선생님의 가르침으로 평생 그림에 집중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결혼 후 생계에 뛰어들었지만 작업에 몰두하며 현대작가초대미술전에 출품한 것이 조선일보사와 인연이 시작되었다. 1965년에는 하드보드에 몽타쥬 작업들로 중앙공보관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으며, 첫 번째 개인전 이후 1973년 신문회관에서 열린 2회 개인전 이후부터 도식화되고 작가만의 형식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인간상을 선보이며 매년 개인전을 열었다. 70년대 초반에는 어두운 청색과 검붉은 색으로, 중반부터는 회색과 갈색톤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화면에는 유신시대의 정치적 상황을 담았으며 그가 겪었던 공포와 비인간적인 인간상을 그려냈다. 2000년대 전까지의 작업 중에서 70년대 ‘인간시리즈’ 작품은 근대미술사적으로 중요하다. ‘한국적 모더니즘’과 같이 반복된 선들과 패턴을 담았으며, 황용엽 작가만의 특유한 인간상으로 작가의 이념과 형식을 반영했다. “내가 그리는 인간은 곡 그리지 않으면 안 되는 필연적인 나의 모습입니다. 저는 자유 없이 밀폐된 공산치하에서 폐쇄된 교육을 받으며 청년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때 갈구했던 인간의 자유, 정신적 해방을 회화적인 차원으로 옮겨보고 싶은 것입니다.”  
 

황용엽, 인간,162.2x130.3, oil on canvas, 1982


 1980년대에는 다양한 전통문양과 민화적 요소를 담았으며, 지난 작품들에 비해서는 한국적 색채로 밝아졌으며 샤머니즘에 대한 관심도 담겨있다. 또한 구체적인 인간상이 나타났으며 인간의 옷과 피부, 형태를 실감 나게 표현했다. 1989년도는 국제화랑에서 14번째 개인전이 열리는 중에 작가 생애 처음 받는 큰 상을 받는 해이다. 조선일보사에서 새로 제정한 이중섭미술상의 첫 수상자로 선정된 그는 그간 인간의 희로애락을 그려냈으며, 황용엽 작가의 자화상과 같은 인간상은 그가 살아온 삶과 한국의 역사를 대변하기도 한다. 




● 닫힌 상황 속의 인간에서 열린 풍경의 인간으로  
-1990<황용엽화백초대전>
 
이중섭미술상 수상 이후 수상기념전이 1990년 11월 20일에 조선일보미술관에서 열렸다. 지난 작품부터 최근 작품까지 89점을 선보였다. 1990년대부터는 지난 고통과 그가 겪었던 전쟁의 트라우마가 조금은 치유된 화면이 보여졌다. 귀향을 주제로 한 작품이 많아지고 경쾌한 인간상이 나타났다. 여러 매체에서 황용엽 개인전에 대한 기사를 게재했으며 조선일보에서도 크게 보도되었다. “화폭 가득 ‘삶의 즐거움” 조선일보가 제정한 이중섭미술상 제1회 수상자인 중진 서양화가 황용엽 씨가 5월 12일부터 25일까지 초대전을 갖는다. (중략) 이번 출품작들에선 우울한 색조, 겹겹이 얽힌 선묘석에서 몸부림치는 한계상화의 인간형상은 눈에 띄지 않는다. 그걸 대체하는 것은 밝은 색상의 배경, 고대 벽화를 연상케 하는 구도 속에서 삶의 원천적 즐거움을 구가하는 인간의 모습이다.  안정된 생활을 하며 즐겁게 작업을 하는 시기이다 보니 고향과 어린 시절 기억이 캔버스에 많이 그려졌다. 같은 해에 개인전 준비하면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한국 현대작가 초대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서울현대미술전, 맥화랑 개관 기념전 그룹전 등 활발한 활동이 이어졌다. 



● 다각적 휴머니티로의 변신
-1995<황용엽- 삶의 이야기>
 
1995년 10월 14일, 조선일보미술관에서 19회 개인전 <황용엽- 삶의 이야기 展>이 개최되었다. 황용엽 작가는 수상기념전 이후 5년 만에 조선일보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에 23점 출품하였다. 출품작들은 한국의 오방색을 연상케 하는 색채와 문양이 더 다양해졌으며 한층 원숙해진 인간상과 확장된 공간이 기존 작품들과는 크게 변화되었다. 제목 또한 <인간시리즈>에서 <나의 이야기>, <옛 이야기>, <가족>, <고향 가는 길>, <삶 이야기>로 바뀌었다. 미술평론가 최병식은 “다각적 휴머니티로의 변신”이라는 제목의 평문에서 “이처럼 최근의 작업들에는 한마디로 ‘한계상황”이 아니라 인간상의 오감(五感)이 고루 엿보이는 여러 형태의 삶이 조망된 ‘다각적인 삶의 일기’라 해도 과언이 아닌 자유로운 의지와 생명력이 숨 쉬고 있다.”  더욱 경쾌해진 작품은 이별했던 가족의 소식으로 한층 여유로워진 그의 감정으로 변화 된 것이다. 통일을 희망하고, ‘무릉도원’과 같은 세상을 작품에 담아 내고 있음이 틀림없다. 이 해에는 서울미술관에서 ‘한국100개의 자화상’ 전과 프랑스에서 ‘한•불 문화교류 현대 작가’전에 참여하기도 했다.



● 같은 선상에서(同一線上)
-2018<같은 선상에서>: 이중섭미술상 30주년 기념전 
              
황용엽, 어느날,116.8x91cm,oil on canvas,2017


황용엽 작가는 쉬지 않고 연작을 해 왔다. 많은 변화와 다양한 시도로 그의 포름(forme)이 형성되었다. 그는 변화 없이 꼭 같은 작품을 발표하는 전시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올해가 미수인 황용엽 작가는 2018년 이중섭미술상 30주년 기념전인 28번째 개인전에서도 새로운 시도로 신작을 보여준다. 스키광인 그는, 활강하며 내려올 때 슬로프 위에 그어진 선을 캔버스 위에 표현했다고 한다. 기존 작품들에서 보였던 선과 색은 최근 작업에서는 간단해지고, 단조로워졌으며 한국적 문양과 패턴은 더욱 과감하게 표현되었다. 지난 작업에서는 작가의 주체적 이야기로 그려졌다면, 근작에서는 현대사적 요소들을 형상화하였다. 주로 70년대에 표현되었던 색감이 많이 사용되었으나 밝고 가벼워졌다. 다양한 구도와 분할된 화면에서는 각기 다른 스토리가 담겨 있는 듯하다. 자기성찰을 꾸준히 하며 스스로가 치유하고 자유를 끊임없이 갈구하는 황용엽 작가의 이번 기획초대전은 1989년 조선일보 이중섭미술상 1회 수상 이후 조선일보미술관에서 3번째 열리는 개인전이다. 이번 신작 100호 작품에서 뿜어져 나오는 간결하지만 강한 에너지를 분명 느낄 것이다. 여전히 ‘인간’을 새롭게 변화하며, 선들로 독립적인 화면들이 나타난다. 
매일 작업실로 출근하며, 건강관리를 위해 테니스를 즐겨 치시는 황용엽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끊임없이 삶을 기록한 예술가이다. 우리는 그가 쏟아낸 열정으로 변화하는 신작을 볼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 



황용엽, 어느날,145.5x112.1cm,oil on canvas,2018


■ 작가 노트
 “나는 늘 인간이란 소재를 갖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러한 소재는 별 뜻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고, 나의 젊은 시절의 체험에서 시작되었을 뿐이다.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이 북한이라는 움직일 수 없는 숙명 하나만으로 폐쇄된 공산사회에서 교육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독재 사회의 틀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비인간의 굴레 속에서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울고 싶을 때 울지 못하고, 웃고 싶을 때 웃지 못하면 그 이상의 비극은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감정의 표현마저 빼앗겼다면 사람은 한 낱 상자 속에 놓여진 꼭두각시 이상 무엇이 다르겠는가. 이러한 숙명이 나의 가냘픈 자유의 절규로 화했는지 모를 일이다. 나의 내면이 화면 위에 형상화하면서 보잘것없는 왜소하고 가냘프고 일그러진 모습으로 그려진 것이라 생각된다. 끈으로 옭아매어진 상태로서도 인간은 꼭두각시가 아니기에 무언가 찾기 위해 움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절규의 상황이 나의 그림에서 떠날 수가 없는 것들이다. 공허한 상자 속에서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나의 독백을 반복하면서 나의 모습과 가족을 그린다고 할까. 아니면 나도 알 수 없는 현실의 인간이 아닌 내 형상을 갖고 있다고 할까. 이러한 여러 한계상황은 나의 내면에서 떠날 수 없는 조형의 바탕일 수밖에 없고, 크고 작은 인간의 형태, 또는 여자인지 남자인지 분간할 수 없는 변형된 인간들의 비슷한 애조(哀調) 띤 모습으로 변모했는지도 모르겠다. 따라서 인간상을 그리는 작업이 나에게는 중요한 심리적 인간적 요소이며 동시에 회화적 요소의 바탕에서 그리려는 깊은 뜻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한정된 2차원의 화면 위에서 인간의 동작을 가로 놓아보고 세로 놓아 보고 확대 또는 축소해 보며 변화시키는 작업이라 해도 좋을 듯하다” 
      
“<인간>이란 제목을 붙인 대작들을 발표했다. 이때부터 화면에 선이 등장해 인간을 억압하는 조형 작업을 했다. 나는 단순한 선, 단순한 색, 단순한 형상을 추구했다. 지금 와서 이때의 그림들을 봐도 ‘어떻게 이처럼 절박하게 그렸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겪어 온 삶-북한에서의 속박, 구속, 전쟁, 죽을 고비, 부상 등이 너무도 치열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선들이 인간을 갇혀 놓은 상황의 작품에서 나는 인간, 속박, 자유 등의 한계상황, 피할 수 없는 극한상황을 추구했다.”

“그림은 곧 삶의 증언이라고 믿는 나는 나의 지난날의 삶에 비추어 도저히 밝고 기름진 인간의 모습을 제시할 수 없었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의식에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극한 속에서 인간 존재의 의미를 찾는 인간의 모습에 초점을 모았던 나는 또 다른 실험의 길로 들어섰다. 화폭의 중심에 자리를 잡았던 인간상을 화면에 흡수시키고 내 나름대로 장식적인 효과를 자아내는 색채를 찾아 조형미를 표출하고자 의도하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토속적인 민화 도자기 기와무늬 떡살무늬 장롱장식 등 한국적인 원형미에서 단순화의 비밀을 캐내고자 심혈을 기울이기도 했다. 고분벽화의 문양들과 샤머니즘적인 소재들을 혼합해 그렸다. 오방색에 원색을 곁들여 화사해졌고 이야기가 많아졌다.”

“인간성의 추구는 내 화필이 꺾이지 않는 한 결코 변할 수 없는 나의 명제이다.” 




황용엽, 꾸민이야기, 80.3x65.1cm,oil on canvas, 2018


추천의 글: 예술 세계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적인 경험 

Yves Michaud (철학자, 예술평론가, 에콜 데 보자르 학장 역임)


1945년 한반도 분단 이후 북한에 편입된 지역에서 1931년에 출생한 황용엽은 어린 시절 일제 강점기를 겪고 성장하였다. 일찍이 그림 공부를 시작한 황용엽은 예술가로서의 자질을 발전시켜 나갔다. 북한에 공산 정권이 들어선 후에는 평양예술학교에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수업을 견뎌야 했고 이 과정에서 탄탄한 기본적인 테크닉은 습득 하였으나, 주입식 교육은 견디기 힘들어했다.  1950년에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남한으로 도피하여 군에 입대하여 전쟁터로 나가고, 부상 당하고, 제대를 한다.  그리고 그는 모두가 모두를 의심하는 상황에서 두 차례나 끔찍하고 불합리하게 감금을 당하기도 했다.  평화는 - 엄밀히 말하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휴전- 황용엽이 다시 공부를 시작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고, 홍익대학교 회화과에 입학한 뒤 그는 1957년에 학업을 마쳤다. 사실주의와 추상주의를 거부하는 그는 발가벗겨진 인간의 비참함과 위대함을 온전히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황용엽은 다수의 한국인들이 그렇듯이 기독교의 영향을 받고 자랐지만 한국의 무속신앙도 그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19세기 신교도 전도사들이 한국에 유입되기 전에, 4세기 불교가 한반도에 도달하기 전에, 한국의 고유 종교는 무속신앙과 정령숭배 사상이었고 그 근원은 선사시대의 시베리아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구려 봉분 벽화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남겨진 벽화의 잔해는 암석에 그린듯한 느낌과 인물의 스타일 면에서 황용엽의 그림 세계에 영감을 주었다. 이 같은 원시성은 가공된 것이나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진중한 것이라고 감히 표현할 수 있으며, 20세기 예술에서 피카소(Picasso), 말레비치(Malevitch), 고갱(Gauguin), 클레(Klee)의 작품이 감동을 주듯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황용엽 작품의 독창성은 이 같은 원시성에 현대적인 회화 어휘를 이식했다는 것이다. 
전쟁의 참상, 감금의 고통, 전쟁의 불행은 마치 포트리에(Fautrier)와 베이컨(Bacon)의 그림들처럼, 짓이겨지고, 절단되고, 개성이 말살된 인간은 유령 같은 실루엣에 표정 없는 수척한 얼굴이나 감옥이나 수용소에 갇혀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클레(Klee)의 작은 인물들과 선사시대적인 그림과 어린이 그림, 몽환적인 휴머니티는 시간적 초월성과 시적 감성이라는 측면에서 황용엽과 같은 예술가의 관심을 끌었고, 이러한 것을 그의 작품에서도 볼 수 있다 

물론 황용엽의 예술 세계는 한국 문화와 한국적인 정체성을 대변하지만, 동시에 발가벗겨진 본연의 휴머니티를 다룬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은 보편성을 또한 확보 하고 있다. 칼 막스(Karl Marx)가 예외적으로 종교에 심취한 시기에 쓴 글에서 가장 극단적인 결핍 상태에 직면한 프롤레타리아는 보편적인 인간의 형상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자산도, 그 무엇도 없는 발가벗은 가난한 인간은 인류 그 자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황용엽은 이와 유사한 이미지를 우리에게 제공한다. 학대 당하고 감금된, 모든 것을 빼앗긴 인간은 황용엽의 작품에서 슬픔, 우울, 애도, 고통에서부터 기쁨, 사랑과 나눔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모든 짐을 지고 전형적인 인간을 표현한다. 


황용엽,나의이야기,90.9x72.7cm,oil on canvas, 2018


■ 작가 약력
황 용 엽 (HWANG YONG YOP)

1931 12월 18일 평양 출생
1944-1948 평안남도 강서중고등학교 졸업
1948-1950 평양미술대학 중퇴
1954-1957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1957-1959 인천고등학교 미술교사

1959-1963 서울 보성여자고등학교 미술교사
1963-1964 서울 경희여자고등학교 미술교사
1967-1978 서울 숙명여자고등학교 미술교사
2011-2013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출강


개인전
2018 서울 조선일보미술관
2017 서울 교보아트 스페이스
2016 부산 인디프레스
2015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2008 서울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2007 전북 부안 휘목아트타운 미술관
2003 서울 성곡미술관(미술의 시작전)
2001 서울 선화랑
1998 서울 국제화랑(황용엽 향수전)
1995 서울 조선일보미술관
1993 서울 국제화랑(황용엽 작은 그림전)
1992 서울 국제화랑
1990 미국 LA아트페어 솔로 쇼(LA 컨벤션센터)
1990 서울 조선일보미술관(이중섭미술상 수상 기념전) 외 다수


그룹전
2017
Korea Tomorrow-해석된 풍경(성곡미술관, 서울)
2014 
당림 이종무 화백 추모25인전(당림미술관, 충남 아산)
경인방송 OBS <명불허전>
2013
한국의 현대미술(제주현대미술관, 제주)
2012
현대 구상화 작가 2인전-박성화, 김상유, 황용엽(갤러리현대, 서울)
2011
한국 근현대미술의 재발견(롯데호텔 갤러리, 서울)
대구시립미술관 개관기념 ‘기氣 차다’(대구시립미술관, 대구)
2008
이중섭미술상 20년의 발자취-역대 수상작가 20인전(조선미술관, 서울)
2006
서울미술대전(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04
격동기의 한국 미술 1950년대전(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서울)
한국 현대미술 다시 읽기(MIA 미술관, 서울)
2003
미술의 시작전 5(성곡미술관, 서울)
Beijing International Art Biennale 한국미술특별전(베이징, 중국)
2001
서울미술대전(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1세기, 한국 현대미술의 여정-원로작가 100인(1911-1941) 전 (세종문화회관, 서울)
Coree, France 7인 현대작가초대전(파리 한국문화원, 프랑스)
손의 유희-원로작가 드로잉전(국립현대미술관, 서울)
1999
이중섭미술상 10년의 발자취-역대 수상작가 10인전(조선일보미술관, 서울) 외 다수


수상
2007 MANIF 서울국제아트페어 대상
2005 대한민국 보관문화훈장 서훈
1989 조선일보사 제정 제 1회 이중섭 미술상 

작품소장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한국문화예술진흥원
호암미술관
대구시립미술관 
田澤湖 新りの美術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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