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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본성-칼(劒)과 현(絃)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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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1년 국립박물관은 ‘신비의 고대 왕국 가야’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당시 처음으로 가야를 다루며, 많은 유적과 유물을 가야라는 이름 아래 자리매김 할 수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28년이 지난 오늘, 더 많은 자료와 연구를 통해 새롭게 복원한 가야의 얼굴을 만나 볼 차례입니다.

○ 기 간: 2019. 12. 3.(화) ~ 2020. 3. 1.(일), 90일(13주)
○ 장 소: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1,360㎡)
○ 전시품: 말 탄 사람모양 토기(국보 제235호) 등 국내외 주요문화재 1,000여 점




1. 다문화가족의 시작-허왕후를 맞이한 금관가야金官加耶

아유타국에서 파사석탑을 실은 배를 타고, 혼인을 위해 멀리 가야에 온 허황옥. 남편인 수로왕의 무덤 정문 대들보에는 두 마리의 물고기가 마주보고 있는 쌍어문雙魚文이 그려져 있습니다. 쌍어문은 인도 아요디아의 건축에서 자주 보이는 것입니다.

가야는 이렇게 멀리 인도뿐 아니라 중국, 일본 등지의 많은 사람들과 교류를 하였습니다. 그 증거는 구산동 유적에서 발견된 많은 일본 토기를 비롯하여, 김해 대성동과 양동리 무덤에서 발견된 서역의 유리그릇, 중국 북방에서 만든 솥[銅鍑]과 중국 진나라의 금으로 만든 허리띠[銙帶] 등으로 알 수 있습니다.

가락국은 ‘철’을 잘 다루었고 그것을 아시아 전역에 수출하였습니다. 이러한 교역은 가락국을 더욱 부유하게 만들었고, 여러 곳의 이방인들이 함께 모여 지금과 같은 다문화가족을 이루고 살았습니다.



2. 동서의 화합-영・호남이 어우러진 대가야大加耶

가야는 일반적으로 동으로 낙동강, 서로는 소백산맥을 경계로 위치하고 있었다고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여러 유적을 발굴하면서 5세기 후엽의 대가야 영역은 지금의 고령을 중심으로 남으로 여수 고락산성, 서로는 지리산을 넘어 장수 삼봉리, 남원 두락리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 이르렀던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지리산과 소백산맥이라는 지리적인 장애물을 넘어 ‘가야’라는 이름 아래 영・호남이 뭉쳤고, 강성한 국가로서 중국 남제南齊에 사신을 파견하여 ‘보국장군본국왕輔國將軍本國王’으로 인정받기도 하였습니다.

대가야의 중심을 이루던 고령 지산동고분에서 출토된 강력한 무기와 갑옷, 합천 옥전고분에서 출토된 로만글라스와 용과 봉황이 새겨진 칼, 남원 월산리고분에서 발견된 청자계수호 등은 중앙과 지방이 가야라는 이름으로 어우러져 균형있게 발전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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