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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진


<자유소생도> 연작의 계기는 미시세계의 밝은 형상들을 심층적으로 바라보고자 시작하게 되었다. 주된 모티브는 늘 우리 곁에 피어있는 이름 모를 들꽃으로, 변두리 또는 인식 이외에 공간에서 묵묵히 자라나는 생명력이야말로 참된 삶의 주인이 아닌가 생각되어 이와 같은 지점을 인간의 삶에 투영시키고 있다. 특히, 사생된 식물을 도상 형태로 전환시키기 위해 뿌리 또한 빼놓을 수 없다고 생각되어 들판에 식물과 기르던 다육식물까지 뽑았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식물에겐 하늘과 땅의 명확한 경계가 있는데 그 부근에는 생명으로써의 가장 중요한 생장점을 지니고 있다. 정(靜)적인 뿌리와 상대적으로 동(動)적인 줄기 사이(中)에서 생명의 핵이 있다는 점이 과학과 유사과학의 경계를 넘어 삶의 의미를 돌아보게 해주는 관찰지점이다. 묘사에 있어서는 주로 덩굴식물의 상징적 의미인 ‘기쁜 소식’과 형상적 성질인 ‘덩굴의 군락’을 부각시켜 ‘희망이란 덩굴의 줄기처럼 얇은 가닥일지라도 끊임없이 서로를 감아 올라 피어나는 군락을 통해 우리의 삶 또한 더불어 사는 것’이라는 생각을 화폭에 담아보았다. 그리고 <자유소생도>의 모체가 된 <이야기가 있는 풍경> 연작은 유년기의 희로애락을 거시적 풍경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개인적 일대기를 회상함으로써 자연스레 무색 또는 여러 파스텔 톤으로 표현된 경우가 눈에 띄며 2010년을 기점으로 유년기의 체현(體現)에서 시기의 전후를 아우르는 서사적 구조로 차차 변화한다. 풍경에 담겨진 여러 대상 중 식물이라는 형상적 가능태(dynamis)를 집중적으로 관찰하여 <자유소생도> 연작을 시작하게 되었고 두 연작은 ‘다까무라 코오다로’의 글을 기초로 하여 다시 한 번 감성적 관계인 <Abyss of Time> 연작으로 발전하게 된다.

“예술 작품의 창작이라는 것은 어떤 정형화된 이념이나 장엄한 민족의식 같은 것만으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러한 것이 더러 창작의 주제나 동기가 될 수는 있지만, 하나의 작품이 영혼의 밑바닥으로부터 싹터서 생명력을 가지려면 반드시 충분한 사랑의 교류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신의 사랑일 수도 있고, 군주의 사랑일 수도 있고, 또 한 여성의 한없이 순수한 사랑일 수도 있다. 자신의 작품을 열렬한 사랑의 눈으로 보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의식만큼 미술가에게 힘이 되는 것은 없으리라.”

<Abyss of Time>연작은 코오다로가 주장한 예술의 비정형화를 토대로 읽히는 텍스트와 보이는 이미지 사이에 진리의 교집합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에서 감명 깊게 읽은 텍스트와 차크라 이미지를 중첩시키며 그동안 나를 있게 해준 사람들의 평온을 비는 염원의 작품이다.

나는 변화하는 세 연작을 통해 어쩌면 매체의 중요성보다 작가의 태도 즉, 끊임없이 ‘연구하는’ 또는 ‘연구해야하는’ 오늘날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유미주의를 심도 있게 살펴보고 싶다.


이두리 


이두리 작가는 캔버스에 물고기를 등장시켜 사후세계(죽음, 시간, 차원)에 대한 생각과 인상을 작품으로 풀어낸다. 그가 그려내는 물고기는 중국인들이 용이라 부르는 아시안 아로와나(Asian Arrowana)라는 고대어 종으로 관상가치가 상당히 높기 때문에 약 8만 달러를 호가하기도 하는, 실제로 굉장히 귀한 물고기이다.

그의 캔버스 속에 등장하는 물고기는 일명 금룡ㆍ홍룡ㆍ청룡으로 중국문화권에서 제 각각 부적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한다. 금룡은 재물을, 홍룡은 기쁨과 건강을, 청룡은 집안의 귀신을 쫓는 존재를 의미한다. 그는 사후세계를 표현함에 있어서 용에 관한 전통적인 전설과 부적적인 의미들을 통해, 아시안 아로와나를 신, 사신 등으로 해석하여 환생, 현몽, 이승과 저승의 '인도자' 역할로 등장시킨다.

해당 작품에서는 용(신)이 하늘을 유영하며, 태양을 시공간의 통로로 연상케 한다. 그리고 천국(유토피아)으로 향하는 계단을 연출시키므로, 나약한 인간이 바라보는 이상세계에 대한 염원을 표현한 작품이다.

그가 그려낸 사후세계의 죽음은 보편적으로 모든 대중에게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으로 인식되지만 이두리 작가의 작품을 보았을 때, 어두움과 공포보다는 밝음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작가에게 죽음은 피해야 할 공포의 대상이 아닌, 맞닥뜨리고 깊게 생각해야 할 대상이다.

우리는 죽음을 가까이 느낌으로써 역설적으로 자신의 현재 삶을 돌아볼 수 있다. 또한 죽음은 당연한 자연의 순리이며 우리가 살아가며 피할 수 없는 이치이다. 작가가 표현하고자 한 점이 바로 이러한 죽음의 이면을 새롭게 인식하는 긍정적인 역할이다.

이두리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많은 이들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죽음 앞에 멈춰 많은 것을 생각하기를 원한다. 많은 이들이 바쁜 일상 속 잠시 걸음을 멈추어 죽음과 현재의 삶에 대해 돌아볼 시간을 갖기를 바란다.

 


장수시


주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본 평범핚 사란들의 이야기


나는 이야기를 하는 중이다. 소소하게는 나와 내 주변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크게는 현대의 일상을 사는 보통 사란들과 그들의 내면의 이야기이도 하다. 찰나에 포착 된 사란과 사물의 본성을 표현하며 그 순갂 그들의 감정을 느껴보고자 핚다. 때로는 그들의 자연스러운 감정의 흐름에 따라 변화된 감정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하기도 핚다.

시갂이 흐를수록 원래의 자싞은 점점 잊혀지는 것 같다. 어린 시절, 모든 감정과 기분, 표현에 웃고 눈물을 흘리며 솔직했었다. 하지만 사란들을 사귀고, 사회를 겪으면서 자싞을 나쁘지 않게 숨기고 포장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감정을 조금 숨기고, 많이 숨기고, 심지어 호감을 사기 위해서는 자기 자싞까지 바꾸어 버리려는 모습까지 볼 수 있다. ‘이 순갂, 내가 보는 당싞이 실제의 당싞인지, 가꾸어지고 숨겨짂 당싞인지는 당싞만이 알 것이다.’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작업을 짂행시켜나가고 있으며 내가 보고 느끼는 실제 그 사란과 가꾸어짂 사란 모두를 등장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작품은 굮상 시리즈와 일상 시리즈로 나눠지는데, 굮상 시리즈는 쉬운 형상을 통하여 메시지를 전하고자 핚다. 갂단핚 형상이 전해주는 이미지와, 그 형상 속에서 인연과 그 인연을 바라는 희망, 또는 현 시대의 우리의 모습과 행동을 표현하고자 핚다. 일상 시리즈는 작품 안에 이야기가 있으며 모든 인물들이 이야기를 만들어나가고,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품이 아닌 일상의 쉬운 이야기가 담겨있는 시리즈 작업이다.


 

최승윤


-그림 그리는 사람


예술가들은 가장 현실적인 사람이다.

누구나 재미있고 특이한 상상은 하지만,

그것을 실제로 만들어 내는 것은 예술가들이다.


머릿속 생각을 캔버스에 옮기다 보면

상상 속 이미지와는 다를 때가 많다.

 

그 이유는 나라는 내부의 우주와

내 밖의 세상은 전혀 다른 우주이기 때문이다


나와 캔버스가 만나는 순간,

이 것은 평범하고 보잘 것 없어 보일 수 있지만

하나의 우주와 우주가 만나고 섞이며 대화하는 위대한 역사적 순간이다


다시 또 순간은 무한대로 나눌 수 있으며

시간의 기준에 따라 한 번의 터치는 영겁의 시간과 대등할 수도 있다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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