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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수 전: 영원한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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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수: 영원한 인간 



포항시립미술관은 스틸아트뮤지엄으로서 철 조각의 원류를 살펴보고 그 예술적 가치를 정립하고자 한국 추상 철 용접 조각의 선구자 송영수(1930-1970)의 조망전 《송영수: 영원한 인간》을 마련했다. 송영수는 한국 현대조각사에서 철 용접 조각의 가능성을 모색하며 자신만의 조형 세계를 구축한 1세대 추상 조각가이다. 41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송영수, 그가 살아낸 세월보다 훨씬 많은 날들이 지난 오늘도 여전히 ‘아름다운 영혼’이 깃든 그의 작품은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전한다. 

송영수는 1957년 최연소 국전 추천작가로 등극하면서 미술계에 이름을 알린다. 그 당시는 한국전쟁 후, 폐허가 된 도시와 열악한 경제 상황에서 전후 복구와 재건으로 젊은 작가들은 석고조차도 구하기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이때 전쟁의 상흔처럼 길거리에 산재한 고철과 드럼통은 자연스레 작가들의 눈에 들었고, 그것을 재료 삼아 철조 작업을 시작했다. 송영수 역시 시대의 아픔과 변화를 목도하며 내면에서 타오르는 작가적 의지를 철 용접 조각으로 끌어냈다. 

그의 예술 활동은 20년에 불과하다. 하지만 마치 예정이라도 한 듯이 송영수는 치열한 자기 고뇌와 조형적 탐구를 끝없이 이어가며 불멸의 작품들을 남겼다. 특히 1960년대 그가 발표한 작품들은 전후 시대의 아픔과 희망을 품어내며, 추상 용접 조각의 지평을 열었다. 더불어 조각의 공간 개념을 국내에 알리며 석고, 나무, 동판, 테라코타 등 다양한 재료와 방식을 거침없이 활용한 작품들도 발표했다. 기념 조형물 제작에도 뛰어난 업적을 남긴 송영수는 창작에 대한 열정으로 표현 영역을 확장하면서 자신의 조형 언어에 적합한 방법을 모색하고자 독자적인 예술의 길을 찾았던 창조자이자 개척자였다. 

《송영수: 영원한 인간》은 송영수의 생애를 따라 그 예술적 자취를 살피며 작품을 감상하도록 마련했다. 그가 조각을 시작한 서울대학교 재학시절 작품부터 1970년 4월 1일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제작했던 주요 작품 40여 점과 그가 항상 손에서 놓지 않았던 스케치북에 남긴 드로잉들을 총망라하여 소개한다. 또한 그의 일대기와 작가 노트를 바탕으로 조형 형식의 연구내용을 시기별로 주제를 나눠 전시를 구성했다.


1. 먼동이 틀 무렵(1954-1958)
송영수는 서울대학교 조소과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조각을 시작했다. 1950년 한국전쟁의 여파가 온 나라를 뒤덮고 있었던 이 시기, 학생 송영수는 석고와 대리석을 이용하여 어렵게 작품을 제작했다. 스승 김종영의 가르침을 받아 조각의 기초를 다지며 자신의 조형적 관심사를 찾아 나간 송영수는 대학원 진학 후 조각가 송영수의 면모를 보여주는 작품들을 발표한다.

전쟁이 폭로한 인간의 실존에 대한 문제에 대해, 송영수 역시 존재론적 질문을 내면화하며 생의 형태를 고민했다. 현실적으로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던 ‘철’은 직면한 시대의 아픔을 담고 있으면서도 전통적 조각 방식과는 전혀 다르게 다룰 수 있었던 재료였다. 그는 1956년 <향(響)>을 시작으로 철판을 용접한 작업을 선보인다. 구상적 여성상에 기하학적 문양의 철편 용접 구조물을 덧댄 형태의 <향>은 대학에서 습득한 인체형상에 철 용접 기술을 적용한 작품으로 새로운 조형적 시도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1957년 이어서 발표한 <부재의 나무>와 <효(曉)>는 오로지 철판으로만 제작한 송영수의 최초 철 용접 조각이다. 인체를 기본 형태로 삼아 나무와 새를 결합한 형상으로 새로운 생명과 성장의 형태를 보여준 이 두 작품은 드럼통을 자르고 펴서 용접하여 선적인 요소를 강조하며 조각의 공간 개념을 제시했다. 


2. 새의 날갯짓(1959-1964)
송영수는 1958년 석사 학위 취득 후 모교에서 강사로 활동한다. 이 기간 그는 철조 작업에서 본인만의 개성적 표현을 보여줌과 동시에 장식조각, 종교조각, 기념 조형물 설계·제작과 같은 다양한 영역에서 작가정신을 투영한 창작 활동을 펼쳐나간다. 

최소한의 철판과 철사를 사용하여 선적 구성에 몰두했던 송영수는 철의 표면을 매끄럽게 다듬지 않고 마티에르를 살리는 방식으로 작품을 제작했다. 이때 만든 작품들은 물질적 측면을 강조하는 정형화된 형태보다는 선과 양(量)의 이질적인 조형요소를 결합한 추상 용접 조각이었다. 이 시기의 작품 대다수는 유실되었지만, 남아있는 소수의 작품을 통해 시대의 문제를 진지하게 인식했던 작가의 정신과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예컨대 1959년 발표한 <작품 59-2(핵의 공포)>는 핵이 폭발하는 모습을 선적 구조로 형상화하여 냉전 시대의 핵전쟁에 대한 공포를 드러내어 우리의 실존을 위협했던 전쟁을 경계하도록 한다. 

1960년부터는 기념 조형물 제작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불국사 관광호텔 <평화>를 시작으로 혜화동성당 <최후의 심판도>와 육군사관학교 국기게양대, 화랑천, 승화대, 통일상, 장충단공원의 이준열사상 등 다수의 기념 조형물을 제작하면서 송영수 자신의 예술세계를 담은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추상적이며 현대적인 기념 조형물로 접근했다. 


3. 영원한 비상(1965-1970)
1965년부터 송영수는 철 대신 동판을 이용하여 작품을 제작했다. 동은 철보다 유연하고 낮은 온도에서 녹기 때문에 좀 더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했으며, 표면에 불의 흔적을 남길 수 있어 마티에르 표현에도 적합했다. 이 시기에 제작한 작품들은 앞선 작품들보다 형태적인 측면에서 섬세하면서도 앙상할 정도로 가느다란 선적 표현이 주를 이루며 양감을 더한 초현실적 형태의 추상 조각을 선보인다. 

송영수는 조각을 시작한 이래 지속해서 다뤄왔던 냉전 시대를 ‘새’를 통해 표현했다. 그에게 새의 존재는 거대한 날개를 펴고 비상하거나 유유히 창공을 가로지르는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하늘을 향해 날아가지 못하고 지상에 남아, 갈등과 대립의 상황에 놓인 절망적 실체이다. 그가 앙상한 뼈대로 형상화한 새는 1960년대 팽배했던 죽음과 공포, 불안과 허무, 소외 등과 같은 비극적 심리가 투영된 매개체로 생과 사의 갈림길에 던져졌던 나약한 인간에 대한 은유이자 처참한 현실을 대변하는 존재이다. 

송영수는 날지 못하는 새가 그토록 염원했던 비상을, 초월의 세계까지 날아가고자 했던 희망을 하늘에 존재하는 해와 달, 별과 같은 대자연의 요소로 표현했다. 빛나는 그 존재들은 지상의 고통과 상흔이 승화된 세계이자 그 세계로 나가고자 했던 작가의 열망이다. 그리고 초월적 세계에 대한 작가의 동경이기도 하다. 이와 함께 양감이 두드러진 석고와 테라코타를 이용한 초현실적 추상조각들은 마치 지상에서의 고통을 묵묵히 감내하는 존재로서 시대를 회피하지 않았던 작가의 또 다른 모습을 담담하게 그리며 현실을 딛고 있던 작가의 온기를 전한다. 


4. 알레고리, 때를 위한 순간들
송영수가 남긴 수많은 스케치북에는 그의 시간과 고민 그리고 다양한 예술적 구상들이 담겨있다. 작가 노트에서 밝히고 있듯 그는 자연을 면밀히 관찰하고 아직 한 번도 그리지 않았던 자연의 특질을 발견하여 독창적 스타일을 만들고자 했다. 항상 스케치북을 지니고 다니며 떠오르는 형상들을 드로잉 했고, 그 기록은 송영수 조각의 근원이었으며, 미처 발표하지 못한, 채 날지 못한 새들의 날갯짓으로 창조의 시발점이자 탐구의 여정이다. 

“스케치북은 그의 호주머니나 책상 위에서 항상 떠날 날이 없었습니다. 
차 안에서도 앉기만 하면 호주머니에 있는 스케치북을 꺼내 먼가를 그렸고 잠들기 전이나 잠이 깬 직후에도 늘 스케치북을 머리맡에 두고 작품을 구상하곤 하였습니다. … 
가끔 저에게 ‘추상 조각을 만들려면 반드시 구상적인 바탕이 있어야 하는 거야’ 라며 
인체 데생한 것들을 보여주며 자랑하기도 하였습니다.”  

사공정숙(미망인, 고려대 명예교수)


5. 에필로그, 송영수

「피 없는 돌에 생명을 주고 
거친 쇠부치에 아름다운 영혼을 
깃들이게 한 사람 
마흔 한 살의 자기 나이보다 
더 많은 날들을 살며 그는 
이곳에 잠들어 있다.」

이어령(문학평론가, 초대 문화부 장관) 



공허 Emptiness, 1970, 혼합재료 mixed material, 74×89×19.5㎝


새 Bird, 1969, 동 copper, 146×95×75㎝


승화 Sublimation, 1965, 청동 bronze, 186×36×24㎝


토템 Totem, 1970, 스테인리스 스틸 stainless steel, 91×5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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