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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카익 뷰티-삼국시대 손잡이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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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카익 뷰티 – 삼국시대 손잡이잔 

2022년 8월 25일 – 10월 16일

 

현대화랑은 《아르카익 뷰티 – 삼국시대 손잡이잔》을 개최한다. 10년 전부터 현대화랑은 조선시대 풍속화, 민화책거리, 화조도, 문자도, 그리고 목가구, 옛 공예 등 우리의 옛 문화를 전시로 기획하여 국내외에서 큰 호응을 받아왔다. 그 연장선의 전시 《아르카익 뷰티 – 삼국시대 손잡이잔》은 그동안 조명 받지 못한 삼국시대 가야ㆍ신라 손잡이잔 100여 점을 선보인다.


평이한 기형과 문양에 유약을 바르지 않고 구워 태토의 느낌이 그대로 살아 있는, 약간 메마르거나 파리한 맨살의 질감. 미술사에서는 이런 것을 가리켜 ‘고졸(古拙, archaic) 양식’이라고 말한다. (최범/디자인 평론가, 「고졸한 스투디움, 현대적인 푼크툼」 중에서)


약 1500년 전 삼국시대 가야와 신라인들이 만든 손잡이잔은 오늘날의 머그(mug)와 그 형태가 매우 유사하면서도 역사적 가치와 공예품 이상의 미적 가치를 동시에 지닌다. 그리스•로마 시대의 뿔잔(각배)을 비롯한 손잡이잔의 영향을 받아 4~6세기에 중점적으로 만들어지고 사용되었던 가야와 신라의 손잡이잔은 한국 전통의 간결하고 단아한 형태미와 민첩한 선을 유지하면서 현대적인 조형미까지 갖춘 시대를 뛰어넘는 아름다움을 선보인다.


세계 문명사에서 다양한 손잡이잔을 만들어 사용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가야• 신라의 손잡이잔은 특별하다. 당시에 손잡이가 붙은 잔들은 음료나 차 등을 마실 때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각양각색의 크기와 형태를 지닌 개성적인 손잡이를 거느린 이 잔들은 일찍이 가야와 신라 사회에서 전용 제기를 갖춘 제의(祭儀)와 음다(飮茶) 문화가 상당히 발달하였음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손잡이잔들은, 언덕의 경사면에 길게 만들어진 터널형의 오름가마로 불리는 등요(登窯)에서 1000도 이상의 고온으로 구워낸 것으로 두드리면 쇳소리가 날 정도로 강하며 회청색에서부터 먹색, 갈색 등 다채로운 색감을 두르고 있다. 아울러 잔의 표면 무늬는 대부분 세상 만물의 기원이자 불멸을 상징하는 물(水, 雨)과 물의 기원인 구름(雲) 등을 나타내는데, 이 미니멀하고 감각적인 도상들은 현대 추상화를 보는 듯하다. 


우리 문화와 미술 기원의 핵심을 담은 삼국시대 가야와 신라의 손잡이잔은 한국미의 원초적인 형태와 고졸한 미감의 전통을 온전히 보존하고 있는 대표적인 유물인 동시에 현대적인 조형미를 갖춘 매력적인 오브제이기도 하다.


나는 오랜 세월 살아남아 내게 온 것들의 피부 깊숙한 곳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에 신중하게 귀 기울인다. 그것은 매우 긴장된 순간이다. 이를 애완하고 수집하는 것, 그것들을 내 삶의 언저리에 힘껏 두르는 일은 내 삶의 스타일, 감각의 스타일을 만드는 일이다. (박영택, 『앤티크 수집 미학』(2019, 마음산책) 중에서)


이번 전시는 미술평론가 박영택 교수가 10년간 각고의 노력으로 수집한 삼국시대 가야ㆍ신라 손잡이잔의 예술성과 가치를 재조명하고자 기획되었다. 《아르카익 뷰티-삼국시대 손잡이잔》은 가야•신라 토기 문화의 경외스러운 예술성을 재발견하는 뜻깊은 전시가 될 것이다.



에세이 


수집자의 변(辯)


박영택(경기대교수, 미술평론가)


오랜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반복해서 만들어져 한국미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좋은 유물이자, 수천 년 전에 이곳에 살았던 옛사람들의 미의식과 삶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로 가야와 신라시대 제작된 손잡이잔이다. 거칠고 투박해 보이지만 간결한 형태와 소박한 멋에서 연유하는 자연스러운 미감이 압권이다. 더구나 뛰어난 조형 감각과 창의적인 예술성이 번득이고 있다. 한국 현대미술작품을 감상하고 이에 대해 글을 쓰는 일이 업인 내가 손잡이잔에 매료된 것은 무척이나 우연한 계기에서 비롯되었다. 어느 날, 지방에 있는 한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작은, 신라 질그릇 잔 몇 점을 보았다. 지극히 평범한 민무늬의, 흔한 신라 잔에 속하지만 소박하고 귀여우며 나름 견고한 미감이 기품있게 흐르고 있었다. 탁월한 조형감각에, 현대적인 느낌마저 거느리고 있었다. 그 시간 이후 현재까지, 나는 가야와 신라시대 손잡이잔을 구하는데 온 정성을 다해왔다. 형편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전국을 헤매고 다니면서 손잡이가 달린 잔을 찾고 또 찾았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저 예쁘고 좋았다. 무엇보다도 단순하고 소박한 잔이 지닌 조형미의 됨됨이가 나무랄 데가 없어서 힘껏 수집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그동안 손잡이 달린 잔을 대략 350여 점 이상 수집했다. 큰 항아리, 장경호, 고배, 뿔잔 등도 여럿 구했지만 어느 시간부터는 오로지 손잡이잔만으로 제한해서 찾고 있다. 작고 비교적 가벼운 잔은 제 한몸으로 기물의 존엄함을 스스로 발설한다. 오묘하고 기특한 형태와 아득한 이치들이 작은 몸 안에 잔뜩 웅크리고 있다. 어둡고 깊으며 크고 둥글고 넓은 무덤 안에서 망자와 함께 지내다가 그 공간에서 풀려나 빛의 세계로 살아 돌아온 것들의 피부는 그간의 시간이 덮쳐 문질러놓은 상처들로 참혹하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게 마모된 피부는 질긴 생명력의 표상이자 고난을 극복한 자랑스러운 상처들이라 서글픔 속에서 빛을 낸다. 신도 인간도 모두 다 떠난 자리에, 흙으로 빚은 이 작은 손잡이잔은 여전히 살아 나에게 왔다. 오래 살아남은 것들은 유한한 존재에게 먹먹한 감동과 무한한 영감을 던져주기 마련이다. 모든 골동에 대한 기호와 옛것에 대한 애착은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의 절임에서 형성된, 형언하기 어려운 ‘땟물’이 안기는 먹먹함에 기인한다. 그 시간의 흔적은 사물의 피부에 얹혀 있다. 그러니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현존하는 피부는 세월과 시간의 마찰을 견뎌낸 최후의 잔해들이다. 그 사연을 낱낱이 표현하기란 불가능하다. 그것은 모든 글과 이미지를 무력하게 한다. 오로지 시간을 견뎌낸 피부만이, 표면만이 생생한 얼굴로 ‘그것’을 드러낼 뿐이다. 보는 이들은 그저 침묵 속에서, 미욱한 상상력을 통해 사라진 것들을 경이롭게 재연하고자 시도할 뿐이다. 현재의 시간만을 살 수밖에 없는 나에게 이 손잡이 잔은 과거의 시간을 진지하게 성찰하게 한다.


이 전시는 그동안 수집한 가야와 신라시대 손잡이잔이 지닌 형태와 문양, 색채 등에 대한 사적인 감상, 조형적 아름다움을 선보이고자 한 전시다. 이와 함께 단행본 책도 출간할 예정이다(삼국시대 손잡이잔의 아름다움, 아트북스, 9월 중순)


미술평론가의 시각에서 아득한 고대 부장품의 성격이 짙은 작은 잔을 온전히 시각이미지로, 미술작품으로, 조각이나 조형작품으로 접하면서 이에 대한 시각적인 독해나 고백의 성격이 짙은 전시/글이다. 고고학이나 고미술 전공자, 연구자가 아닌 입장에서 섣불리 옛 잔에 대해 글을 쓰고 전시를 연다는 위험부담을 안고 있지만, 가능한 한 지나치게 자의적이고 왜곡된 차원이 아닌 선에서 손잡이잔을 하나의 시각적 대상, 미적 오브제로 읽어보고 제시하려 했다. 


흔히 토기라 불리는 이 삼국시대 질그릇 잔들은 골동의 가치는 있지만 학술적인 가치는 전무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이유는 생명력이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문화유산이 골동품과 다르기 위해서는, 말하자면 족보가 있어야 하는데 현재 시중에서 판매되는 유물들은 그 내력을 알 수가 없다. 이른바 학술적 가치를 지닌 문화유물이기 위해서는 그것이 어느 환경에서, 즉 무덤 속에서 아니면 다른 여건에서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어떤 유물들과 동반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느냐 하는 내력을 갖추어야만 비로소 생명력을 가지기에 그렇다. 지금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것들은, 내가 수집한 것들 대개는 오래전에 도굴되어 유통된 것일 수 있다. 비록 아쉬움은 있지만, 그래서 손잡이잔의 정확한 내력을 알 수는 없지만 잔 자체가 주는 아름다움과 조형적인 매력을 감상하는 데는 별다른 지장이 없다. 그렇기에 나는 그런 족보나 학술적 가치에 개의치 않고, 그것을 고고학적 유물이나 고대 유산이기보다 너무나 현대적인 오브제, 세련된 미적 조형물로 감상하고 편애했다. 나는 가야와 신라의 손잡이잔을 전적으로 현대 조각, 오브제 작업으로 여기며 감상하고 완상하며 수집했다. 그것들은 결코 단순한 잔에 머물지 않는다. 너무나 세련되고, 아름답고, 탁월한 조형감각으로 빚어진 작품 그 자체다. 그러니 어찌 그것을 온전한 미적인 존재로, 불가사의한 조형으로 바라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부장용 껴묻거리들로 컴컴하고 눅눅했던 무덤에서 나와 내 눈앞에 자리한 대략 천 오백여 년 전의 손잡이잔들은 당시의 장인들이 오직 자신만의 감각과 몸으로 빚은 것들이다. 손맛과 불맛으로 이룬 그릇들은 작은 기물에 불과하지만 그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 간절한 생사의 염원이 고스란히 내려앉아 있는 동시에 저마다 차별화된 미감을 간직하고 있는 동시에 뛰어난 조형미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것들이다. 그러니 어찌 이 작은 손잡이 잔에 매료되지 않을 수 있을까?





아르카익 뷰티-삼국시대 손잡이잔

사진 제공: 현대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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