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전시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전시상세정보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왕칭송 사진전 : The Glourious Life

  • 상세정보
  • 전시평론
  • 평점·리뷰
  • 관련행사
  • 전시뷰어
The Glourious Life
WANG Qingsong



<forum>, 2001, ⓒWANG Qingsong

2022.9.3 -  10.15

아트스페이스 루모스
대구시 남구 이천로 139, 5층 / www.artspacelumos.com / 053-766-3570

을 갤러리
대구시 남구 이천로 134 / www.eul-gallery.com / 053-474-4888



전시소개


<Future>, 2001, ⓒWANG Qingsong


베이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중국 현대사진의 대표 사진작가 왕칭송(王庆松, WANG Qingsong)사진가의 전시가 아트스페이스 루모스(대표 석재현)의 기획으로 9월 3일부터 10월 15일까지 ‘아트스페이스루모스’와 ‘을 갤러리(대표 김을수)’ 두 공간에서 동시에 열린다. 2014년 대구미술관 기획 2인전(왕칭송, 정연두) 이후 대구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왕송칭 개인전이다. 아트스페이스 루모스는 사진전문 갤러리로 2018년 개관 이후 국내외 주요 작가들을 지역에 소개함과 동시에 지역 젊은 사진가들 지원 기획 전시를 해오고 있다. 이번 왕칭송 개인전은 작가 작품의 대형 스케일이 가지는 느낌을 관람객에게 온전히 전하기 위해 인접한 현대미술전문 전시공간인 ‘을 갤러리’와 협업하여 전시를 마련하였다.

중국 사진계에 설치미술과 행위예술을 접목시켜 중국 현대 사진예술에 반향을 일으킨 왕칭송 작가의 개인전 ‘The Glorious Life’는 스스로의 작업을 ‘사회적 다큐멘터리’라 부르며 중국의 사회현상, 특히 문화대혁명 이후 급격한 경제 개방이 이뤄지고, 세계화와 도시화의 급물살을 탄 소비문화가 중국에 상륙하면서 중국인이 겪게 된 혼란에 주목한다. 날카로운 식견과 직설적인 화법을 다양한 연출과 거대한 스케일을 통해 담아내며 당대의 중국이 겪는 사회적, 정치적 혼란의 현실을 초현실적인 사진으로 만들어내어 다큐멘터리 사진의 의미영역을 확장 시킨 전시이다.

왕칭송은 본래 회화 작업에 몰두했으나 1990년대 후반 사진으로 전향했다. 경제 개방 이후 중국 사회는 빠른 변화를 겪었는데, 이 속도가 너무 빨라 회화로는 포착이 어렵다고 판단하며 사진을 시작하게 되었다. 자신의 모습을 디지털로 합성해 작업한 왕칭송의 초기 디지털 포토 몽타주 사진은 1990년대 전통 다큐멘터리 사진에 머물러 있던 중국 사진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며 중국을 대표하는 사진가로 성장한다.

“나는 스스로를 예술가보다는 지속적으로 사회의 현장을 담는 기자에 가깝다고 생각한다”는 작가의 가치관은 그의 대표 시리즈인 ‘The Glorious Life’를 탄생하게 했다. 이번 전시명이기도 한 ‘The Glorious Life’는 그가 1997~2018년 진행한 사진작업을 통틀어 지칭한다. 한글로 번역하면 ‘생활 예찬’인데, 화면 속 이야기들은 오히려 자신이 마주하고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대차게 비꼬는 느낌이다.

예컨대 중국의 교육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하는 〈Follow You〉(2013)와 같은 작업 안에서도 왕칭송은 과거를 대하는 중국인의 자기모순적인 태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Follow’ 연작은 교육과 지식인에 대한 작가의 통찰을 담았다. 과도한 중국 대학입시, 한 번 보고 버리는 책, 공부했지만 남는 것이 없는 지식 등이 소재다. 사진의 뒷 벽에 쓰인 ‘好好学习ㆍ天天向上(열심히 공부하면 나날이 실력이 향상된다)’등은 실제 교실에 쓰인 문구다. 사회적 문제로 등극한 ‘대학입시’이지만 해결책은 요원하고 학생들은 전쟁과 같은 하루하루를 보낸다. 성공을 위해 매진하는, 하지만 갈피를 잡지 못하는 중국사회의 단면에서 우리의 모습이 읽힌다.



<Follow You>, 2013, ⓒWANG Qingsong


이렇듯 왕칭송의 작업은 1990년대 중국의 젊은 세대들이 겪는 사회적, 이데올로기적 혼란을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마오쩌둥의 글을 읽고 자라면서 정치적 사상에 물들고 꿈을 키웠지만, 자본주의 사상이 중국에 들어오면서 그들이 바라보는 이상에 변화를 담아냈다.

현재는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지만 1978년 1인당 GDP가 379달러에 불과했고, 농촌 빈곤인구가 2억 5000명에 달한 농업 국가였던 중국의 급격한 변화. 부자가 되고,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급격하게 퍼지며 드라마틱한 발전을 이뤘지만, 중국에 자문화 중심주의적 사상인 ‘중화사상’을 발생하게 했다. “세계에서 중국이 최고”라 외치는 중국인의 목소리. 하지만 작가는 풍요로워만 보이는 중국의 경제 성장 이면에 드리워진 어두움을 고발하고 있다.


전시서문

불협화음이 머무는 중국의 황홀사회

석 재 현 / 전시 기획자

The Glorious Life, 중국의 황홀사회는 어떤 것일까. 중국은 지난해 개혁개방 40주년을 맞았다. ‘중국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경제 부흥의 대장정을 이어온 결과, 그들의 초고속 성장은 실로 눈이 부실 정도이다. 1970년대 한국이 ‘한강의 기적’을 이뤘다면 중국은 말 그대로 ‘대륙의 기적’을 이뤘다. 개혁개방을 시작했던 1978년의 중국은 1인당 GDP는 고작 379달러, 대외무역총액은 206억 달러에 불과했다. 거기에 농촌 빈곤인구가 무려 2억5000만 명이나 되는 낙후된 농업 국가였다. 그렇기에 개방 당시에는 기본적인 의식주 해결이 그 목적이었으나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라는 성과를 거뒀으니 그 드라마틱한 변화는 가히 천지개벽에 가깝다. 그러니 중국 사람들에게 있어 그 기적은 얼마나 황홀恍惚했을까. 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황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중국 역시 그 황홀함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만 했다. 대륙 곳곳이 건축현장으로 바뀌자 삶터는 늘 공해에 시달리고, 거대한 빌딩 숲 속에서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부랑자처럼 떠돌게 됐다. 곳곳에 발을 디딘 서구의 문화가 중국의 환경에 제대로 호환되지 못하자 전통과 현대, 도시와 사람들, 막막한 현실과 허황된 꿈 사이에 불화가 밀려들었다. 자신이 목격한 그 수많은 불협화음들을 작업의 모티브로 삼아 황홀사회를 세상에 드러낸 이, 그가 바로 왕칭송이다.

“예술가가 단지 예술 그 자체가 된 작품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술가로서 사회현상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물론 긍정적인 영향도 있지만 나는 서구문화의 부정적인 영향에 비판적 시각을 가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사회에서 살아간다면 반드시 마주해야 하고 직시하고 관찰하며 보는 것에 대해 질문을 던져야만 합니다.”

중국 현대사진을 논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아니 꼭 논해야만 할 사진가 왕칭송. 그는 중국현대사진예술의 큰 반향을 일으킨 장본인이자 누구나 인정하는 마스터이다. 미술을 전공했던 그는 중국의 현실이 지닌 아이러니를 표현할 창조적인 매체로써 사진을 선택한다. 설치미술과 행위예술이 접목된 왕칭송의 작품들은 전통적인 다큐멘터리 사진에 머물러 있던 중국 사진계에 새로운 영역을 제시했다. The Glorious Life, 황홀사회가 지닌 가치의 혼돈을 냉소적이면서도 유쾌하게, 그리고 비판적이면서도 예술적으로 구현한 그의 작품들은 중국현대사진의 개념을 새로운 접근과 문화적인 의미로 풍성하게 확장하고 있다. 

무려 7년이었다. 원치 않았지만 중국과의 인연이 끊어진 시간들은 나에게 늘 아릿한 통증이자 갈망이었다. 2011년 따리사진축제를 계기로 중국을 다시 오갈 수 있게 됐을 때 시간의 공백을, 정보의 부재를, 다시 찾은 자유를 메우기 위해 참 열심히 대륙의 사진가들과 작품에 집중했다. 그 때 따리大理와 베이징北京, 텐슈이天水에서 연달아 작품을 접하게 된 사진가가 바로 왕칭송이었다. 욕망과 고립, 붕괴와 혐오, 상실과 모순을 담고 있건만 무겁기는커녕 재치와 통찰이 빛나던 작품들, 거기다 완성도 역시 뛰어나 광활한 자연에나 붙임직한 ‘경이롭다’는 표현이 절로 떠오를 정도였다. 그리고 2012년, 드디어 그를 만날 기회가 생겼다. 중국 사진 축제 리뷰어로 함께 참여했던 싱가포르 포토페스티벌의 디렉터 그웬 리와 왕칭송의 북경 스튜디오를 방문했다. 예술가들이 모여 있는 시내 외곽지 차우창디草場地란 지역에 위치한 복층구조의 스튜디오는 천고가 무려 6미터였다. 이미 그 당시에 숭장지구에 마련한 8미터 높이의 스튜디오와 베이징영화스튜디오에서 대형작업을 해오고 있던 그의 예술가로서의 지나온 삶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왕칭송은 1960년대 시골에서 태어난 전형적인 중국인의 삶을 살았다. 그는 헤이룽장성黑龍江省에서 태어나 세 살까지 그곳에서 살았는데 아주 어린 시절이었지만 당시 그곳은 중국과 소련이 대치 상황이었던 터라 ‘탱크’를 본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있다. 이후 허베이성河北省에서 자라면서 늪지였던 곳이 유전으로 바뀌고, 석유 채취를 하는 노동자들의 삶과 마주한다. 그의 아버지 역시 그곳의 노동자였지만 사고로 인해 세상을 떠나고, 왕칭송은 가족들은 생계를 책임지는 어린 가장의 무게를 견뎌야 했다. 시골에서 자라던 그는 대학에 진학한 후 중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쓰촨성四川省으로 보금자리를 옮긴다. 대도시의 풍경도 낯설거니와 일자리를 찾아 떠도는 일꾼들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대학을 졸업 한 뒤 베이징에 자리 잡은 뒤부터는 도시화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불화를 이루는 상황들을 좀 더 자주 접하게 되고, 이렇게 그의 인생 전반에 걸쳐 마주한 그 모든 경험들은 왕칭송 작업의 모티브가 되었다.

어릴 때부터 미술에 대한 열정이 뛰어났던 그는 20대 후반 쓰촨미술대학四川美术学院을 졸업하고 유화작업을 시작했다. 유화작업에 몰두하던 그의 생각이 바뀐 것은 1996년이었다. 당시 새로운 미디어로 자리매김한 사진이야말로 그가 경험한 중의적인 황홀시대, 그 격동의 순간을 창조적으로 표현할 가장 적확한 매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1997년 아내와 데이트를 하던 시절, 처음으로 미놀타 필름 카메라를 구입하면서 왕칭송은 본격적인 사진작업을 시작한다. 작은 마당이 있는 집의 벽돌담은 스튜디오의 배경처럼 사용하고 98년도의 작품 Thinker와 Catcher는 모델이 된 왕칭송을 대신해 아내가 셔터를 눌러주기도 했다. 당시 서구에서는 이미 셀프 포트레이트가 유행이었지만 왕칭송은 그저 하루 1,200위안元이라는 모델료를 지불할 여유가 없었다. 거기다 그가 원하는 개념을 표현함에 있어 신체를 드러내야 하는 경우에 직업모델이라도 얼굴이 나오는 것을 꺼려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중국 개혁개방을 이끈 지도자 덩샤오핑이 일약 세계적인 유행어로 만든 말이 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를 잘 잡는 고양이가 좋은 고양이라는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이 그것이다. 발전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 원칙이며, 부자가 되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라 여기는 것이 1990년대 당시 중국의 분위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경제가 드라마틱한 변화를 맞이한 데다 2008년 북경올림픽과 2010년 중국 상하이 월드 엑스포에 대한 기대감까지 더해져 모두들 핑크빛 미래, 황홀사회를 꿈꾸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왕칭송은 그에 역행하는 사고를 지니고 있었다. 풍요로워만 보이는 경제성장 이면에 드리워진 검은 그림자들, 인간성 상실과 문화적 충돌과 사회 전반의 모순들이 그의 눈에 포착됐다. 황홀사회 속에 자리한 또 하나의 황홀사회, 위조된 현실과 조작된 관점으로 채워진 경제발전 이면을 그는 담아내고 있다.

왕칭송이 선보이는 작품의 개념을 쉽게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역할극’이다. 그는 엉뚱하면서도 기발한 인물로서 부처와 역사 속의 문인, 선생님, 군인, 그리고 부랑자의 모습으로 자신 스스로를 등장시킨다. 이렇게 자신의 모습을 디지털로 합성한 초기 작업에서부터 2000년대 이후 사진 속에 등장한 인물만 해도 1200명이 넘는, 그야말로 입이 쩍 벌어질 정도로 많은 인원을 동원한 UN Party와 같은 작품까지 왕칭송은 일관된 역할극을 통해 중국이 경험해 온 사회적 딜레마들을 담아낸다. 그는 메시지 전달을 위해 일반적인 다큐멘터리 사진이 아닌 자유로운 변화의 형식을 취하지만 그 형식은 최상의 완성도를 향하고 있다. 왕칭송은 자신의 내러티브를 시각적으로 전달하는데 있어서 아주 뛰어난 감각을 지닌 사진가다. 연극무대처럼 과장된 상황을 하나의 장면으로 연출하기까지 시대적 배경과 상황들, 그리고 각각의 인물이 지닌 역할과 소품 등 작은 디테일까지 촬영을 하기 전 스케치를 한다. 설치미술과 행위예술이 결합된 수많은 인물들이 한 컷의 사진 속에서 어우러지려면 그 스케치라는 것이 얼마나 완벽해야 할지, 그 스케치 또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랜 작업을 통해 왕칭송은 그의 아이디어를 소화해 내고 표현해 줄 수 있는 매체가 사진 밖에 없음을 느낀 뒤 자신의 예술방식을 사진으로 고정하게 된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왕칭송의 작업방식에 대해 궁금증을 가진다. 어찌 보면 연극무대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한 작품들은 어떻게 촬영 됐을까. 일례로 42미터에 이르는 초대형 대작 The History of Monuments같은 작품은 어떻게 완성됐을까 하고 말이다. 포토샵을 이용한 합성사진에서 시작한 그의 작업은 8x10인치 필름 대형카메라를 이용하면서 새로운 형식을 활용한다. 거대한 칠판을 만들어 그 위에 사다리를 놓은 두 장의 사진이 시리즈로 묶인 작품 One World, One Dream처럼 딥티크diptyque, 그리고 세 장의 사진이 한 작품이 되는 트립티크triptyque의 형식을 도입하기도 한다. 그의 작업은 대부분 대형스튜디오에서 영화감독들이 주로 사용하는 테크닉을 활용해서 만들어진다. 왕칭송은 대형카메라를 사용해 촬영한 네거티브를 스캔해서 프린트함으로써 높은 해상도는 물론 묘사된 이미지들의 디테일까지 묘사하는 섬세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작업방식 만큼이나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것은 그의 헤어스타일이다. 왕칭송은 2000년대 후반부터 작업에 등장하는 자신의 헤어스타일에 상징적 의미를 싣게 된다. 대도시, 경제지상주의를 배경으로 등장하는 자신의 모습이 나약한 지식인, 혹은 치료를 받는 환자의 모습으로 비춰지길 바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왕칭송은 관람객에게 등을 보이거나, 관음증을 가진 인물처럼 보이거나, 정치적 혹은 사회적 상황을 지켜보는 목격자처럼 작품 속에서 자신을 등장시킨다. 과장되지만 재치 있게, 사회적 이슈들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키며 관객들이 풍자 속 이미지들에 계속적인 의문을 품게 만드는 그의 연출력은 가히 독보적이다. 더구나 최근작 Blood-Stained Shirt란 작품에서는 자신의 의도를 구현키 위해 수백 개에 이르는 브랜드 로고를 직접 자르고 기워서 만든 의상을 입은 모습을 만날 수 있다. 큰 프레임 속 단지 작은 하나의 디테일일 뿐이지만 완벽한 작업을 위해 그가 기울인 노력들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긴 장발에 포니테일 스타일을 고수했던 청년 왕칭송은 거리에 서면 늘 공안의 검문에 시달렸다. 그래서 그는 첫 해외 전시에 참여하면서 받은 여권을 늘 몸에 지니고 다녔다고 한다. 당시 여권은 중국 정부에서 신분을 보장하는 사람으로 통했기 때문이다. 사회가 부여하는 안정적인 테두리가 아닌 그 주변 어디에선가 오랜 시간 머물렀던 그. 그래서 황홀사회의 이면을 그려내는 왕칭송의 작품들은 따듯한 색감을 입혔으나 냉소적인 빛이 더 강렬하다.

“사진가는 사회에 대해 알기 위해 무엇이든 배워야 합니다. 이 사회에 대해 더 많이 아는 것만으로도 사진은 인류의 온기를 누릴 수 있습니다. 사진을 찍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생각이나 목적 없이 사진을 찍지 않는 겁니다. 디지털 미디어 시대지만 셔터를 누를 기회를 소중히 간직해야 합니다.”

이번 전시 《왕칭송: The Glorious Life》는 중국현대사진을 대표하는 사진가 왕칭송의 지난 20년간 그가 심혈을 쏟은 사진과 영상작업들, 그 중에서도 그의 사진적 맥락을 최대한 밀도 있게 읽어볼 수 있는 작품들을 선별했다. 왕칭송이 오랜 시간 동안 일관되게 우리에게 들려준 중국 사회의 현실과 그가 지닌 작가적 시선, 더불어 중국 현대사진의 현주소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전시가 바로 The Glorious Life, 황홀사회다. 이번 전시는 중국현대사진을 대표하는 사진가 왕칭송의 작품을 연대기별로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한다.



<Forever and Ever>, 2017, ⓒWANG Qingsong






-
◎ Opening Times
9. 3 – 10. 15
화요일 – 일요일
10:00 – 18:00
입장료 : 무료

매주 월요일 휴관

◎아트스페이스 루모스
대구광역시 남구 이천로 139, GEO Space 5F

◎을갤러리
대구 남구 이천로 134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