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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구: Berlin, A Candy, A Woman in Hij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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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 In the Dark, 2023, Acrylic and oil on canvas, 53x72.7cm



Berlin, A Candy, A Woman in Hijab

미술관과 거리 곳곳에 놓인 예술작품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다양한 마음이 투영되기 마련이다. 동시대 시각예술의 잠재력은 관람객의 마음이 모인 조우에서 극대화되는 것처럼, 15여 년간의 전병구 작품 활동을 거쳐 온 해석과 감상 또한 다양하다. 인물화, 정물화, 풍경화라는 범주로 구분 짓고 그의 붓질과 표현법에 관심을 가지는 이가 있는가 하면, 그의 모든 회화에서 풍기는 독특한 향에 집중하며 장르가 무색한 ‘전병구의 회화’로 다가가는 평도 있다. 전병구 작가의 5번째 개인전인 《베를린, 캔디, 히잡을 쓴 여자》는 후자에 무게를 싣고 2021년 개인전 이후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들여다볼 때 더욱 유의미하게 감상할 수 있다.

 그간 작가에게 가장 크게 작용한 영감은 지난 2022년 여름 유럽에서 체류했던 시간일 것이다. 달리 말해 이 경험은 작가가 마주하고 포착했던 풍경 그리고 대상이 온전히 바뀌는 큰 사건이기도 하다. 주로 매일 오가는 산책로나 여행지의 산과 바다 풍경, 기억에 남았던 그 날의 자연물 그리고 추억이 있는 소지품 등을 그려왔던 작가에게 긴 여정이 가져다준 변화는 실로 컸다. 작가는 그를 둘러싼 일상이면서도 특별한 기회인 미술관에서의 시간을, 나아가 다른 예술가의 작품을 회화로 옮겨오길 시도했다. 캔버스라는 평면 공간 내에서 전시를 재구성하는 것과도 같이 회화를 색다르게 구상하면서 작가는 작업 실천의 영역을 확장했다. 이는 기존 전병구의 회화와는 다르게 다소 폐쇄적인 공간감을 불러오면서도 농담을 던지는 것 같은 재치를 발휘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작업 태도와 차별화된다. 

세 가지 '신작 그녀(Her)'(2023), '어둠 속에서(In the Dark)'(2023), '베를린 구 박물관의 고대 그리스 도자기(Ancient Greek Pottery in the Altes Museum)'(2023)에서는 우리에게 익숙하면서도 생소한 대상이 등장한다. 미술관 천장에 매달린 조각가의 설치 두 점과 박물관 좌대 위에 놓인 유물이다. 작가가 독일에서 마주한 조각들은 회화로 변모하면서 두 가지의 새로운 면모를 가지게 된다. 첫째는 새로운 2차원의 공간과 구도를 얻는 변화이고, 둘째는 다른 대상을 뒤집어쓰는 존재론적인 전환이다. 그로피우스 바우(Gropious Bau)에 전시된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의 조각 두 점은 전병구의 캔버스 위에서 회화-화 되면서 부피와 질감을 뒤로하고 평면에 달라붙었으며, 둘 중 어느 작가의 작품을 관람할지 선택을 요구하는 듯한 실험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전병구의 유희는 작품에서 서사하는 이야기의 전후 시점에 대한 공상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기존의 회화와 다른 태세를 취한다.

한편, 전병구는 그간의 회화에서 가끔 원근법을 없애는 시도를 해왔다. 이 시각적 결과 또한 새로운 공간감과 재치를 오가는 유희적 측면에서 동일선상으로 눈여겨 볼만하다. 이번 전시에서는 '제목 없는 밤(An Untitled Night)'(2022)과 '픽셀 창문(Pixel Window)'(2023) 두 가지를 대표적 예로 들 수 있다. 회화에서 실제 보이는 장면이 가지는 거리감을 비약하는 것은 미술사적으로 오래 지속되어온 시도다. 이색적인 장면을 구성하는 납작한 회화는 묘사를 뛰어넘는 실천적 사례로 비유되기도 한다. 전병구는 공간감을 뒤틀면서 인물화, 정물화, 풍경화로 구분되는 것을 경계하고, 유연하면서도 확고한 본인만의 회화 언어를 구축하고자 했다. 특히 '픽셀 창문'은 홍승혜 작가의 유리창 설치 작품 너머 보이는 풍경으로, 앞서 살펴본 작가의 실험적 질문을 넘어 두 작가의 공존을 꾀하고 있다.

작가가 추구하는 시도는 전시 제목 ‘베를린, 캔디, 히잡을 쓴 여자’에서도 현현하게 드러난다. 세 가지 단어는 모두 그의 회화 제목으로, 각각 풍경, 정물, 인물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합쳐짐으로써 하나의 명제가 된 세 작품은 그대로 전병구의 회화이자 다른 차원의 장르가 된다. 유럽에서의 경험을 기반으로 하는 작업이 아닐지라도 2021년부터 2022년에 걸친 출품작들에서도 이 감각을 엿볼 수 있다. 2021년을 기점으로 회화가 발현할 수 있는 색상의 잠재력을 다각도로 탐구해온 전병구는 그의 독특한 색감을 독창적인 언어로 고정하기 위해 붓질의 형식과 기법 등을 최대한 비가시적 요소로 전환해 왔다. 그러면서 점점 그만의 맛이 풍기게 되는데, '무제(Untitled)'(2021), '황구지천(Hwanggujicheon)'(2022), '캔디(A Candy)'(2022)는 그의 전형이면서도 비로소 안정된 기교를 담아내고 있다.

작업이 거듭될수록 붓은 자취를 감추어 가는 반면, 흥미롭게도 캔버스의 물질성은 작품마다 다르게 존재감을 피력하고 있다. 작가는 근 몇 년 동안 작업의 풍경과 대상뿐만 아니라 작품마다 질감과 표현을 달리해보고자 캔버스 밑작업에 차이를 적용해 보고 있다. 4년 전 시작했던 치열한 색상 언어 고민과 같이, 이번에는 회화가 전달할 수 있는 물질성을 탐구해보기 위해서다. 안료의 종류와 배합으로 색상의 차별화를 도모했다면, 작가는 캔버스 표면의 거칠고 매끈한 정도를 달리해 가며 회화가 자극할 수 있는 감각의 영역을 촉각까지 확장해 나가고 있다. 전병구는 그의 회화가 대체 불가능한 특정 장르로 규정되길 바라면서도 여전히 그 가능성을 타진해나가고 있다. 작업을 관통할 이야기를 발견하고 또 그를 구현하기 위한 기술을 적용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화가가 되어 가는 과정을 지속하는 것이다. 이번 전시를 통한 유희적 표현 또한 시도이자 결과로서 후일의 작업에 중요한 토대가 될 것이다.

글 이지민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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