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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향자 사진작품전 : 神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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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향자 - 神話


■ 전시개요

전 시 명 임향자 - 神話
기     간 2024년 2월 21일(수) ~ 29일(목)
오 프 닝     2024년 2월 21일(수) 오후 5시
장     소 성곡미술관 (서울 종로구 경희궁길 42)
협     찬     (주)두릭스




■ 전시평론

내 인생의 화양연화

누구에게나 한평생 살아가는 동안에 빛나는 한때가 있기 마련이다. 물론 꽃봉오리가 활짝 피어나듯이 화려한 한때, 화양연화의 순간이 꼭 눈부시게 젊은 시절이라는 법은 없다. 사람마다 버킷리스트가 다르듯이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41년 만에 개인전을 여는 임향자 작가를 만나 인터뷰하면서 든 생각이다.

벌써 50년 전인 그 시절에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일본 유학을 떠나면서 유학 1세대가 된 ‘용감한 그녀’. 물론 첫 출발은 사진가였다. 타국에서 10년의 유학 생활을 자신의 열정과 적극성으로 헤쳐나온 그녀는 막 서른을 넘긴 나이로 사진가의 꿈을 안고 귀국했다. 그러나 1980년대 초, 한국에서 사진가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기가 녹록하지 않다는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그때 그녀는 과감하게 아무도 걷지 않은 길, 사진가의 생존환경부터 만들어가는 일에 착수했다. 그리고 사진 관련 사업가로서 사진 원고 라이브러리, 사진 출판사, 젊은 사진가들을 북돋우는 사진비평상 제정, 한국사진예술원(SPC) 설립 등 사업가로서 능력을 발휘했다. 그렇게 40년 세월이 흘러가 버렸다.

임향자 작가는 이번 2월에 그동안 꽁꽁 싸두었던 사진가로서 오랜 열망을 터뜨린다. 그동안 발표하지 않았지만 계속 작업해왔던 작품들을 펼치려는 것이다. 말하자면 사진가로 재데뷔인 셈인데 30대에 했던 전시보다 지금 얼마나 더 설레고 행복할까를 가늠해본다. 더구나 이번 전시는 그동안 해온 작업을 보여준다는 1차 목표를 넘어 앞으로의 작업을 산뜻하게 시작하기 위한 2차 목표가 있어 더 의미가 있다. 작가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사이좋게 공존하는 이 시간이야말로 작가에겐 화양연화가 아닐까.

윤세영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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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가 돌아왔다.

1970년대 초, 정체된 한국 사진의 분위기에서 벗어나 ‘선진국’의 사진을 체험하고 자신의 사진표현의 세계를 넓혀보는 것이 꿈이었다. 공교롭게도 그가 대학에서 사진전공을 마친 것은 한일기본조약(한일국교정상화)이 체결되고, 일본 유학의 문이 열린 시점과 겹쳐진다. 그렇게 유학 첫 세대로서 떠난 ‘사진의 메카’였던 일본에서의 길고 고단한 생활을 마친 그가 큰 꿈과 희망을 안고 귀국한 것은 한국의 경제가 피크를 향해서 치솟던 1981년, 모든 분야가 활황을 이루고 있던 시점이었다.

대학에 출강하는 한편, 홍대 부근에 사진워크숍을 개설하고 사진전문 갤러리와 사진강좌를 열거나 그동안 인쇄물로만 보아온 해외 유명 사진가들의 오리지널 프린트를 전시하는 등 쉬지 않고 움직였다. 개인전을 열거나 그룹전에 참가하는 등 자신의 작품제작과 발표 활동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러나 현실은 젊은 새내기 여성사진가에게 결코 녹녹치 않았다. 

1984년, 당시 사진과 영화의 거리로 알려진 충무로 일각에 기업이나 광고대행사, 출판사 등에 사진을 빌려주고 사용료를 받는 ‘타임스페이스’라는 법인회사를 만들었다. 물론 생계를 위한 도전이었다. 저작권 인식이 얕았던 그때만 해도 생소한 비즈니스 분야였지만, 때마침 아시안 게임과 서울올림픽을 앞둔 시점, 국내외에서 폭증한 사진 수요로 단숨에 스탁포토 계의 선두 주자로 떠오르게 된다. 그러는 동안에도, 사진 전문 출판사와 계간지 ‘사진비평’을 창간하고, 사진 분야의 역량 있는 신인들을 발굴하는 ‘사진비평상’을 제정 운영하는 등, 처음 뜻했던 문화 활동에도 힘을 쏟았다. 이때 배출된 많은 ‘신인’들은 지금 한국 사진계의 허리를 이루는 중견 사진가들이 되어 있는 것을 그는 보람으로 여긴다.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도 있기 마련, 승승장구하던 그도 20년 만에 손을 들어야 했다. 디지털로 시대가 바뀐 것이다. 그렇게 아날로그 방식의 비즈니스에 한계를 느낀 그가 새로 착안한 것이 한국 사회의 다양한 분야를 이끌어온 지도급 인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진예술 교육프로그램 「SPC사진클럽」. 처음 예술의전당에서 문을 열자, 빠르게 진행되는 고령화 사회에서 은퇴를 눈앞에 두고 제2의 삶을 모색하던 시니어 인사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그렇게 25기까지 진행해 나오는 동안, 한국사진예술원 SPC 사진클럽에서는 500여 명이 넘는 수료자가 배출되었다. 이들은 각 기수 별로 사진 활동을 벌이기도 하고, 많은 이들이 사진전을 열거나 사진집을 펴내는 등 사진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반세기 동안 그가 도전해온 일들에는 대부분 앞머리에 ‘한국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20대에 ‘청운의 꿈’을 안고 혼자서 유학길에 오른 그는 귀국 후 40년 넘도록 많은 어려운 일들을 헤쳐나왔고, 나름대로 의미있는 성취도 이뤄냈다, 한국 사진문화와 사진 인구의 저변확대라고까지 거창하게 말하지는 않지만, 이것도 그가 이룬 보람 가운데 하나임이 분명하다.

누가 뭐라고 해도 그는 ‘사진가’다. ‘넘어진 김에 쉬어 간다’는 말이 있다. 3년 넘게 온 세계를 광풍처럼 휩쓸고 지나간 코로나 사태는 그가 하는 일에도 큰 시련을 안겨 주었지만, 동시에 자신을 돌이켜보게 만드는 좋은 계기가 되기도 했다. 

유학 시절에는 도쿄의 니콘살롱과 후쿠오카시립미술관에서 사진개인전을 초대받았다. 이것도 모두 한국인 최초다. 귀국하고 나서는 덕수미술관과 동덕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모두 1980년대 초의 일이지만, 지난 40여 년 동안, 그의 손에는 카메라가 들려 있었고, 가슴 속에서는 사진의 불씨가 잠시도 꺼져본 적이 없다.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하며 살아왔는가? 좋은 나이에 이른 지금이 그 불씨를 다시 살리기에 좋은 때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에 벌이는 것이 성곡미술관에서의 전시로, 무려 40년 만에 여는 개인전이다. 그의 얘기를 들어보자. “이렇게 늘어놓고 보니, 사진을 시작하고 나서 40년 넘게 한 가지 주제로만 찍어 왔네요. 감수성이 무딘 건지 아니면 유행에 둔감한 건지 모르지만, 감동적인 붉은 저녁노을도 이른바 파인아트 사진이라는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나무나 흙이나 물 같은 자연 대상을 소재로, 그것도 오직 흑백 모노톤으로…. 처음부터 이걸 찍어야지 작정하고 가는 것이 아니라, 걷다가 의식 속으로 뛰어 들어오는 것을 잡았어요, 우연이지만 그건 나에게는 운명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자연은 영원과 찰라, 생성과 소멸, 그런 모든 상반되거나 모순되는 것들이 뒤섞여 혼돈된 것처럼 보이지만, 태초에서부터 어떤 원리나 질서에 따라서 순환되고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보고 싶어 하는 것은 지구라는 행성이 생성되었을 때의 그런 카오스적인 상태라고 할까, 아니면 신화의 세계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40년의 긴 침묵 끝에 내놓는 작품들, 그가 말하는 ‘신화의 세계’가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아이포스 편집부










■ 임향자 사진집 평문

임향자의 사진세계

1973년, 내가 일본대학 예술학부 사진학과 2학년이었을 때, 일 년 후배로 임향자가 들어왔고, 그때부터 임향자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일본대학을 졸업하고 당시 일본 국내에서 유일하게 사진전공 과정을 둔 큐슈산업대학 대학원에 진학한 그가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간 것이 1980년대 초. 귀국 후 그는 대학 등에서 교편을 잡는 한편, 스탁포토 에이전시와 출판사를 설립, 사진 전문지 「사진비평」을 발행하고 「사진비평상」을 제정해서 사진 분야의 신인을 발굴하는 등 한국의 사진문화 발전을 위해서 많은 일을 했다. 그런 인연으로 1990년대에는 나도 사진 이벤트나 일본 사진가들의 전시회에 맞춘 토크 등으로 여러 차례 한국을 오가게 되었고, 지금까지 가까운 사이로 지내오고 있다. 
 
그런 임향자가 사진가로서도 일본에서 오랜 발표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지금까지는 그의 사진 작품을 한꺼번에 볼 기회가 없었다. 이번 사진집 간행에 즈음해 문장을 요청받고서야 비로소 그의 작업의 전체적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거기에는 독특한 시점에서 피사체와 마주하는 스케일이 큰 세계가 전개되고 있었다. 그것은 나에게 반가운 놀라움이자 새로운 발견이기도 했다. 이 사진집은 그에게 최초의 사진집이지만, 이미 당당한 대가로서의 풍격을 갖춘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1970~80년대에 일본 유학 시절에 본격적으로 사진 촬영과 프린트 등에 관한 기술을 익혔다. 1982년에는 신주쿠 니콘살롱(도쿄)과 후쿠오카시립미술관에서 사진가 카타야마 세츠조(片山攝三)를 모델로 한 포토레이트의 사진전 「孤影 - 예술가의 주변」을 개최했다. 하지만, 이번에 사진집에 담기는 것은 포트레이트가 아니라, 자연과 마주한 풍경 사진 연작이다. 일본 유학 시절에서부터 한국 귀국 후인 1990년대에 걸쳐 계속해서 찍어온 이 풍경 사진들에는 분명 그의 개성적인 사진관이 짙은 농도로 투영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거기에는 수목과 바위, 흙, 하늘, 물 등이 스트레이트하게, 아니 오히려 심플하다고 할 수 있는 화면 구성 속에 자리 잡고 있다. 그들을 보면, 그가 인간(주체)과 자연(객체)을 대립적인 관계로서 파악하고, 전자가 후자를 지배하거나 컨트롤하는 서구적 자연관과는 전혀 다른 의식을 가지고 피사체와 대치하고 있음을 잘 알 수 있다. 자연은 오히려 인간 세계에 침투해서 서로 녹아들고 감싸 안는 존재로, 그는 그런 자연에 대한 편안함과 경외감이 일체화된 감정을 유지하면서 셔터를 누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금 다른 각도에 보면, 여기 찍혀 있는 수목이나 바위나 흙이나 하늘이나 물이 보여주는 모습들은 그가 당시 안고 있던 고독감이나 불안감, 혹은 무엇인가를 강하게 희구하는 듯한 자신의 심경이 투영되어있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들 작품 가운데 몇 점에는 임향자 본인의 셀프 포트레이트라고 하는 측면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처럼 훌륭한 작품들이 사진집 형태로 공개되는 데는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촬영 시점에서부터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에 있어서 본연의 자세가 완전히 바뀐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코로나19 팬데믹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스라엘 사태 등 불안정한 요소가 커지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자연과의 일체화를 추구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 새삼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한국과 일본의 독자뿐 아니라 글로벌한 반향이 있기를 기대하고 싶다.

이자와 코오타로(飯澤耕太郞), 사진 평론가









아리아드네의 실과 장자의 경(境)의 세계 

장자의 ‘달생(達生)’에 재경이라는 목수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서 달생은 단순한 기술적 성취가 아닌 무아지경의 경지를 말한다. 이는 초현실주의가 지향하는 인간 내면의 심층적 성찰과도 맥을 같이 한다. 사진은 말하자면 기계적 자동기술법을 통해 내면의 흔적을 드러내는 감각의 지팡이로 간주된다. 또 사진의 감각적 행위는 미궁을 빠져나오게 하는 아리아드네의 붉은 실에 비유된다. 이 실은 인간의 유한한 감각으로 인지할 수 없는 영역, 즉 경지의 흔적을 따라가게 하는 길잡이에 다름 아니다. 

여기 임향자의 사진들은 보이지 않는 경의 세계를 드러내는 미궁의 실로, 현실에 있음 직한 어떤 조짐을 보여준다. 금방이라도 폭우가 쏟아질 것 같은 우중충한 바닷가, 거대한 물고기를 연상시키는 바위, 아무렇게나 방치된 어구, 흉측하게 생긴 나무 옹이, 검은 용암이 흘러내리는 듯한 물살, 하늘 높이 솟구친 거대한 덩굴들, 검은 천 위에 놓인 돌멩이와 각시탈 더미, 거대한 밧줄에 끼워진 나무 기둥 등, 어두운 톤의 흑백사진에는 언뜻 모든 만물이 어둠으로부터 깨어나듯 베일에 감추어진 신비스러운 물상들의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데 사진에는 제목도 텍스트도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장면 그 자체가 언어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든 자료적인 측면을 제거하고 극단적으로 단편화된 장면에서 발산되는 시(詩)적 시그널이다. 예컨대 신의 내재성, 아우라와 같은 비의(秘儀) 적인 조짐, 시나 음악의 형상 등 형태는 알 수 없지만, 그 존재를 무형으로 감지할 수 있는 형이상학적인 것들이다. 따라서 사진의 응시자는 거대한 바윗돌과 하늘로 치솟은 넝쿨 등에서 ‘보이는 대상을 읽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발산되는’ 것을 음미하게 한다. 결국, 사진은 초현실적인 징후로 드러나는 무언의 자동생성이 된다. 

사진에서는 장면을 추측하게 하는 어떤 구체적인 정보도 단서도 찾을 수 없다. 게다가 장면과 장면을 이어주는 네러티브 구조나 빈 공간을 채우는 갭도 존재하지 않는다. 장면을 지배하는 것은 오로지 단편화된 대상과 그 파편들이다. 예컨대 거대한 바위와 화면의 거의 전체를 차지하는 밧줄, 크게 확대된 나무껍질과 돌출된 옹이 등은 보이는 세계를 최소한의 원소로 다시 재구성한 것들이다. 왜냐하면, 원래 사진기는 운명적으로 세상을 무차별적으로 녹음하는 과잉 정보장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촬영한다는 것은 곧 장면을 최소 원소로 정제시키는 시각적 재구성을 말한다. 

또 하나, 사진에 움직임의 흔적이 없다. 이제 막 어둠에서 깨어난 어슴푸레한 장면들은 움직이지 않는 부동의 이미지로 나타난다. 거기에는 움직이는 대상은 물론이고, 결정적 사건-순간을 보여주는 순간포착도 없다. 게다가 짙은 그림자가 드리운 언덕 지층과 나무 그림자들이 어른거리는 비탈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흑백의 강한 콘트라스트는 더 이상 움직임이 없는 정적과 침묵의 지속을 강조한다. 이러한 부동의 장면에 유효한 시간성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중첩되어 나타나는 지속의 무시간이다. 

그러나 전혀 움직임이 없는 정(靜)의 이미지에서 응시자는 예견치 못한 상황을 경험하게 된다. 이들은 모든 것이 응고되고 침묵만 흐르는 폭풍 전야의 정적과 같이, 오히려 장면을 바라보는 우리를 오싹하게 만든다. 그것은 우리가 오랫동안 시간에 거슬러 싸우면서 죽음의 유령과 격리시키는 움직임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곧바로 우리에게 원인을 알 수 없는 심리적 우울과 불안을 주면서 슬며시 회상의 파노라마를 호출한다. 그것은 모든 것이 정지된 이미지의 감성적 움직임, 말하자면 감각과 행위가 사라졌을 때 드러나는 ‘감정의 잔여물’로, 어떤 단편적인 대상 위에 물결쳐 지나가는 여운을 말한다. 

이러한 여운의 포착은 동전의 이면처럼 현실과 중첩되어, 응시자로 하여금 초현실의 경지를 경험하게 한다. 게다가 단편이 만드는 큰 구도와 부동의 진술은 기억의 열린 공간이 됨과 동시에, 열린 공간만큼의 빈 여백이 되어 응시자들의 기억으로 채워지게 된다. 결국 사진들은 일종의 사진적 추상으로 삶의 순리를 누설하면서, 응시자로 하여금 자신이 걸어 온 뒤안길을 바라보게 한다. 그것은 빛과 어둠의 경계에서 삶의 진실임과 동시에 진정한 예술의 혼으로서 달생의 경지를 경험하게 하는 아리아드네의 실과 같은 것이다.

이경율 (사진미학, 중앙대 교수)









사진가의 복귀, 사진사의 복기

# 1. 
1983년 11월, 『한국일보』는 “한국의 여성 파워 어디까지 왔나”라는 연재물 중에서 한국 사진예술계를 이끄는 중요 여성 사진가 8명을 꼽았는데, 이 기사에서는 당시 이들이 “지난 수년간 사진 분야에서 떨쳐온 기세는 실상 대단한 것”이었다고 쓰고 있다. 어떤 방향성을 가진 조직적인 사진 운동은 아니지만, 1980년대와 90년대에 걸쳐 전시, 출판, 교육 및 이론 등 여러 분야에서 이들 여성 사진가를 중심으로 다양한 실천들이 이루어졌고, 일부 사진가는 현재까지 그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손에 꼽을 정도였던 여성 사진가들의 활동이 1980년대 들어 급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했고, 그 선두에 이들 여성 사진가가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이 집약된 것이 1983년에 문을 연 ‘한마당화랑’이 개관기념전으로 기획한 《여류 사진가 전》이었다. 이 전시에 참가한 사진가 가운데 한 명으로 임향자가 참여하고 있다. 이 전시는 한국 여성 사진사에 있어서 하나의 분기점을 이룬다.

# 2.
올해는 그로부터 정확히 40년 지난 해이다. 하지만 1980년대 초반의 사진계에 어떤 현상들이 나타났고, 당시 여성 사진가들의 역사적인 역할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어떤 기록도 평가도 남아 있지 않다. 이로 인해 그들의 존재는 잊히고, 그들의 활동은 사진사의 공백으로 남겨졌다.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린 《2021 서울사진축제》의 주제전 「한국여성사진사Ⅰ- 1980년대 여성 사진운동」은 한국 여성 사진사의 기술을 위한 첫 번째 시도로서, 1980년대에 두드러진 활동을 보인 10명의 여성 사진가들의 초기 작업을 한곳에 모아 당시의 상황을 조망해보려는 시도였다.

이 전시의 기획을 맡은 필자는 10명의 참가자 중 한 명으로 초대된 임향자에게 먼저 프린트의 존재 여부를 물었고, 다행히 당시 자신이 직접 인화한 여러 점의 빈티지 프린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10×14인치 안팎의 「어느 예술가의 초상」 연작 3점과 「COSMOS」 연작 8점으로, 4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프린트에는 흑백 은염사진이 가진 섬세하고 깊은 톤이 유감없이 재현되어 있었고, 이들 작품이 모두 전시에 출품된 것은 더없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아마 한국의 여성 사진사에서 그 존재가 잊히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전시가 끝난 후, 이들 작품은 현재 건립 중인 서울사진미술관(2024년 개관 예정)에 수집되어 수장고에 영구보존되고 있다. 사진가 개인으로서의 임향자의 작품이 공공의 아카이브 자산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간헐적으로 단체전에 참가한 것을 제외하면, 그는 1984년의 개인전을 끝으로 작가로서의 활동은 거의 중단하고 있었다. 하지만 「COSMOS」 연작에서 보여준 풍경에 대한 관심은 이후로도 이어져, 그만의 독특한 ‘심상(心象)적인’ 풍경 사진들을 지금까지 계속해서 찍어오고 있다. 이렇게 촬영한 사진 가운데 20여 점을 골라서 한 권의 사진집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의 첫 작품집인 동시에, 40여 년간의 작업을 마무리하는 것이기도 하다.  

# 3.
이 사진집은 그의 개인적인 회고작품집을 넘어서, 1980년대 초반의 치열했던 한 사진가의 작품을 소환함으로써 한국 여성 사진사를 새로 고쳐 쓰고, 사진사의 빈틈을 채운다는 데 의미가 있다. 특히 그의 초기작들은 ‘파인 프린트’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당시에는 존 시스템이 아직 국내에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던 때로, 일본 유학을 통해서 흑백사진의 방법을 마스터한 그는 자연의 외관에 대한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풍경에서 받은 인상이나 감정, 의식의 상태 등을 표현하기 위해서 자신만의 독특한 톤을 만들어냈다. 흑백의 톤에 대한 이해와 표현 방식은 그 이후의 다른 시기에 촬영된 사진에도 그대로 관통하여 작업의 일관성으로 나타나고 있다. ‘매체의 리얼리티’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한국 사진의 프린트의 역사에서 현대성(모더니티)을 성취한 뚜렷한 사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참여한 1983년의 《여류 사진가 전》은 한국 현대사진의 기점에 관한 논의를 새로 시작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대사진을 얘기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현대성에 대한 사진가들의 자각이 전제되어 있는가라는 점이다. 이런 관점에서 임향자는 풍경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보여주었으며, 그것을 사진적인 방법론을 통해서 철저하게 추구해 나왔다는 점에서 모더니스트로서의 자각을 엿볼 수 있다. 

그럼에도 그동안 그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 이유는 그의 오랜 침묵에 기인하는 동시에 당시의 선구적인 사진의 실천들이 사진사에 수용될 기회를 얻지 못한 채 오랜 기간 망각되어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사진집은 한 사진가의 복귀인 동시에, 한국의 사진사를 복기하는 하나의 계기를 마련한다는 점에서도 그 역사적 의의를 찾을 수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경민 (사진아카이브연구소, 한국사진사)




닉스의 아이들

우중충한 하늘을 배경으로 바다를 향해 늘어선 방파제 위의 기괴한 형상들, 차고 연약한 빛에 등을 드러낸 채 웅크리고 앉은 거대한 바위, 기름처럼 무겁게 번들거리는 물, 사악한 악마의 눈처럼 타오르는 불길, 머리를 풀어헤친 채 검은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넝쿨 식물, 불안하게 한쪽으로 기운 수평선, 무너져내린 흙더미 속에서 망가진 신경처럼 노출된 나무뿌리…. 마치 악몽을 꾸는 듯한 정경들이 펼쳐진다.

시선은 황폐한 적막감이 떠도는 화면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오브제에 집중된다. 그의 풍경은 장엄한 자연이나 이상향으로서의 로맨틱한 눈길에 대한 우리의 기대를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정체 모를 두려움을 일으킨다. 어둡고 혼란스럽고 우울하고 수수께끼 같은 흑백의 키아로스쿠로의 세계는 무의식의 심연으로부터 불길한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

우리는 적극적인 의식의 개입을 통해서만이 사물과 현상의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대상 그 자체의 형상이 아니라, 그것이 야기하는 내부의 반응이다. 그것은 우리의 감정과 상상력을 자극해서 물리적인 현실 세계와 우리 사이에 의미 있는 연결을 만들어낸다. 그가 다루는 피사체는 경험이나 기억으로 촉발된 내적 동기에 의해서 선택된 것들로, 그는 그들을 통해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사진의 모든 프로세스에서 그것을 어떻게 실천해야 할 것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

주로 1970년대의 유학 시절을 전후한 시기에 제작된 그의 작품에 담겨 있는 것은 모더니즘의 예술과 미학의 이념적 관습에 따라서 고도의 수공업적 과정을 거쳐 정착된 빛과 어둠과 시간의 화석이다. 그는 유행을 따르려 하지도 않고, 자신이 다른 사람과 비슷해 보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그는 사진의 고유한 특성과 전통적 가치를 배제하려는 것처럼 보이는 이른바 현대사진의 흐름에 역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초현실주의, 또는 상징주의적인 사진의 스타일은 어디까지나 모더니즘의 스트레이트하고 순수한 방법론에 기반을 둔다. 융은 사고와 감정, 감각, 직관으로 이뤄진 의식을 분리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이들이 우리의 신체와 정신에서 불가분의 관계로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셔터를 누르는 것은 사진가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의식의 흐름을 수렴하는 행위로, 따라서 사진은 그의 의식의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그의 풍경은 현실의 대상과 내적인 동기와의 충돌에 의해서 일어나는 감정의 불꽃으로서의 ‘의식의 풍경’인 것이다, 한계에까지 억제된 노출과 군더더기 없는 대담한 구도로 인해 그런 의도가 뚜렷이 드러나고 있다. 그의 사진은 눈으로 들어오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보게 하고, 보는 사람의 의식을 더 깊은 곳으로 끌어들인다.

완전하지도 영원하지도 않은 것들에게 어떤 종류의 질서를 부여하려 했던 초기의 발표작 <코스모스> 이후, 40여 년의 침묵 끝에 펼쳐지는 이번 연작 사진에 그는 <신화>라는 타이틀을 붙였다. 신화는 초월적이고 신성하고 초자연적인, 존재를 증명할 수 없는 것들에 관한 서술이다. 그의 사진에 떠도는 어둡고 볼온한 기운은 빛의 존재 의미를 밝혀내기 위한 서사적인 길잡이다. 신화의 세계에서 어둠은 빛보다 먼저 거기 자리 잡고 있으며, 아무리 밝은 빛도 어둠의 도움 없이는 그 존재를 인식할 수 없다.

하데스의 지하세계를 지배하는 닉스는 굶주림과 노화, 수면과 꿈, 죽음, 파멸, 냉소, 고통, 복수, 저주, 광기, 비참과 연민, 마법, 허약함, 전쟁과 불화, 파멸, 기만, 방황 같은 온갖 어둠의 자식들을 낳았다. 그리고 이 <신화>의 작품들은 그들에 관한 이야기다.

김승곤 (한국사진예술원 교수, 사진 평론가)




■ 작가약력

임향자

개인전 
1982 <一期一會>, Nikon 살롱, 도쿄, 일본
1982 <孤影>, 福岡市立美術館, 후쿠오카, 일본
1982 <어느 예술가의 초상>, 덕수미술관, 서울
1983 <Cosmos>, 동덕미술관, 서울
2024 <신화(神話)>, 성곡미술관, 서울 

그룹전 
1983 <한국여류사진가>, 한마당화랑, 서울 
1993  <한국 현대사진의 흐름>, 예술의전당, 서울 
1997, 1998 <서울사진대전>,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21 <한국여성사진사>,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서울 
2022 <정착세계>,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서울 

작품소장
서울시립미술관
福岡県立美術館
뮤지엄한미

現 한국사진예술원 SPC사진클럽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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