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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만 전_생명-공간: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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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작가 특별기획전‘생명-공간:우리는 어디에 있는가’개최
- 5월 29일~6월 24일 제주갤러리 2024년 첫 기획전, 원로작가 고영만 화업 반추 -


 제주특별자치도는 오는 29일부터 6월 24일까지 서울 인사동에 위치한 제주갤러리에서 원로작가 특별기획전으로 고영만 작가의 ≪생명-공간:우리는 어디에 있는가≫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 제주 미술사의 흐름 속에서 작가의 예술세계를 재조명하고 그의 작업 전반을 살필 계획이다. 

  고영만 작가는 오로지 독학으로 독특한 화풍을 개척한 작가로 자연과 인간, 환경과 사회문제, 생명의 가치를 서사적으로 풀어내는 작업을 이어왔다.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았던 다수의 작품과 작가의 아카이브 자료 등 60여 점이 전시될 예정으로 관람객의 기대감을 증폭시킨다. 

  고영만(1936년생) 작가는 6·25전쟁이 발발한 시기를 전후해 부모님을 여의고 전쟁고아를 수용한 한국 보육원에서 학업을 마친 후 제주사범학교를 졸업해 미술 교사로 근무하다 퇴임했다. 그러면서도 일평생 붓을 놓지 않았다. 특히, 자신만의 기법으로 고안한 ‘침선유화(針線油畵, needlework oil painting))’는 어려운 상황과 여건 속에서도 작가만의 독특한  화풍을 만들어낸 결과물로 많은 후배 작가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전시는 <생명-공간>·<제주 어머니>·<제주 신화> 시리즈로 구성됐다. 별개의 주제처럼 보이지만 생명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자기 내면을 탐구하고자 하는 작가 특유의 목소리가 담겨있다. 

  생명이 살아가는 공간을 다차원으로 해석해 자연의 내면을 표현하려는 작가의 작품은 본 전시의 중심 주제인 <생명-공간> 시리즈로 시작한다. 갤러리 A에는 작품과 함께 작가가 독자적인 기법을 위해 사용한 재료와 아카이브 자료를 한곳에 모았다. 갤러리 B에는 작가의 초기 작업과 <제주 신화> 시리즈, 과거 제주 어머니들의 잔잔한 일상과 서사성을 담고 있는 <제주 어머니> 시리즈 중 일부 작업을 만나 볼 수 있다.

  전시 연계 체험프로그램(상시)과 전시해설(도슨트) 프로그램이 준비돼 작가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오픈식은 29일(수) 오후 5시에 진행되며, 관람료는 무료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김유민 큐레이터는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자신만의 길을 찾아 독창성을 구현한 작가의 작업을 편견 없이 바라보길 바란다”며 원로작가의 삶과 작업을 조명하고 기록하는 전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양보 제주도 문화체육교육국장은 “제주의 작가들이 인사동에서의 전시를 계기로 국내외로 활동무대를 넓혀나가고 세계적인 작가로 성장해 제주 미술을 빛낼 수 있길 바란다”며 “앞으로도 제주 미술 작가들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생명의 보금자리-공간, 캔버스에 유채, 45.5×60.6cm, 1994


한 가족의 밥상, 캔버스에 유채, 91×116cm, 1975






섬의 생명과 기운을 그린 침선유화(針線油畵, needlework oil painting) 


                                                           미술평론가 김유정



세상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거대함의 탈을 벗습니다.
세상은 고통으로 내 영혼에 입 맞추고, 노래로 답하라 합니다
                                              -타고르, 「길 잃은 새」 中 



생명의 기쁨, 캔버스에 유채, 53×72.7cm, 1992


그림에 녹아든 인생

  한 화가의 삶은 고스란히 자신의 작품 안에 투영된다. 그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가 왜 그것을 그렸는지를 말이다. 고영만이라는 제주 사람이 있다. 그는 스승 없이 혼자 그림을 그린 독학 화가다. 미술 자료가 부족한 시절, 그는 신문스크랩. 잡지 화보를 열심히 모으며 그것을 보고 또 그렸다. 그는 스승이 없는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서 남보다 더욱 노력했다. 바로 “부지런한 공(功)은 싯나(있다)”라는 제줏말처럼, 고생 끝에 낙(樂)이 온다는 사실이 실감 난다. 정말로 4·3사건과 한국전쟁이라는 캄캄한 시절에 부모님을 잃고, 14살에 목공소 일과 이발소에서 머리 감겨주는 일을 할 때 이발관 동쪽 편에 있는 간판 집에서 초상화 그린 것을 보았다. 후에 알고 보니 피난 화가 홍종명이 그곳에 살면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북국민학교에 공군이 주둔하자 임시 공군병원으로 징발된 박 의원에서 위생병 대신 물을 길어오거나 청소하는 허드렛일을 하며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서울이 수복되자 공군이 떠나면서 어린 동생을 데리고 전쟁고아 보호시설인 한국보육원에 입소하게 된다. 한국보육원에는 영아부터 17세까지 지내고 있었다. 당시 국민학교는 보육원내 한보(한국보육원)국민학교를 만들어 보모들이 원생들에게 초등학교 과정을 가르쳤다. 고영만은 1년 동안에 6학년 과정을 다 배울 수 있었고 새로 만든 미술반에 반장도 맡았다. 책과 학용품은 미국에 있는 ‘기독교 아동복리회’에서 보내준 구호품을 받았다. 중학교 과정은 보육원 동쪽에 있는 제일중학교에 다녔는데 중학교 2학년 때 보육원 보모로 왔던 구대일 선생(당시 홍익대 미대 재학)이 미국 기독교 원조자들에게 보낼 크리스마스카드 그림을 도안하여 원생들에게 그리도록 했다. 고영만은 처음 구대일 선생으로부터 수채화를 배워서 해마다 제주시 관덕정에서 열리는 학생 미술전람회에 참여했다. 

  그림에 꽂힌 고영만은 중학교 3학년이 되자 낮에는 그림을 그리고, 밤에는 공부를 하기 위해서 오현중학교 야간부로 전학을 가겠다고 담임선생님을 졸라 소원을 이뤄냈다. 오현중학교 야간부에서 김택화(서양화가, 2006년 작고)를 만나 둘이 제주시 곳곳을 스케치하러 다녔고, 중학교 3학년이었던 짝은 알바로 극장 간판 그림을 그렸다. 영화는 성길사한(成吉思汗,징기스칸)이었는데 고영만은 포스터대로 그림을 그리고, 김택화는 ‘성길사한(成吉思汗)’이라 한자를 쓰고는 수고비를 받은 돈으로 중국집 찐빵을 배부르게 사 먹었다. 그 후 고영만은 제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한림초등학교 교사가 되었고, 그림을 그리려고 미술 교사를 지낸 후 퇴임 후에도 서양화가로 활동하고 있다. 

  사람의 인생은 천차만별이다. 사연 또한 기구하여 생각지도 못한 일을 당하기 일쑤인 것이 우리네 인생살이다. 산다는 것이 생각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누구나 함부로 자신의 인생을 장담하지 못한다. 인생에선 얻을 때도 있고, 잃을 때도 있다. 기쁨과 슬픔도 교차하고 좌절과 희망도 오고간다. 

 고영만 화백은 누가 질문하기 전에 먼저 말을 잘 꺼내지 않는다. 무척 조용한 성격 탓이다. 그에겐 화가 절친이 두 명 있었는데 죽마고우 서양화가 김택화와 미술 교사 연수 시절 가까워진 한국화가 부현일 교수이다. 김택화는 8년 전에, 부현일은 작년에 돌아갔다. 

“전에 우리가 남남인 줄로 꿈꿨습니다. 깨어보니 우리는 친구였습니다.” 필자가 요즘 타고르의 시집 「길 잃은 새」를 읽으면서 문득 고영만 화백을 떠올리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타고르의 시에는 영혼의 울림이 있고 순수한 감성이 깃드는 신비한 힘이 있는데 이상하게도 그의 시를 읽으며 문득 고영만 화백의 인생이 오버랩 된다. 

“나는 최선을 선택할 수 없습니다. 최선이 나를 선택합니다.”라든가, “내가 존재한다는 것은 끝없는 놀라움입니다. 그것이 삶입니다.”, “생명은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생명을 줌으로써 생명을 얻습니다.” 라는 구절에서 마치 고영만 화백의 그림들이 리듬처럼 들리는 것 같다.  

  우주는 모든 것이 서로 연결돼 있다. 삶이든 자연이든, 그것을 표현하는 예술이든, 그리고 그것들은 시간의 물살을 타게 된다. 시간 앞에 무력한 삶의 모습은 불안함이며, 그 불안의 그림자가 욕망이다. 데카르트 명제처럼 ‘나는 생각하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존재하므로 생각하는 것이다.’ 즉, 나는 존재하기 때문에 그림을 그릴 수 있고, 그 그림에 나의 인생이 녹아 있는 것이다.



귀가(추자도에서), 캔버스에 유채, 50×65.1cm, 1999

생명·공간-잠자리, 캔버스에 유채, 60.6×72.7cm, 1994



침선유화(針線油畵, needlework oil painting), 도대체 어떻게 그린 거야?

  서양화에서 가장 대중적인 재료는 유화(油畫, oil painting)이다. 이 재료는 약 600년의 나이를 먹었다. 유화의 등장으로 회화예술에는 일대 혁명이 일어났다. 색상이 아름답고 발색이 뛰어나며, 그림은 커지고 보존력은 높아졌다. 유화 때문에 구상회화 표현 방식에 깊이가 더해졌다. 예술은 시대마다 언어가 있었고, 다양한 미학 이론들이 아름다움의 가치들을 새롭게 발견했다. 
 부모를 잃은 고아원생 고영만 화백은 독학으로 화가가 되었지만, 화가라는 명함을 내밀기 위해서 남들과는 뭔가 다른 화풍이 있어야 했다. 당시 제주도 지역 화풍은 대학교육을 받은 화가들의 사실주의와 반추상, 추상표현주의 등이 혼재했다. 고영만 화백 또한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1960년대 남아있는 4점의 표현주의 작품과 1970년대 이후 그려진 제주 옛 생활 도구들을 그린 작품, 그리고 민속적인 생활사 장면들, 제주의 마을과 오름, 산과 바다 등 주변의 풍경을 수없이 그렸다. 여전히 부족한 묘사력의 장벽을 넘어서기 위해서 오히려 충실하게 사실주의를 지향했지만, 갈수록 획기적인 화풍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여 새로운 형식실험에 도전했다. 무엇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 평생 화가의 고민이다. 내용과 형식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 내용은 형식을 움직이기도 하고, 또 형식이 내용을 끌어오기도 한다. 고영만 화백은 제주도 자연에서 생명력의 원리를 발견하게 되어 생명체마다 섬유소(纖維素) 조직이 다양하다는 것을 선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선은 흐름이고 연결이고, 공급선으로 기운을 생성한다. 모든 생명체마다 조직을 통해서 기운을 얻는다. 그의 말대로 ‘선의 자율성 확대’라는 의미가 생명체를 선의 흐름으로 모아서 형태를 만드는 것이다. 새로운 기법 실험이 시작되었다. 호기심에 부지런하고 꼼꼼한 인성이 더해져, 선질(線質)을 그리기 위해서 붓 선(筆線)으로 만족지 못해 가는 침관(針管)을 들었다. 인간(화가)과 비인간[針管]의 노골적인 협력이 시작됐다. 인간이 이 세상의 주체라고 여겨졌던 과거 철학적 유산들이 새롭게 비인간인 사물도 주체의 한 부분을 구성하고 있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사실 인간 문명의 결과는 인간과 사물의 협력을 통해서 이루어낸 것처럼, 예술 또한 화가와 캔버스·물감·붓, 또는 침관(針管)이라는 사물들과 함께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인간중심주의에 눈이 가려져 인간 이외의 모든 비인간 요소를 함부로 다루는 바람에 오늘날 전 지구적인 위기를 불러왔다. 인류세라는 신조어는 인류가 등장함으로써 일어난 사건을 반영하는 시대 담론이었다. 

 그렇다면 침선유화(針線油畵, needlework oil painting)란 무엇일까. 말 그대로 침(針)은 바늘처럼 액을 주입할 수 있는 가느다란 침관(針管)이다. 침선기법(針線技法)은 주사기를 사용하는 것처럼 선질(線質)의 형태를 만들어내는 행위로써 생명체의 섬유소 조직을 모방한 것이다. 우선 빈 물감 튜브의 뚜껑에 가는 관을 부착하여, 각기 다른 여러 색의 튜브를 이용해 오로지 손의 압력으로 짜내는 작업이다. 이 작업은 고도의 집중력과 유화물감이 마르기 전에 일정한 크기의 선으로 된 패턴을 만들어야 하므로 색채 계획, 형태 구성, 크기와 속도, 물감 마르기까지의 원상태 관리가 매우 까다롭다. 시간이 많이 들고 과다한 체력 소모로 인해 손가락, 팔, 어깨, 눈이 나빠지는 건강 때문에 무려 6개월간의 병원 치료를 받은 후부터, 약 10년 동안의 작업을 끝으로 급기야 침선 기법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현재 10년 동안 침선 기법으로 작업한 작품들이 남아있지만, 그 작품들은 유화가 낼 수 있는 매혹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가는 선이 반복된 정교함과 요철의 유화 선묘에 빛이 반사되는 효과는 참으로 신비감을 더해주지만, 작업의 방식을 알고 나서는 누구도 감히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침선 유화는 마치 고도의 테크닉이 필요한 반도체 기술처럼 무척 집중력을 요하는 정교한 기술이 사용된 예술이다. 기술과 예술이 한 몸이라는 사실을 이 침선 유화에서 알 수 있듯이 수공 기술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침선 유화는 이중섭이 은지화를 창안했듯이, 유화라는 재료를 가지고 처음 실험한 고영만 화백의 세계 최초의 기법임과 동시에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예술 형식인 것이다.
         


생명·공간-한라산, 캔버스에 유채, 130.3×162.5cm, 2020


 섬에서 찾은 상징들:자연·생명·어머니·신화   

  독학 화가에게는 초기에 소박미(素朴美)나 고졸미(古拙美)가 나타난다. 테크닉을 스스로 찾기 때문에 여러 유파가 혼재돼 있다. 우선은 표현력에 주력하기 때문에 그만큼 기교를 부릴 여유가 없어서 소박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고영만 화백의 작품들은 대체로 정적(靜的)인 사실주의 경향이며, 일러스트적인 인물 묘사, 초현실주의적인 화면, 장식적인 구성으로 이루어진다.  

 자연은 제주의 천연적 특성이므로 고영만 화백의 소재들은 자연 속 당대 시골 풍경이 주를 이룬다. 바다로 둘러싸인 섬의 입지가 자연을 중심으로 마을 풍경, 삶의 일상, 어머니, 제주민속, 바다 풍경, 생태적 자연, 신화의 그림으로 연결된다. 대도시의 일상과 달리 섬의 일상은 시골 도시를 벗어나면 그대로 자연에 스미는 것이다. 자연과 일상이 서로를 향해 열려있다. 1940년 태생(실제 나이 1936년)인 고영만 화백은 작품에서 풍기는 시간인 일제강점기, 해방공간 4·3사건, 한국전쟁, 5·16 군사쿠데타,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을 지나온 약 80여 년 동안의 섬에서 본 우리의 역사적인 체취가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간접적으로나마 담겨있다. 자연에 부는 바람이 그렇고, 환경파괴에 대한 인식이 그렇다. 생명의 가치에 대한 존중, 마른나무처럼 앙상한 어머니 모습의 형상과 신화적 염원의 상상력이 그렇다. 그것은 현실주의적인 것은 아니지만 낭만주의적인 스토리텔링이라고도 할 수가 있다. 인간의 삶은 환경 결정적이다. 자연환경이든 사회 환경이든, 어떤 환경에도 인간은 모두 적응이 능숙하거나 적응하려고 노력한다. 심성(心性)은 토대(土臺)를 따라가는데 자연은 사람을 키우고 사람은 자연을 변형시킨다. 급기야 자연의 주인으로 행세함으로써 오늘날은 자연의 역습이 두려운 현실을 마주하고 말았다. 

 생명의 가치에 대한 재발견은 고영만 화백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것을 목격하고 나고부터이다. 일상의 쓰레기가 해안에 넘쳐나면서 죽은 생명체에 대한 염려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생명의 반대말이 죽음인 것처럼 물고기의 죽음을 보고서 자연 생태계의 생명들에 대한 새로운 우려감을 갖게 된 것이다. 죽은 것은 움직이지 않고 해체되고, 살아있는 것은 움직이기 때문에 부드럽게 살아있다. 생명의 근원은 이 움직임 속에 있다. 움직임과 부드러움은 생명의 생동하는 에너지이다. 현재 인류세는 지구의 위기를 가중시킨 시대로 기억될 것이다. 한번 소멸된 것은 복귀가 불가능하며, 종(種) 다양성의 파괴는 엔트로피 법칙을 증가시킨다. 인류의 미래가 어두운 현실에서 예술이 할 수 있는 것은 감성으로 대중에게 호소(呼訴)하는 일일 것이다. 

  생명·공간 시리즈는 알(卵)과 3개의 공간으로 이루어진다. 알은 생성하는 모든 생명의 근원이고, 그 공간은 땅과 땅속(물속), 미지의 공간이라는 세 가지 환경을 말하는 것이다. 알이 모든 생명체의 상징적인 결집체라면, 생명체 결과들로서 새, 물고기, 게, 나비, 새우는 화면의 시각적 구성을 위한 탄력적인 장치가 된다. 그리고 미지의 공간은 보이지는 않지만, 그 속에 있는 생명체들의 실체를 가정한 구조가 되는 것이다. 모든 생명체는 ‘있는’ 것의 존재에서 비롯된다. 땅, 땅속(물속)은 생명체의 정착 공간이며, 생명은 어디에서든 태어난다. 생명·공간 시리즈 작품들은 고영만 화백이 1989년부터 1999년까지 약 10년 동안 시도한 실험작들이다. 이 작품에서는 자신이 누구도 이루지 못할 작품의 형식을 찾겠다고 나선 지 10년이 돼 결국 병을 얻으면서 침선 기법을 그만둘 때까지, 치열한 작가 정신이 돋보인다. 모든 생명의 형태를 섬유질의 흐름으로 보고, 그 흐름을 타고서 생명의 원기(元氣)들이 몸체에서 형성되는 것을 상정하여 가시화 시키려는 아름다운 작업이었다. 결국 생물의 몸체는 조직이며, 조직들의 조합이 마치 붙어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이를 이어주는 것도 연골 같은 조직의 집합이지만, 생물학에서 할 수 없는 생명 현상을 미적으로 보이도록 하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신화 작품들은 제주 신들의 초상을 중심으로 열두본풀이의 내용으로 전개된다. 주대종소(主大從小) 작법으로 주인공은 크게 보조자는 작게 그려진다. 작품들은 중요 일반 신들의 이야기인 열두본풀이, 마을 수호신 본향의 이야기인 당본풀이, 집안 신 내력의 이야기인 조상본풀이, 말 그대로 굿 제차에 들지 않는 특수본풀이 등 4개의 유형이 있다. 
  이번에 소개된 신화작품으로는 삼승(싱)할망에 관한 작품이 있다. 삼승(삼싱)할망은 아기에 관한 일을 관장하는 할망(여신)이라는 뜻이다. 이를테면 아기를 점지해 주고, 아기를 무사히 낳게 해주며, 그 아기를 탈 없이 키워주는 수호천사 역할을 한다. 삼승(싱)할망의 이름은 멩진국할망이다. 
  삼승(싱)할망본풀이에는 멩진국(수명을 길게 이어주는)할망 본풀이와 저승(싱)할망 본풀이가 있다. 멩진국할망은 이승의 아기를 관장하고, 저승(싱)할망은 구삼승 할망으로 저승의 아기를 관장한다. 구(궂은)삼승할망은 그야말로 아기를 저승에 데려가려는 궂은(나쁜) 할망이 된다. 고영만 화백이 그린 <삼승할망> 그림은 화관족두리를 쓴 어머니상이다. 밝은 하늘에 머리 뒤로 후광(後光)이 비치고, 좌우로 붉은 동백과 신(흰)동백이 그려져 있다. 손에는 연꽃을 들고 있고, 무릎에는 한 명의 탄생한 아기와 네 명의 잉태한 아기가 있다. 치마와 겹치게 하단부에는 꽃밭이 조성된 것으로 보아 서천 꽃밭을 상징하고 있다. 서천 꽃밭은 환생 꽃과 죽음의 꽃이 자라는 곳이다. 화면 둘레에는 금빛 국화 무늬를 두르고 있다. 

  <구삼승할망>은 메말라 죽게 하는 이음이을꽃 사이에 꺼져가는 구슬을 그렸다. 천의(天衣)를 휘날리며 세 명의 아기를 보호하지 않고 춥게 내버려두어 죽음에 이르게 하고 있는 것이다. 구삼승할망 허리 아래 치마 주변으로는 온통 잿빛의 암울한 기운이 감돌고 있는데 이음이을꽃 사이에 백골의 아기가 그려져 있어 한 눈에도 저승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고영만 화백의 본풀이 신화작품으로는 20여 점이 있다. 
 

구삼승할망,캔버스에 유채,136×95cm, 2007


삼승할망,캔버스에 유채,136×95cm, 2007



그림, 자기 눈으로 해석하는 세상    
 예술은 상징 형식 가운데 하나로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의 재생이 아니며 무엇을 특별하게 만드는 일이다. 작품을 통해서 현실 세계가 개성들의 객관화된 시각이 있음을 보여준다. 에른스트 카시러의 말대로 ‘예술은 사물과 인간 생활에 대한 객관적 견해에 이르게 하는 하나의 방법이며, 그것은 모방이 아니라 현실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창작에서 객관적인 시각이란 없으며, 색채, 선, 형태, 구성 등 그 외의 것에서도 항상 개인의 기질이나 성격이 나타나는 것이다. 현실의 발견은 바로 개인의 경향, 즉 주관적인 자기 스타일을 보여주는 것이며, 에밀 졸라의 표현대로 풍경을 그린 작품들마저 바로 각각의 ‘기질을 통해 본 자연의 한구석’에 불과하다.

  나의 미적 경험은 삶의 감각 경험에서 깨우쳐지지 않은 채로 남아있으며 무한한 가능성의 상태로 열려있다. 일상의 대상들은 수많은 다중(多衆)의 감각 경험을 기다리고 있는데 예술가의 작품은 그 경험들의 시각적인 형상으로 남아 각각의 개성을 보여준다. 화가마다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감각 경험이 다르다는 증거이다.   

 세상을 본다는 것은 오로지 자신이 해석된 눈으로 본다는 말이다. ‘내’가 ‘나’를 책임지는 존재인 한, 어떤 대상을 바라볼 때 그것은 나에게서 나온 마음의 소리가 된다. 한곳에 오래 머물다 보면, 내가 딛고 선 자리가 너무 익숙한 나머지 내가 사는 그곳의 가치를 잘 모르거나 때로는 낡고 진부한 생각 때문에 자신의 개인적 경험마저 보잘것없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반대로 같은 장소라도 외지인의 입장이 그렇듯, 그곳의 온갖 것들이 매우 신기하고 새롭게 의미 있는 것으로 다가온다. 이렇듯 우리는 자기가 사는 곳이 보는 사람에 따라 현상적 측면은 물론 내재적 의미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우리는 흔히 자신이 사는 곳에 대해 매너리즘(mannerism)에 잘 빠지는데 오래 반복되거나 익숙한 것에 쉽게 빠지는 의식을 말한다. 창작이든 생활이든 그만큼 지역은 변화가 더디고, 규모가 작아서 아는 사람들이 모여 살기 때문에 문화적인 충격도, 새로움도 없고, 비교할 것도 적으며, 변화하는 것도 싫어한다. 

  특히 창작은 마치 물과 같아서 고이면 진부해지고. 마음의 심연에서는 출렁이기를 고대한다. 추구란 새로운 삶이며, 자기를 깨우치는 변화의 바람이다. 그렇지만 창작의 삶이 그렇듯 거기에는 목표나 기약이 눈에 보이지는 않는다. 추구란 바로 실천적인 작업을 함(doing)으로써 어떤 것을 생성하는(creation) 것이다. 어떤 것을 지속하게 되면 무엇인가 이루게 된다. 글로컬 시대 지역 화가의 미의식에 어떤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는가? 제주도 원로 화가 고영만 화백의 화풍은 소박미라는 로컬리즘에 묻힌 채 닦이지 않고 오래 잠자고 있었다. 아름다움에는 취향과 관능이 스며 있고, 가치에는 감정의 우열(優劣)이 없으니 섬 화가의 서울 나들이를 새로운 눈여겨봐야 한다. 아름다움에는 중심과 주변이 없지만 감성에는 나름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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