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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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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장소

  • 전시분류

    단체

  • 전시기간

    2009-05-06 ~ 2009-05-20

  • 참여작가

    서상익, 이정민, 이진주, 이혜인, 정진서, 조종성, 한성필 ,노준구

  • 전시 장소

    갤러리인

  • 문의처

    02-732-4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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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인은 오는 5월 6일부터 20일까지 ‘어떤장소’展을 개최한다. 이번전시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장소’에 주목하고 그 ‘장소’들이 작품 안에서 어떻게 기능하는지 탐색한다. 

  

 미술은 일찍이 풍경화나 정물화, 인물화, 역사화, 종교화 등으로 불리워 오면서 언제나 특정한 장소와 그 속에 놓인 사물, 정황들을 재현해 왔다. 또한 그렇게 특정한 장소를 표현해 내는 목적이나 방법들은 시대의 흐름과 사상을 엿볼 수 있는 키워드로 작용해 왔다. 그렇다면 동시대 작가들은 어떤 장소를 어떻게 그려내고 그 안에 어떤 고민들을 담아내고 있는가? 이번전시는 8명의 작가를 통해 동시대 미술에서 ‘장소’가 어떻게 읽힐 수 있는지 가늠해보고자 한다.  

 

 장소는 최초 공간 속에 수많은 사물과의 관계가 포함되는 포괄적인 용어로써 ‘장소성’이란 과거의 역사 뿐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포함하는 진행형의 의미를 획득한다. 또 여기에 타자와 관계, 주관적 기억이 덧붙여지면서 비로소 의미로서 장소가 된다. 지리환경학자 루커먼(F. Lukermann)은 장소의 개념에 대해 ‘인간 행위의 바탕에는 공간이 있으며, 인간이 무엇을 행함으로써 공간적 특성. 즉, 장소성이 부여 된다.’고 말한다. 좀 더 살펴보면 장소는 현재진행형의 의미를 가지며 자연과 문화가 복합된 통합체 안에서 인간의 이동과 물자의 흐름을 통해 서로 긴밀히 상호작용 하는 어떠한 지점으로 정의한다. 루커먼의 말대로라면 인간에 의한 장소는 단지 사물이 위치한 어디가 아니라 사회적 동물로써 인간이 보편적으로 인식되는 그 곳. 우리 삶의 터전이자 살아가기 위한 모든 것이 통합되어 의미 있는 현상을 보이는 모든 지점이라고 볼 수 있다. 때문에 ‘장소’로 작품을 바라보는 것은 사회와 문화, 시간과 공간의 교차점으로써 동시대성(Contemporary)을 이해 할 수 있는 주요한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는 동시대 작가에 의해 특정 장소들이 각각의 작가에게 어떻게 사유되는지 탐구해 본다. 작가들이 제시한 장소는 창작활동의 원천이 되는 어떤 경험을 통해 인식된 것들로 부터 조합되고 파생된다. 그것들은 현실, 사회, 상황, 풍경 따른 문제제기로 읽혀진다. 사회적 의미로써 장소는 어떠한 기능을 제공하도록 특수한 목적으로 설정되어있지만 동시대 작가들에 의해 펼쳐진 장소는 그것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성격과 상관없이 다양한 스팩트럼으로 수용된다.  

    

이혜인의 장소는 자신의 기억 속 저장된 장소로부터 출발한다. 현재의 기억 속 과거 장소를 재구성 하는 과정들을 거치는데 일련의 단계에 의해 기억 속 한 장소는 여러 다른 장소와 공간으로 구성될 여지를 남긴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3점 연작은 모두 다른 성격의 도상처럼 보이지만 한 장소에 대한 기억의 일부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작가의 존재를 증명하는 증거물이기도 하다. 


이진주의 화면에는 초현실적 장소가 등장한다. 전혀 연관성 없을 법한 개체들을 묶어내는 작가의 장소는 기억 안에 내재된 심리적 장소이다. 등장하는 사물들이 작가가 간직한 특정한 기억을 떠올리는 장치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서로 연계시켜 하나의 내러티브로 담아내며 감성적 기억들의 집합소로 이미지화 된다. 그렇게 작가는 자신과의 대화를 시도 하는 것이다. 작가의 화면에서 장(場)은 기억의 파편을 담아내는 그릇으로 작용한다. 


서상익의 장소는 자신이 살고 있는 울타리 안이다. 그리고 그 안에 어떤 영화의 모티브나 음악가, 동물들을 등장시켜 자신의 처한 상황과 고민을 우회적으로 드러낸다. 약간의 상상과 결합된 남루한 일상은 관객들에게 보편적 정서를 불러 일으켜 보다 설득력 있게 현실을 은유 한다. 


노준구는 작가가 여행 하면서 겪은 특정한 장소의 다양한 풍경을 담아낸다. 기차 안에서의 풍경은 삶의 단편들을 나열하는데 각각의 인물들은 유머러스한 에피소드를 담고 있으며 여기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들이 주제화 된다.   


이정민은 정신과 육체의 괴리로 인해 장애라고 규정되는 현대의 다종다양한 정신 병리적 현상들을 나열한다. 현대인들에게 정신과 신체의 충돌은 우울증이나 거식증등으로 표출된다. 그것은 꼭 개인에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안에서도 쉽게 관찰된다. 얼굴 없는 인물이 서로를 부여잡고 삼삼오오 모여 있는 형국은 다름 아닌 누군가가 국회 안에서의 다투는 장면이다. 삭제된 얼굴의 등장은 그들이 누구인지 모호해진다.      


조종성의  장소는 사회적 규약과 규범에 의해 억압된 것들에 대한 저항이다. 그것은 공구 따위들을 포장하기 위한 플라스틱 투명 케이스 안에 만들어진 건축 소품으로 표현된다. 제한된 장소 안에서 건축되어진 건물을 통해 다양한 사회적 규약 안에서 길들여진 어떤 것들을 지적한다.


한성필은 건물의 보수공사 현장을 가리는 차단막이나 건물의 빈 벽에 또 다른 공간처럼 보이는 벽화를 촬영한다. 사라져 가는 것들의 연민의 시선도 아니고 눈속임의 유희를 즐기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복제를 복제함으로써 ‘재현’에 보다 더 큰 의미를 두고 현실의 건물과 가상의 이미지가 뒤엉켜 있는 진짜와 가짜의 경계선을 부유한다. 


정진서는 고층빌딩의 모형들을 집합시킨다. 조각으로 표현된 빌딩들은 하나둘씩 모여 어느새 숲을 이룬다. 본래 있던 장소를 이동해온 빌딩들은 각 도시의 랜드마크적 장소성을 잃고 그저그런 건물들의 집합쯤으로 느껴진다. 게다가 창문과 빌딩의 색이 사라진 그것들은 하나의 덩어리로만 보일 뿐이다. 결국 특정 빌딩들을 집합시킴으로써 그것이 가지고 있는 의미와 성격을 해체하는 것이다.      


 8명의 작가들이 선보이는 장소는 다양한 의미를 생산해 내는 순환구조 메커니즘의 출발로 읽혀진다. 자신과 마주했던 기억에 저장된 프로세스를 떠올리며 장소 자체의 성격은 삭제된 채 개인적 의미를 부여, 현실의 상황과 긴밀히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들의 작품이 사적인 의미로 연결 지어졌다 해도 우리에게 이질적인 무엇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인식에 내재된 어떤 장소를 떠올리게끔 유도하여 생각의 시야를 넓혀주도록 기능한다. 인식으로 한정되었던 어떤 장소들은 작가들에 의해 비로소 ‘소통의 장‘으로 변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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