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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수, 봄을 기다리는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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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수(1927-)의 전체 화업을 살펴보는 회고전
“꿈을 좋아하던 소년시절은 영 가버렸는데도 봄을 맞이하려면 반드시 되살아오는 소년의 마음... 봄을 기다리며 초조해하는 나의 가슴은 신비스런 오색의 꿈으로 찬란하다.”

이번 전시는 박노수(1927-)의 전체 화업을 살펴보는 회고전이다. 선명하고 투명한 색채, 선과 여백의 미를 통해 한국화의 독자적인 경지를 개척한 박노수의 작품세계를 살펴봄으로써 한국미술사 속에서 그 위치와 의미를 조명해보고자 한다.



전시의 부제는 ‘봄을 기다리는 소년’이다. ‘소년’은 작품의 주요 소재로써 절개 있는 선비처럼, 고고한 이상을 가진 존재로 작가의 감정이입의 대상이라 할 수 있다. ‘봄’은 희망에 대한 기대를 의미할 뿐 아니라 작품의 맑고 순결한 정신세계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뭔가 상념에 젖어있는 소년의 모습은 현실의 한 순간에 몰입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다가올 미래를 꿈꾸고 있는 듯하기도 하다.

작품의 소재는 지극히 한정적이다. 말, 노루, 소년, 선비, 달, 나무, 산, 강 등이며 주로 바위나 작은 언덕, 산이 화면의 중심을 차지하고 초연히 인물 하나가 피리를 불고 있거나 나무 아래에서 흘러가는 강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등 이들 소재는 작가에 의해 창조된 작가 자신의 것이다. 이러한 소재들을 선택한 것은 그 소재 자체가 중요하다기 보다 작가의 심상을 표현하기 위한 방법이다. 예를 들어 소년, 고사(高士)로 표현되는 소재들은 봄을 기다리는 외로움과 고독함, 쓸쓸함을 표상하는 소재이기도 한 것이다. 작품에서의 인물의 시선은 관객을 화면 속 너머의 무한한 공간으로 이끌고 있다. 세속을 떠나 자연에 귀의하고자 했던 작가의 현실 상황과 비교해 볼 수 있으며 고독하지만 당당하게 인생을 살아가고자 했던 작가의 삶의 태도와도 무관하지 않다.

“말은 달리는 것이지 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나는 비마도(飛馬圖)를 즐겨 그린다. 화면의 말은 실재의 말이라기보다는 작가의 흉중의 말이다.” “삶을 영위하는 것은 힘이다. 그림도 생동하는 기운을 갖자면 힘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서나 화에서는 필세를 중히 여겼다. 세(勢)란 곧 움직임의 지속을 뜻하는 것이다.... 이것은 말 자체의 힘을 보이고자 한 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그림에 불어넣고 싶은 정신적인 생명감 때문이다.” 작가는 관찰을 바탕으로 말을 그리기 시작했으나 곧 대상을 변형, 재구성하여 자신의 심상(心象) 속의 대상을 그려 나감으로써 관념적인 회화를 제작했다.



박노수는 1945년 이상범의 제자로 입문하여 해방이 된 후 설립된 서울대학교 제 1회화과에 1946년에 입학한 해방 후 1세대이다. 김용준, 장우성 등으로부터 미술이론과 실기를 배웠으며 같은 세대로는 권영우, 서세옥, 장운상, 박세원 등이 있다. 박노수는 졸업 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이하 국전)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제 2회 1953년에 국무총리상, 제 3회 1954년에 특선, 제 4회 1955년에 대통령상, 제 5회 1956년 특선 이렇게 연 4회 특선을 받게 됨으로써, 해방 후 1세대로써 첫 번째 국전 추천위원이 되었으며 수묵채색화로써는 국전 최초로 대통령상을 수상하게 된 것이었다. 1962년에는 한국화단체인 청토회를 결성하여 개성적 표현을 추구하였으며, 이화여자대학교(1956-62)와 서울대학교(1962-82)에서 각각 교수를 역임하였다. 작업에 전념하기 위해 1982년에는 교수직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으며 1983년에는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되었다. 박노수는 한국화의 정체성을 모색하던 해방 후 화단의 움직임 속에서 절제된 색채와 간결한 선묘로 채색과 수묵을 융합시킴으로써, 전통 속에서 현대성을 구현해낸 작가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의 대표작들이 총 망라되며, 폭넓은 화업을 살펴볼 수 있는 산수화, 절지화 등 미발표 소품을 포함하여 약 100여점이 출품된다. 또한 작품의 제작과정을 살펴볼 있는 드로잉들이 전시되어 작품의 감상을 도울 것이며, 작품의 시적요소를 강화하기 위해 화제(畵題)를 번역하여 작품을 보다 풍부하게 감상할 수 있게 하였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국전수상작들이 대부분 소실되어 남아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것은 자료이미지로 대체되며 작업실을 재현하고 작가 영상을 상영, 작가의 삶과 작품세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전시는 크게 네 부분으로 구분된다.

첫째는, ‘외적묘사에서 심상의 표현으로’이다. 1950-70년대는 주로 정확한 인체 데생을 중심으로 대상의 외적묘사에 집중하다가 점차 작가의 심상을 표현하기 시작한다. 이 코너에는 수업기의 인물데생과 국전출품작들이 출품되며 여인, 소년, 말 등 작가의 대표적인 소재들이 등장한다. 특히 70년대 초기에 소년이 피리를 불거나 먼 곳을 응시하는 단독상으로 나타나 세상을 관조하는 이미지로 표현되고 있다. 작가의 심상에 의해 표현된 <산정도(山精圖)>(1960)와 <수렵도(狩獵圖)>(1961)에서는 활달한 필치와 기백 넘치는 표현으로 인간이 자연에 동화된, 자연 합일의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표현방식으로는 50년대에 주로 여백을 살려 중심소재를 부각시켰다면, 60년대에는 여백 없이 화면을 전면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두 번째, ‘월하(月下)의 허(虛)’이다. ‘달빛아래 잡념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이 명제는 작품의 제목이기도 하다. 1960-70년대에 작가는 산수화를 다양한 표현방식으로 모색하였다. 60년대 초 <월하(月下)의 허(虛)>(1962)의 경우 거대한 산수를 배경으로 말을 타고 달리는 소년을 묘사하여 설화적인 세계를 구성하고 있으며, 70년경에는 동양화의 삼단구도를 택하여 중경의 산을 강조하고, 여백으로 ‘연운(煙雲)’을 표현함으로써 아득한 공간감을 갖게 하기도 하였다. 70년대 초에는 풍경의 일부를 확대하여 대담한 붓질에 의한 시원한 화면을 구성하고 있다. 이전 시기보다 설명적 요소가 줄어들고 강한 색채가 눈에 띈다. 작품경향이 채색과 선을 적절히 활용하여 작가의 주관성을 드러내는 방향으로 변모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세 번째로, ‘명산유감(名山有感)’이다. ‘산을 사랑한다’는 작가의 언급처럼, 작가는 산수화를 많이 제작했다. 이 코너에서는 1970년대 중반이후 작가의 개성적인 산수화들과 그 제작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드로잉들, 그리고 작가의 폭넓은 화업을 확인할 수 있는 미공개 소품들이 함께 전시된다. 작가는 작품의 주제에 있어서는 동양화의 화제(畵題)를 선택하였고 여백의 사용 등 전통화법을 기본으로 하였지만 표현방식에 있어서는 현대적인 감각을 수용하였다. 우선 예리한 선묘방식으로 형태를 생략, 재구성하였고, 주관적인 색채를 택하였으며 산의 전면을 단색으로 칠하는 등 전통적인 동양화와는 다른 느낌을 준다. 그가 주로 사용하는 군청색은 마치 큰 폭포가 힘차게 흘러내리는 것 같은 힘의 상태를 나타내며, 흰 종이 위에 담묵처리는 서서히 잦아드는 여운을 남긴다.

네 번째로, ‘선과 여백’이다. 작가는 “선이란 그림의 생명이요 영원한 세계가 열리는 길, 무한의 공간을 끌어들이는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여기서 선은 단순히 대상을 묘사하는 것 이상의, 작품의 근간을 이루는 정신이기도 하다. 이러한 선은 채색과의 만남을 통해 독자적인 양식이 성립된다. “원래 남빛을 좋아하다가 군청색을 쓰기 시작했던 건... 주변의 어떤 사물이나 다른 색과 조화되기 힘든 점 때문에 모두들 기피하는 것을 보고서였지요... 남들이 어려워서 하지 않은 것을 내가 해서 극복하고 싶다는 고집 같은 것이었지요... (색조는) 젊을 때의 객기가 줄어들면서 조금씩 맑아져가는 거겠지요” 작가의 대표색으로 자리잡은 군청색의 선명함은 단지 색만으로 획득되지 않는다. 오히려 여백과의 대조를 통해 작품은 한층 긴장감을 갖는다. 그 여백은 작품의 깊이감을 더하며 감상자를 사색으로 인도한다.



박노수가 미술에 입문했던 시기는 해방 전후로 한국화단이 왜색을 벗고 민족미술을 건설해야 한다는 사명을 가지고 있을 시점이었다. 해방 후 1세대들에게는 이것이 당연한 명제이자 그들의 방향설정이었으리라는 것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시대적 소명 속에 박노수는 수묵과 채색을 융합시키며 전통적 화제를 현대적 미감으로 구현해 내었다.

청전 문하시절, “화가는 무엇을 목표로 그림을 그리는 것입니까”라는 질문에 청전이 “여운”이라고 답한 것처럼, 박노수의 작품에서는 그림의 화제와 더불어 시적 감수성이 느껴진다. 작가의 삶과 예술을 동일시하는 것은 작품의 해석을 왜곡시킬 수 있으나 우리가 그의 작품에서 감지하는 그리움, 고독함, 쓸쓸함 등은 아마도 작가의 감정이 투영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가 그토록 이루어 나가고자 했던 길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었을 것이며 더불어 우리 미술계 역시 한국미술에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한 방법이 되었던 것이다.

싱그러운 계절, 덕수궁에 찾아온 봄과 함께 관객들은 박노수 작품의 ‘소년’이 되어 잠시나마 ‘봄을 맞이하는 소년’의 설레임을 느껴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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