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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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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기전

  • 전시분류

    개인

  • 전시기간

    2010-11-24 ~ 2010-12-19

  • 참여작가

    조문기

  • 전시 장소

    폐관_갤러리밥

  • 문의처

    02-736-0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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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날을 기념하기 

이른 아침 헐레벌떡 뛰어 간신히 지하철에 몸을 싣고 꾸역꾸역 밀려드는 사람들에 질려 하며 멍하니 서 있던 와중에 기묘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내 바로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 중 3명이 고개를 떨어뜨리고 자고 있었는데 고개가 똑같은 각도로, 살짝 갸웃거리는 폼으로 기울어져 있었던 것이다. 가마가 보이는 세 개의 까만 머리가 똑같이 살짝 삐딱하게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는 우연의 모습이 이상하면서도 재미있고, 피곤해 보이는 모습에 측은하면서도 귀엽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조문기 작가의 그림을 보았을 때 문득 위와 같은 어느 아침의 일이 생각났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들도 기묘하면서도 재미있고, 귀여우면서도 어딘가 아련한 느낌이 드는 장면을 연출한다고 여겨졌다. 

이러한 느낌의 중심에는 그림 전체를 거쳐 나타나는 측면상이 주는 효과가 크다. Profile이라고 하는 측면 인물화는 사람의 윤곽선을 도드라지게 하는 표현방법이다. 이러한 방법은 르네상스의 미술이론가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가 자신의 저서 『회화론』에서 언급한 플리니우스(Gaius Plinius Secundus)의 기록 –호롱불 빛에 의해 벽에 드리워진 연인의 그림자를 따라 그 윤곽선을 그렸다는 고대 그리스 회화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 이집트의 벽화들, 로마의 메달에 등장하는 권력자들의 초상, 초기 르네상스의 초상화에 자주 등장하는 옆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위와 같은 종류의 그림들은 대부분은 그림에 등장한 사람들의 바로 당시, 어떤 순간의 자연스러운 활동상을 보여주기보다, 그의 존재 자체를 부각시킨다. 하여 여기에서 나타나는 사람들의 모습은 르네상스 회화 중반 이후부터 점진적으로 나타난 자연스러운 인물 표현 ‐예를 들어 프란츠 할스(Frans Hals)의 스냅사진과 같이 포착한 사람들의 표정과 제스처‐에 비해 다소 도식적이고 딱딱한 모습으로 보인다.

조문기 작가의 그림에서도 사람들은 대부분 전격적인 옆모습을 한 채, 군더더기 없는 선으로 간결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중량감 있는 얼굴과 몸은 역동적이기 보다 정적으로 화면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여러 사람이 등장하는 그림에서는 사람들의 모습이 중첩되게 표현됨으로써, 행동과 윤곽은 반복적인 느낌을 주어 이것은 마치 하나의 의식(儀式)과도 같은 한 장면이 된다.


하지만 여기에 여타의 고전적인 측면상과 다른 점이 있는데, 그것은 중성화된 시공간이 아니라, 일상의 한 순간을 암시하는 특정한 시공간을 품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림 속 인물들은 고개를 돌리고, 무표정하게 정면을 응시하거나 눈을 감고 있지만 분명 어떤 장소에서 특정한 행위, 활동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이것은 단지 그들의 뚜렷한 존재를 현현(顯現)한다기 보다, 어떤 상황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게다가 사람들의 옆모습은 통통해진 얼굴 때문에 윤곽선의 굴곡 높낮이가 심하지 않으며, 눈, 코, 입이 작아 표정이나 생김새의 개성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여 일견 생생한 느낌이 사라지는 것 같지만, 그들이 입고 있는 옷이나 헤어스타일, 지니고 있는 물건, 주변의 배경에서 나타나는 세부적인 디테일, 작지만 은근한 제스처, 이러한 것들이 그들을 단지 생기 없는 군상으로 내버려두지 않는다.

도식적인 표현과 상상을 동반한 생생한 현실감은 이렇게 만난다. 그리고 이것은 반복적이고 딱딱한 표면에 유머러스한 느낌을 부여한다. 몰개성의 군상들이나, 별 일 없는 하루처럼 어찌 보면 우울하고, 지루할 수 있지만 그것을 낯설게 보는 순간 세계는 기이하고 독특한 변주를 보여준다.

하여 여기에서 나타나는 장면들의 독특함을 형성하는 것은 일상을 의식(儀式)화하고 기념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특별한 풍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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