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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한칭&유모나: Sediment, Patina, Displac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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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설치가 주무기인 작업 듀오 마한칭(1990~)&유모나(1987~)의 개인전 
○ 건축과 공간에 대한 관심이 장소 특정적 설치와 사진 전시로 전이
○ OCI미술관 공간을 그들의 방식으로 뜯고 맛보고 즐기는 안구 만찬
○ 본래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동시에 그 자체로 전시물이 된 화이트큐브
○ 느리고 우회적이고 조곤조곤한 그들만의 화법과 박자로의 접근 체험 전시

[전시 소개]

OCI미술관은 그저 흰 벽으로 둘러 싸인 전형적인 전시장인 것일까? 마침 그 의문을 샅샅히 낱낱히 풀어헤치는 작가 듀오가 등장했다. 바로 9월 6일부터 10월 13일까지 종로구 OCI미술관(관장 이지현)에서 열리는 마한칭, 유모나 작가의 개인전 《Sediment, Patina, Displacement》. OCI미술관 신진작가 지원 프로그램 2018 OCI YOUNG CREATIVES의 여섯 선정 작가 가운데 하나인 마한칭, 유모나 듀오의 이번 개인전은 사진과 설치의 조합이라는 특이한 형식에, 땅이 터가 되고 건물이 서고 그 내부가 채워지는 일련의 세월을 헤아리는 독특한 화법이 어우러지는, 대표적인 장소 특정적(Site Specific) 전시이다. 

 

Terrace  Silver gelatin hand print  35×28㎝  2018

마한칭과 유모나는 각각 사진과 설치를 주요한 작업 형식으로 삼는다. 두 사람이 창작 듀오로, 단일 창작 주체로 활약하는 하나의 개인전인 만큼, 그들의 주무기는 이 사진과 설치의 ‘조합’이다. 그리고 그들의 주된 관심사는 건축이다. 따라서 사진과 설치의 조합이란 형식으로 건축과 공간을 다루는 것이 이 듀오의 작업이며 이번 작업의 대상은 바로 그들의 전시가 열리는 공간, OCI미술관 건물이다.

 

Sediment  Silver gelatin hand print  89×71㎝  2018

OCI미술관은 화이트큐브의 일반적인 특성을 다수 지닌다. 화이트큐브는 살롱, 개인 캐비닛, 궁전 복도, 박물관 등 고전적 전시장의 모든 맥락과 개성에서 유리되어, 미술품을 전시하기 위한 용도로 태어난 공간, 합목적적이면서 동시에 주술적인 공간이다. 이에 따르면 이상적인 화이트큐브는 미술품 이외의 어떤 것도 도드라지지 않는, 마치 ‘새 문서’를 클릭하면 뜨는 화면처럼 균일하고 편평한 벽면과 바닥과 빛을 갖추어야 할 것이고 그러한 취지와 용도로 지어지고 운영되며, 공간 특성도 부각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Relic, Space In Negative  Silver gelatin hand print  25×30㎝, 28×35㎝  2018

그러나 현실의 그 어떤 화이트큐브이든 어느 건물의 일시적 단면일 것이며, 삼차원의 부피와 양수의 무게, 주소지, 설립 연도, 맞아 온 비바람의 양이 있을 것이다. OCI미술관 건물 역시 그러하다. 마한칭, 유모나는 이 건물의 맥락을 그들의 언어로 솎아, 다시 OCI미술관이란 화이트큐브에 풀어낸다. 미술관은 본래의 배역을 다하는 동시에, 전시 기물, 작품의 일부인 셈이다.

 

Wall, West Side  Silver gelatin hand print  60×67㎝  2018

전시 흐름은 ‘Site – Space – Time – Place’의4개 섹션으로 파악할 수 있다. 터를 다지고, 기둥이 서고 건물이 올라가 물리적 공간을 꾸리고, 시간을 입으며 이야기가 쌓이고, 마침내 다른 것과 구별되는, OCI미술관이란 하나의 장소로 거듭나는 일련의 과정이다. 이 섹션을 칼처럼 나누지는 않는다. 작가가 추구하는 건 어디까지나 과거에서 현재로 오는 자연스런 하나의 흐름이다. 전시 제목 《Sediment, Patina, Displacement》는 ‘자연-사람-그 이후’로 이어지는 이 흐름과 호흡을, 한 발자국 더 물러나서 조금 더 은유적으로 담았다. 쌓이는 것, 입는 것, 마침내 들어서는 것. 지반이 쌓이고, 건물이 쌓이고, 시간이 쌓이고, 이끼와 녹을 입고, 시간과 사연을 입고, 건물이 허공을 채우고, 물리 공간을 장소가 채우고, 작가의 표현을 감상자의 상상이 채우는 이미지로 이해할 수 있다.

 

Pillar, East Side  Silver gelatin hand print  90×80㎝  2018

2층 전시장 들어서기 전 계단 공간을 채우는 빛부터 심상찮은 오렌지 빛깔이다. 전시장 입구 벽면에서 무척 편평하고 고요한 수면을 목격한다. 전시장 위층으로 향하는 계단 역시 오렌지빛으로 채워진 걸 확인하며 전시장을 들어서면, 2층 난간을 타고 널찍이 펼쳐진 또다른 물을 마주하게 된다. 폭 4미터, 길이 6미터가 넘는 반투명한 비닐을 난간을 따라 팽팽히 붙들어 펴 놓은 설치 작업 <Waving Surface>이다. 찢어질까 염려될 정도로 얇고 여린 비닐 층이 공중에 떠서 공기를 타고 이리저리 넘실댄다. 전시장 입구에 설치된 동명의 시트지 작업을 설치로 변용했다. 언제나 평탄을 유지하려 드는 물의 이미지를 투영한 조형이다.

 

《Sediment, Patina, Displacement》  전시전경

수평적 이미지는 자연물에서 점차 인공물의 흔적으로, 다시 기둥과 건축물의 수직적인 이미지로 전이한다. 낡은 비계와 미장을 한 건물 내벽은 물리적인 공간감을 한층 강조하고, 기둥에 낀 이끼는 세월의 흐름을 짐작케 한다. 거울 너머로 슬몃 엿보이는 기계 장치나, 2층 천장의 한계를 넘어 늘어뜨린 수많은 반투명 레이어 행렬은, 이 건물만의 생김새를 속속들이 암시한다. 현대적 정제기술의 최후 산물인 아스팔트 더미는 표면을 마무리하는 마감 재료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덩그러니 홀로 걸린 베를린 장벽 조각은 제목 <Piece of You>가 암시하듯, OCI미술관 건물이 실제로 품고 온 이야기 부스러기 중 하나이다.

 

Piece Of You  Silver gelatin hand print  25×30㎝  2018

작업 형식도 작업자 조합도 평범하지 않지만, 무엇보다도 그들의 화법은 이처럼 우회적, 은유적, 간접적이며 무던히도 섬세해, 때때로 조심스러울 정도이다. 강하지 않게 살살 읊고 조곤조곤 속삭이는 그 화법 그 느리고 짙은 박자야말로 역설적으로 이들 작가의 강한 자기색이라 하겠다.

마한칭(1990~), 유모나(1987~)는 영국 왕립예술대학교에서 각각 사진과 조소를 전공했다. 아티스트 듀오를 결성, 주 무대 영국을 비롯, 프랑스, 미국, 중국 등 세계 각국에서 레지던시와 전시활동에 활발히 임한다. 공간과 건축에 대한 관심을, 사진과 설치를 조합한 장소 특정적 작업으로 빚어 낸다. 특히 이번 OCI미술관 개인전 《Sediment, Patina, Displacement》는 한국에서 선보이는 첫 번째 개인전으로 어느때보다 그 각오가 남다르다.


 
[작가 약력]
 

마한칭(1990~), 유모나(1987~)
Ma Hanqing, Yoo Mona

hanqingmona@gmail.com
hanqingmona.com
 
학력

마한칭          
2018-      Ph.D.  에딘버러대학교, 에딘버러, 스코틀랜드
2013-2015  M.A.   왕립예술대학교, 사진학과, 런던, 영국
2009-2012  B.A.   북방과학기술대학교, 언론 광고학과, 베이징, 중국 
2014-2015  비쥬얼 오브 아트, 뉴욕, 미국

유모나 
2013-2015  M.A.   왕립예술대학교, 조소과, 런던, 영국 
2007-2012  B.F.A.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서울, 한국
2008-2009  메릴랜드 예술대학교, 메릴랜드, 미국


주요 전시

2018  Site as Place, 쇼앤텔, 서울, 한국 
2018  Sediment, Patina, Displacement, OCI 미술관, 서울, 한국
2018  Satellite, 섬머홀, 에딘버러, 영국
2018  Trading zone, 탈봇라이스 갤러리, 에딘버러, 국 
2017  New Hero, 재능 문화 센터 (JCC), 서울, 한국  
2017  CICA Contemporary Photography, CICA 미술관, 서울, 한국 
2017  We existed here, 레드 게이트 레지던시, 베이징, 중국 
2016  Riptide, 영국한국문화원, 런던, 영국 
2015  블룸버그 뉴 컨템포러리 ICA, 런던, 영국 
2015  블룸버그 뉴 컨템포러리 노팅험, 노팅험, 국 
2015  SHOWCASE TWO, Riverlight Quay, 런던, 영국 
2015  Off-Site, 펌프하우스 갤러리, 런던, 영국                               
2015  Exit Strategy Off Print London, 테이트 모던 미술관 터빈홀, 런던, 영국 
2015  Pause Patina, 캠든 아트 센터, 런던, 영국 
2015  Photo London, 소머셋 하우스, 런던, 영국 
2015  Exit Strategy Book launch show, 라샵 갤러리, 런던, 영국 
2015  FLUX IN DUBAI, 알셀카 에비뉴, 듀바이, 아랍에미리트 
2015  Latching Firm, 고비 상 관, 런던, 영국 
2015  Latching Firm, 캠든 아트 센터, 런던, 영국 
2015  RCA Secret 2015, 다이슨 갤러리, 런던, 영국 
2014  Planche(s) Contact#5, 도빌, 프랑스 
2014  Work In Progress Show, 호크니 갤러리, 런던, 영국


레지던시

2019  Yamakiwa gallery, 니가타, 일본 
2017  Red Gate Residency, 베이징, 중국
2015  School Of Visual Art, 뉴욕, 미국 
2014  Flat Time Home, 런던, 영국
2014  Planche(s) Contact, 도빌, 프랑스


수상

2018  최초예술지원, 서울문화재단, 한국
2018  Postgraduate Research Expense (PRE) 장학금, 영국 
2018  Research trip and Tacita Dean workshop, 뉴욕 카네기코포레이션, 영국 
2017  2018 OCI Young Creatives, 선정작가, 한국 
2017  퍼블릭아트 뉴 히어로, 선정작가, 한국 
2016  Art Funding Bursary, 제네시스 이미지, 영국 
2015  RCA studio award, 선정작가, 영국 
2015  Bloomberg New Contemporaries, 선정작가, 영국
2014-2015  The Overseas Bursary, 왕립예술대학교, 영국 
2013-2014  Bursary Award Scheme, 왕립예술대학교, 영국



Courtesy of Hanqing&Mona Photography by Hanqing Ma


[전시 서문]

오랜만에 찍은 증명사진이 꽤 괜찮게 나왔다. 몇 장 오리고 있자니 “이력서 쓰냐?”, 남의 지갑에 넣으니 “무슨 사이냐?”, 밋밋한 액자에 크게 하나 끼우니 “영정사진이냐?” 한다. 손끝 말고 달을, 그냥 사진을 봐 주는 곳은 없을까?

화이트큐브는 참 특이한 공간이다. 시간, 장소, 맥락에서 가장 멀찍이 물러나 달만 보는 공간. 그 희디흰 벽은 ‘흰색으로 열심히 채운, 단단한 벽면’인 동시에, ‘그림 걸기 전, 완전히 비어 있는 상태’를 지시한다. 즉 물리적 한계를 지니면서도 그러한 주변 맥락에서 유리된, 일종의 주술적 합의의 공간이기도 하다.

이 화이트큐브의 멱살을 끌고 현실과 삼자대면을 시키면 어떨까? 신상과 사연과 맥락을 탈탈 털어 그 조서를 만천하에 까발리는 것이다. 마한칭, 유모나는 화이트큐브의 인상과 생김새와 이야기를 사진과 설치 등 그들의 언어로 솎아, 다시 화이트큐브에 풀어낸다. 전시에서 OCI미술관은 본래의 배역을 다하는 동시에, 전시 기물, 작품의 일부가 된다. 그러니까 사진과 설치 사이사이 흰 벽은 단지 여백이 아니다. 캡션을 잠깐 생략했을 뿐.

그들의 화법은 느리고 신중하고 꾸준하고 덤덤하며 여유롭다. OCI미술관 건물은 그들의 주된 작업 제재이지만, 또 순순히, 성급히, 고분고분히 등장하는 주인공이 어디 있을까. 호흡을 길게 잡아  땅부터 일구자. 편평한 수면을 비집고 뭍이 융기, 침식, 침강, 퇴적을 되풀이한다. 터를 닦고, 기둥이 서고, 벽돌을 포개어 공간은 모양새를 갖춘다. 이끼가 끼고 먼지가 쌓일 시간 내내 숱한 사연이 차오른다. 문짝만 밀어도 그 집의 숨이 물씬 와닿을 만치 이야기가 넉넉히 어릴 무렵에야 비로소 장소로 거듭난다. 얌전 느긋한 선비 걸음 같아도 그 집의 입장에선 수천 배속 황급한 주마등일 것이다.

OCI미술관 건물 온몸에 두른 조적 형태, 벽돌과 나무틀의 노르고 발간 빛깔, 기둥과 보의 자연스러운 만남을 주선하는 독특한 꾸밈 양식, 1:1.5로 수렴하는 곳곳의 사선 요소들. 헨젤과 그레텔이 빵조각 따라가듯, 슬쩍슬쩍 엿보이는 실마리를 따라가며 자신만의 공간을 몽타주 하자. 겁먹을 건 없다. 뜯고 있는 빵 덩어리는 어디까지나 지금 디딘 ‘OCI미술관’이니까.


김영기 (OCI미술관 큐레이터)

Courtesy of Hanqing&Mona Photography by Hanqing Ma


[평론]

시간의 잔해로부터, 공간의 켜를 밝히는 여정


#1. 대화와 전치 : 한칭 & 모나

분리되어 있던 두 작가의 시선이 마주한 곳은 바로 건축 공간이다. 공간을 탐색하는 데 있어 상이한 문화, 역사, 도시 맥락은 그다지 문제가 되진 않는다. 오히려 이 간극 속에서 공간을 매개로 대화하는 가운데 작업이 나온다. ‘대화의 대화’를 거친 후 여러 가능성의 시뮬레이션을 마련하고, 전시 공간과의 접촉에까지 대화는 이어진다. 그러하기에 둘의 작업은 결과물뿐만 아니라 다가가는 여정, 다른 말로 하자면 ‘전치(displacement)의 전치’ 또한 작업의 일부분이라 할 수 있다. OCI 미술관에서의 장소특정적 전시를 준비하는 동안 스케치업 시뮬레이션은 수없이 변화했고, 건축 모델, 다이어그램, 글, 도면, 시놉시스 등이 대화를 보완하며 작업의 디테일을 구체적으로 더해 나간다. 작가의 말을 인용하자면 “번역으로 헤매지(lost in translation)” 않기 위한 과정이다. 언어화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 시각적인 분류를 더 하여 소통의 간극을 조금씩 좁혀 나간다. 둘의 작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계속된 전치는 건축 공간을 탐색해 나가는 ‘대화의 설계도’를 구축해 나간다. 

#2. 중립에서 도출되는 매체성 : 사진과 오브제 

초기에 한칭이 찍은 사진에 영감하여 모나가 오브제를 만들던 관계는, 점차적으로 대화 속에서 순서가 전복되며 긴밀하게 얽혀들어 간다. 이번 전시에서 이러한 전환이 자연스럽게 발생했다. 사진의 언어는 공간에 묻어나고, 공간의 언어는 사진에 새겨지며 둘의 대화는 “균형의 중립(le neutre de l’équilibre)”(바르트)을 찾아 나선다. 이 중립은 주관성의 자기 환영으로부터 빠져나오는 길목에 있다. 그러하기에 둘은 사진과 오브제의 매체성을 각기 형식의 반대편에서도 도출해 보인다. 스트레이트 사진의 즉물성은 오브제의 섬세한 질료와 감각으로부터 공간과의 시적 알레고리를 형성해 나간다. 이번 전시 《Sediment, Patina, Displacement》에는 모나의 ‘공간적 개입’을 한칭이 ‘사진적 실천’으로 전치(Displacement)하고, 이 과정의 반복 속에서 공간에는 보이지 않던 시간의 파티나(녹; Patina)와 침전물(Sediment)이 점차 얹혀 진다. 어느 한쪽의 방향을 겨냥하는 것이 아니기에, 전치는 또 다른 전치로 이어지며 질료들 사이의 관계를 밀도 있게 형성해 나간다. 부서진 바위와 콘크리트, 벗겨진 페인트칠과 들추어진 벽면, 물의 수면과 반투명한 비닐의 수평성 그리고 천장에서 떨어지는 천막의 수직적인 켜까지.


Courtesy of Hanqing&Mona Photography by Hanqing Ma


#3. OCI 미술관 : 에든버러와 서울 

이 대화의 시발점에는 OCI 미술관의 건축 공간이 있다. 오랜 시간을 넘어 서울 한복판을 굳건히 버티어온 붉은색 벽돌 건물에 대한 관심이다. 서울과 같이 고속 성장한 도시에서는 드무나, 역사적 폐허가 도시의 한 부분을 형성하고 있는 에든버러에서는 익숙한 장면이기도 하다. 한 건물이 변화해온 자취를 밟아나가는 과정은 시간의 켜를 들추는 여정과 같다. 에든버러에서 8천 킬로미터 쯤 떨어진 OCI 미술관을 사유하는 경로는 내부-외부-도시-문명-역사-자연에 걸쳐진다. 마치 시간을 측정하는 것 마냥. 이 공간의 켜는 역사적 장소, 과거의 건축 양식, 폐허의 흔적, 공간이 변형되어온 자취, 건설 현장의 잔해들과 공명하는 가운데 점차 드러난다. 

이번 전시의 공간은 미술관의 2층이나, 전시는 1층에서부터 시작된다.(전시를 보고 나면 알게 되는 것이지만, 실은 건물이 전체적으로 매개된다.) 전시는 1층과 2층의 사이, 2층과 3층 사이, 그리고 외벽과 내벽 사이에 걸쳐지며, 더불어 과거 사저였던 건물이 공적 공간(미술관)으로 전이된 흔적을 파고든다. 작가에 따르면, “낮은 천장의 모습, 공간의 구획, 분리 등이 반복되어 드러난 과거”가 주목된다. 공간의 규정은 사람들의 행동 양식과 경험을 지시해 왔다. 화이트큐브의 경우, 시선은 더욱이 작품이 존재하는 벽으로만 집중된다. 이들은 현재가 부여한 공간의 맥락에 거리를 두고, 공간의 역사를 질료와 물리적 자취에서부터 파고들어 간다. 외벽 재료, 건물의 색, 지붕의 비율과 천장 높이, 그리고 숨겨진 공간에 대한 분석이 작업의 디테일에 반영된다. 

#4. 상황적 장소 : 공간을 매개하는 미세한 개입 

둘은 전시장에 진입하면서 무심하게 스쳐 지나가는 공간도 모른 척 하지 않는다. 외벽, 입구, 1층, 계단실, 창고까지 감지되지 않던 공간의 특성이 작업으로 전유된다. 시간을 버티어낸 붉은 벽돌(현재 도시에서 사라지고 있는 물성)의 색은 전시장에서 오렌지색 조명으로 전유되어, 간접적인 방식으로 외벽의 물성을 되살린다. 수직으로 구획된 층을 매개하는 제스처도 공간에 개입된다. 분리된 공간의 축을 엮는 것은 얇은 막이다. 1층과 2층 사이에 뚫린 공간에서 하늘거리는 얇은 덮개 막은 2층으로 시선을 안내하며, 이 공간에서 일어날 상황을 비밀스럽게 암시해 보인다. 이 얇은 막은 에든버러의 호수(St Margaret's Loch) 사진과 만나 고고학적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위약하면서도 질긴 플라스틱 비닐의 이중적 물성은 호수의 표면과 만나고, 전시의 끝쯤 수직으로 떨어지는 천막의 레이어들과도 이어지며 수평-수직의 축을 전이시킨다. 5층에 있는 사저 공간의 오브제(베를린 장벽의 벽)와 미술관의 내외부를 찍은 사진은, 이 공간에 파편적으로 존재하던 시간을 한데 불러 모은다. 돌의 파편은 저 멀리 에든버러의 풍화된 바위와 맞닿으며, 경계가 허물어진 세계를 기념하던 집단적 기억과도 마주한다. 이렇듯 전시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공간의 안과 밖이 끊임없이 연동하는 곡면의 차원이 되어 나간다. 작가들의 용어를 빌리자면 “상황적 장소(situational place)”이다. 


Courtesy of Hanqing&Mona Photography by Hanqing Ma


#5. 동시대의 폐허에 대해 

폐허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시간에 맞설 수 없는 문명의 파편은 자연 속에서 도시 속에서 폐허로 사는 법을 터득해왔다. 그렇게 폐허는 “다양한 변화를 겪어온 과거가 현재로 수렴”(짐멜)된 것으로, 과거의 시간을 현재, 나아가 도래할 미래로 유예시킨다. 전시에서 폐허는 여러 시공간의 간극을 꿰뚫으며 하나의 장소로 모여든다. 자연에 남겨진 예배당의 폐허(Saint Anthony's Chapel)를 담은 사진은 오래전 폐기된 장소가 시간 속에서 지켜온 물성의 자취를 고요히 응시해 보인다. 한칭이 고수하고 있는 아날로그 사진 촬영과 인화 방식은 시간의 침식으로서 장소의 표면을 사진에 즉물적으로 새긴다. 시간의 폐허로부터 풍화되며 생성되어 나가는 존재들의 표면을 정밀하게 기록한 것이기에, 이 사진들은 풍경이라기보다는 정물에 더 가깝다. 더불어 모나의 오브제 설치의 즉물적 구성은 형태를 외양으로서가 아닌 많은 것들을 함의하고 있는 질료와 구조로서 주목하게 한다. 

#6. 돌과 콘크리트, 침식과 퇴적  

가장 견고한 물질이라 여겨지는 돌도 시간이 흐르면 서서히 마모되어 나간다. 물성의 침식을 견디지 못하는 도시는 이를 ‘폐허’라 부르며 말끔히 지워 내거나 새로운 물질로 위장해 나간다. 이러한 현재에 맞서듯 한칭과 모나의 작업은 견고한 세계를 둘러싼 환상의 시선을 한 꺼풀 벗겨내며, 표면에 새기어진 시간의 고고학적 자취를 밝혀 보인다. 마모된 도로의 표면과 돌의 표피, 파사드의 붕괴와 자연 속에서의 침식은 도시의 가설적 구조(비계 설치)와 조응한다. 시간이 쌓일수록, 장소는 시간에 녹아가듯 침식되어 나간다. 자연은 그렇게 수천 년을 버티어왔고, 인간은 도시의 풍화에 맞서 계속하여 환경을 새로이 단장한다. 전시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콘크리트 아스팔트의 잔해는 모래 산, 마치 자연의 퇴적물처럼 쌓여 과거의 시간을 마주하게 한다. 돌에 대해 “끊임없이 죽어가는 유일한 사물”(퐁주)이라 부른 시인의 어구처럼, 공간을 구축하는 물질은 그렇게 시간의 풍화를 버티며 인간의 터가 되고 폐허로 다시 남겨진다. 이렇듯 두 작가가 안내하는 전시의 경로는 “동시대”라는 현재의 표면에 가리어진 시간의 켜를 관객에게 경험케 하며, 한 공간의 가능성을 도시 속으로, 자연으로, 이 세계의 폐허와 잔해에까지 가닿도록 멀리 내밀어 낸다. 


심소미 (독립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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