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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회화: Individu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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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회화: Individualism


아트스페이스 라프에서 열리는 <오늘의 회화, Individualism>전은 ‘여전히 MZ세대 작가들이 회화에 천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그들은 다양하고 새로운 디지털 매체 속에서 굳이 왜 손으로 그리는 회화를 고집하는가? 그렇다면 회화는 동시대를 담아내기에 과연 여전히 적합한 매체일까? 네 명의 MZ세대 작가 박소라, 어지원,  정태후, 최형섭의 회화를 통해 이러한 질문들에 답을 찾아보았다.  

회화는 오랜 역사 동안 신화에서 혁명에 이르기까지 그 시대를 비추는 거대 서사를 담아왔다.  근대 이후 나타난 추상회화는 그 자체로 모더니즘이라는 시대적 담론을 대표하는 현대사회의 문화적 아이콘이 되었다. 인류의 시작과 그 역사를 거의 나란히 해온 회화가 지금처럼 위상을 위협받았던 적은 없었다. 사진과 영상이 등장했을 때도 오히려 회화는 오리지널리티를 기반으로 그 가치가 더 높아졌었다. 
그러나 ‘캔버스’ 자체를 낡고 지루한 재료로 바라보는 시선, ‘그리기'라는 행위 자체가 앱으로 대체되는 기계화가 가속화되면서, 물감을 짜고 바르는 회화는 미디어, 설치, 아카이브, 테크놀로지 등 포스트모던한 작업방식들에 비해 진부한 장르가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과 가상세계, 펜보다 버튼, 종이보다 모니터가 더 친숙한 MZ세대들에 의해 회화는 계속되고 있다. 라프는 각기 다른 소재와 스타일로 여전히 붓을 들고 캔버스 앞에 앉아있는 네 명의 MZ세대 페인터들의 작품들을 전시하면서, 이들을 관통하는 ‘인디비주얼리즘’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오늘의 ‘회화’를 점검해 본다. 

박소라와 어지원은 공간을 소재로 작업한다. 박소라는 전시공간을 어지원은 공사현장을 그린다. 박소라의 그림 속에서는 완벽히 통제된 흠없는 갤러리 안에 공공질서를 준수하는 관객이 전시를 관람한다. 언뜻 보면 정확하게 전시장 인테리어와 전시 작품을 재현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안에는 관객을 은유하는 자신의 발자국이 동선을 따라 그어져 있다. 직선으로 그려진 크고 엄격한 전시공간에 비해 곡선으로 미미하게 표현된 순응적 관람 루트는 감시와 규율을 내면화한 현대 문화인의 유령적 실존을 연상케 하는 흔적이다.       

박소라의 회화 안에서 작가는 형태 없는 관객으로 등장하지만 화면 밖의 작가는 전시장 안의 풍경, 사물, 작품 등을 임의로 바꾸고 새롭게 디자인하는 공간의 변주자다. 작가는 캔버스의 안과 밖을 넘나들며 통제에 익숙한 개인인 동시에 통제를 해체하는 권력자로 공존한다. 박소라는 자신의 회화 안에 또 하나의 세계를 열고 마치  두루마리 속을 자유롭게 넘나들던 전우치처럼 상충하는 권력구조의 안팎을 뒤집어놓는 도술을 부린다. 박소라가 만들어가는 오늘의 회화 속에는 무기력하지만 전지전능하기도 한 모순적 개인이 숨어있다.

어지원은 말끔히 정비된 도시 속 어수선하게 파헤쳐 진 공사장을 이미지화한다. 작가는 완벽해 보이는 첨단 도시 한켠에 땅을 뒤엎고 철근이 삐져나오고 자갈과 모레가 나뒹구는 날것의 틈새를 훔쳐보는 시선을 포착한다. 어지원은 작가노트에서 번드르르한 도시를 이성적 자아로 원초적인 공사장을 본능적 기질로 상정한다. 작가가 구분한 합리적인 자아와 길들여지지 않은 기질은 한 개인 안에 존재하는 두 얼굴과도 같다. 어지원은 기질이 자아를 이기고 표출되는 순간, 즉 불안한 실재가 단단한 구조를 뚫고 나오는 지점을 공사장에 비유하고 있다.

어지원의 그림 속에는 공사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자재들이 절단되고 깨진 비정형의 모습으로 흩어져있다. 무채색 시멘트 사이를 비집고 어지럽게 튕겨져 나온 파이프와 철근 등은 단정한 건축물의 겉모습 안에 뒤엉켜 있는 배수관, 하수관, 전기 설비 등 내부의 와해된 요소들이다. 작가는 완성형의 건축 외관과 불안정한 현장 내부를 같은 프레임 안에 대비시켜서 아폴론적인 이성적 세계관과 디오니소스적인 감성적 세계관을 긴장감 있게 병치시킨다. 어지원은 개인의 무의식이 분출되는 찢어진 틈을 회화화함으로써 그림 속에 표출된 자신의 기질을 그림 밖에서 응시하도록 한다.       

반복적으로 공간을 그리는  위의 두 작가와 달리 최형섭과 정태후는 무한 반복되는 붓질의 리듬에 빠져있다. 최형섭은 주로 같은 파장의 일정한 호흡을 따르는 리듬을, 정태후는 변화무쌍하고 드라마틱한 찰나적 리듬을 시각화한다. 최형섭에게 선은 일상의 사유를 나타내는 기호다. 선은 라인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참선의 뜻도 함유하고 있어서 작가는 선의 반복된 리듬이 명상의 길로 통하게 됨을 암시하기도 한다. 자신의 작업을 센티오그라피라 소개하는 최형섭은 회화를 내면의 기록으로 삼아 끊임없이 반복적인 선으로  자신을 기록해 나간다.      

최형섭은 다양한 물감과 색연필을 이용해 두께와 질감과 색상이 혼재된 선들의 입체적 평면을 만든다. 반복된 행위의 중첩과 물성의 실험이라는 측면에서 단색화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모더니즘의 상투적인 담론 안에 그의 작업을 도매금으로 편입시키기엔 아쉬움이 있다. 최형섭의 회화 안에는 작가 특유의 어린 아이 같은 해맑음과 사랑스러움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수련과 고행으로써의 반복이 아닌 가벼운 미풍처럼 편안하고 리드미컬한 반복을 통해 작가는 자신만의 페이스로 단색조 회화의 미술사적 무게를 쉽고 가뿐하게 털어낸다. 최형섭이 기록하는 오늘의 회화는 일종의 시각적 음악으로 선과 색을 이용해 개인의 일상적인 리듬을 놀이처럼 칠해나간다.

정태후는 역동적인 붓질이 강조되는 표현력으로 화면 전체를 강렬하고 과감한 리듬감으로 채운다. 최형섭의 리듬이 보사노바 재즈의 느낌이라면 정태후의 리듬은 낭만주의 교향곡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작가는 고전적 신화적 소재를 그리기도 하며 고전 문학이나 영화가 가진 인간 군상에 대한 통찰력에 집중한다. 다른 세 명의 작가들이 사물이나 조형물을 그리는 것에 반해 정태후는 사물이 아닌 것, 인물이나 동물을 주로 그린다. 작가는 살아있고 동적인 대상에 회화적 리듬과 속도를 입혀 붓질이 뿜어내는 힘을 극대화한다.

정태후는 ‘겹쳐진 나'라고 표현하는 자기 분신 같은 동생의 다양한 동작과 모습을 시공간과 내러티브를 알 수 없는 비현실적 배경 안에 그린다. 글이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작가 개인의 추상적인 감정과 순간의 느낌을 표현하는 데 전념한다. 작가는 설명하기 어려운 내면의 에너지를 몸과 연결된 붓을 통해 발산한다. 겹쳐지고 흔들리는 환상 속 인물은 아직 신화 속 인물과 같은 서사를 갖추지 못하고 부유한다. 정태후는, 신기술로는 구현할 수 없는, 작가의 몸과 감정과 붓이 하나의 리듬으로 작동하는 회화의 유기체적 본성에 탐닉하고 있다.

‘오늘의 회화'전은 전위적이거나 선구자적인, 동시대적이거나 트렌디한, 앞선 혹은 새로운, 등 미술계가 좋아하는 이런 모든 수식어를 내려놓은 가장 전통적이고 가장 평범해져 버린 ‘회화’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네 명의 아티스트들은 새롭지도 않고 디지털 시대의 동시대성을 담기에도 불편한 ‘회화’라는 미디엄을 통해 빠르게 변화하는 집단적 트렌드 속 개인의 함몰에 대한 본능적 위험신호를 보내고 있다. 정제된 사회, 완벽한 이성, 거대한 담론, 테크놀로지의 매력 등 이 시대를 지배하는 우수한 것들이 주는 불안감에 대해 네 명의 작가들은 모순적이고 취약하고 천진하고 급진적인 방식으로 응답하고 있다.               

김진형(아트스페이스 라프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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