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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비평가와 큐레이터 육성

정연심

세계적으로 학력 인플레이션과 함께 학점 인플레이션을 이야기하고 있다. 과거에는 학부의 학력만으로도 가능했던 것들이 이제는 대학원 학위를 필요로 하는 전문직으로 부상하고 있다. 국공립미술관에서 인턴이나 일을 하기 위해서는 암묵적으로 대학원 학위 수료나 대학원 석사학위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전시기획 등의 영역에서 실무 경험을 쌓기가 예전에 비해 많이 힘들어졌다. 대학원 진학 이후, 학생들은 시각예술 관련 이론수업을 수강하면서도 동시에 현장에서의 실무 경험을 쌓기 위한 기회를 갖기 위해 예술관련 기관에서 인턴으로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비평가로서, 큐레이터로서 꿈을 쌓고 비전을 생각해보기 이전에 조급하게 현장경험을 먼저 쌓아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사전에 경력을 쌓아두지 않으면 졸업 이후 취업으로 이어지지 않을까하는 많은 고민들을 하게 된다. 1980년대에는 몇 개의 대학에서 미술이론 관련 수업이 진행되었다면 이제는 적잖은 대학에서 비평가와 큐레이터 양성을 위한 프로그램들이 개발되었다. 학교의 교육 프로그램은 시각예술을 둘러싼 현장에서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국내에서 아트페어가 활성화되고, 상업 갤러리가 전문적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비엔날레를 비롯한 각종 국제전시가 기획되면서 시각예술뿐 아니라 디자인 분야, 뉴미디어 아트 분야 등에서 조직적인 기획력을 가진 큐레이터 직업이 급부상하였다. 그러나 국내에서 국제적 감각이 있는 기획자들을 키워주는 조직적인 힘은 약한 편이다.

 

또한 교수의 직급이 조교수(Assistant professor), 부교수(Associate professor)를 거쳐 정교수에 오르듯이 해외의 미술관들은 큐레이터들도 직급을 두어 조큐레이터(Assistant curator), 부큐레이터(Associate curator) 등으로 직급을 차등화시켜 경험과 경력, 연구능력 등에 따라 직급을 구분한다. 미술관의 큐레이터는 비정규직이 아닌 전시기획능력, 조직력과 연구능력을 겸비한 재원으로 보통 한 전시를 위해 적어도 1년 이상의 준비기간을 거친다. 이렇게 기획된 전시는 관람자들에게 보여주는 이벤트 성격도 있지만, 학술적인 연구과정을 거쳐 카탈로그를 일종의 연구결과물로 제작한다. 이러한 카탈로그는 소장가치가 있는 자료이자 아카이브이다. 



헤롤드 제만(Herald Szeemann, 1933-2005)은 1969년에 ‘당신의 머리에서 살라 : 태도가 예술-작품-개념-프로세스-상황-정보가 될 때(Live in Your Head:When Attitudes Become Form Works-Concepts-Processes-Situations- Information)’라는 전시를 기획하였다. 이 전시는 거의 처음으로 유럽과 미국의 현대미술을 포함했던 ‘국제전’ 성격을 띠었고, 필립 모리스(Philip Morris)가 당시 25,000달러(전시기획과 카탈로그 제작비)를 후원했다. 당시 제만은 스위스의 베른미술관(Kunsthalle Bern)의 디렉터였는데, 이 전시 이후 그는 미술관을 그만두고 ‘독립큐레이터’라는 직함으로 전시 자체도 큐레이터의 작품, 작업이라는 시각을 처음으로 부여했다. 이 전시를 미술사적으로는 중요한 전시로 기록하지만, 이 전시가 개최되었을 당시 신문매체나 커뮤니티는 그를 비난했다. 그는 미술사 기반의 학자가 아닌, 미술가들과 현장에서 생생하게 호흡하고 동시대의 미술가들이 제작한 작품을 이해하며, 미술가들과 함께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동시대 현대 미술의 의미를 생산해내는 동반자로서의 역할을 새롭게 부여했다. 제만은 스타 미술가 못지않게 중요한 스타 큐레이터라는 직함을 미술관이라는 제도권 밖에서 시도한 첫 실험가였다.


현재 아르코미술관에서는 신진기획자를 발굴,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있고, ‘아트인컬처’ 등에서는 신진비평가들을 발굴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다. 이는 최근 예술경영지원센터 국제사업부 등을 통해 활성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국제적인 감각을 가진 기획자들과 비평가들을 조직적으로 이끌어주는 제도나 인프라스트럭처가 여전히 부재하는 편이다. 해외 스타 미술가들을 국내전에서 유치하는 경우, 의도적으로 국내의 큐레이터와 비평가들을 함께 팀으로 묶어 이들을 국제적으로 역 홍보하는 기술과 제도도 필요한 실정이다. 미술계가 힘들수록 서로를 버티게 해주는 조직적인 힘이 필요할 것이다. 



정연심(1969-) 미국 뉴욕대 대학원 예술행정학과 박사. 현 홍익대 예술학과 교수, 광주비엔날레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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