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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숭례 문화재 언론보도, 남은 과제

김태식

2006년 3월 10일자 각 일간지는 이집트를 순방 중인 노무현 대통령 부부가 이집트 카이로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아 투탕카멘 왕묘에서 발견된 황금가면을 관람하는 사진을 일제히, 그리고 큼지막하게 실었다. 이 때 몹시도 묘한 감정이 일었던 까닭은 우리의 국립중앙박물관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우리 박물관을 찾은 외국 정상은 있기나 했던가? 그럼에도 비단 노 대통령뿐만 아니라 우리의 국가수반이 외국을 방문하면 거의 어김없이 그 나라를 대표하는 박물관이나 문화유산을 찾는단 말인가? 기자로서 나는 98년 이후 올해로 꼭 10년째 문화유산 분야를 담당한다. 이 기간 한국을 찾은 외국원수가 한 두 명이 아니었음이 분명하지만,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박물관이나 경복궁, 혹은 창덕궁을 찾지 않았다. 이번 숭례문 참사에 비분강개하면서 그 원인을 진단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있다. 혹자는 무차별한 개방이 이런 사태를 불렀다고 하고, 또 어떤 이는 현행 우리의 문화재 관리체계에 근본 결함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물음이 나에게 투척된다면, 이렇게 말하리라. “이집트에 가서는 투탕카멘 왕묘를 찾을 줄만 알았지, 영국에 가서는 브리티시 박물관을, 그리고 프랑스에서는 루브르 박물관을 찾을 줄만 알았지, 정작 우리의 박물관은 어디에 있는 줄도 모르는 우리 자신에게서 말미암는다.”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무관심

다른 곳도 아닌 대한민국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남대문이 불타고, 그리하여 그 대부분이 폭삭 내려앉는 어처구니없는 사태는 마침 여야간 정치투쟁 양상까지 가미되면서 복잡 양상들을 만들어낸다. 예비야권에서는 그 궁극적 책임을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나 오세훈 서울시장에게서 찾으려 하며, 그에 맞서 한나라당에서는 한 때 노무현 대통령을 거론했다가 ‘약발’이 먹히기가 곤란했다고 생각했음인지, 이내 타깃을 유홍준 문화재청장으로 바꾸어 파상공격을 가했다. 이런 사태는 급기야 남대문 방화사건과는 본질적으로는 전혀 관계가 없는 유 청장 외유 논란으로 확대되어, 숭례문 화재 사건 기간 중 유럽 ‘출장’ 중이던 그의 행태에 공직자로서의 수상한 점이 있다고 해서 한나라당이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는 일로 발전했다.


아! 어쩌다 숭례문이 예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숭례문으로 촉발되었으나 그것과는 전혀 동떨어진 방향으로 전개되는 일련의 사태 전개에 숭례문은 더욱 슬픈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숭례문 소실은 적지 않게 망외의 소득도 남겼으니, 무엇보다 무수한 ‘문화유산 애호가’를 양산했다는 사실만은 적기해야겠다.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모두가 문화유산을 사랑해야하며, 그것을 잘 가꾸어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내가 알기에 평소에는 문화유산의  ‘문’자도 꺼내지 않던 어느 정치인이 갑작스레 우리의 문화유산 정책이 난맥상을 연출한다는 사자후를 토로하면서, 결국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그 자신은 태어나면서 이미 ‘문화유산 애국자’였던 양 재빨리 둔갑하는 변신이 실로 신비롭게만 비친다. 이는 비단 정계에서만 두드러지는 일은 아니다. 일반 국민, 시민도 예외가 아니다. 가릴 것 없이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났느냐고 분개하거니와, 물론 이런 점에서 호류지(法隆寺) 금당(金堂) 화재를 계기로 일본이 문화유산 방재시스템에 획기적인 발상 전환을 이룩했듯이 이번 사건이 우리의 그것에도 막대한 순기능으로 기능할지도 모른다.



문화유산은 입원한 병자와 같다

이참에 문화유산 개방과 해당 유산의 화재는 인과관계에 있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남대문만 해도 그것이 방화로 소실되었다고 해서, 나아가 종묘는 경비가 삼엄해 접근이 쉬운 남대문을 범행 대상으로 골랐다는 방화 용의자의 진술이 있을지언정, 이것이 개방이 방화를 조장하거나 불러왔다는 해석으로 이어져서는 안된다. 1984년에 개봉한 영화 <고래사냥>을 보면 안성기가 열연한 거지 민우는 사는 곳이 바로 남대문이며, 걸핏하면 이곳에 들어가 소주를 마시는가하면 라면을 끓여먹기도 한다. 남대문이 금단의 영역으로 남아있던 시절에도 그곳은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접근 가능한 곳이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문화유산에 대한 개방은 앞으로 더욱 가속 페달을 밟아야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문화유산을 지금처럼 방치하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문화유산은 언제나 입원한 병자와 같다. 어쩌면 식물인간이나 진배없다. 산소통에 의지하지 않으면 금방 숨이 끊어지고 마는 응급환자가 바로 문화유산이다. 숭례문이 소실되자 국민적 자존심을 운위했지만, 숭례문은 결코 그런 대접을 받은 적이 없다. 문화유산에 대한 이런 인식은 역으로 우리가 왜 그것을 보살피고 가꾸어야 하는지를 뒷받침하는 정언명령이 된다.


맹자는 우물가에 있는 어린이를 보면 인간이면 누구나 이런 그를 차마 그대로 놔두지 못하는 ‘불인지심’(不忍之心)이 있다고 설파하려 했다. 견주건대 문화유산 또한 우물가에 선 어린이다. 나는 부디 맹자가 말한 ‘불인지심’이 인간이라면 모름지기 생득적(生得的)으로 주어진 인간 심성이기를 빈다. 그런 어린이는 구출하려 하면서 왜 그와 한 치 어긋남이 없는 문화유산은 방치하려 하는가?



김태식(- ) 연합뉴스 문화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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