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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블록버스터 전시, 의혹의 타자적 유보

정형탁

블록버스터 전시가 어떤 것인가에 대한 특별한 규정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사용된 폭탄 이름인 이 단어가 영화판에서 연간 1,000억 이상의 매출을 올린 작품에 한정하여 사용한다는 관습적인 규정은 있다. 아마 ‘특별히 많은 제작비로 단순간 많은 매출을 올리는 컨텐츠’로 한정한다면 한국 미술판의 블록버스터 전시의 시초는 2004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색채의 마술사 샤갈'전일 것이다. 이 전시는 대략 60억의 매출에 순이익 20~30억인 걸로 안다. 이후 이러한 전시가 봇물 터지듯 쏟아졌는데 모두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다. '피카소', '서양미술 400년전', '모네', '반 고흐', '르네 마그리트'등이 현재 내 기억이다. 한국의 블록버스터 전시는 대략 적게는 20억원, 많게는 30억원 내외가 든다. 대략의 항목은 이렇다. 전시품에 들어가는 컨펜세이션피(작품에 대한 보상금)가 30%, 전시 진행에 따른 인건비 20%, 전시공간 대여비 20%, 전시홍보 30%정도로 보면 된다. 물론 이러한 예산이 절대적인 건 아니다. 이유는 여럿인데, 그 이유를 설명하기보다 아래와 같은 전시의 진행 사항을 보면 이해가 훨씬 빠를 것이다.

일단 전시를 위한 작품 수급이 가장 중요하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배타적인 독점권 같은 것이데, 쉽게 말해 미술 작품에 대한 미술사적인 의미를 잘 꿰뚫고 있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작품이 소장되어 있는 미술관 관장(아니면 부관장)과의 인맥이 더 중요할 수 있다는 말이다. 전시가 이루어지려면 관장을 잘 알든가 사우스 코리아라는 지정학적으로 위험한 제3세계에서 안전하게 전시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신뢰가 쌓여있는 관계가 미술사적인 지식보다 중요하다는 말이다. 전시작품이 선택되면 전시작품 가격의 흥정에 들어가는데 이 또한 인간관계에 많이 기운다. A라는 작품가격이 1,000억원이라면 이걸 반에 반 가격으로 작품가를 낮춰서 가지고 올 수 있는 능력, 중요하겠다. 작품가는 운송비와 보험료에도 영향을 미치니 말이다. 블록버스터 전시에서는 좋은 작품(여기서 좋은 작품은 비싼 작품이다.)은 많이 가져올수록 좋겠지만 예산상(예산상이라 함은 미술시장 대비 수익률에 따른 예산이다.) 전시비가 적으면 적을수록 수익률이 높아질 확률이 높아진다. 그래서 당근 좋은 작품을 많이 가져올수 없다. 국내 블록버스터 전시에서 좋은 작품은 1~2점이면 족하다. 일반 대중은 그 1~2점으로 전시를 판단하게 된다. 그 1~2점을 킬러 컨텐츠(killer contents)라고 하는데, 즉 죽이는 아이템이라는 것이다. 이 1~2점만 있고 나머지는 허접쓰레기 판화나 드로잉으로 채워도 전시는 이루어진다.

다음은 전시장. 전시장은 대부분 돈주고 대관하는 시립미술관이나 예술의 전당이 되겠다. 요즘엔 지자체에도 전당들이 많아서 그런 곳에서도 이런 전시를 유치하고 싶어 안달인 듯한데, 이는 순전히 시장성에 달려 있다. 돈 안되는 걸 뻔히 알면서 내려가지는 않는다. 보통 전시장소는 서울, 전시기간은 석 달에서 100일 정도 잡으면 2억에서 3억원 정도다.

최고의 홍보 효과?
전시컨텐츠도 구성되고 장소도 확정이 되면 문제는 홍보다. 홍보구호는 대략 이렇다. ‘최초, 최대, 최고’. 이렇게 해야 대중들은 ‘어, 이거 안보면 안되겠네.’한다. 전시될 작품 가격이 국내 최대니, 최고의 작품이 엄선되었느니, 작품 포장과 해포가 장난 아니라느니 기자하나 붙어서 사전 홍보를 통해 신비화를 시켜놔야 그나마 시각 이미지의 홍수 속에 사는 대중들이 눈길 한번 주는 거다. 그리고 사전 홍보의 필수는 각 교육청과 교장단을 통해 이루어지는 초ㆍ중ㆍ고등학교, 심지어 유치원, 기타 단체들의 단체홍보다. 이거 없으면 망한다. 사전에 학교 홍보가 BEP(손익분기점)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학교 홍보는 이렇고, 그 다음은 대중홍보가 문제다. 일단 신문사나 언론사를 공동주관사로 끌어들인다. 이것은 예산 절감차원, 다시 말해 수익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다. 대중매체가 공동주관으로 붙으면 홍보비는 반은 줄어든다. 왜? 언론사도 이익을 나눠가지게 되어 있으니까. 연일 TV스팟이 내보내지고 연예인들이 전시 관람하는 기사가 나가고, 여기에 속 모르는 미술평론가의 글을 통해 전시를 윤색하면 대중은 ‘의혹의 타자적 유보’를 통해 블록버스터 전시를 ‘꼭 봐야지’ 하는 기호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익을 나누는 신문이나 방송이 연일 쏟아내는 ‘최초 10만 돌파’, 혹은 ‘유명 연예인 OO가 보러 왔다’,‘ 정치인 OO도 봤다’는 자체 방송은 마치 객관적인 사실인 양 인터넷을 타고 날마다 대중들의 소비 심리를 자극한다. 여기에 영문 모르는 미술평론가라는 사람들이 우아하게 지적으로(지적인 듯) 끼어든다.블록버스터전시는 대강 이렇게 진행되고 이렇게 소비되게끔 만든다. 알고 보면 더 재미있다.


정형탁(1969-) 홍익대 예술학과 석사. 덕원갤러리 큐레이터, 미술세계 편집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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