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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미술관 문화를 위해 앞담화의 장을 열자

김준기

한국의 국공립미술관은 길게는 수십 년간 짧게는 10여 년간 잰걸음을 해왔다. 제법 시민사회 속에 파고드는 문화기구로서 발돋움을 하려나 싶더니만, 최근에 들려오는 이런저런 파열음들은 심난한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큐레이터들이 한꺼번에 중대 징계를 받을 상황에 처해있다는 소식이 들리는가 하면, 계약직 신분의 벽에 부딪혀 마음고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디렉터와 큐레이터의 일머리가 뒤엉켜 차제에 디렉터와 큐레이터의 업무분장을 법규화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미술관 전시의 기획 방향과 관련한 누적된 혼선으로 정체성의 위기를 맞고 있는가 하면 책임운영기관 단계를 지나 민영화 논란에 내홍을 겪고 있다.

국공립미술관 이외의 영역은 그 반대이다. 화랑과 경매, 언론, 교육, 국제행사 등 나름대로 제 갈 길을 부지런히 나아가고 있다. 화랑들은 활황일로를 걸으며 미술계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다. 시장의 팽창이 비평의 부재를 낳는다는 역설적인 우려가 나오고 있을 지경이지만 어쨌거나 화랑들은 나름의 제 갈 길을 걷고 있다. 사립미술관들도 척박한 환경을 딛고 꾸준히 풀뿌리 미술문화를 넓혀가고 있다. 비엔날레를 비롯해서 각종 대형미술 프로젝트들 또한 내홍을 이겨내고 오프닝 날짜를 꼽고 있다. 도시공간과 결합한 공공미술 프로젝트들도 양적 팽창 일로에 있다.

국공립미술관의 퇴행성
한국미술계의 여러 영역들이 나름의 해법을 찾아 진일보하는 데비해 국공립미술관들은 조금씩 퇴행하고 있다. 국가단위나 지자체 단위에서 설립, 운영하는 국공립미술관의 위상은 점점 위태로운 상황에 놓이고 있고, 작품수집과 전시기획의 난맥상 또한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누구의 문제인가? 관료체제의 비효율성 때문인가? 전문가집단의 무능함 때문인가? 시민사회의 미성숙 때문인가? 관료집단과 전문가집단, 미술인과 시민, 디렉터와 큐레이터 양자간의 간극이 미술관 문화의 발목을 잡고 있다. 최근에 몇몇 관료와 심중의 대화를 나눌 일이 있었는데, 양쪽 다입을 모은 말이 있다. 역지사지(易地思之). 양자의 대화는 필수불가결하다. 서로의 입장에서 서서 상호주관성을 가지고 마음 문을 열면 그것으로부터 커다란 새로운 에너지가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주관성만으로는 부족하다. 상호주관성은 객관성의 바탕 위에서 가능하다. 엄밀한 객관성을 담보하는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 그 규칙은 새로운 합의에서 나온다. 지금껏 우리는 미술관 문화를 둘러싸고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본 경험이 없다. 그 합의를 위해서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할지도 난망한 상태다.


새로운 미술관 문화를 위한 공론의 장이 필요
미술관 문화에 관한 인식의 전환과 새로운 실천 모델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 소통의 통로가 직접체제가 아닌 대의체제에 의존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통신과 교통의 발달은 소통 체제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오랜 역사 동안 직접 소통하지 못하고 대리 소통에 의존해왔던 사회적 소통 방식이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세상이 바뀌고 있다. 대의민주주의 체제의 효용성이 그 한계를 드러내자 직접민주주의의 요청이 쏟아지고 있다. 촛불의 바다는 겉으로 드러나는 결과이다. 그 저변에 정보생산과 소통 방식의 변화가 있다. 미술관 문화를 둘러싼 사회적 합의는 아직 대의체제에 종속되어 있다. 선거를 통해서 정치권력을 탄생시키고 그 권력이 사회의 제반 시스템을 두루 경영하도록 하는 대리 소통의 한계가 미술관 문화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물론 지금 당장 미술관이라는 공공의 기관을 놓고 직접소통을 통한 정책결정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근본이 흔들리고 있으니 보다 직접적인 수준의 논의가 필요하다. 산발적이고 개별적인 논의보다는 미술관을 다시 세우기 위한 공론의 장이 필요하다.

미술관은 근대적 미술 체제를 만든 근간이다. 미술관은 일방적인 자본의 논리를 경계할 유일한 대안이다. 미술관은 미술문화와 관련한 근대적 이념을 실현한 최상의 기구이며 미술문화를 견인하는 공공의 처소이다. 박물관과 미술관. 그것은 근대사회에 접어들면서 공화주의를 표방하는 국가 권력이 역사와 문화를 국가이데올로기에 부합하는 소통의 장으로 만들기 위해서 고안된 문화정치의 산물이 아니던가. 지금 우리는 그 틀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생각의 차이를 좁히려는 진지한 토론과 새로운 합의를 도출하는 하기 위해 입을 모아야 할 때이다. 각자 뒤에 앉아 불만을 토로하는 뒷담화에는 능숙하지만 공론의 장에서 토론하는 앞담화를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앞담화의 장을 만들자.



- 김준기(1968- ) 홍익대 예술학과 박사. 석남미술상 젊은이론가상 수상. 사비나미술관 학예실장,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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