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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미술시장, 현대미술의 ‘나니아연대기’

심상용

오늘날 미술시장을 단지 시장의 문제로만 읽어선 안 된다. 그것이 문제인 것은 그것이 불가피하게 가치의 문제에 개입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초점을 맞추어야 할 주제는 시장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가치의 영역과 충돌하고 교란하거나 모독하는 접점들이다.


이젠 미술논의에 케인즈 이론이 등장하더라도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작가도 자본과 연애하라!’ 같은 원색적인 경구가 난무한다. 하지만, 러스킨을 따르자면, “가장 값싼 시장에서 사고, 가장 비싼 시장에서 팔라”는 경제학의 원리가 놓치고 있는 최대의 변수는 바로 인간이다. 투자는 돈을 모으는 갈고리이지 예술이란 가치를 경작하는 쟁기가 될 수는 없다. 자크 엘륄이 말하듯, 돈이 인생이 목적이 될 때, 그 인생은 토대부터 무너진다. 하물며 예술이랴! 러스킨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금전상의 가치 관념이 어떤 것이든 그 관념의 존재가 뚜렷하면 할수록 그의 (예술적) 능력은 감소될 뿐이다.' 하지만 러스킨으로부터 한 세기 반이 지난 오늘날, 그 대체될 수 없다고 믿었던 분야는 금전상의 가치 관념들이 범람하는 곳이 되었다. “예술과 시장이라는 상이한 두 속성의 '보이지 않는 싸움'에서 돈이 결정적으로 승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주디스 베나무-유에) 오늘날 미술시장은 수요·공급의 조절을 넘어 스스로 기획하고, 독자적으로 생성하거나 폐기한다. 미적 판단의 근거도, 작가의 발굴도 시장의 몫으로 편입되었다. 예술과 비즈니스, 작품과 돈 사이에 존재했던 고전적인 불협화음은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작품과 그 거래 사이의 갈등은 현저하게 완화되었다. 작품제작과 판매는 거의 동시에 이루어지고, 심지어 판매가 제작을 앞지르기도 한다. 작품에 대한 평가는 점점 더 신속하게 내려지다가 아예 생략된다. 작품의 미적인 가치는 작가의 유명세에 의해 사전적으로 결정된다. 하나의 작품이 경매장의 경쾌한 망치소리의 주인공이 될지, 눅눅한 지하창고에 처박히는 신세가 될 지는 (거의) 전적으로 작가의 이름에 달려 있다.(레이몽 물랭) 전문가들의 판단이라고 해봐야 별도로 논할 필요조차 없다. 시장의 판단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그들의 활동은 시장에 복속되어 있으며, 음험한 타협의 태도를 띠고 있다. 그렇더라도 이는 그리 중요한 이슈가 아니다. 미술품이 이익배당이나 단기차익 창출 같은 금융적 알리바이에 의해 우선적으로 정의되기 때문이다.


스위스의 저널리스트 로랑 울프를 따르자면, 현대미술은 세 축, 곧 예술가, 컬렉터, 상인에 의해 작동한다. 더 유명한 스타작가와 더 높은 구매력을 가진 컬렉터와 더 권위있는 화상들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현대미술의 이 중추적 구성원에서 이론가들, 비평가나 미술사가들이 누락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하자. 이는 현대미술품들이 최소한의 미적 판단 없이도 얼마든지 평가되고 매매되고 있다는 의미다. 충직한 사람들은 “정확한 안목이 없으면 농간에 넘어가기 십상”이라고 충고를 아끼지 않지만, 그 ‘정확한 안목’ 자체가 전혀 정확하지 못한 개념일 뿐이다. 이러한 미심쩍은 과정을 거쳐 서른도 채 안된, 심지언 아직 대학조차 마치지 않은 ‘작가’(?)의 것들이 고가에 매매된다. 소수의 젊은 작가들은 2, 30대에 이미 극적인 성공을 경험한다. 거대자본의 속성 코스를 거친 생경한 젊은이들의 생산물들을 요리조리 분류하는 과정을 거쳐 재분배된다. 게다가 대중의 취향이란 것은 쉽게 학습되고 빠르게 길들여진다. 결국 (적어도 당분간은) 시장을 가진 작가만이 정당화 될 것이다. 현대미술의 근저에선 깊은 슬픔이 배어 나온다.


오늘날 미술세계는 ‘나니아 제국’

오늘날 미술의 세계는 마치 마법에 걸린 '나니아 제국' 같아 보인다. 이 차가운 나라에서 창조성, 상상력, 진리에 대한 열망과 부조리에 대한 비상한 의식은 동파 직전이다. 데이빗 화이트의 표현을 빌자면, 이 시대의 예술은 “더 큰 이야기의 한 부분을 감당한다는 의식을 잃어버린 채” 묵직한 돈 다발의 향방을 맹렬히 따르는 핏기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미술활동은 매일 아침 주식시장의 상황을 알리는 기호들과 더불어 일희일비하는 것으로 축소되어가고 있다. 하루가 멀다고 경신되는 미술품 경매가는 1990년대 이후의 역사가 온통 투자펀드, 고수익 보장, 시장의 활력, 블루칩 같은 용어로 기술되도록 했다. 예컨대 “호기심이 극동으로 이동하고 있으며, 아마도 내일은 도쿄나 홍콩, 싱가포르에서 거대한 아시아 미술품 판매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견된다” 와 같은 식이다.(모리스 레임)


시장의 전략과 교묘한 광고의 효력을 피하는 것은 쉽지 않다. 시장의 성장신화에 동조하지 않는 것은 신성모독쯤으로 간주되고 있다. 하지만, 값비싼 예술이 반드시 좋은 것도 아니고, 값싼 작품이 탁월한 것일 수도 있다. “예술에서 돈은 유효한 계량도구가 될 수 없다. … 만일 어떤 별 볼일 없는 작품이 비싼 값에 팔린다면, 그것은 아마도 돈이란 게 별 볼일 없는 것이라는 의미가 아닐까.”(베나무-유에)



심상용(1961- ) 프랑스 파리 1대학 미술사 박사, 동덕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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