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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큐레이터, 미술관의 ‘꽃’인가

조은정

80년대 중반, 한 종합 예술전문잡지로부터인 원고청탁을 받았다. 글의 제목과 내용은 동일한 ‘큐레이터란 무엇인가’였는데 당시 필자의 직업을 설명하는 글이기도 했다. 최근 한 직업포탈에서 조사한 5년 뒤 유망직종에서 연속 1위인 금융자산전문가에 이어 8위에 큐레이터가 오른 것을 보면 격세지감이란 말을 써도 될 법하다. 하기야 큐레이터라 적힌 명함을 내밀면 무슨 일을 하는지 물어보던 20년도 전의 일이니 새삼스레 상기할 일이 아닌지도 모른다. 하지만 2007년 2월 말의 조사에서는 전문가들의 5년 뒤 유망직업군 20위권 안에서 큐레이터라는 직업군을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을 고려해본다면 미술계의 지난 몇 년이 숨막힌 변 화의 연속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미술은 좀더 대중과 친근하여졌으며, 자산가치로서 재평가되어 투자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국내 하나뿐이던 경매회사가 양대로 재편되고 이어 우후죽순으로 경매회사가 생겨난 것이나, 각종 아트페어가 성황을 이룬 것을 보더라도 현재 한국에서 미술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증폭된 것이 사실이다. 특유의 소장품으로 각지에서 관람객을 경이롭게 하는 사립미술관이 활성화되고 각 지방자체단체마다 도립, 시립미술관이 들어섰다. 전시가 끝나기도 전에 모든 작품이 판매 완료된 개인전도 있고, 유통되는 작품이 없어서 못 사는 작가도 생겨났다. 덩달아 대관 전시공간도 3년 이상 예약 완료된 곳도 부지기수다. 이번 여름 방학에도 역시 블록버스터 급 전시는 관람객을 끌어 모았다. 매표에서부터 관람을 마치고 나갈 때까지 줄서고 또 서야 하는 전시가 여러 미술관에서 선보이고 있는 이 여름에 한 시립미술관 큐레이터의 재계약 불가 소식이 들려왔다. 재계약을 하지 않은 상황에 대해서는 내부인이 아니기에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다. 다만 한국큐레이터협회가 성명서를 발표하여 그의 재계약 불가 이유를 밝히라고 한 것을 보면 의원면직은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해마다 재계약을 할 수 있고 그 횟수는 5회에 한정한다는 채용방침이 있으므로 어떤 면에서 보면 5년은 그 직을 수행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계약은 1회로 끝났다. 자본주의의 병폐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계약직이 아닌 직업군이 어디 있을까만은 큐레이터라는 직업군에 이르면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명예가 존중되던 대학교수직도 해직의 부당함, 진실을 믿어주지 않는, 소통이 막힌 이에게 석궁을 들이대게 한 것이 현실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많은 수는 교수라는 직업을 보장받는다.


한국의 큐레이터는 높은 교육의 정도에서는 결코 교수라는 직업에 뒤지지 않는다. 그들 대다수는 대학에서 강의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하며 자격도 있다. 그럼에도 몇몇 큐레이터의 해직 이유에는 대학에의 출강이 문제된다. 이제는 지방대학의 교수가 된 한 공공미술관의 학예연구실장은 내규로 금지된 외부 강의에 대해 사퇴를 종용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겸직 불가 조항이라지만 직업이라 하기에는 시간강사가 받는 급여가 얼마나 생활에 도움이 안 되는 정도 인지는 관장도, 일반 행정직원도 다 아는 일이다. 물론 돈은 죄의 경중을 가리는 계량기가 될 수 없겠지만. 미술관의 꽃이라는 한국의 큐레이터가 해직된 경우, 이유는 다양하다. 몇몇 큐레이터는 근무태만이라는 항목이다. 출근과 퇴근을 카드로 확인하는 공무원 사회에서 초과근무 수당이 어떻게 계산될 수 있는지는 이미 뉴스를 통해 알려져 있다. 어느때든 작가를 만나야 하고 전시가 있을 때면 시간에 관계없이 작품을 수령하고, 홍보해야 하며 연구해야 하고 다른 전시도 둘러보아야 하는 큐레이터들이 과연 근무가 태만할 수 있을까 의심이 든다. 사무직 공무원과는 다른 행동반경을 가진 이들을 누가 어떤 기준으로 평가할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한 것이다. 수년 전 한 시립미술관에서는 학예연구실장이 없는 상태에서 사무직이 한 큐레이터에게 고과를 F를 주어 해직된 일도 있었기에 더욱 그렇다. 


큐레이터 그 허상 

어떤 대학미술관에서는 개관준비를 하던 큐레이터 4인을 구조 조정차 해직하였고 이어 다른 큐레이터를 채용하였다. 국내 최고라는 국립미술관의 큐레이터도 안정된 직업군은 아니라는 점에서 결코 예외는 아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책임운영기관으로 전환하며 이전의 공무원 신분이던 큐레이터들을 이제는 계약직으로 뽑는다. 물론 사회 전반이 고과에 의해 평가되고 계약직으로 전환되는 시점에서 큐레이터 직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하지만 큐레이터만큼 학력 대비 저임금인 직업군도 드물며, 비정규직이 많은 직업군도 드물다. 인간의 삶과 죽음, 욕망과 이해를 담은 작품들이 가득한 미술관에서 교양있고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었으며 한국의 문화계를 이끄는 주요한 인물들이 불안정한 직업인으로서 존재한다. 


전시가 위주인 현 미술계에서 그 어느 때보다 큐레이터의 권력은 증대하였다. 하지만 과연 보장되지 않는 직업인으로서 연구와 전시와 교육에 얼마만큼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결국 대중과의 교감이란 명목 아래 관람객의 수를 늘리기 위한 대중영합적인 전시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전문 인력의 수급과 고용안정은 한국 미술계의 장래를 위한 투자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조은정(1962-) 이화여대 대학원 박사. 구상조각회 조각평론상 수상. 모란미술관 자문위원, 한국미술정책연구소 연구원 역임. 현 한남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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