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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비엔날레 증후군

하계훈

이번 가을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는 굵직한 비엔날레만 해도 예닐곱 개는 될 것이며 홀수 해에 개최되는 행사까지 합하면 그 수는 두 배로 늘어날 것이다. 9월 2일 개막한 비엔날레 성격의 행사인 ‘미디어시티서울2014’부터 4일 개막한 광주비엔날레, 그리고 부산비엔날레, 대구사진비엔날레,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창원조각비엔날레 등등의 비엔날레 행사가 지역과 장르를 모두 아우르며 우리나라의 가을을 뒤덮고 있다. 120년 전 이탈리아 베네치아시가 국왕부부의 결혼 25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시작한 격년제 미술행사 비엔날레가, 시대상황도 다르고 문화적 토양도 다르며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각도 다른 이역만리 대한민국에서 지금 이처럼 전국적으로 성황(?)을 이루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난감해진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1995년 광주비엔날레가 처음 출발하던 때의 웃지 못 할 기억들이 떠오른다. 당시 비엔날레 행사장에는 지상파 방송국들이 서로 경쟁하듯이 현장 스튜디오를 차려놓고 남녀 아나운서가 미술평론가나 참여 작가를 스튜디오에 초청하여 마치 스포츠 경기 생중계하듯 비엔날레 행사를 방송에 내보냈다. 또 행사장에는 농한기의 부녀자 관광객들이 전시장에 몰려들어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비엔날레 부지 내에 있는 공원에 펼쳐진 민속음식 장터에서 비로소 마음을 가라앉히고 편안하게 관람 후의 휴식과 음주가무를 즐기는 것을 목격했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이어서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었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1990년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라는 인종분리정책이 종식되던 시기에 소위 제3세계지역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이고 문화적 도약을 꿈꾸며 하나둘씩 생겨나던 비엔날레는 한때 200개가 넘던 때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부실이 드러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일부 행사는 분쟁지역의 불안한 정세로 인해 개막이 연기되거나 참가자의 입국이 어렵게 된 경우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국내의 정치 사정이나 예산상의 이유로 예정된 행사기간을 미처 채우지 못하고 막을 내린 비엔날레 행사도 있었다. 우리나라 역시 그 필연성을 설명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출발한 비엔날레 행사들이 크고 작은 잡음들을 일으켜 왔다. 대표적인 사건들만 요약한다면 먼저 국민 전체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사건으로서 2008년 광주비엔날레 감독으로 신정아를 선임했던 사건이 있고, 2010년 부산비엔날레 예술감독을 역임한 아주마야 타카시(Azumaya Takashi)가 2012년에 자살한 사건, 그리고 최근에는 2014 부산비엔날레 전시감독 선정을 둘러싸고 일어난 부끄럽고 불미스런 잡음들, 그리고 2014 광주비엔날레 개막을 코앞에 두고 벌어진 홍성담 작가의 작품 출품 불가조치를 둘러싼 논쟁들이 있었다.


대한민국은 비엔날레 왕국
매년 수 십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어 두 달 정도의 기간 동안 진행되는 비엔날레 행사는 지역의 예술가들과 주민들의 공감을 얻어내지 못하는 상태에서 무리하게 국제성을 지향하는 문제나, 용병처럼 다녀가는 인력들로 인해 경험의 축적이 어려운 점, 예술행사를 실제적으로 통제하는 지방 관료들의 경직된 사고와 행사 전문가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불협화음으로 인해서 대부분의 행사들이 투자예산에 대비하여 그 효과가 다분히 일회적이고 낭비적이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물론 이러한 관점은 입장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이며 과오만큼의 공적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대부분의 비엔날레들이 반복적으로 크고 작은 문제와 실수를 일으켜 오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이러한 주장들이 설득력을 갖는 것도 사실이다. 올해에도 우리나라의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이러저러한 비엔날레 행사로 수 백억 원의 예산을 쓰면서 가을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아직도 지역의 대다수의 주민들과 상인들이나 택시기사들은 그러한 예산집행의 효과를 느끼지 못하며, 비엔날레가 자신들에게 무슨 의미 있는 혜택을 주는지를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엔날레들은 계속 진행되다가 폐막될 것이고 행사 결과를 예산이나 입장객 수와 같은 수치로 환산하여 지방 의회의 평가를 받을 것이고, 다시 차기 예술감독이나 참가 작가를 둘러싼 잡음을 발생시킬 것이다


하계훈(1958- ) 고려대 영문과, 홍익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 런던 시티대학교 미술관 경영학 석사 및 박사과정 수료. 국립현대미술관자문위원, 단국대 문화예술대학원 초빙교수 역임. 『큐레이터의 딜레마』(조형교육, 2000), 『 예술가는 어떻게 성공하는가』(조형교육, 2001), 『지혜를 어디서 구할 것인가』 (루비박스, 2008)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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