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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한국미술의 국제화를 위한 미술용어 통일과 아카이브 구축

김미경

“언젠가 저희 버클리대학교 도서관에서 한국 도서를 영문으로 찾을 수 있게 컴퓨터 검색 시스템을 구축해 달라고 한국 공무원들이 요청했었는데, 단번에 거절당했어요.”
“왜요?”
“한국어 영문표기는 계속 바뀌고 통일되어 있지도 않아서요. 막대한 시간과 인력을 낭비할 수는 없거든요.”

 
한국예술연구소KARI

10여 년 전, 버클리대학교 교환교수로 있었을 때 그곳 동아시아 도서관 사서에게 들었던 말은 별로 놀랍지 않았다. 국제 공용어는 영어이고, 일본이나 중국 문헌은 발음 원칙에 따라 영어 알파벳을 타이핑하면 곧바로 해당 원서가 검색되지만 표기법이 다양한 한국 문헌은 검색 자체가 어렵던 때였다. 당시에 나는 언제쯤 그것이 가능할까 싶어 마음이 착잡했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는 만큼 한국미술은 세계적인 학술 무대에서 뒤쳐질 수밖에 없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2008년 내가 한국의 실험미술 분야를 처음 독일에 소개하며 뮌헨대학교에서 학술 발표를 했을 때 한국어의 영문표기를 확정하는데 진땀을 뺐던 기억이 난다. 일일이 출판사나 작가들에 확인하고 동의를 얻느라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하며 조금 억울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 나는 미술용어의 영어 표기 리스트를 1,000개쯤 만들었는데, 당시의 일본과 중국의 용어 표기 표준 리스트의 어마어마한 규모에는 비교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전문 미술인들로 구성된 위원회가 정부 기금의 보조를 받아 방대한 미술용어의 국가 표준을 만들고 영구 시행하는 법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미술용어의 영문표기도 통일되어 있지 않은데, 요즘 미술 기관들은 저마다 아카이브를 구축하느라 분주하다. 그러나 영문 표기 통일이 선행 혹은 병행되지 않고는 미술기관들은 자기만 쓸 수 있는 고립된 아카이브를 만들거나, 콘텐츠 이름들을 일일이 다시 고쳐야 하는 상황에 빠지게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나의 경우, 25년 전 박사논문을 쓰기 시작하면서 산만하게 흩어져 있는 한국미술자료를 하나씩 수집하고 분류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지금 수 만 여종이 된 아카이브의 기초였다. 작년에 홍콩의 대안공간 파라싸이트 전시 팀으로부터 한국 쪽 아카이브가 없으니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나에게는 체계화된 원본을 디지털화 한 ‘꿴 구슬들’이 있었기에 곧바로 전시에 합류할 수 있었다. 또한 아시아아트아카이브에서 주관한 세미나에서 탄성을 불러일으킨 ‘삭제된 동아일보 기사’는 전혀 미술과 상관없어 보이는 기초 자료가 중요 미술 아카이브로서의 역할을 했다. 즉 아카이브는 ‘꿸 수 있는 구슬’을 알아보고 자료들을 연구 결과로 도출하게 하는 안목을 반드시 요구하게 되어 있다. 나의 발표는 바로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의 전문가 발표로 이어졌고, 거기서 또다시 ‘새야 새야 파랑새야’ 같은 동요는 청각아카이브 자료로서 큰 역할을 했다. 그 발표 논문은 올해 MoMA C-MAP에 한국인 학자로는 처음으로 웹 출판되었다.

이러한 예는 나의 자랑을 위한 것이 결코 아니다. 다만 최근 한국의 미술계에서 불고 있는 아카이브 열풍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으며 무엇을 위한 아카이브 열풍인지 점검해야 할 때라는 점을 말하기 위한 것이다. 오랜 인내를 요하는 ‘꿰는 일’은 뒷전인 채 무조건 자료만을 수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끈기를 갖고 연구 결과가 도출될 수 있도록 자료들을 수집하고 정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아카이브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김미경(1958-) 이화여대 서양화과 졸업. 동대학원 미술사학 박사, 현대미술사학회 회장 및 서양미술사학회, 현대미술사학회, 한국근대미술사학회, 동아시아문화학회 임원 역임.『모노하의 길에서 만난 이우환』(공간사, 2006),『한국의 실험미술』(시공사, 2003) 등 저술. 현 강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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