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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디자인은 세상을 놀라게 해서는 안된다

최범

“우와! 놀라운 디자인 세상이 온다.” 지난해 열린 서울디자인올림픽 포스터의 문구이다. 이건 완전 놀이동산 포스터감이다. ‘우와’라는 감탄사, 놀라운 디자인 세상! 왜 디자인 에버랜드가 아니고 디자인 올림픽일까, 그것이 궁금하다. 과연 디자인은 놀라운 어떤 것일까. 디자인과 놀이동산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그 것은 무엇 때문에 놀라운 것일까, 아니면 놀래키게 해야하기 때문에 놀라운 것일까. 이는 우문에 지나지 않는다. 거기에는 무슨 미학적인 논리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하나의 선전(프로파간다)일 뿐이다. ‘응결된 언어’, ‘침묵하는 세일즈맨’ 등 전통적으로 디자인을 형용하는 말들은 디자인의 과묵함을 상찬했다. 언제나 묵묵히 우리 주변을 지키고 있는 사물로서의 미덕을 기렸던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디자인이 점차 수다스러운 쪽으로 변화해 온 것은 사실이다. 모더니즘 디자인은 침묵의 언어를 미덕으로 여겼지만, 포스트 모더니즘에서 디자인은 재기발랄한 언어적 가치가 더 중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의 우리사회 공공부문의 디자인 언어는 이러한 디자인 패러다임의 변화로 설명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한국사회에서 디자인의 선정적인(?) 존재방식으로 설명되어야 하는 것이다. 


서울디자인올림픽 2008 포스터


서울디자인올림픽 2009 홈페이지


몇 년 전부터 우리사회에서 ‘공공디자인(Public Design)’바람이 불고 있다. 그 동안 소비주의로만 편향되어온 한국 디자인에 공공디자인에의 관심이 대두된 것은 매우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반가움도 잠시, 공공디자인은 디자인의 정치적 가치를 알아본 몇몇 권력자들에 의해 잽싸게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이제 한국 디자인은 디자인의 정치화라고 하는 새로운 장면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디자인의 정치성이 아니라 디자인의 정치적 효과라고 하는 일종의 선정주의에 다름아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들에게) 디자인이 놀라운 것은 그 것이 경험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경험되지 않은 낯선 것이기 때문에 놀라운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선정적인 것과 통한다. 사실 경험하지 않고 맛보지 않은 모든 것은 ‘선정적’이다. 먹어보지 않은 아이스크림은 맛있는 것이 아니라 선정적이며 그 것을 상상하는 것은 음란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디자인을 경험하지 않고 (어떤 이유에서든지) 욕망만 할 때 그 것은 놀라운 것이고 선정적인 것이 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 음란한 욕망의 진실은 과연 무엇이었던가. 


서울시 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 발표 조감도


얼마전 서울시내에 새로 설치된 가판대들은 비교적 어두운 색채로 처리되어 공공디자인의 기본에 충실하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가판대들은 하나같이 등짝에 ‘53조원의 경제효과, 동대문 디자인&플라자’와 같은 시정구호들을 붙이고 있는 광고판이었던 것이다. 동대문운동장을 헐고 새로운 랜드마크로 삼기 위해 만든다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 대한 언어에 디자인은 한마디도 없다. 있는 것은 오로지 ‘53조원의 경제효과’ 뿐! 이제야 디자인이 놀라운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부디 당부하고 싶다. 디자인은 세상을 놀라게해서는 안된다고.



최범(1957- ) 홍익대 미학과 석사. 월간디자인 편집장,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예술감독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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