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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아직도 먼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직원의 전문성 보장

하계훈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남궁선


지난 5월 28일 오후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고장신고를 받고 출동한 스무 살의 수리기사가 작업 도중 사망한 안타까운 사건을 접한 대부분의 국민은 서울메트로와 계약을 맺고 지하철 스크린도어의 고장 수리를 해주는 이 회사의 인력운영 실태를 알고 나서 경악했다.
고장수리 회사는 수리를 잘하는 것이 회사의 존립 목적인데도 이 회사에서 수리기사의 숫자나 작업조건, 대우 등은 형편없이 열악했다. 반면, 수리 작업과는 별로 관계없는 많은 사람이 서울메트로 노조와의 계약에 의해 이 회사의 관리직으로 넘어와 일정 기간 고용을 보장받으며 요직을 차지하고 좋은 근무환경과 급여조건을 누렸다. 결과적으로 이들에게 돌아가는 혜택 때문에 수리기사들의 근무환경이 더욱 열악해질 수밖에 없었다. 

미술관의 핵심인력은 학예직원
필자는 이 사건을 보면서 우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하 서울관)의 학예직원들을 떠올렸다. 2009년 서울관 설립을 결정하여 부랴부랴 4년만인 2013년에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은 신속한 집짓기에 열을 올리다가 화재사고로 아까운 인명을 희생시켰고, 개막전시의 파행, 관장의 인사부정 행위, 후임관장 임명을 둘러싼 이상한 논리와 잡음 등의 사건으로 얼룩진 채 오늘에 이르렀다. 정부에서는 서울관을 포함한 국립현대미술관을 세계적 수준의 미술관으로 만들겠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정작 이러한 미술관에서 근무하는 핵심인력인 학예직원들은 그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서울관 학예직원들은 전원이 비정규직으로 채워졌고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서울관 관리부서로 발령받은 행정직원들만 요즘 인기의 절정을 누리는 정규직 공무원의 신분을 가지고 미술관에 근무하고 있다.
지하철 스크린 도어 수리회사의 목적이 시민을 위한 원활하고 안전한 고장수리인 것처럼 서울관의 목적은 현대미술에 대한 연구와 전시, 교육을 통해 국민들과 원활하게 소통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업의 최전선에 학예직원들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하철 안전문 수리기사들이 비정규직의 열악한 환경에서 고생하는 것처럼 서울관의 학예직원들도 정규직으로 임명되지 못한 채, 불완전 고용상태에서 몇 년째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 
자세한 내막이야 좀 더 들여다보아야 하겠지만 아무리 보아도 미술관의 중요 인력인 학예직원들이 비정규직이고 그 밖의 행정지원인력들이 엉뚱하게 정규직 신분을 유지하고 있는 조직 구조는 누가 봐도 정상적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필자가 듣기로는 서울관을 포함한 국립현대미술관이 향후 민영화되는 계획과 맞물려 공무원 수를 늘리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렇다면 그때까지만이라도 서울관의 핵심사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정규직화하고 뒤에서 지원하는 행정직원들을 사정에 따라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구성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맞는 것이 아니겠는가?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서울관 학예직원들의 신분과 고용에 관한 문제를 모르지 않을 텐데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미술관 학예직의 전문성을 의심하고 그들의 능력을 폄하하면서 미술관의 운영을 행정중심으로 끌고 가려고 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서울관 학예직들이 모든 에너지를 쏟아 연구와 전시, 교육 등의 업무에 전념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미래의 비전을 제시해주지 않는다면 그들은 언제라도 좀 더 좋은 조건이 생기면 쉽게 자리를 옮길 수도 있을 것이다. 행정직 공무원들이 사실상 주도하는 미술관 운영에서 학예인력이 제 자리를 잡지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기존의 현대미술관 일부 학예직원 가운데 정규직의 신분에 안주하여 자기도 모르게 관료화되어가는 인력들의 퇴행적 현상도 국립현대미술관의 발전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일반 행정직과 차별되는 업무성과에 대한 전문적인 평가와 보상이 적용되어야 한다. 필자는 지금이라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학예인력을 포함한 조직과 인력 구조에 대한 검토와 연구가 다시 이루어져서 전문성이 존중받고 질 높은 현대미술 컨텐츠가 국민들에게 제공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여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조직 구조와 업무절차를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합리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하계훈(1958- ) 홍익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 런던 시티대 대학원 박물관·미술관학 박사(수료). 단국대 초빙교수 역임. ‘서울-런던 런던-서울 전’ 전시기획(2000, 토탈미술관). 현 국립현대미술관 운영자문위원, 한국예술경영학회 이사.『예술가는 어떻게 성공하는가?(2001)』, 『지혜를 어디서 구할 것인가(2008)』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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