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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네 탓은 있고, 내 탓은 없다?!

임창섭

언제인가 무슨 제도개선 공청회라는 곳에서 발제자가 아닌 질의자인 주제에, 주제 넘게 이런 말을 했다. ‘아무리 좋은 제도도 사람이 만든 것이고 아무리 나쁜 제도도 사람이 만든 것이다. 어떤 제도든 사람이 어떻게 해석하고 운영하느냐에 따라 좋고 나쁨이 판가름되는 것이다. 아무리 제도를 바꾼들, 운영하는 주체들이 선의(善意)를 결코 품지 않는다면, 또 다시 제도를 바꾸는 악순환은 계속될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가 무안만 당하고 말았다.


우리 미술판에서 벌어지는 여러 일들을 보면, 딱히 어느 것이라고 꼬집을 수는 없지만, 막연한 불안감을 피어오르게 한다. 들리는 소문과 언론매체에 등장하는 일들을 듣고 읽으면, 잘되는 일은 별로 없고 잘못된 일투성이만 있다는 느낌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누군가 어떤 일을 하면서 잘못되기를 혹은 잘 안되기를 바라는 또 그런 목적을 갖진 않을 것이다. 심지어 남의 물건을 훔치려는 계획도 성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갖가지 경우의 수를 고려하여 세운다. 그런데도 우리 미술계를 위해 지금까지 많은 제도를 고치고, 온갖 경우의 수를 고려하여 세운 제도와 계획이 잘못 운영되어간다면, 거기에는 제도 자체가 아닌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예측은 가능하다. 제도를 운영하는 이들의 선의(善意)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다. 하지만 선의라는 것을 자신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확인할 방법이 없음이 물론이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내 탓’이 아닌지 물어보고 답을 해보라고 선의의 충고밖에 방법이 없음이 아쉽다. ‘나는 진정으로 선의를 가지고 내가 맡고 있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자신의 자존과 양심에 언제나 기준이 되어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정치의 개혁과 사회의 정화를 체제의 전복과 제도 개선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는 절대로 불가한 것이다. 체제의 전복은 또 다른 반체제의 권력 독점을 의미하며, 제도의 개혁은 또 다른 부패한 제도를 낳는다. 체제는 또 다른 체제를 낳으며, 제도는 또 다른 제도를 낳을 뿐이다. 진정한 개혁은 스스로의 개혁에 있는 것이다. 개혁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자신을 개혁하려고 하지 않으면 안된다.’ 최인호의『유림』에 나오는 이 글귀가 우리 미술판에 향해 던진 날을 벼린 비수로 꽂힌다. 새로운 삼천년 기를 시작한 우리 미술계는 남이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 자문하고 내면의 깊이를 더하는 비판을 펼쳐 변화해야 할 때이다. 남의 탓이 아니라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자신을 개혁하려는 자세가 필요한 때라는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비판해야 할 것들, 냉철한 의식이 필요한 일은 우리 미술계에 너무나 많이 쌓여있다.


정말 중요해서 말을 꺼내기가 민망한 일들은 예술의 본질과 목적과 의미 그리고 그것이 드러나는 방법과 형식에 대한 다양성 혹은 적절성, 지금 미술과 우리의 삶에 대한 관계와 영향에 관한 진행과 변화 등등이다. 근원적이고 원초적인 질문이고 화두이기에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일들이다. 하지만 남의 탓을 하느라고 이런 일들은 진부한 것들로 치부되고 말아, 자신의 탓인 결과로 더하여지는 지금 우리 미술계의 깊이에 대한 문제는 외면하고 만다. 미술이라는 예술장르가 추구할 수밖에 없는 이런 원형적인 질문이 갖는 의미들은 20세기와 함께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닌지 두렵다. 또 하나, 내가 몸담고 있는 미술관을 비롯해, 전시기획을 하는 곳곳에서 활동하는 평론가와 큐레이터들은 자신의 의식이 현재의 예술에 얼마나 비판적으로 작용하고 있는지, 또 선의라는 범주에 자신의 행위가 속하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자신의 기획과 전시가 과연 전시를 관람하는 수용자를 이해시키려는 것인지, 아니면 뻔뻔하게도 자신의 이해관계에 좌우된 기획인지 퇴고해야 한다. 오로지 학연과 지연 혹은 이해관계만이 기준이 되어 만든 전시는 경제적, 사회적 그리고 문화의 낭비일 뿐이다.


또 하나 덧붙여, 화랑과 몇몇의 경매에서 거래되는 미술작품은 과연 그만한 경제적 가치가 있는지, 그리고 그 책임에 대한 막중한 무게를 느끼고 있는지도 자문자답을 해야 한다. 미술작품에 대한 경제적 가치 혹은 진위에 대한 가치를 적어도 스스로가 부끄럼 없이 내세울 수 있는 자신이 있는지 자문해보아야 한다. 그렇게 했을 때, 결코 나의 선의에 어긋나지 않는 답을 얻어야 한다. 故김수환 추기경이 펼쳤던 ‘내 탓이오!’가 지금 우리가 절실하게 필요한 운동일지 모른다. 비록 우리가 싫어하는 ‘모방’이지만, 이런 ‘모방’은 백번이라도 해야 한다는 심정은 버릴 수 없다.



임창섭(1961- ) 홍익대 미술사학 박사(수료). (사)한국화랑협회 사무국장, 청암미술관 부관장,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예술총감독 역임. 현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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