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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오늘보다 중요한 역사는 없다

신수진



놀공 <파우스트 되기>, 문화역서울284 전시전경, 사진제공: 문화역서울284


볼거리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던 시절엔 전시장에 줄을 서는 일이 더 흔했다. 원로 작가분이 이십 대 청년 시절 처음 열었던 개인전에 대한 리뷰가 일간지 사설에 실리고 관람객이 몰려서 전시장 건물 밖으로 길게 줄을 늘어선 이야기는 전설처럼 들리는 수준이지만, 해외 유수의 미술관에서 작품을 들여오면 주말 하루만도 수만 명이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룬 기억은 우리에게도 선명하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한순간도 심심할 겨를이 없는 세상에서 더 이상 온 나라를 들썩이게 할 만한 막강 콘텐츠를 찾아보긴 힘들다. 비단 예술계의 문제가 아니라 영화도 음반도 드라마 시청률도 최고 기록이 예전만 못하다. 경기가 부진한 탓도 있겠지만, 그보단 문화예술 콘텐츠도 경계를 뛰어넘는 무한경쟁 시대에 들어갔다고 해야 할 것이다. 어차피 인간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볼거리, 놀거리, 즐길거리는 너무나 많아졌다.

양적 팽창에 대한 기대가 사그라들자 작가들의 협동조합이나 출판동인 등 자생력에 대한 논의와 실천이 늘어났다. 장기적인 활동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선 필요한 요소들일 것이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예술이 온전한 자생력을 갖춘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인가?’라는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패트론(후원자)을 통해서 작가의 활동이 지속되어온 역사로부터 현대에 이르러서 작가와 예술 활동을 지원하는 경로는 다양해졌다. 예술이 큰 의미에서 소통을 전제로 한다고 하면, 온전히 독립적인 작가 활동이라는 것은 예술가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어도 별 할 말이 없다. 작가의 활동에 대한 지원에 있어서 국공립 또는 기업 후원의 미술관이나 재단이 차지하는 비중이 클수록 작가의 활동 무대도 공공의 영역 내에 있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공공 영역에서 지원의 시스템은 작가의 활동과 작품의 수집과 소장, 그리고 관객의 참여 분야로 나뉜다. 특히 관객에게 예술적 가치를 공유하도록 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은 아직 갈 길이 멀다. 문화예술계 내에서 구조적으로 많은 관심이 할애되고 있는 방법은 경영적 관점에서 기관의 운영이나 서비스 개선을 위한 노력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기관의 실적에 대한 정량적, 정성적 평가지표들을 설정하고 관람객 수나 관객의 피드백 등의 자료를 수집하는 것으로 개선의 방안을 제시하기는 충분치 않다. 현실적으로 이 부문은 특히 공공 자원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서 내용이나 방법을 유연하게 넓혀가지 못하는 문제도 안고 있다. 실제로 전시장이나 공연장을 찾는 관객들이 어떤 경험을 하는지에 대한 관심은 예술의 가치를 얼마나 공감하고 공유하였는지에 초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이는 공공의 자원이 궁극적으로 그 자원을 제공한 개개인에게 되돌려지고 있다는 신뢰를 쌓아나가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

예술의 기본과제는 나눔이다
요즘처럼 온 국민의 관심사가 문화 분야에 집중된 적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비선 실세와 관련된 비리의혹이 번지면서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에게도 은연중에 무력감이 번지고 있는 것 같다. 전문성을 바탕으로 소신을 실천해온 사람들조차도 의구심과 자괴감의 늪에 빠지도록 하는 현실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이는 문화예술의 사회적 가치에 대한 합의의 취약성에 대한 방증임을 놓치지 말아야겠다. 문화의 사회적 가치, 즉 문화예술에 공적 자금이 투입되고 작가의 활동을 지원하고 애호가층을 두텁게 만들어 나가는 일이 필요한 이유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탄탄히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전문가들 스스로가 그 가치를 ‘공유’하고자 하는 각자의 방식을 적극적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우리는 뻔한 일상에 질문을 던짐으로써 새롭게 보는 방법을 제시하고, 세계에 대한 통찰을 공유함으로써 삶의 의미에 대한 답을 함께 찾아가는 것이 예술의 기본 과제임을 모두와 나눌 수 있어야 한다. 반성 없이 새로움도 없다. 전달되지 않은 메시지는 독백이며, 공감되지 못한 비전은 허언에 불과하다. 문화와 예술의 가치에 대해 다시금 새겨야 할 때이다.


- 신수진(1968- ) 심리학자. 연세대 시각심리학 박사. 연세대 인지과학연구소 연구교수, 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 예술의전당 전시 자문 등. 과학과 예술의 접점에서 수용자 중심의 비평적 관점으로 전시 및 공연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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