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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국립현대미술관 법인화의 전제조건

최열

부끄럽게도 기껏 6,200여 점에 불과한 작품을 소장한 국립현대미술관을 독립 법인화해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일까. 소장작품 규모에서 루브르(Louvre)가 40만, 모마(MoMA)가 10만 점을 상회하는데 과연 그처럼 운영할 수 있을까. 기획전 때마다 남의 작품 빌려와 판을 벌일 작정인가. 그러므로 문화체육관광부내에서 운영하고있는 법인화추진단이 루브르, 모마와 같은 법인미술관을 희망한다면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작품을 어떻게 대거 증가시킬 것인가 하는 방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의 특수법인전환은 목전의 현실이다. 행정안전부와 문광부는 법인전환의 명분을 ‘창의성과 열의, 경험이 부족한 공무원이 장악한 미술관의 인사, 조직권한을 큐레이터 및 전문성 있는 기관장등 전문인력의 손에 넘겨주어야 한다’는 점이라고 내세우고 있다. “법인화는 정부가 완전히 재정에서 손을 떼거나 관리를 안하는 것이 아니라 경영과 조직, 인력운용에 있어 전문성 있는 기관장 영입 등 공무원 조직에 얽매여 있는 부분을 자율적으로 풀어줘 효율성을 높이려는 것”이라는 게다. 왜 일찍 이렇게 하지않았는가. 그동안은 몰랐던 것일까.


바로 몇 해 전 국립현대미술관을 책임운영기관으로 전환할때 나는 그 폐단과 난맥상을 예감하면서 재앙을 예고하고 반대하는 가운데 그럴바엔 차라리 완전한 독립 법인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안했었다. 그럼에도 전환을 강행했다. 이후 몰락의 길을 걷는 모습을 지켜본 나는 철회가 아니라면 다시 독립 법인화를 주장해왔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다. 이제 법인화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법인화는 가시권에 들어왔다. 때마침 서울분관 설립도 실현을앞두고 있으니 법인화의 적기임엔 틀림없어 보인다. 하지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법인으로 전환함에 있어 전제 조건을 충족시켜 나가야 한다. 닥쳐올 문제점이 훤히 보이는데 방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까닭에 몇가지 전제되어야 할 것들을 제시해 두어야겠다. 행안부, 문광부 추진관료에게 말이다. 가장 앞서야 할 최대 조건은 소장작품 증대계획 확정이다. 최근 몇 년 사이 미술관 작품 구입 예산은 매년 40-50억이었다. 대한민국 유일의 국립미술관으로는 상상하기조차 싫을만큼 적은 액수일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민간이 매년 수십, 수백억의 작품을 기증한 일도 없다. 미술관회와 그 이사회가 있지만 그 이사들이 저 루브르, 모마처럼 매년 억단위 기부금을 냈다는 이야긴 들어본 적 없다. 아무런 권한도 없는데 무슨 의무를 질 것인가.


행안부와 문광부는 ‘세계 최고수준의 대표작 수집을 위한 5개년 계획’을 세워 매년 특별예산 500억 확보를 하길 바란다. 세계수준 미술관은 오직 세계수준의 소장품을 갖추어야 한다는 절대조건을 알고 있다면 5개년 계획이 얼마나 절실하고 진지한 대안인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6,000점이라는 천박한 수준의 국립미술관이 그냥 제도만 특수법인으로 바꿔놓는다고해서 루브르, 모마처럼 변할 수 없음은 삼척동자조차 알 수 있는 일이다. 특히 어느 대학 행정학 교수는 미술관 매년 예산 230여 억원을 법인 전환 후 몇 해 뒤엔 절반가량 줄여야 한다고 하는데 무지한 발상이다. 법인화의 성공을 위해서는 감소가 아니라 소장품 수집 및 신설 서울분관 경영을 위하여 오히려 증액해야 할 터이다. 그리고 매년 10억씩의 구입예산을 낭비하고 있는 미술은행 따위 희화화된 제도를 당장 폐지하는 일이 시급하다.


특수법인 전환 과정에서 구성될 국립미술관 이사회는 내면의 권력기구이다. 선임된 이사는 미술관의 수집, 연구, 교육, 전시는 물론 경영 전반의 기조를 결정, 평가하고 관장 임면권을 장악하는데 그에 따른 의무 또한 져야하는 중요한 직책이다. 의무란 간단히 말하면 미술관 재정을 책임지는 일이다. 매년 억 단위 재원을 출연하고 또 그만큼의 발언권, 결정권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럴 수 없는 인물이 이사 자리를 탐내는 일은 용납할 수 없다. 권한만큼의 의무를 져야 하는 것이다. 의무를 법인 정관에 명시해 두어야 하며 특히 지자체 문화재단의 경우 이사장을 지자체장이 겸하는데 관치법인(官治法人)의 장치이므로 장관이 이사장을 맡는 일은 절대 배제할 일이다.


현재 국립미술관 직원의 구성비율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행정대 학예직 비율이 약 8:2이다. 또한 행정의 직급, 직위가 학예를 압도할뿐 아니라 문광부는 본부라며 지휘, 감독 권한을 휘두르고 있다. 선진국에 유례가 없는 이 기형을 소멸시키고 또 2:8으로 역전시키는 정상화의 계기가 바로 법인화 과정이어야 한다. 학예역량 우위 및 예술경영 겸비를 조건으로 하는 새로운 미술관의 미래는 이제 시작이거니와 법인 미술관 조직체계를 제대로 갖출 수 있기를 기대한다. 법인화는 장밋빛 구호가 아니다. 어떤 조건과 환경을 갖추느냐에 따라 그 미래가 재앙일 수도, 희망일 수도 있다. 단호히 천명하건대 현재 전문경영인 관장체제인 미술관 법인화 성패 여부는 첫째, 소장품 5개년 계획 실현. 둘째, 이사진 구성의 수월성. 셋째, 조직체계 정상화라는 전제 조건 충족에 달려있음을 명심할 일이다.



- 최열(1956- ) 중앙대 예술대학원 석사. 가나아트 편집장 역임. 현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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