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54)오늘, 미술계의 윤리

임근준

2002년부터 2006년까지 기세 좋게 부풀었던 국제미술시장의 거품은 이제 사라졌다. 돌이켜보면, 한국미술시장의 거품은 2005년 말에 시작됐고, 2008년 초에 주저앉았다. 2006년 봄이 첫 폭발점이었다면, 2007년의 KIAF는 양태적 정점이었다. 뉴욕에서 문을 닫는 갤러리가 속출한 것에 비하면, 국내미술시장의 상황은 (최소한 겉으로는) 연착륙에 성공한 듯 뵈기도 한다. 자, 지금은 정신을 차리고 결산을 할 때다. 돈 이야기가 아니다. 미술시장의 활황이 우리에게 남긴 변화, 미술 자체에 영향을 미치는 그 결과를 살펴보자는 말이다.


우선 나는 직업윤리가 희박해졌다는 점을 지적하겠다. 오늘 많은 이들이, 큐레이터가 미술품 거래에 관여하고, 평론가/교수가 미술품 판매에 나서는 모습에 익숙해져 버렸다. 혹자는 상업화랑에 공식적으로 적을 두기까지 했다. 그 가운데 으뜸가는 꼴불견은, 자신을 “독립 큐레이터”로 소개하는 어느 기획자이다. 그의 행태를 두고, 화랑 관계자 모씨는 이렇게 한탄했다. “요즘 대형 콜렉터의 집에 가보면 새로 구매한 작품은 두 종류다. 반은 상업 갤러리들에서 구입한 물품. 나머지 절반은 모씨를 통해서 구입한 물품이다.” 그런 그가 작품을 팔고 사며 사실상 아트딜러의 노릇까지 겸한다니, 혀를 찰 노릇이다. 나는 국내외를 통틀어 이런 경우를 본 일이 없다. 그런데도 그 누구 하나 나서서 비판하는 이가 없으니, 더욱 놀랍다. 미술품 투기의 광풍 속에서 모두들 이성과 도덕심을 잃었나? 작가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젊은 작가들은 창피를 모르고 아트페어 참가를 이력으로 적어놓는다. 그림 장터에 장사치가 그림 내다판 일이, 작가의 창작 이력과 무슨 상관인가? 그 정도가 아니다. '인기 작가'라는 허울 좋은 호칭에 눈이 멀어 화랑 측의 요구에 따라 작품 제작 주문을 받는 기이한 관행까지 등장했다. 잘 팔리는 시리즈로 사전에 10점, 20점씩 주문 계약을 할 수 있다니, 이쯤 되면 작가가 아니라 가내수공업형 자영업자다.


미술관에서의 문제들

국립현대미술관은 한 술 더 떴다. 서울분관 예정지인 기무사터에서 열린 첫 미술행사는 황당하게도 조선일보의 아트페어 '2009 아시아프'였다. 말이 아트페어지, 누군가의 표현을 빌면 “애들 코 묻은 돈 뜯는 자리”였다. 헐값에 그림을 사고팔아서 현대미술의 저변이 확대된다면 얼마나 좋으랴만, 그럴 턱이 없다. 장사판에서 장사를 하면 누가 뭐랄 사람이 없다. 하지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예정지에서 장사를 했다는 게 문제다. 그것도 첫 행사로. 상식에 어긋나도 한참 어긋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기무사터에서 열린 두 번째 행사는 모씨가 기획한 '플랫폼 2009'였다. 여기서 잠깐, 국립현대미술관이 외부에 대관도 했었나? 상업화랑조차, 수준 있는 곳은 대관을 불허한다. 배순훈 관장은, 부디 정신 차리시기 바란다.


물론, 직업윤리의 퇴보는 비단 한국미술계만의 문제는 아니다. 2008년 9월 영국미술가 데미언 허스트(Damien Hirst)가 후안무치한 직거래 경매를 시도한 일은 적이 충격적이었다. 15일과 16일 이틀에 걸쳐 진행된 소더비스(Sotheby's)의 단일 작가 경매 <내 머릿속에선 영원히 아름답다(Beautiful Inside My Head Forever)>는 미국 경제가 파탄의 비명을 질렀음에도 불구하고 1억1150만 파운드(한화 2,435억 가량)의 매출액을 기록, 작가는 5천만 파운드(약 1,081억원)의 수익을 거둔 것으로 추정됐다. 허스트는 자신의 명예를 금전적 이익과 맞바꾼 셈이었다.


한편, 뉴욕의 뉴뮤지엄(New Museum of Contemporary Art)은 최근 ‘2010년 2월말 미술관 전관을 할애해 다키스 조아누(Dakis Joannou) 콜렉션을 소개하며, 이 전시는 작가 제프 쿤스(Jeff Koons)가 큐레이팅한다’고 발표했다. 그리스의 대부호인 조아누는 1980년대 이래 컨템퍼러리 아트--제프 쿤스의 주요작품을 포함한--를 공격적으로 수집해온 인물이다. 얼핏 들으면, 좋은 일인 것만 같다. 조아누의 수집품은 수준 높기로 유명하고, 또 미국에 소개된 바가 없으니 더욱 그렇다. 하지만, 뉴뮤지엄이라는 장소가 문제다. 국가로부터 지원금을 받는 공공미술관이, 한 개인의 소장품선을 특별전의 형태로 소개하는 일은 윤리적으로 문제가 된다. 왜냐하면, 주요 미술관에서 전시된 작품은 가격이 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의 일부 미술관은, 개인 소장품을 대여해 전시하는 경우, 소장자에게 ‘전시 이후 1년 이내에 작품을 경매 등에 내놓아 판매하지 않겠다’는 약정서를 작성케 한다.) 그런데, 이렇게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는 기획을 발표한 주체가, 다름 아닌 뉴뮤지엄, 한때 대안적 미술 활동을 주창했던 기관이라는 사실은, 아이러니하기 짝이 없다. 뉴뮤지엄의 설립자인 마르시아 터커(Marcia Tucker, 1940-2006)가 살아있었다면, 이런 일이 가능이나 했을까? 



임근준(AKA 이정우, 1971- ) 서울대 미술이론 석사. 현실비평연구소 건축비평상(1999) 수상. 아트선재센터 어시스턴트 큐레이터, 아트인컬처 편집장 역임. 현 미술·디자인 평론가.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