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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지킨다는 것

김보라


윤중식의 화실 ⓒ김보라

 2012년 윤중식 작가는 상수전을 끝으로 타계하셨다. 나는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까지 노대가를 뵐 수 있어서 지금도 마지막 만남을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윤중식 작가를 처음 뵌 건 2009년 겨울이었으니 한 예술가의 최후 3년여의 세월을 곁에서 바라 본 셈이다. 당시 작가의 자택은 재개발 되고 있었다. 윤중식작가는 지켜온 작품과 제2의 고향과도 같은 성북동 붉은 벽돌집을 미술관으로 만들고 싶어 하셨기에 늘 그러한 상황을 염려하셨다. 작가가 60여 년을 살았고 예술가의 낙서 한 줄도 손대지 않은 그야말로 모든 것이 그대로인 곳이다. 작가의 마음에 공감했고 생각으로는 수차례 미술관을 지었지만 당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구청장을 비롯한 행정가들과 작가의 생각을 공유하고 가족들의 입장을 헤아릴 뿐이었다. 그러한 상황들 속에서 전시는 성황리에 개최되었고 윤중식 작가는 생애 마지막 전시가 끝난 직후 그해 7월 삶을 마감하셨다. 그 자취가 사라짐에 대한 근심을 그대로 간직한 채로.

 그리고 5년의 세월이 지났다. 최근 재개발이 무효화 되었다. 한 예술가의 바람을 직접 접했던 사람들이 그대로 있었기에 가능했을까. 그 소식을 공유하는 순간의 숙연함은 잊을 수 없다. 아무도 모르게 사라질 수 있었던 한국 근대 미술의 주요 작가인 윤중식의 공간이 다시 숨 쉬는 순간이었다. 얼마 전 우리는 ‘윤중식미술관’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5년이 지났지만, 작가의 흔적은 그대로 남아 있으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지만 예술혼이 담긴 집을 기반으로 하나의 미술관을 향하여 나아가는 길은 그렇게 서서히 열리고 있다.

 이처럼 예술가들의 흔적에 대한 적지 않은 고민이 지속되고 있다. 예술가의 집에서 공공의 미술관으로 전환되어야 할 곳들이 곳곳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안타깝게도 이미 사라진 집터들의 현재 모습을 통하여 더욱 간절히 드러나고 있다. 성북동만 해도 근원 김용준과 수화 김환기의 인연이 담긴 노시산방이 그러하고, 소전 손재형의 그림으로 남아 있는 승설암과 장승업이 말년에 살았다는 집 또한 표석하나 없이 잊히고 있다. 그러므로 현존하는 예술가의 집과 유족이 살고 있는 예술가의 집은 더 늦기 전에 미래의 유산으로서 그 가치를 존속시킬 필요가 있다. 기회는 늘 주어지지 않으며 놓쳐 버린다면 너무나도 먼 길을 돌아가야만 한다.

 미술관을 새롭게 짓는 일보다 작은 공공의 미술관으로서 예술가의 집을 활용하는 것은 오히려 수월할 수 있다. 작품과 작가의 자취가 그대로 남아 있다면 이를 보존하면서 미술관으로 운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장애물들은 곳곳에 놓여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왜 우리가 예술가의 집을 공적 자산화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인식의 문제다. 모두에게 확고한 생각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나 직무의 순환구조는 그조차 불가능하게 한다. 긴 호흡으로 함께 할 수 있는 행정가가 필요한 이유다. 만약 극적으로 충족될지라도 지자체에 부여되는 문화 예산의 비율을 생각했을 때 충분한 예산을 확보하기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도 한국의 근현대 예술가 다수가 살았던 곳에 예술가의 집이 모태가 되는 미술관이 가득한 마을을 만드는 생각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 성북 지역은 근현대 예술가의 삶과 인연이 적지 않게 담겨있는 곳이다. 이미 우리는 간송미술관, 최순우옛집, 심우장, 수연산방 등을 통하여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예술가의 일상이 담겨 있다는 자체만으로 독보적인 힘을 갖는다. 그 가치가 사람들에게 오랜 시간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그 어떠한 일보다 중요할 수 있다. 놓아 버리면 수많은 작품과 자료가 쉽게 버려질 운명에 놓이고 혼돈의 상황 속에 길을 잃게 될 것 이다. 이는 우리의 역사와 예술 일부를 잃는 것과도 같다.

 지킨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 것일까. 수년간 많은 예술가와 이별의 순간을 겪으며 예술가들의 존속 가능성에 대한 고민이 커져만 가고 있다. 이러한 미술관은 단지 물리적으로만 탄생하는 것이 아니기에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면 가능한 모든 것을 그대로 담을 필요가 있다.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도 오랜 시간 머물며 예술가의 숨결이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면 우리 미술을 향한 마음도 더욱 깊어질 것이다.


- 김보라(1974- ) 숙명여대 불문학 학사 및 문화예술행정학 석사(2005), 이화여대 조형예술학 박사 수료(2007).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큐레이터(2003-04), 경기도미술관 학예연구사(2004-07) 역임. 현 성북구립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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