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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문화예술인 지위법’은 과연 필요한 법인가?

변종필

독일의 19세기 화가 아돌프 멘첼(Adolph menzel, 1815-1905)이 괴테의 <예술가의 인생역전>이라는 시에 넣은 삽화연작은 마치 이시대 미술가의 비극적 삶을 단적으로 묘사한 것처럼 해석된다. 우리나라 예술인의 70%가 예술 활동으로 얻은 수입이 월 평균 100만 원이하이고, 예술인의 81.5%가 거듭된 생활고와 가족부양의 책임감에 떠밀려 예술가로서의 삶을 포기해야 하는 모습이 함축되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얼마 전 보궐선거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연극인’ 출신 최종원 의원이 자신의 첫 과제로 ‘문화예술인 지위법’의 입법을 예고하며, 2006년 ‘예술현장을 위한 역점과제’ 이후 다시금 예술인들의 삶에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일반인에게 생소한 이 법의 추진배경은 예술가의 경제력(소득기준)이 비예술관련 종사자들보다 현저히 낮다는 현실인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예술인의 생활고는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직업의 귀천을 오직 ‘소득수준’으로 평가하는 우리 사회에서 예술가라는 직업은 오래전부터 그 가치가 퇴색되어왔다. 예술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자긍심마저 지닐 수 없는 현실의 절망감은 일찍이 우리 사회가 그려낸 예술가의 초상이다. 결국 이번 ‘문화예술인 지위법’역시 이러한 예술인의 처지를 반영한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된 것일 테다. 그러나 문제는 이 법이 단순히 최저 생계 유지비를 지원하는 수준에서 논의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데 있다. 


만약 그렇다면 굳이 ‘지위법’이라는 거창한 단어까지 사용하며 이 법을 만들어야 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최저 생계유지비 차원의 지원은 ‘문화예술인 지위법’을 떠나 생활고로 허덕이는 국민에게 필요한 공통된 지원정책일 뿐 예술인의 진정한 지위를 세울 수 있는 근본적 대안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예술인의 지위를 세우는 출발점은 창작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조성에서부터 신진예술인의 양성, 예술 인력 수급과 같은 근본적으로 예술가를 지원·양성하는 실질적인 사회적 기반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는 정부와 국민, 미술계가 함께 만들어야 할 부분이다.


예술은 먹고 살기위한 수단이 아닌 창작활동

국민의 문화생활과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공헌한 예술인이 그에 합당한 지위를 보장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어떠한 기준과 방법으로 지위를 보장하느냐에 있다. 얼마 전 여야 국회의원들이 65세 이상의 전직 의원들에게 국가 예산으로 매월 120만 원의 ‘지원금’을 지급하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다가 국민의 지탄을 받았다. 최소한의 기본적 양심과 원칙이 없는 집단 이기주의는 사회적 불신을 낳고, 국민적 원성을 들을 수밖에 없음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 사례이다. ‘문화예술인 지위법’ 역시 마찬가지다. 입법화되기 위해서는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공정하고 합리적인 기준 마련이 가장 중요한 선결사항이다. 국민적 공감대를 얻지 못하는 지위법이라면 더는 그 의미와 가치를 주장할 수 없다. 예술을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한 수단이 아닌 인간의 정신과 삶을 풍요롭게 하는 소중한 창작활동임을 인정하는 국민적 인식이야말로 진정한 문화예술인의 지위가 세워지는 바탕이다. ‘문화예술인 지위법’의 법제화에 필요한 또 한 가지는 문화예술인의 스스로 각 예술장르의 특수성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예술은 문학·미술·음악·무용·연극·영화 등 다양하다. 공연예술과 시각예술이 다르고, 순수예술과 상업예술이 다르다. 따라서 장르·기능·세대·단체·지역별에 따른 세분된 기준과 그에 따른 지원정책 없이는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오히려 예술인끼리 반목하는 현상만 가져올 수 있다. 


‘문화예술인 지위법’이 그 취지와 달리 부조리한 사회구조의 한 영역으로 오인되거나, 그릇된 시대적 오류라는 평가는 예술인 스스로 지켜야 할 몫이다. 외국 사례가 그 적절성을 온전히 뒷받침하지는 않지만, 현대국가 최초로 예술과 예술인의 사회적 가치와 지위를 명문화한 캐나다의 ‘예술인 지위법(the Status of the Artists)’은 졸속행정이 아닌 30년 동안 예술인들과 의식 있는 정치인들이 노력한 결과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결과적으로 이번 ‘문화예술인의 지위법’은 2006년의 선언적 의미를 넘어 실천적 과제로 구체화하고 실현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하며, 21세기 문화시대에 어울리는 진정한 예술인의 초상을 그릴 기회로 삼아야 한다.



- 변종필(1968- ) 경희대 미술사 박사.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부문 당선. 한국미술품감정발전위원회 연구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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