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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한국의 미술관은 전문성 부재의 사랑방인가

윤범모

2008년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필립 드 몬테벨로 관장이 퇴임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미술관 관장 31년 만의 일이라 했다. 아니, 관장 31년! 나는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미술관 학예실도 아니고 관장실에서만 30년을 일했다고! 이는 뭔가 잘못된 것 아닌가(한국식 사고방식에 의거, 이는 상상 밖의 사건이리라). 게다가 몬테벨로는 아무리 귀족 출신이라 하지만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귀화한 인물이다. 그러니까 ‘한국식’ 인맥의 결과로서 관장직을 맡은 이른바 낙하산 인사는 아니라는 거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은 간판만 그럴듯한 저 시골구석의 뮤지엄은 아니다. 메트는 런던의 브리티시박물관, 파리의 루브르박물관 등과 함께 세계 최고 수준의 뮤지엄이다. 그런 미술관의 관장직을 30년 이상 근무할 수 있었다니! 놀라운 일이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전문성 그러니까 능력의 유무이다. 몬테벨로 관장이 퇴임하자 메트의 학예실은 퇴임 관장을 기리는 헌정 전시를 기획했다. 이 또한 희한한 일, 몬테벨로 재임 중 수집한 8만여 점의작품 가운데 3백점을 엄선하여 마련한 기념전, 이는 미술관 세계의 미담이기도 했다.


한국의 박물관·미술관도 세계적 기록으로 자랑할 것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한국의 사립미술관·박물관의 상당수는 기업에서 설립 운영하고 있다. 특히 규모가 큰 미술관은 대기업의 소속이다. 하지만 상당수의 기업미술관 관장은 기업주의 부인(아니면 가족, 그것도 한결같이 여성!)이 차지하고 있다.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기업주의 가족이 미술관 수장이 되어 문화예술계에 봉사를 하고 있다니! 재벌부인 미술관장의 나라, 대한민국은 목하 세계 신기록을 수립하고 있다(물론 이 대목에서 예외는 있지만 ‘사모님 관장’의 경우, 과연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가, 자가진단을 권하고 싶다).


한국의 미술관은 또 다른 세계적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이다. 도립·시립 등 공립미술관 관장의 경우, 작가 출신 천국이라는 것이다(하기야 하나밖에 없는 국립미술관의 관장조차 비미술인을 앉힌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지역의 미술관 관장은 으레 해당 지역 작가들의 잔치마당 수준에서 헤어날 줄을 모른다. 미술관 관장실이 어디 작가들 사교클럽인가. 토호들의 사랑방(혹은 양로원)인가. 미술관 운영과 관련하여 전문성이 없는 작가 출신, 이런 관장 체제 아래서 바람직한 미술관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 미술관에서 평생 잔뼈가 굵은 전문가도 꾸려가기 어려운 것이 미술관 운영이다. 그만큼 전문성을 요구하는 직종이라는 뜻이다. 오죽하면 대학에 박물관학과가 다 설치되어 있겠는가. 미술관 관장실은 결코 취미생활이나 권력 쟁투의 마당은 아니다. 작가들이 관장직을 차지하고 있는 기간동안 한국 미술관의 발전은 그만큼 퇴보하고 있다는 사실을 통감해야 한다. 비전문가 관장 체제가 바로 전문가 양성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들아, 그대들은 작업장으로 돌아가 작품 제작에 전념하라. 미술관 운영은 미술관인에게 맡기라. 미술관 일은 전문성이 담보되는 특수직임을 통감하라.



관장의 임기, 직급 문제가 많다

미술관 관장과 학예원들의 위기 시대이다. 관장 임기래봐야 2년, 3년 등 5년을 넘길 수 없는 구조이다. 관장 재직기간은 능력평가에 의한 것이 아니고, 그저 기계적인 나그네 신세로 규정하고 있다. 평생직장은 커녕 신분 불안의 파리 목숨, 그것도 빈약한 연봉, 행정 공무원 중심의 미술관 운영 등 열악한 상태, 이것이 오늘 대한민국 공립미술관의 현주소이다. 몬테벨로 관장은 메트에 그리스·로마 상설전시실을 만드는데 무려 15년이라는 세월을 투여했다. 한국의 2년 혹은 3년짜리 관장으로는 꿈도 꿀 수 없는 이야기다. 제대로 된 기획전을 준비하는 데 3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관장 자신이 기획한 전시를 재임시에 개막할 수 없는 구조, 이같은 최악의 구조를 만들어 놓고 미술(관)문화 발전, 어쩌구 저쩌구 떠든다. 정말 한심한 일이지 않을 수 없다.


관장의 직급을 올려야 한다. 3급 4급이 무엇인가. 미술관은 학예실 중심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현재 한국의 미술관은 전문성과 담을 쌓고 폼만 잡고 있는 ‘무덤’과 같다(뮤지엄은 왜 무덤이라는 발음과 비슷한가). 전문가 시대이다. 전문성과 능력의 유무로 관장을 평가해야 한다. 인맥 중심의 관장 선임이라는 원시시대에서 탈출해야 한다. 작가는 작업장으로, 미술관인은 미술관으로. 이 이상 진리가 어디에 있는가. 오늘도 미술관 관장실을 넘나보는 전국의 (이른바) 작가들, 제발 작업장으로 돌아가 제작에 몰두하라. 그대들이 관장실을 넘나보는 기간동안 미술관 문화는 그만큼 퇴보하고 있다는 사실, 명심해 달라.



- 윤범모(1950- ) 동국대 미술사학 박사. 예술의전당 미술부장, 우리미술문화연구소 소장, 호암갤러리 큐레이터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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