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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감염 네트워크로 재배치된 사회성과 비엔날레 전시

조주현

팬데믹으로 미뤄졌던 제11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가 지난 9월 8일 개막했다. 개막 첫날 미술관은 오랜 격리 끝에 마주한 거리풍경과 유사했다. 마스크를 쓴 채 시선을 회피하는 사람들의 무정서, 비엔날레하면 떠오르는 경쟁적 스펙터클이나 긴장감 대신 한산한 초가을의 차가운 공기가 전시동선을 다소 낯설게 만들었다. 내 관심은 팬데믹의 여파가 소위 제도권 국제 비엔날레의 풍경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다. 해외 감독과 미술관, 작가들과 지역공동체의 협업이 중요한 비엔날레 전시가 물리적 현존이 현격하게 제한된 조건에서 어떤 새로운 사회성과 위계를 만들어냈을까.

먼저 눈에 띈 공간 배치는 얼마 전까지 화이트큐브에서 세계의 관찰자로서 관객의 수행성을 강조하며 극도로 무대화된 경험 공간을 연출해온 것과는 크게 달라진 비엔날레의 모양새였다. 단순화된 구조는 개별 작품의 몰입을 쉽게 이끌었고, 몇몇 작품은 전체 전시 공간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내러티브를 강화해나갔다. 얼마간의 탐색 끝에 나는 이 비엔날레가 물리적 공간과 맺는 관계보다 지금 여기, 무공간(Nowhere)으로서 어떤 ‘선’ 또는 ‘망’을 통해 존재함을 감지했다. 그 발단은 1층에 모니터로 설치된 호주 출신의 작가 리처드 벨(Richard BELL, 1953- )의 영상 3부작이었다.



리처드 벨, 디너 파티, 2013 ⓒ작가와 브리즈번 밀라니 갤러리 제공.


호주 사회에 만연한 백호주의와 원주민에 대한 차별적 고정 관념을 전복시키는 영상 작업 중 <디너 파티>는 최초로 호주 원주민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가상세계를 배경으로 한 사변적 영상이다. 원주민 출신인 작가가 직접 출현해 브리즈번의 그림 같은 강변을 배경으로 호화로운 맨션에서 백인 미술계 인사들과 만찬을 연다. 이어 TV에서 속보로 전해지는 대통령 담화는 원주민 중심의 급진적인 국가건설 계획이다. 와인을 홀짝이던 백인 미술계 인사들은 지금까지 견고했던 부, 지위, 권력을 모두 빼앗길 것이 명백해지자 인종차별적 발언을 쏟아낸다. 이들의 대화와 토론은 뿌리 깊은 호주 백인의 특권적 맥락에서 원주민에 대한 불만과 불평등을 극명하게 드러내지만, 이미 상황은 변했고 미래는 당도했다.

이 작품의 백미는 신임 대통령이 모든 특권을 상실하게 된 백인들에게 새로운 세계의 질서를 따르고 싶지 않다면, 미합중국으로의 이주하는 방법 뿐이라고 말하는 순간이다. 2013년작인 이 영상은 2021년 지금 현실이 되었다. 우리는 감염병 네트워크 안에서 자본주의와 세계화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것을 직접 경험했다. 약 250년 전 자신들이 개척한 식민지에서 누려온 특권을 잃게 될 처지의 백인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카프카의 『변신』에서 갑각류 해충으로 변한 사내처럼 딱딱한 등껍질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집게발을 다루는 법을 익히던지, 아니면 쇠락한 세계화의 그물 망 안으로 이주하는 것이다.

이 작품은 비엔날레의 권력이 어디로 이동했는지 상기시킨다. 팬데믹으로 인한 비엔날레의 위기는 서구 백인 관점을 중심으로 한 비엔날레의 위기다. 로컬 중심, 토착민 중심의 관점이 주류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20세기적 패권싸움에서의 승리만 의미하지 않는다. 아메리카 원주민적 사고란 여러 시점이 중첩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다. 동시에 여러 시점을 인식하고, 각각의 시점으로 시시각각 전환할 수 있는 사고와 의식구조는 새로운 지구 행성에서 살아가기 위한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기도 하다. 인간과 다종다양한 생태계의 변화하는 관계를 감각하고, 그 ‘선’ 또는 ‘망’ 속에서 매번 변신이 불가능하다면, 이 새로운 지구 행성에서는 적응도 거주도 어려워 보인다. 결국 팬데믹 이후 변화한 미술계의 사회성 모델에 안착하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은 하루하루 낯설어진 신체의 기능에 적응해 전혀 다른 유기체들의 선이나 망으로 탈출을 시도하는 것 아닐까?


- 조주현(1978- ) 일민미술관 학예실장, 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 역임. KAIST 인류세연구센터 참여연구원, 2021-22 한국-네덜란드 교류협력프로그램 아르코 총괄기획자, 2021 ACC 아시아 창작스튜디오 레지던스 전시 총괄 기획자. 『디어 아마존:인류세에 관하여』(현실문화, 2020) 지음. 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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