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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예술가의 국적은 하나다

김노암

타인의 삶과 취향은 곧 나의 삶과 취향을 환기한다. 이웃 일본이 지진, 쓰나미, 원자력발전소 폭발과 방사능오염 등 연이은 재난으로 역사상 유래 없는 국가적 차원의 고통과 혼란을 겪고 있다. 오랜 기간 재난에 대비해온 일본도 자연의 거대한 힘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아마도 이번 자연재해로 인해 사람의 생명은 물론 수많은 예술품이 파손되고 망실되었다는 것을 쉽게 추측해볼 수 있다. 우리는 세계시민으로서 이번 재난의 희생자들과 그들의 가족에 대한 깊은 위로와 함께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10년 전인 2001년, 9.11 테러로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지고 수천 명이 사망에 이르렀을 때도 미국인뿐만 아니라 세계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일처럼 가슴 아파했다. 당시 세계무역센터에는 정기적으로 예술품을 컬렉션하던 기업과 개인, 미술사에 남을 훌륭한 작품들이 있었지만 순식간에 사라진 것이다. 그 후 몇 년간 미술시장의 침체가 지속되었다. 또 뒤이어 벌어진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 과정에 벌어진 인류문화유산의 파괴와 약탈 등 유사한 상황이 반복되었다. 우리는 문화예술이 한 국가나 한 세대의 것이 아니라 인류 모두의 자산이라는 사실과 함께 국가·체제·인종간의 갈등과 그에 따른 폭력사태는 정치·경제나 사회문제이자 문화예술의 문제임을 안다. 동시에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혼란과 폭력은 더 이상 우리의 삶 그리고 문화예술과 무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데 이런 거대한 비극적 사건 후 일정한 정신적 공황의 시기가 지나면 의례히 그리고 너무도 신속하게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는 경제와 시장의 문제로 회귀한다. 자연재해든 인재든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은 자본과 시장으로 환원하는 것이다. 세계유가의 변동과 주식시장의 등락이 초미의 관심사가 된다. 유감과 유감 사이에는 직업적으로 또 이성적으로 계산기가 등장한다. 전자가 어떻고 자동차가 어떻고. 예술의 정의나 비평을 둘러싼 담론은 매우 의례적이며 관습적인 절차이고 그 과정을 지나면 어김없이 투자품목으로서의 논의가 뒤따른다. 일본의 자연재해에 대해서도 한국의 문화예술계의 이슈는 잠시 유감스런 사태에 대한 정서적 반응 후 또는 그와 동시에 시장의 문제로 넘어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우리는 자극적이고 야한 이슈와 수사(修辭)에 길들어져 있고 또 모든 문제를 경제와 시장의 가치와 담론으로 사는 시대에 있기 때문이다.


빈약하고 협소한 미술계의 담론과 여론

미술계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정치적·사회적 이슈와 예술의 이슈가 결합하고 있는 경우를 반복적으로 경험하면서 미술계의 담론이 얼마나 빈약하고 협소한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미술계 담론이 90년대 비평의 위기이후 여전히 그 위기의 연속선상에 있고, 정치와 미술, 사회와 미술이라는 일반적이고 개론적 차원의 담론 외에 공론화 한 경험이 적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인간적 가치·예술적 가치를 말하는 것은 단지 개인의 취향에 머물고 철지난 회고나 상투적인 한탄일 뿐이다. 더욱이 2000년대 중반 미술시장의 갑작스런 호황과 불황을 겪으며 우리의 미술을 둘러싼 담론은 압도적으로 시장과 자본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는 단지 미술계의 여론이나 담론만의 문제는 아니다. 일본이 지진과 쓰나미로 고통 받는 그 순간 모 방송사는 한류의 흥행을 들먹여 여론의 뭇매를 맞았고, 또 어느 교회의 목사는 이번 일본의 재난이 하나님의 경고라는 생뚱한 발언으로 우리를 어이없게 하기도 했다.


우리는 흔히 언론이 시민들의 여론을 반영한다고 생각하지만, 여론을 조성하기도 한다는 점을 간과한다. 오피니언 리더들의 상식적이고 정당한 의견과 정확하고 엄격한 취재와 분석과 해석이 포함되어 이러저런 사정과 경우의 수를 고려한 정보와 뉴스가 가공되고 전달되어야 하지만, 그때그때 졸속으로 땜질한 기사들이 넘쳐나는 것이 현실이다. 미술의 담론과 여론 또한 우리 사회 전체의 여론과 유기적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정치·경제·사회에 대한 예술의 관심과 관계가 1970-80년대와는 반대 방향으로 급선회하여 개인과 취미, 놀이와 향수의 문제로 돌아선 과정 또한 고려해보아야 한다. 비록 정치·경제의 욕망을 부인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예술을 삶의 이정표로 삼은 이들의 대화는 뭔가 다른 점이 있어야 할 것이다.


되돌아보면 20세기 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인류는 고유의 문화예술자원이 파괴되고 야만화되는 비극을 경험하였다. 전선에서 적으로 만난 시인들, 화가들. 한국 사회 또한 20세기를 지나며 식민시기와 민족분단과 냉전과 참혹한 전쟁을 겪었다. 그러나 절망의 나락에서도 우리 사회는 민주화와 성숙한 시민사회를 지향하고 성취해왔다. 이 과정에 많은 예술가들이 공식적으로 또는 비공식적으로 지대한 공헌을 해왔다. 다시 한번 우리 미술계는 시장과 경제문제를 잠시 잊는 것, 고통 받는 일본은 물론, 많은 이웃 사회의 미술인들과의 적극적이고 호혜적인 창작과 감상의 교류를 확대하고 상식적이며 사려 깊은 만남을 조성하는 것이 우리 자신은 물론 인류의 미래에 공헌하는 것이다. 나라와 민족을 나누는 근대를 훌쩍 지나온 세계의 예술가들에게 고국은 하나일 뿐이다. 타인은 더 이상 타인이 아니다.



- 김노암(1968- ) 홍익대 미학 석사. 사비나갤러리 큐레이터, KT&G 복합문화센터 상상마당 전시감독 역임. 현 아트스페이스 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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