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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한국현대미술의 과제와 전망

김광명

한국현대미술의 과제를 짚어보고 전망하는 일은 우선 현대라는 시대적 지평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 다음은 미술을 통해 우리의 고유한 문제이며 동시에 지구촌의 보편적인 이슈를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 그리고 끝으로 오늘날 현대미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문제와 직결된다. 무엇보다 현대미술의 특징은 다양성에 있다. 그런데 한국이 주제가 된다면, 다양성 속에서 정체성을 묻는 일이 아울러 필요하다. 그것은 단순히 과거의 전통에 대한 회상이 아니라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 요즈음 수많은 그림들 중 몇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비슷한 기법과 소재, 비슷한 내용 등이 서로 너무나 닮아 있어 우리로 하여금 어떤 미래도 기대할 수 없게 한다.



한국현대미술의 본격적인 시작은 해방 이후 미군정시대를 거쳐 195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이다. 서구 미술사조의 인상주의적 방법론이나 추상표현주의적 기법이 국내 화단에 등장하며 비로소 현대미술의 시작을 알렸다. 해방이후 현재에 이르는 한국현대미술의 역사를 보면, 약 60여 년에 이르는 동안에 수많은 흐름들이 명멸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 가운데 70년대 단색회화운동이나 수묵화운동, 80년대 민중미술운동, 90년대 이후 설치나 미디어아트 등이 별다른 변별성을 갖지 못한 채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작가들은 독창적인 이미지의 창조라기보다는 외부로부터의 차용과 반복 위에서 작품을 제작하기에 이르렀고, 이러한 경향은 대중 문화적 시각 이미지를 적극 이용한 팝 아티스트 이후 많은 미술가들에게서 나타난다. 이미지는 더 이상 작가의 깊은 내면으로부터 창조된 것이 아닌 우리 생활 주변에서 선택하여 그 영역을 넓혀가게 되었다. 방법적으로는 이미지의 반복을 통한 현실의 재현이나 사물의 외양을 기계적으로 그리고 있다. 더욱이 인터넷이나 전자매체를 더욱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미술환경에서 사진·설치·오브제·패러디를 활용한 표현방식이 혼재하고 있다.


작가와 작품 및 관객이 맺는 삼면관계는 서로 삶의 체험을 공유해야 소통이 가능하다. 무엇보다도 현대미술은 다원주의의 확산과 차이의 병존으로 점철되어 있다. 예술과 현실의 사이를 가리고 있던 엄격한 경계는 허물어지고, 일상의 용품을 전시장에 제시한 레디메이드의 도발적 제스처, 입체파 작가들의 콜라주·다다·팝 아티스트들 뿐만 아니라 대중매체적인 문화로부터 뉴미디어적 문화, 새로운 네트워크 문화가 넘쳐나고 있다. 여기서 뉴미디어란 새로운 표현방식을 창조해내는 방법 모두를 포함한다. 서구에서 시작한 예술의 종언과 소멸, 위기라는 화두는 예술과 인간 삶의 연관 관계에 대한 혼돈과 오해, 조형성의 빈곤, 상상력의 빈곤에서 비롯된다. 나아가 이념화·제도화·상품화의 메카니즘 속에서 과연 작품이란 무엇이고 무엇일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에 답하려는 자세가 우리들 모두에게 진지하게 요구된다.


세계적 다원주의 속에 상생과 공존의 지혜

장르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이른바 탈장르·장르의 혼합현상·재료사용의 개방성, 그를 통한 표현의 극대화 현상이 분출되고 있는 상황에서, 전통적인 형태를 벗어나서 서구의 조형이념을 받아들이는 경향, 사진과 입체작업 및 설치 등 재료와 소재에 구애 받지 않는 자유분방한 실험과 전위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현상이 이미지와 표현의 과잉, 다양한 재료에 대한 접목 등을 들 수 있다. 예술의 소재나 내용은 각 시대의 가치관이나 생활방식과도 연관된다. 그러므로 현대의 한국미술은 재료나 기법, 소재나 내용을 담는 일에 앞서 우리 삶에 뿌리를 둔 미적 가치와 미의식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디지털 정보화의 물결을 타고 대두된 세계화 문제와 현대미술에 있어 다원주의는 무엇보다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충분한 반성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다원주의 역시 물화(物化)된 외형이 아닌 주체적 개성의 고유성에서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전통의 재해석과 재발굴을 통해 우리의 고유성을 찾는 작업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세계화는 공허한 구호에 그칠 것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우리의 미술이 지닌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우리 미술이 지닌 가능성과 한계는 역사적 축적을 통해 면면히 이어져 온 우리의 가치관과 생활방식 속에 자리하고 있다. 밀려오는 새로운 파도의 실체를 직시하고, 성찰해 보는 신중한 자세가 필요하다. 또한 세계적 다원주의 속에서 예술을 통한 조화를 모색하고 이념적 갈등을 넘어서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상생과 공존의 지혜가 절실히 필요하다. 이러한 갈등들을 화해하고 지양(止揚)하는 과정이 우리의 현대미술의 내용을 이루고 있다. 이것이 또한 우리의 미술을 보다 역동적이고 생산적인 것으로 만들어 우리를 넘어 세계와 소통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



- 김광명(1950- ) 독일 뷔르츠부르크대 철학 박사. 서우철학저술상 수상. 한국칸트학회 회장, 한국예술학회 부회장 역임. 현 숭실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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