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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한국미술의 세계화에 대한 단상

유진상

한국의 현대미술, 혹은 동시대미술이 어떻게 세계화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제기될 때마다 흔히 들을 수 있는 이야기는 ①예술의 본연의 자세를 잃지 말 것(예술근본주의), ②우리의 독자적 현실로부터 출발할 것(민족자연주의), ③서구중심의 세계미술이 보여주는 높은 수준을 따라잡을 것(신 모더니스트) 등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각각의 관점들에 따라 선호하는 비평의 성격이나 정책에 대한 요구, 인프라와 기구들의 성격 등도 모두 달라진다. 그러므로 이들이 제기하는 한국미술계에 대한 바람이나 비전 역시 각각 다를 수밖에 없다. 비평가가 없다는 불평은 대체로 각자가 선호하는 시각을 지닌 비평가가 부족하다는 의미일 공산이 크고, 정책이 부재하다는 한탄 역시 각자가 요구하는 방향이 아니라는 불만일 확률이 높다. 한국은 과거의 그 어느 때보다도 비평가가 많고 다양하다. 정책 역시 정부, 시 자치단체 할 것 없이 레지던시와 공모, 지원사업 등에 공평하고 효과적으로 예산을 쓰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물론 모두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아무튼 우리가 전례 없는 정책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실상 한국의 현대미술이 세계적인 수준에 근접하는 작가들을 배출하기 시작한 것은 이 모든 지원정책과 비평들이 시작되기 이전인 90년대 중반이었다. 현재 세계무대에서 가장 탁월한 역량을 보여주는 한국 작가들이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40대에 몰려있다는 사실이 그것을 보여준다. 이들의 특징은 거의 모두가 국제적 감각을 지닌 유학파들이고 극히 개인(주의)적인 작업방식들을 고수해 왔으며, 2000년대 중반 이후 즉 40대가 지나서야 (메이저)갤러리들과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실제로 한국의 비평가나 정책입안가들이 이들에게 해준 것은 거의 없다. 실제로 이 전문가들 가운데 영어로 글을 쓸 수 있거나 국제적 네트워크를 지닌 이들도 거의 없다. 한국의 미술계를 세계무대에 알리는데 기여한 것은 한 두 명의 기획자와 작가들이다. 그러므로 저 위에 나열되어 있는 입장들이 그다지 알맹이가 있어 보이지 않는 것이다.


한국미술의 세계화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은 이론이나 주장이 아닌, 구체적 활동을 실행한 주체들이다. 가장 대표적인 기여는 위의 작가군을 형성하는데 노력해 온 아트선재센터를 통해 이루어졌다. 두 번째는 한국미술의 생태계를 제공해 온 삼성이다. 세 번째는 비엔날레와 같은 국제적 홍보사업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해외시장을 공략해온 주요 갤러리들이 있다. 이러한 기여는 작가들에 대한 안목, 세계 미술계 전반을 이해하는 경험, 그리고 지속가능한 높은 수준의 활동을 보장하는 인프라와 재정, 사업적 판단력 등에 의해 가능할 수 있었다. 모든 작가들이 세계무대에서 활동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서울이나 지방에서 활동할 작가들도 있는 것이고, 그런 분화가 다양한 것이 오히려 작가들이나 관객 모두에게 선택의 폭을 넓히는 것이 될 수 있다. 모든 작가가 비엔날레에 나갈 필요도 없는 것이고, 모두 시장에만 모여 있는 것도 좋은 것은 아니다. 다만 한국미술의 세계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면 문제가 달라진다.



한국현대미술 영어사이트가 절실하다

전에도 이 지면을 통해 지적했던 것처럼 세계화와 관련해 한국미술은 두 가지 실질적 문제에 봉착해 있다. 하나는 세계무대에서 저평가되어 있다는 것이고(예: 도큐멘타에는 한국작가가 없다-「국제화 시대의 한국미술의 위상」, 『서울아트가이드』(2007년 2월), p.26), 둘째는 정상의 무대에서 활동할 수 있는 작가의 수가 연령대가 낮아질수록 점점 줄어드는 것이다. 첫 번째 문제는 국제 동시대미술 무대에서 매개자로 활약할 기획자, 전문적인 영어번역, 전문적인 영어사이트, 이 세 가지의 부족에 의해 일차적으로 야기된다.(어느 것부터 해결하는 것 필요하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전문적인 영어사이트라고 대답한다.) 두 번째 문제는 작가들의 경험 부족으로 인한 좁은 시야, 대학 미술교육의 답보, 라이프스타일의 획일화 등에 의해 악화된다. 미술계에 진입하고 있는 작가들이 충분히 균형 잡힌 관점들을 확보하고 있지 못하는 데서 이 문제를 알아볼 수 있다. 이 두 가지 문제는 머지않아 개선될 것이다. 우리 자신의 각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외적인 요인들에 의해서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크다. 가장 커다란 변인은 관객들(여기에는 국내 뿐 아니라 국외의 관객들도 포함된다), 그리고 다른 문화예술 분야들로부터 올 것이다.


한국현대미술은 전환점에 도달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변화는 지금까지 존재감이 거의 없었던 이 기구가 어떤 기여를 할 것인지에 대해 막연히 기대하게 만든다. 2013년은 과연 우리에게 모마나 테이트, 퐁피두와 같은 엔진을 제공할 것인가? 물론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다.



- 유진상(1965- ) 파리 8대학 영화학과 석사. 디자인 네트워크 아시아(DNA) 예술감독 역임. 현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 총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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