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77)불안한 큐레이터의 생존환경, 불투명한 한국 미술의 가치

김영순

1. 큐레이터: ‘관계’의 정보혁명시대 지적 자본의 생산자  

IT와 SNS에 의해 발신되는 정보가 오늘의 사회를 관계의 정보혁명 시대로 만들었다. 그 정보를 어떤 시좌에서 편성하는 가에 따라 지적 자본으로서의 가치가 재편되고 있다. 여기에서 관계의 매개항인 사람에 주목한 일본의 저널리스트 사사키(佐々木俊尚)씨는 이 시대를 ‘큐레이션(curation)의 시대’로 규정하였다. 과거의 정보는 물질의 소유에 관계되어 있었다. 정보의 생산과 유통방식은 수직적 사회조직을 기반으로 한 국가권력에 의해 주도되었다. 국가가 정보를 통합, 여과하여 대중(mass)에게 배포한 것이다. 여기에서는 정보의 양과 흐름, 송․수신자가 가시화 되었다. 그러나 인터넷이 보급되고 프로가 아닌 각 개인이 페이스북이니 트위터로 발신하는 네트에는 여과장치가 없다. 흘러넘치는 정보는 가치의 혼돈 그 자체가 된다. 그런데 이 혼돈 속에서 질과 가치를 담보한 정보를 건져 올릴 방법은 믿을 만한 시좌(stance)에 의해 짜여진 컨텍스트에 접속하는 일이다. 그 신뢰할만한 시좌에 접속하려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장(場)에는 질 높고 유효한 정보가 공유되고 있는데, 이것을 그리스어의 ‘비오토프(Bio Tope)’라 한다. 이 비오토프란 유기적으로 맺어진 생물군이 건강하게 서식하는 늪지대를 말한다. 비오토프는 관객이 몰려 가치가 비등해지다가도 돌연 인기가 시들어버리기도 하며 시시각각 유동한다. 그런데 이 의미있는 시좌를 제공하고 컨텍스트를 통해 가치를 재창출하는 사람이 바로 큐레이터(curator)라는 것이다. 이들은 정보혁명에 기초한 글로벌사회에서 물품생산을 대신한 디자인, 브랜드, 특허와 같이 비물질화의 지적 자본을 생산하는 주역인 것이다.


2. 미술관 큐레이터의 미술전시나 담론생산 활동의 의미

그렇다면 앞에서 정리한 큐레이션시대의 큐레이터와 그들의 유기적 생식공간인 비오토프의 논리를 미술계로 치환해보자. 각 개인작가들이 제작한 작품은 그것이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하나의 컨텐츠에 불과하다. 이 컨텐츠가 지적 자본으로서의 정보적 가치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전문지식과 입장을 갖춘 큐레이터에 의해 발견되어 미술사적 담론의 컨텍스트로 편성해야, 비로소 ‘미술’로 생성된다는 논리이다. 다시 말해서 ‘전시’나 ‘미술사적 담론의 장’은 새로운 가치로서의 미술생산이나 기존의 가치를 재조정해 줄 컨텍스트를 시연하고 검증하는 공론장인 것이다. 이것은 앞에서 적시한 자율적인 생장공간 ‘비오토프’인 것이다. 얼마나 비옥하고 생산적 비오토프가 될 것인가가 미술관 큐레이터역량에 달려 있다. 따라서 큐레이터의 육성과 프로젝트지원은 하나의 전시나 몇 작가의 프로모트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 당대 미술계를 활성화하는 원천에 직결된다. 더 나아가 당대미술의 가치제고 만이 아니라 우리미술의 문화자원화, 나아가서는 미래의 국가문화유산의 가치정립과 제고에 직결되는 일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지난해 한국 큐레이터협회가 발간한 『2009 한국미술관 큐레이터 실태조사연구』는 제도권미술관 큐레이터 중심의 설문조사를 기초로, 학력, 경력, 근무현황, 특히 좀처럼 공개를 꺼리는 임금부분까지 구체적 수치로 표기하고 있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직무상 최대불만은 전방위적인 업무범위와 낮은 급여에 있다. 이것은 단순히 큐레이터라는 직의 종사자들의 근무환경과 처우의 문제가 아니다. 정보화를 근간으로하는 글로벌화 시대에 지적 자본으로서의 한국 미술의 가치를 생산할 여건의 미비를 의미한다. 이것은 그나마 제도권미술관에 재직하고 있는 큐레이터들의 경우이다.


 보다 심각한 것은, 계약직으로 국·공립·사립미술관을 전전하는 실직이 예고되어 있는 비정규직 제도권 큐레이터들과, 처음부터 미술관이라는 제도의 밖에서 자자체의 국제아트 이벤트나 기획전 지원공모, 갤러리의 일시적인 기획 등을 주업으로 삼는 일시적 고용에 의존하는 큐레이터들의 경우이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관련학과의 석사과정을 마치고, 더러는 박사과정 수료 또는 학위소지자도 있다. 여기에 외국유학이나 연수과정을 마치고 대학의 시간강사와 저술활동을 하고 있는 우리사회의 고학력 지식인 계층에 속한다. 사실 이들은 준 실업의 상태에 있어 현실적인 생존에 불안을 느끼며 생활하고 있다. 이들이 창조적 일을 할 수 있는 제도적 지원제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 현재 문화예술위원회를 비롯하여 지자체가 운영하는 문화재단에 전시지원제도가 있다. 문제는 이 전시사업지원비가 전시시설 및 도록출판 등 실비에 제한되어 있고, 인건비는 어시스턴트 용역비 정도가 책정되어 있다. 사실상 이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의 인건비 등이 빠져 있거나 포함되어 있다 해도 지극히 미미한 것으로, 이 기금 지원제도에 의거한 전시기획은 큐레이터의 희생을 전제하고 있는 상태이다. 


3. 지적자본화를 주도할 큐레이터의 지원방안

 앞서 진단했듯, 정보화시대의 미술큐레이터는 더 이상 미술관의 행정관리직 직원이 아니라 적극적 가치생산자라는 인식아래, 이들이 하나의 전시를 비옥한 비오토프로, 미술사적 가치 재편의 컨텍스트로 제시할 수 있도록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업무분장이나 상호 협력체계가 작동할 방안을 강구해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국공립미술관의 큐레이터직에서 정규직과 계약직 사이의 불균형문제가 낳는 부조리는 심각한 것으로 거론되고 있다. 특히 미술전시의 관리를 담당하는 팀장급의 계약직제와 짧은 임기는 경쟁력을 담보한 전시기획이나 치밀한 연구성과를 담보한 컨텍스트 작성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하고 있다. 이에 대한 개선은 절실한 것으로 판단된다. 마지막으로 본고에서 주목한 비오토프가 있다. 우리 미술계의 신생군으로 2000년대에 기하급수적으로 증식되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는 대안공간과 유학 등을 통하여 형성된 개인이나 소집단 차원의 글로벌한 작가교류와 소통체계이다. 그들의 전시기획에 대한 지원방안마련은 시급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들의 정보는 단순한 지원만이 아니라 제도권미술관의 제휴를 통해 미술관 소통체계의 다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권장할 만한 것으로 사료된다. 



- 김영순(1952- ) 홍익대 서양화과 석사. 영은미술관 관장, 예술의 전당 미술전시감독 역임.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