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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의재미술관(毅齋美術館) 유감

김찬동

광주의 초가을은 매우 분주하였다. 9월 초 광주디자인비엔날레와 아트광주 행사가 벌어지는 관계로 중앙의 미술관계자들은 물론, 해외 관계자들의 상당수가 광주를 찾았다. 광주디자인비엔날레와 아트광주 개막일을 전후해서는 최근 개장한 홀리데이 인 호텔은 만원이어서 방을 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초가을 풍성한 문화행사는 광주의 가을을 활기차게 만들고 있었다.

필자는 기간 중 공공기금의 지원을 받고 있는 광주 지역 미술관들의 전시와 운영을 평가하기 위해 광주에 들렀었다. 무등산 자락에 있는 의재미술관과 무등현대미술관을 방문하기 위해 택시를 이용했는데, 기사는 의재미술관을 모른다고 했다. 조금은 황당하지만 필자가 길을 안내하며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무등산의 공기는 청명하였고 미술관으로 이르는 증심사계곡은 녹음과 개울물소리로 고즈넉한 오후의 풍광을 연출하고 있었다. 게으른 탓에 개관 때 와보고는 10년 만에 다시 찾는 곳이어서 의재미술관의 방문은 내심 많은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미술관에 들어서는 순간 그 기대와 환상이 무너짐을 맛보아야 했다. 멋진 건물의 외관과는 달리 실내에 들어선 필자를 맞이하는 심한 곰팡내, 높은 실내의 온도와 습도. 경비가 너무 많이 들어 에어컨 가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장마로 인해 발생한 건물 내부의 누수 흔적은 페인트칠도 못한 채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더욱 더 가슴 아픈 일은 진열되어 있는 의재의 작품들에도 곰팡이가 슬어 있고, 밀폐되어 있어야 할 진열장에는 곤충들이 날아다니고 있는 형국이었다. 기획전시의 수준도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어째서 광주가 자랑하는 의재미술관이 이 모양이란 말인가? 운영의 어려움이 생각보다 심각한 수준임에 틀림없다. 젊은 큐레이터와 에듀케이터 2인이 관장도 없이 미술관을 꾸려간다 했다. 미술관의 운영주체인 의재문화재단의 관심과 열정이 상당히 부족함을 직감했다. 광주광역시 당국이나 문화재단 역시 이에 대한 지원은 미미한 상황이라 한다. 비엔날레에 온 외국 손님들에게 추천할만한미술관이 있다면 첫째로 의재미술관을 꼽는다고 하는데, 실제 외국인들이 이곳에 와본다면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될까? 광주를 대표하는 사립미술관 중 하나가 이 정도 수준밖에 되지 않음을 비웃으며 언필칭 예향임을 자랑하는 광주의 문화수준에 허탈해 할 것이다. 광주를 예향이라 할 때, 그 예향의 중심요소 중 하나가 조선말 남종화의 거봉인 의재 허백련(毅齋 許百鍊 1891-1977)의 예술세계와 그 정신이 아니던가? 미술관 경영의 내막까지야 상세히 알 수는 없지만, 이유 불문하고 운영부실의 책임은 행정당국에 있다고 본다. 시(市)는 미술관 운영이 정상화 될 수 있도록 시급한 노력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사립미술관은 형식상 개인의 소유이지만 부족한 공공미술관이 수행하지 못하는 공공영역을 대행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공적 자금의 지원이 필요한 곳이다. 재단의 노력이 부족하다면 그 노력을 견인해 낼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할 것이다. 재단의 재정능력이 부족하다면 시(市)가 이를 이전받아 운영하는 적극적인 방법도 필요할 것이다. 특히 이 곳이 향후 지정 노력을 벌이고 있는 무등산 문화지구의 중심공간으로서의 의미를 가진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러하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가 선행해야 할 사업
무등산 진입로에 즐비하던 무허가 식당들이 정비되어 자연환경의 훼손을 막은 것은 잘한 일이나 정돈된 지구 내에 개성없는 식당촌이 조성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단순한 환경정비 차원보다는 좀 더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할 것 같다. 다양한 창작스튜디오나 전시공간을 더 조성함으로써, 의재미술관과 인근의 문화시설들을 더욱더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의 검토도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이 곳의 지정학적 요소는 광주만의 경쟁력을 가지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판단한다. 세계적 관광명소가 된 일본 나오시마(直島) 지추미술관(地中美術館) 못지않은 명소로 만들 수 있는 여건을 가진 곳이라고 생각한다.

지역문화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인프라와 함께 콘텐츠와 스토리텔링이 중요한데 의재미술관을 중심으로 한 콘텐츠와 스토리텔링의 개발에 관심을 기울일 때이다. 정부에서 광주에 추진하고 있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사업의 경우도 지역의 문화콘텐츠를 구축하는 아카이빙 사업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하는데, 아시아 문화콘텐츠의 수집도 중요하지만 의재라는 콘텐츠에 대한 체계적 구축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광주의 프로젝트는 허망한 것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도 아시아문화중심도시의 프로그램과도 연계하여 예향 광주의 자랑인 의재미술관 운영의 활성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김찬동(1957-) 홍익대 석사.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큐레이터, 아르코미술관 관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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