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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예술생태를 읽어내는 비평

김준기

미술비평의 지향은 과연 사각 프레임의 안쪽이어야만 하는가. 대부분의 비평은 예술가의 창작의 결과물인 예술작품 자체에 대한 비평적 접근에 그침으로써 예술작품을 사회적 생산의 결과물로 보는 데에 상대적으로 소홀히 해왔던 게 사실이다. 미술사가 연대기적 서술을 기초로 미술의 역사적 고찰에 주목하고, 미학이 감성을 보편적 가치체계로 규명하려는 것이라면, 동시대 예술을 실시간으로 따라잡고자하는 비평은 당연히 예술작품뿐만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예술현상에 대해 포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예술작품이라는 결과물의 안팎은 물론이거니와 그것을 배태하는 예술생태계를 거시적 안목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있어야 비로소 당대성을 확보한 미술비평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미술에 대해 글을 쓰는 일을 하는 한 사람으로써 늘 반복되는 질문이지만 현묘한 길을 찾기란 쉽지가 않다. 그 누구도 일거에 이러한 불임의 미술비평을 걷어치우는 법을 깨치지 못할 것 같다. 하여 간접적인 해답을 염두에 두고 몇 가지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비평적 지점들을 소개한다. 스타시스템에 의존하는 예술제도와 공간을 비껴가는 ‘공공미술론’, 예술가들의 자생력을 키우는 ‘창작소그룹 논의’, 예술가들의 서식지에 주목하는 ‘작업실론’ 등을 통해서 ‘예술생태를 읽어내는 비평’의 단초를 찾기 위함이다.

우선 공공영역에서의 예술적 소통을 전제로 하는 전시장 바깥의 미술에 주목하는 일이다. 시민대중과 시각예술의 접점은 대체로 전문적인 미술문화공간을 비켜나있다. 이 거리를 좁히기 위해 다양한 예술적 장치를 염두에 둔 예술가들의 노력은 소통지향의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실험을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그 소통 실험들의 지향점이 전시장 안쪽으로 향한다면 자폐의 수렁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공공미술은 이러한 예술언어의 내적지향을 외적지향으로 돌려놓고 있다. 공공장소에서의 미술이 ‘건축물미술장식품’이라는 법령으로 규정되는 좁은 개념을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공공미술론이라는 비평적 담론의 확산이 가속도를 붙이고 있다. 많은 예술가들이 결과뿐만이 아니라 과정 자체까지도 중요한 예술적 성취로 삼고자 하는 프로그램으로서의 미술을 만들어내고 있다. 새장르 공공미술이 지칭하는 바 이들 프로세스 아트는 예술적 콘텐츠를 가지고 일상생활 영역에서 시민대중과 직접적인 조우를 시도하는 것들이다. 이제는 예술이벤트들이 공공미술가들의 실험을 차용하는 유사품을 내놓기까지 한다. 이제 막 공공미술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하는데 벌써부터 일간에서는 외형적인 공공성을 추구하거나 과시적인 공공성에 경도되는 형편이고 보면 그동안 안쪽미술에만 주목해왔던 비평도 바깥미술의 빠른 걸음을 따라잡기 위해 좀더 분주해져야할 것이다.

두 번째는 예술제도와 공간을 둘러싼 흐름이다. 여기저기서 비엔날레를 비롯한 각종 미술국제적인 미술행사가 만들어지면서 미술계는 보다 역동적인 국면을 맞이했다. 문제는 90년대 중반 이후의 한국미술계가 이들 예술제도의 활성화를 기점으로 건강한 예술생태의 자생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대규모의 미술이벤트가 현대미술의 전략적 지점들을 한 번씩 훑어주고 지나간 자리에 대안적인 문화생산의 씨앗이 남을 것인지 아니면 황폐한 문화산업의 빈자리가 덩그러니 남을 것인지는 좀 더 두고 볼 일이지만, 확실한 것은 미술관과 대안공간, 갤러리 등 미술문화공간의 일상적인 문화정치 또한 예술비평을 가늠하는 중요한 매개지점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이들 미술문화공간의 문화정치보다 더 소중한 것이 예술가들의 자생력이다. 미술제도와 공간의 권력에 휘둘려 스타시스템에 의존하는 문화산업의 언저리에서 얼마나 많은 예술가들이 좌절과 절망을 맛보아야 하는가.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방법 가운데 하나로 창작소그룹 활동이 주목받고 있다. 제도공간의 활력 못지않게 예술가들의 자치와 연대로부터 자생하는 예술적 에너지를 찾아내는 비평적 관점으로부터 제도에 포섭되지 않는 전위로서의 예술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예술가의 삶과 창작을 담보하는 작업실 공간에 대한 비평적 접근이다. 최근 일산오픈스튜디오를 비롯한 대안적인 작업실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그것은 작업실을 자폐적인 예술창작의 공간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나눔과 연대가 함께하는 소통의 공간임을 확인하는 실험이다. 오아시스프로젝트의 스콰트(squat) 작업실 퍼포먼스 또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외에도 수많은 예술가들의 작업실 공간이 예술과 공동체의 연계를 모색하고 있다. 예술가들의 삶의 처소와 예술작품의 생산기지에 대해 주목하지 않고 그 결과물들을 포장해서 옮겨놓은 전시장에서의 시각이미지 게임에만 주목한다면, 우리는 동시대 예술을 문화산업 이상의 것으로 파악하기 어려울 것이다. 예술생태계를 온전히 파악하는 일을 전제하지 않은 채 제도화한 예술소통의 공간만을 바라보는 일은 뿌리를 튼튼하게 하지 않은 채 나뭇잎이 푸르게 생장하기를 바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작가의 삶을 중심으로 예술세계를 고찰하는 것을 작가론이라고 부르는 반면, 예술작품의 분석과 해석을 중심으로 이해의 폭을 넓혀나가는 글을 작품론이라고 한다. 지금까지의 예술가와 예술작품에 대한 이해는 작가론이나 작품론에 머물렀다. 건강한 예술생태는 대규모의 예술제도와 전시공간보다는 미시적 공동체로로서의 작업실의 작가와 지역주민들의 나눔에서 출발한다. 동시대 시각예술에 대한 보다 전일적인 가치체계 아래로 포섭되는 논법의 하나로 작업실론을 생각해본다.



- 김준기(1968- ) 홍익대 예술학과 박사. 현 사비나미술관 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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