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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한국 디자인의 문화적 과제

최범

한국 사회에서 디자인에 대한 담론은 날로 증폭되어가고 있다. 성장의 한계로 주춤거리고 있는 한국 경제의 발걸음을 이제는 디자인이 앞장서 이끌어가기라도 할 것처럼 지금 디자인은 전면에 나서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디자인은 여전히 기업 활동의 종속적 변수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 말은 디자인이 아직 문화적인 영역으로서의 독자성을 확보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디자인의 문화적 독자성이라는 것이 이른바 순수예술에서 말하는 미적 자율성과 같은 것은 아니다. 디자인은 일종의 사회예술이며 집단적인 문화 양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디자인의 문화적 의미에 대한 인식 역시 일반 예술과 같은 차원에서 이루어질 수는 없다.

지난 50년 또는 100년 간 한국 사회에서 디자인의 기능은 한마디로 말해서 근대화의 윤활유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이 시기 동안 한국 사회의 최대 과제는 근대화였고 디자인은 그러한 문명화 과정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도록 하는 미적 기제의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아마도 한국 근대디자인의 시대적 소명이었을 것이다. 그러면 과연 그것으로 만족스러웠는가. 디자인의 역할을 그렇게 객관적으로 설명하면 그만인가. 이것은 근대화 과정에서 디자인의 담당한 역할에 대한 내적 평가의 문제가 된다. 다시 말하면 근대화 과정에서 한국의 디자인은 어떤 유의미한 사회예술과 집단적인 문화 양태를 만들어내었는가 하는 것이다. 한국 디자인은 이러한 물음으로부터 비껴날 수 없다.

이러한 물음을 던지기 위해서는 먼저 디자인이 사회화되는 과정과 사회가 디자인되는 과정을 살펴보아야 한다. 현대 사회에서 디자인은 기본적으로 소비라는 행위를 통해 매개된다. 다시 말해서 오늘날 디자인은 산업사회의 생산-소비 시스템에 통합된 미적 기제로서 사회적 욕망을 개인적인 차원으로 전이시키는 운송수단이다. 그러니까 디자인 역시 다른 모든 문화적 산물과 마찬가지로 생산과 수용이라는 사회적 상호작용을 거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 욕망과 소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한 사회에서 디자인은 크게 생산자(기업)가 주도하는 모델과 대중이 주도하는 모델로 나누어진다. 전자는 가장 일반적인 의미의 디자인으로서 이른바 우리 시대의 주류(主流) 디자인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디자인을 결정하는 주체는 생산자이다. 물론 생산자는 언제나 소비자를 염두에 두기 때문에 그것은 결국 상호작용을 하게 되지만 그러나 소비자의 욕망을 주조하는 것 역시 최종적으로는 생산자에 의해 결정된다. 그런가 하면 후자는 대중이 일상 속에서 자발적으로 만들어가는 디자인이다. 대중은 언제나 일상적인 삶 속에서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물건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기존의 제품을 변형시키기도 하는데 이러한 과정은 전반적으로 자발성에 의존한다. 이른바 현대판 민속예술인 셈이다. 전자를 프로페셔널 디자인, 후자를 버내큘러 디자인이라고 부를 수 있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이러한 두 영역이 상호작용하면서 하나의 통합적인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까지 한국 디자인은 근대화라는 이름의 문명화 과정에서 한국 대중의 취향과 생활양식을 서구적인 기존에 적용시키는 역할을 해왔다. 물론 그러한 문명화 과정이란 일방적인 것만은 아니었고 그런 과정에서 한국적인 변용과 수용이 이루어졌다. 아파트와 좌식문화가 만나고 두루마리 화장지가 식탁 위에 놓이고 물걸래 청소기와 김치냉장고가 나오게 되었다. 말하자면 전체적으로는 서구화되는 가운데 부분적으로는 다시 한국화되는 맥락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 여전히 그것은 일방적인 문명화 과정이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에게는 좀더 창조적인 반응이 필요하다. 한국의 디자인에는 그것이 필요하다.

그나마 조금씩의 변화가 있다. 1980년대에 비로소 한글 글자꼴에 대한 인식이 싹텄으며 1990년대에 들어오면 전반적인 대중문화 상승의 분위기 속에서 디자인 분야에도 새로운 감성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산업화의 부산물이자 기업 활동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던 디자인에 이제 대중문화적 감성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어쩌면 이제 한국 디자인에는 조선 후기의 진경(眞景)정신과 같은 것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디자인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 시대의 풍속화이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디자인은 우리 시대의 생활양식을 만들어내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디자인의 생산자와 수용자의 구분은 엄격하게 말해서 무의미하다. 디자인의 창작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The task of Korean design

During the last 50 or 100 years the foremost function and task of Korean design might as well be to lubricate its way to modernization. This has been the role of modern design in Korea. Was it really successful? It is an unavoidable question.
We need to consider and cross-check its accomplishment from the inside. In other words, we have to prove the usefulness and collective culture that had been brought up to our society by design. Unfortunately Korean design has helped set a standard of public taste and lifestyle against western point of view. Of course we succeeded partly, but not enough, in Koreanizing some of the design concepts.

As a whole it was a one-sided modernization, which required more of our creativity. Korean designers might need such spirit as that of Real-view landscape(眞景), which reflects the uniqueness of Korea. Design should eventually contribute to the creation of a new lifestyle. In this sense, the separation of producers and consumers of design products has little meaning, for creative design is the task of all who are leading their lives here and now.

- Choi Bum

*서울아트가이드에는 '지금, 한국미술의 현장'으로 소개되었습니다


- 최범(1957- ) 홍익대 미학과 석사. 월간디자인 편집장 역임. 현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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