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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미술관의 민주화’를 위장한 블록버스터 쇼

김성호

블록버스터 쇼가 최근 유행이다. 이런 대형전시는 피상적으로 미술관의 민주화를 수행하듯이 보인다. 대중과 괴리를 둔 엘리트미술 전시의 관행을 완화시켜낸다거나 복제물로만 감상했던 명작의 오리지널리티 감상 기회 제공을 통해 ‘문화적 자본’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사회적 공공기관으로서의 대중교육을 실행하는 양상들이 그것이다. 그러나 블록버스터가 내세우는 민주화란, 실상 해외의 유수한 미술관의 소장품을 막대한 대여금과 보험료를 지불하고 빌려온다는 점에서, 당시 지출분을 만회하고 이를 넘어서 대흥행의 수익 창출을 도모하는 엔터테이먼트적 소통에 국한되기 십상이다. ‘세기의 천재’라든가 ‘색채의 마술사’ 혹은 ‘서양미술 400년’과 같은 화려한 수식어는 물론이고 ‘일생에 단 한번뿐인 기회’라는 식의 선동적 언론 홍보와 과대 선전은 ‘관람객 동원’에 사활을 걸고 있는 주체기관의 상업적 목적을 다분히 드러낸다. 전시를 학술적으로 조명하는 부대행사들은 뒷전이고 도록이나 다양한 아트상품의 판매를 촉발하는 마케팅이 전면에 나서서 전시의 상품화를 작동시킨다.


이러한 전략들은 관람자로 하여금 본 전시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든다. 무수한 군중들의 군집 탓에 관람객들은 작품 하나하나를 제대로 감상하기조차 힘들다. 게다가 전시작가에 대한 편협한 개인사와 낭만적 예술가상에 초점을 맞추어 작가를 신비화하는 전략은 다분히 엔터테이트먼적 대중주의를 생산하고 말 뿐이다. 해외 순회가 이미 진행 중인 전시를 급작스럽게 국내에 가져오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국내의 경우, 인상파 관련 작가 전시를 프랑스가 아닌 일본의 미술관 소장품으로만 옮겨오는 경우조차 있다. 



블록버스터 전시는 미술관 자체 기획력을 상실시킨다

문제의 심각성은 블록버스터를 주최하는 미술관이 자체 기획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출 절감을 핑계로 주제에 부합하는 작품들이 아닌 주변부 작품들로 전시를 구성하기 십상이어서 미술사적 맥락에 위치를 점유하는 작가들의 본질적 의미를 오도하기 쉽다. 물론 여기에는 인지도가 있는 유명 작품들은 대여측에서 많은 부분 대여금지 목록으로 정하고 있는 탓도 있지만 설사 협상이 타결된다 할지라도 훨씬 높은 작품의 보험료를 감당할 길이 없어 알맹이는 빼고 껍질만 가져와 불균형한 작품 선정을 전시에 실행하는 경우가 다반사라 할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블록버스터를 공동주최한다는 미술관은 실상, 일정부분의 지분만 챙기고 기획에는 전혀 관여를 하지 않는 허수아비거나 아예 장소만 이벤트기획사에 대여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벤트기획사로서는 이미 만들어진 전시를 성공적으로 가져오는 것이 기획일 뿐이다. 이 경우는 대중들의 문화적 향수를 심각하게 오도할 수 있다. 일반 전시장이 아닌 미술관의 대관을 성공시킴으로써 공공성의 위상을 뒤집어쓰고 상업적 흥행 보증을 도모하는 이벤트회사들의 전략은 파렴치하기조차하다. 


시장주의는 근본적으로 민주화의 공간이 아니다. 언제나 등가로 교환 체계가 일어나지 않는 불공정성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문화와 예술이 거주할 공간이 아니라는 점에 우리들 논의가 있다. 기부문화도 체계적으로 정착되어 있지 못한 국내 현실 속에서, 미술관의 입장으로서는 재정난에 대한 타개책으로 블록버스터에 치중함으로써 미술관이 수행해야 할 또 다른 ‘소장품 수집과 보존 그리고 연구’의 기능들을 방기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블록버스터와 같은 시장이 주도하는 전시 문화 앞에 선 공공미술관의 위기는 결국 미술관의 ‘민주화’를 지향하는 고귀한 이상에 늘 싸움을 걸며 ‘대중화’를 촉발하는 ‘돈’으로부터 초래된다. 슬픈 현실이지만, 위기 탈출의 해법 중 하나도 그 미운 ‘돈’이 관건인 셈이다.


* 이 글은 10월 28일 아시아비평포럼 2006년에서 발표했던 '미술관의 민주화와 국제아트 이벤트'의 일부이다.



김성호(1966- ) DEA파리1대학 미학예술학(미학 전공) 박사. 미술세계 편집장 모란미술관 큐레이터, 미술세계 편집장 역임. 현 경기문화재단 문예진흥기금 심의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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