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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이제 좀, 제대로 하면 안 될까요!

임창섭

2012년 현재까지 개관한 국공립미술관은 겨우(?) 열 개를 웃돈다. 그런데 요즘 미술관이 더 생긴다는 소식이 들려 아쉬움이 줄어든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서울관’을 서울특별시는 ‘시립북서울미술관’을 내년에 준공예정이고, 부산광역시도 또 하나의 미술관을 건립한다고 한다. 대구미술관은 지난해에 개관하였고 울산, 인천광역시도 시립미술관을 개관하기 위하여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새로 생기는 미술관은 개성 있는 모습으로 탄생했으면 하는 바람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러 소문과 정황을 보건대 희망대로만 되지 않을 것 같다. 구슬도 꿰어야 보배라는데, 여러 좋은 지식과 방향을 알려줘도 과거 잘못을 답습하려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미술관은 건축물 즉 ‘하드웨어’, 그곳을 채울 작품과 자료들 ‘콘텐츠’, 이 둘을 연결시키는 사람 ‘소프트웨어’로 나눌 수 있다. 우리 세계가 나(주체)와 너(객체) 그리고 이 둘을 연결시키는 관계(인식)로 구성된 것처럼 말이다. 당연히 세 가지 구성요소가 제자리에서 제 역할을 하게끔 구조를 짜야 하지만 상황은 전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이제는 ‘벽 없는 전시장’, ‘수장고 없는 미술관’, ‘수장고를 개방한 미술관’, ‘수집품 없는 미술관’ 등 특별하고 재미있는 미술관을 설립해도 될 시기이다. 언제까지 고만고만한 건물과 비슷한 마감재, 어디서나 비슷하게 운영하는 미술관만을 만들 것인가? 이렇게 해서는 개성과 창조를 미덕으로 하는 미술문화와는 거리가 멀다. 건물 외부모습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살림도 살아본 사람이 아는 법, 미술관 내부시설은 충분한 전시경험을 가진 자들에게 자문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작품이 드나드는 출입문 크기가 다르고 턱이 있는 전시공간을 만들지 않을 것이다. 살림을 살아보지 않는 사람이 물어보지도 않고 건물을 지으니 이런 일을 간과하는 것이다. 하물며 조명기구와 설치에 관한 것도 그렇다.


콘텐츠보다 건축물?

콘텐츠 즉 자료와 작품은 어떤 것을 수집하고 연구해서 전시할 것이지 결정하는 것이 미술관 개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요소이다. 따지면 건물 외관이야 어떻든 기능과 용도에 충실하면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지만, 콘텐츠는 그렇지 않다. 먼저 소장해야 하는 작품이 있고 이를 위해 미술관을 짓는 것이 아니라면, 지금처럼 건물만을 위한 진행방식은 당연히 바꿔야 한다. 이제는 어떤 콘텐츠를 가지고 미술관을 운영할지 머리를 싸매야 한다. 미술관의 역할은 보이지 않는 연구를 통해서 전시라는 이름으로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의 중요성은 두말하면 잔소리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콘텐츠보다 건축물이 먼저 논의대상이 된다.


‘나는 가수다’가 한창 인기가 있을 때, 자신의 실력을 얼마나 믿으면 자신의 밑바닥까지 드러내는 위험한 짓을 하겠느냐는 생각이 든 적이 있다. 결론적으로 냉혹한 평가를 감당할 수 있는 자신감을 그들은 보여주었다. 물론 실패한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처럼 냉정하게 점수가 매겨지고 평가받는 일은 미술계에서는 없다. 자신들은 프로라고 자칭하면서 평가받길 거부한다. 제대로된 논문 한편도 발표하지 못하고, 못 하나 벽에 제 손으로 치지않고, 조명 하나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이들이 어떻게 프로라는 말을 입에 올릴 수 있는지 그 강심장이 무섭다. 미술관에서 출판된 전시도록에 게재된 몇몇 글은 차마 읽어내기 민망하다. 말로 전시기획이 되고 작품연구가 되는 것이 아니다. ‘K팝 스타’라는 방송은 ‘노래 부르기와 듣기’에 대한 우리의 미학을 두세 단계 쯤 올려놓았다. 노래방에서 악만 쓰면 노래라고 생각했던 좁은 시각을 깨우쳐주었기 때문이다. 평가받는 일은 참담한 심정이 들게도 하지만 진정한 프로로 한발작 내딛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영어 몇 마디 한다고 영문으로 논문을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듯이, 박사학위로 전시기획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진정하게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해야 할때이다.


국공립미술관은 관장 것도 학예사들 것도 아니다. 또 작품을 전시하고, 그것을 소장한다고 작가들이 주인은 아니다. 주인은 엄연히 그곳을 찾아서 작품을 감상하고 즐기는 이들이다. 이들의 냉혹한 눈과 굳게 다문 입을 두려워해야 한다. 이제는 정말 제대로 해야 한다. 그들에게 외면 받지 않으려면. 



임창섭(1961-) 홍익대 대학원 예술학과 석사.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예술총감독,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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